Dear, moon
/ 네가 섬에서 다녀올 때 즈음에
내가 섬에서 다녀왔을 때를 기억해
나는 내가 섬에 있을 때를 기억해 그래서 네가 섬으로 간다고 했을 때
네가 섬에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다시 섬으로 갈 수 있어
/ 섬에서 편지하던 걸 기억 해
늦은 밤 차갑고 습한 작은 놀이터 그네 위에서 삐걱거렸던 내 상실의 무게를 기억 해
해가 뜨기 전에 말고 해가 떠있을 때도 나에게 와 말을 걸어줘
방법은 개기일식(皆旣日蝕)따위의 것들이 있어
해를 끼치지 않는 컴컴한 밤에는 특히나 네가 보름일 때 너는 너무 밝고 커다라
그래도 네가 밝은 건 까만 밤 때문이 아닐 거야
마음이 벅차고 넘쳐 차마 내가 나를 안아줄 수가 없었던 때를
기억 해 내가 그때 팝을 모르던 때라 편지를 쓰며 주로 들었던 노래는
/김광진의 편지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김 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이 노래들을 들으면 바닷가를 지나던 기찻길 냄새가 나
이 노래들을 들으면 그 밤거리 심야식당에 생맥주 냄새가 나
이 노래들을 들으면 언제든지 나는 내가 사랑했던 섬으로 가
섬에서 떠나오면서 상공에 피땀으로 수놓았던 내 그리움은 나 이렇게
나 이렇게 잘 지내고 있어 나 이렇게 온화한 사람이 되었어
네가 바라던 내가 바라던 나
그것만이 다가 아니더라도 나 이렇게 기특하게 잘 지내고 있어
라는
내가 네 옆자리 하늘에 떨어뜨린 작은 별빛들을 보았어?
내가 공중에 내뱉은 나약하고 짙은 진동을 느꼈어?
나는 이렇게 살아있어 내가 이렇게 살아서 존재하고 있어 내가
박동에 맞춰 가슴이 부푸는 것을 가만히 쳐다보곤 해
신비로운 일 어쩌면 기적처럼 /
/ 나는 이제 섬에 있을 때를 기억 해
혼자 텅 빈 건조한 방에서 주섬 주섬 적었던 편지를
어찌할지 몰라 깜빡 잊은 척 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빨래를 돌렸던 때를 기억 해
/ 너의 섬은 어디에 있고
또 나의 섬은 어디에 있나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지구의 판 조각 위에서 우리는
위태롭게 발을 붙이고 서 있잖아
그럼에도 징검다리 건너듯 바다 건너 판 조각 위를 움직이는 건
우리는 다리가 길어서 행복한 동물일 거야
섬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느 곳을 향해 걸어도
땅의 가장자리이기 때문일 거야
생각해봐 그곳에 서 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원래 위태로운 것과 아름다운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아 그래서 나는
위태롭다고 느낄 때에 아름답다고 생각해
아름답다고 느낄 때에 위태롭다고 생각해
허물을 벗는 갑각류처럼
가장 연약해질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안쓰럽고 용감해 우리는 모두가 성장할 때가 가장 나약하고 우습고 기괴해
자궁 내막에 붙은 배아의 세포처럼 양수에 털이 젖은 짐승처럼 변태 하는 애벌레의 번데기처럼
천적에게 한입 거리로 먹히기 딱 좋은 꿈틀거리는 상태에서
/ 너의 섬은 어디에 있고
또 나의 섬은 어디에 있나 영원히
이 지구의 지각 변동은
서로를 당기듯이 둥글게
부딪히지 않았는데도 스치지 않았는데도
세상에서 가장 서로를 쓰라리게 아파하며 서로가
부딪히기를 아득하게 바라는데도
스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데도
서로를 당기듯이 둥근 것들이 둥글게 공전하는
원래가 세상은 야속한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어떤 어른들은 그러던데
비극은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어렵지 않게 간극이 유지되는 것이 서글퍼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만을 위해
수도 없이 노력해왔던 평화를 너에게만 선물하고 싶던 나
나는
고민이 없고 마음이 따뜻 해
/따뜻한 것은 모두 다 너에게서 온
어쩌면 탐욕으로 젖은 선홍빛 살결
어쩌면 기다리고 싶은 것 일지도 모르는
따뜻한 것은 뜨거운 것보다 식지 않는
어쩌면 이러다 결국
내 희망은 갈 길이 없이 떠돌지라도
나는
고민이 없고 마음이 따뜻 해
/
해와 달이 같이 있는 날들은 어쩌면 매일
하루 온종일 뒤틀리지 않고 올곧은 마음이 따뜻 해
/
네 얼굴
저기 저 방아 찢는 토끼 모양이라고 하던데
검은 자국은 어떤 애벌레가 파먹던 자리 같지
털이 젖은 짐승 첫걸음마 떼던 발자국 같지
자궁 내막에 붙어있는 세포의 초음파 사진 같지
지구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달의 뒷면처럼
상상만으로 존재하던 너의 뒤통수
뒤돌아 갔지만 뒤돌아 간 적이 없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