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동 May 21. 2023

유람선 두 척으로 인류의 모든 갈등을 소환시키는 괴력

<슬픔의 삼각형> 스포일러 없는 리뷰


슬픔의 삼각형


왜 이걸 해야 하지? 무명 모델인 칼은 불편한 자리에 있다. 상의를 탈의한 채로 이상하게 서있는 남자들. 칼은 오디션을 보고 있었다. 모델돼서 뭐 하니? 인터뷰 현장에 취재하러 온 의문의 남자는 모델 지망생들에게 비아냥대고 있다. “매일 게이들이 집적대고. 여자 모델의 수입 중 1/3만 떨어지는 게 현실 아니야?” 하지만 이 오디션 참가자들에게 취업의 꿈이란 절실하다. 특히 칼은 더 그렇다.


왜? 칼에겐 여자친구가 있다. 역시 모델인 아야. 칼과는 다르게 아야는 인기가 많다. 유명 브랜드에 초청받아 패션쇼에 참여한 아야. 당당한 표정과 제스처, 걷는 포즈까지 그녀는 처음 보는 사람이 봐도 매력적이다. 아야에게 부족한 남자친구가 되기 싫은 칼. 어디 음식점에 갈 때 아야가 계산하는 경우가 잦았기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러나 이 자존심에 더 스크래치 가는 일이 생겼다. 뭔가 의미심장한 듯한 표정을 짓는 아야. 점점 서로 대화하다 보니 ‘얘가 진짜 나를 사랑하고 있나?’라는 의심이 들었다. 의심이 확신이 되어가는 칼. 아야는 실제로 칼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냥 인스타그램 상에서 인플루언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그런 척 연기한 것이다. 이게 다 돈 문제는 아니야! 체면 구긴 칼. 칼은 아야와 협찬으로 얻은 대형 유람선 티켓에 대해 이야기한다. 탑승객이 된 두 사람. 그리고 그 배 안에 있던 승객들과 직원들은 정말 끝내주게 웃긴 블랙 코미디 한 편을 완성한다.


웃긴 코미디


우선 영화에서 가장 큰 강점으로 뽑고 싶은 부분은 다층적으로 읽힐 수 있는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후술 하기로 하고, 글쓴이가 두 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작품 자체가 웃기다는 점이다. 글을 쓰면서 <웅남이>가 생각난다. <웅남이>는 뭐랄까 내내 정색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박성광 감독이 개그맨 출신 아닌가. 그 개그맨으로서의 경험치를 다 갈어넣어서 ‘이래도 안 웃어?’라고 계속해서 질문하는 듯한 느낌이 별로 맘에 안 들었다. 이 <슬픔의 삼각형>은 장르로서의 코미디를 잘 잡았다. 어떻게 웃길까? 바로 현실을 들여다보는 방식에 있었다.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동하는 것은 제목에도 들어간 ‘삼각형’이다. 이 삼각형을 뒤집거나 똑바로 주시하는 것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니까 삼각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즉 시선에 대한 영화가 이 <슬픔의 삼각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똑바로 바라보는 것, 그건 어떻게 들어갔을까? 첫 장면이다. 이게 예고편에서도 자본주의 미소에 대해 다루면서 발렌시아가와 H&M 사이의 온도차를 다뤘다. 또 인분을 직업으로 다루는 사람이 영화에 등장한다. 여기서 ‘나는 똥 파는 사람이오’식의 말장난이 대사로 제시된다. 이 인물은 자본주의에 대한 감독의 코멘트가 들어간 캐릭터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가 사용하는 유머는 이런 것의 연속이다. 기본적인 설정에서 더 나아가 깊은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가령 2부에서 어떤 사람 둘이 대화하는 부분은 감독이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되 어떻게 비틀 것인가를 염두하고 각본을 쓴 티가 났다.


다음은 삼각형을 뒤집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회 구조를 뒤집어서 영화를 본다는 의미다. 이 부분은 영화의 강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길게 쓰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영화의 코미디에 대해 쓸 때 이 장면들이 빠진다면 섭섭하다. 영화는 특정 러닝타임을 할애해서 작품에서 보여준 전반부에서 보여준 모든 세팅을 다 뒤집는다. 이 뒤집기 방식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웃음이 나오는 이유가 된다. 솔직히 감독도 영화 만들면서 킥킥 웃었을 것 같다. 이 부분에 관한 감독의 연출력은 정말 고점 중 고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을 전부 이해해서 일어날 만한 일만 딱딱 골라 이야기를 만들었다. 


유람선 두 척


글쓴이가 생각하는 영화의 최고 강점은 다방면으로 읽힐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영화가 다룬 쟁점이 굉장히 많다. 첫 번째는 젠더라는 주제다. 사실 이 부분은 굉장히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영화 1부는 그냥 대놓고 ‘칼과 아야’가 주인공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 핵심으로 작동하는 문제는 두 사람의 수입이다. 매일 여자친구 아야가 다 결제하니 자존심이 상한 칼. 왜 상했을까? 영화는 이후 이야기 전개를 통해 '어떤 것이 문제였을까' 코멘트를 하는 듯하다. 또한 영화는 상황의 대비로 ‘왜 이것이 문제고, 이런 일들을 멀리 떨어져서 보면 얼마나 웃기는 짓인가?’를 보여준다. 이 연출 방식을 가만 보면 아이디어부터 특별하다. 남녀 간의 성차별적인 시선, 관습을 조롱하기 위해서 갖고 온 소재가 '모델'이다. 모델은 여성들이 주류가 되어 시장을 이끄는 것으로 보인다. 역시 젠더의 관점에서 남녀차별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뭐 여자 형사나 남자 간호사같이 차별적 시선을 다루는 클리셰(?)를 다루지 않았으면서도 모든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이끌고 갔던 감독의 천재성이 느껴진다.


이 연출 방식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 각본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져야 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야기가 되게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지점이 있긴 있다. 2부에서 3부로 남아 가는 장면이 그렇다. 그런데 영화가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코멘트를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 작품 이해가 더 쉽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의 내적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돈 때문에 돌아버려


상황을 대비시켜서 남성주의적인 인류 서사를 뒤집는다. 영화 주인공이 칼이라는 점에서 이 부분은 인물 간의 가장 중요한 갈등요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 젠더라는 소재만큼이나 중요하게 밑줄 쳐져 있는 부분은 더 있다. 우선 인류의 이기심 있다. 나만 잘 살면 남은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라는 그 멘탈리티가 2부에서 3부 지나가는 장면 중 핵심으로 제시된다. 또 계급문제에 대한 코멘트도 돋보인다. 영화의 실질적인 진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에 대한 리액션이 작품에서 흥미롭게 제시되기 때문이다. 인류의 갈등이라고 했을 때 빠질 수 없는 소재가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근현대사 고전 떡밥도 영화가 잘 다뤘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안에 미국 사회에 대한 탄식과 조롱이 있었고 남녀관계 사이에서 이뤄질 수 있는 상하관계 문제도 있었다는 점은 영화가 색다른 접근법을 보여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이 원인일까 생각하는 것이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대신 2부에서 보여주는 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조롱이 눈 크게 뜨지 않고 보면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은 다른 관객분들에게 단점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일어나는 극 중 사건은 영화 이야기의 흐름이나 메세지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살짝 현학적인 느낌이 있어서 글쓴이도 살짝 딴생각을 했다. 여러분은 눈 크게 뜨고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이 과연 세계사의 어느 부분을 꼬집고 있는지 잘 보시길 바란다. 영화가 대사를 정말 잘 썼다고 느끼는 장면이다.


존재와 부재


영화에서 몇몇 인상 깊었던 부분 몇몇은 운동 에너지에 있다. 영화는 아래에서 튀어 오르거나 위에서 아래로 수직낙하하는 이미지를 잘 사용했다. 우선 영화 포스터에 누가 구토하는 신이 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기생충>에서 봤던 장면도 영화에서 보인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윗사람의 존재가 아랫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작품에서 중요하게 묘사된다. 왜? 우디 해럴슨이 맡은 역할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도 영화의 감상 포인트다. 이 사람이 등장하는 선후관계 인물 내적 묘사는 특별하다. 이 역시 사회 시스템에 대한 풍자가 된다는 점에서, 또 후반부에 반대로 우리들의 모순을 꼬집는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 영화의 운동 에너지는 작품을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와도 관련이 있다. 얼마 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라는 영화를 봤다. 글쓴이는 이 '진짜로~'와 <슬픔의 삼각형>이 다르게 느껴진다. 왜? 전자와는 다르게 후자가 뭔가 우화 같은 느낌이 있다. 이 카메라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에 대한 문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보여준 부분이지만 이 <슬픔의 삼각형>에서 더 도드라진다. 옆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느낌? 마치 내가 이 배의 탑승객이 된 듯한 그런 사실감이 아니라 철저하게 거리 두는 채로 이야기를 관람하는 것이다. 이 거리감의 존재는 영화 내내 이 작품이 웃기기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름 좋은 연출방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우화 같은 느낌이란 말을 뒤집는다면 이야기가 만들어진 틀대로 움직인다는 뜻과도 통한다. 그런데 영화 보시면서 그렇게 큰 지장이 되지는 않을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거리 연애만큼이나 어려운 영화 잘 만들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