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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야매 Jul 12. 2020

퇴사와 실패 사이

실패를 향해 실시간으로 다가가는 중입니다

회사를 그만뒀다. 사무실을 나와 고개를 들었을 때 햇빛이 강해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만둘게요”, 그 짧은 문장을 입 밖으로 떠미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입 안에서 수백 번 맴돌던 문장이었다. 팀장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마주치며 나는 힘겹게 그 문장을 세상으로 밀어냈다. 속에서만 머물던 생각이 기어코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회사와는 전혀 관련없는 사진

결심이 입 밖으로 나와 비로소 실체를 갖고 고막을 통해 다시 내게로 전해지던 순간, 나는 갑자기 두려웠다. 회사가 나를 붙잡아주기라도 바랐던 걸까. 손이 떨리는 것을 눈치채고 주먹을 꾹 쥐어 눌렀다. 오래 생각한 일이었다. 일을 그만두는 일은 생각보다 큰 용기를 필요로 해서 그 짧은 문장을 내뱉는데 오롯이 한 달이 걸렸다. 이제 와서 두려움을 새삼스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알고 있다. 나의 퇴사는 실패로 끝날 것이다. 몇 푼짜리 블로그 운영과 습작 쓰기는 회사 월급만큼을 벌어다주지 못한다.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못마땅해하는 가족의 눈치와 월 천 받는 친구에 대한 나의 시기가 내 마음을 짓무르게 할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다시 이력서를 적어야 하는 날이 언젠가 오게 될 것이다.


실패를 알고도 그로 향하는 길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실패를 향해 다가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실패를 회피할 때 얻는 편안함. 발버둥 치지 않아도 들어오는 월급. 1인분의 삶을 살고 있다는 안도감. 그 사이에서 무뎌지는 스스로를 그대로 놔둘 수 없었다. 나와 관련 없는 숫자만이 떠다니는 사무실에 앉아서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그곳을 배회하는 유령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나의 숫자는 회사 모니터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아홉 시 반부터 여섯 시 반은 오직 회사 모니터 속에만 존재했다. 가끔씩은 회사의 숫자가 나의 숫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사무실 의자에 꽁꽁 묶여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남의 숫자 속에서 무뎌지지 않기로 했다. 나의 숫자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럴듯한 계획이나 전략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아는 건 나의 숫자가 그곳에 있지 않다는 것뿐이었다. 일단 사무실을 나서야만 했다. 


* 이거도 퇴사와 전혀 관련없음

결국 회사를 나왔다. 두렵지만 실패를 원한다. 단 한 번의 반항도 없이 수십 년을 남의 숫자에만 얽매여 살고 싶지 않다. 잠시라도 나의 것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 같은 선택이라 해도 상관없다. 내게 남은 수십 년을 생각한다. 지금이 아니라도 나는 언젠가 결국 실패를 결심하리란 걸 어렴풋이 깨닫는다. 시기가 상관없다면 지금이 적기다. 아무런 단서도 보험도 없지만 나는 일단 사무실을 나왔다.


성과가 없을지도 모른다. 단서도 없고 장비도 허접하다. 막무가내 탐색은 실패로 끝날 것이고, 나는 다시 사무실 의자로 돌아가 스스로를 묶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패를 안다는 것이 도전하지 않을 이유일 수는 없다. 원래 인간은 죽음을 알고도 끝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 아닌가.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 삶이 있고, 나아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곧 삶이다. 그 사이에 무얼 하느냐가 관건이다. 실패를 알아도 도전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지금 실패를 향해 실시간으로 다가가고 있다. 종착지에서 나를 기다리는 실패가 어떤 모양일지는 알 수 없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 시점을 최대한 유예하고 달아날 뿐이다. 나의 숫자를 찾는 과정은 결코 헛될 수 없다. 실패로 향하는 그 과정이 곧 나의 숫자며 나의 삶이다.  


사무실에서 나왔을때 나는 여전히 두려웠다. 하지만 햇빛이 길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실패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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