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야매 Mar 16. 2019

미국의 분리수거는 틀렸다

거대 국가의 환경 횡포에 대하여

미국에서의 첫 숙소는 조금 낯설었다. 에어 비앤비로 구한 숙소는 영화에서 보던 전형적인 미국식 가정집이었는데, 그 생활 양식이 한국과는 달라 적응하느라 애를 좀 먹어야 했다. 그 집은, 실내에서 신발을 벗지 않았고, 부엌에는 가스 밸브가 없었으며, 화장실에는 하수구가 없어 욕조 바깥으로 물을 튀기면 안되었다. 예상치 못한 규칙들에 당황하는 내게 집주인은 자신의 생활 수칙 몇 가지를 자부심이 섞인 말투로 일러주었는데, 그 중 분리수거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었다.


깐깐하던 그녀의 첫 인상처럼 그 집은 분리수거를 꼼꼼히 한다고 했다. 미국의 다른 집들은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자신은 그런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웬만하면 나도 이를 지켜주었으면 좋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한반도에서 분리수거에 가장 엄격한 조직인 군대를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등병 시절 분리수거를 다시 배우느라 고참들에게 들었던 갈굼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민간 사회보다 세분화된 쓰레기 종류에 따라 군대 쓰레기장에는 쓰레기통이 일고여덟 개는 됐다. 졸병들이 아침에 눈 뜨자 마자 하는 일은 쓰레기장에 전날 모인 쓰레기 봉투들을 점검하고 묶어 오물 담당병사에게 검사를 받은 후, 운동장만한 대대 오물장으로 내리는 일이었다. 이 일은 굉장히 세심한 작업이었다. 뭐 그리 꼼꼼한지, 이물질이 조금이라도 묻어있는 쓰레기는 깨끗이 씻어서 쓰레기통에 다시 넣어야 했고, 어쩌다가 이미 묶은 봉투 안에서 종류가 다른 쓰레기라도 발견되는 날엔 봉투를 뒤집어 까는 것은 물론 범인 색출을 위해 생활관 곳곳으로 출동해야 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대한민국 육군 병장 예비역인 내게 분리수거는 전문 분야였다. 그러나 미국인인 그녀가 이야기하던 분리수거는 내 머리 속에 있던 복잡한 분리수거와는 조금 달랐다. 달랐다기 보다는 단순했다. 아주 많이 단순했다. 그녀의 분리수거는 오직 음식물 쓰레기와 비음식물 쓰레기만을 분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녀의 요지는 그냥 음식물을 일반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쓰레기 버리는 일에 대한 낯섦은 패스트푸드점에서 다시 반복됐다. 이 나라 맥도날드도 세트 메뉴를 시키면 콜라가 딸려 나온다. 그런데 이 나라 맥도날드에는 음료 버리는 곳이 없다. 탄산 음료에 대한 미국인들의 사랑은 익히 들어왔건만, 그들의 왜곡된 사랑이 퇴식구에서 음료 버리는 곳마저 없애버렸을 것이라곤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 반쯤 남은 콜라 통을 유기하고 도망갈 배짱이 없었던 나는, 일반 쓰레기통에 햄버거 종이와 함께 음료를 그냥 버리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콜라를 얼음까지 다 마셔야지만 자리를 뜰 수 있었다.


한 주에 한 번, 거대한 쓰레기통들이 길거리에 나란히 도열한다


미국의 쓰레기 투기 스케일은 미국의 땅덩이만큼이나 거대하다. 집집마다 거대한 쓰레기통을 서너 개씩은 두고 산다. 그 크기를 대략 묘사해보면 둘레는 뚱뚱한 미국인 허리만하고 높이는 성인 여자 가슴께 까지 온다. 일주일에 한번 큰 트럭이 와서 모인 쓰레기들을 수거해가는데, 그때마다 길거리에 내놓은 쓰레기통을 보면 입구가 닫히지 않을 만큼 내용물로 가득 차 있다. 분리수거도 되지 않은 쓰레기가 이토록 많이 배출되고 있다니, 군대에서 분리수거 PTSD가 생긴 나로서는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국 쓰레기장에는 전자동 인공지능 분리수거 시스템이라도 설치되어 있는 줄 알았다. 나의 상식으로는 그래야만 했다. 내가 한국에서 이미 묶은 봉투를 다시 뜯어가며 분리수거를 했던 이유는 환경을 위해서였다. 물론 1차적으로는 고참들의 갈굼을 피하기 위해서였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의 갈굼도 궁극적으로는 환경 보존을 위한 것이었기에 나의 분리수거도 지구를 위한 일이었다. 그 좁은 땅덩이에서 얼마 나오지 않는 쓰레기들을 가지고 우리가 환경을 위해 그렇게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미국의 거대한 땅덩이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들이 분리수거도 되지 않은 채 쓰레기장에서 매립되고 있었다면 그간 우리의 노력은 도대체 무슨 의미였단 말인가?


생활 폐기물 발생량, 1990 – 2014, 단위: 천 톤, 출처: OECD


OECD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2014년도 생활 폐기물 발생량은 대략 2억 3천만 톤으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OECD에 가입한 유럽 국가들이 발생시킨 생활 폐기물을 모두 더한 총량이 대략 2억 7천만 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이 홀로 발생시키는 쓰레기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다. 반면 같은 해 한국은 1천 8백만 톤의, 미국의 십 분의 일이 채 되지 않는 양의 생활 폐기물만을 발생시켰다. 더욱 눈 여겨볼 점은 발생된 생활 폐기물 중 재활용된 것의 비율을 보여주는 재활용률의 수치다. 같은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생활 폐기물 재활용률은 35%로 59%를 기록한 한국에 훨씬 못 미치는 퍼센티지를 기록했다. 더 작은 땅덩이에서 더 적은 쓰레기를 배출하는 나라가 분리수거에 더 열정적인 모습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분리되지 않은 쓰레기들은 대개 매립 또는 소각을 통해 처리된다. 그 중에서 매립이 50%이상의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환경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라도 매년 1억 톤 이상의 쓰레기들이 분리되지 않은 채 땅 속에 묻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눈이 번쩍 뜨일 수 밖에 없다. 1억 톤이라는 무게가 너무 커 감이 안온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롯데 타워의 무게가 겨우 75만 톤이다. 고로 미국의 땅 밑으로 매년 수 백 채의 123층짜리 건물들이 묻히고 있는 셈이다. 그 많은 쓰레기를 땅 속에서 묵혀 석유라도 만들고자 하는 것일까. 과연 거대한 미국의 스케일답다.


땅 속에 묻히거나 재가 되어 날아간 쓰레기들이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지하의 쓰레기들이 석유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쓰레기는 매일 같이 배출 및 처리되며 그에 따라 환경 피해는 차곡차곡 누적되고 있다. 세계은행이 2016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20억 톤 가량인 전 세계 쓰레기 총 배출량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며 2050년에는 34억 톤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쓰레기 배출량은 지구가 받는 환경 부담을 지속적으로 키우고 있다. 지구가 지금과 같은 상태로 버틸 수 있는 임계치가 어디쯤일지 그저 세입자에 불과한 우리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증가세가 계속된다면 지구가 어느 순간 인내를 잃고 지속 불가능의 상태로 빠지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또 하나 자명한 것은, 매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쓰레기를 묻고 태우는 나라인 미국이 그 책임의 최대 주주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분리수거 행태로 미루어 보았을 때, 쓰레기 최다 배출국으로 솔선수범을 해야 마땅한 미국은, 현재 그 책임을 나몰라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십 수 년 전 교토 의정서를 탈주하던 미국의 모습이 문득 겹쳐 보이는 것이 나만의 착시만은 아닐듯싶다.


이쯤에서 분리수거가 잘못된 쓰레기 봉투를 발견하면 뒤집어 깠다던 군대 이야기를 잠깐만 다시 해보자. (어디서든 지나친 군대이야기는 삼가라고 배웠지만 이걸 빼면 할 말이 별로 없는지라 부디 양해 부탁한다.) 가끔은 쓰레기를 뒤집어 까면서 행정관님의 지휘 하 범인 색출에 나서기도 했는데, 보통 쓰레기를 잘못 버린 범인은 짬이 좀 찼다 싶은 상, 병장들이었다. 분리수거에 닳고 닳은 그들이지만, 어차피 분리수거는 졸병들 몫이니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대강 쓰레기를 던져 넣은 것이다. 심지어 쓰레기의 대부분은, 주로 분리수거를 담당하는 일, 이병들은 짬이 안 돼 감히 사먹을 수 없는 PX 음식이었기에 내색은 할 수 없었지만 욕이 턱밑까지 차오르곤 했다.


공용으로 사용한 쓰레기통은 모두 함께 치우는 것이 마땅하다. 단지 계급이 더 높다는 이유로 분리수거에서 열외 하는 것은 부조리가 만연한 군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상식적인 세상이라면 더 많은 쓰레기를 배출한 사람이 쓰레기를 솔선수범하여 치우는 것이 맞다. 마찬가지로, 공용으로 사용한 지구에서 환경 보존의 책임은 모든 국가가 함께 져야 한다. 특히 더 많은 쓰레기를 배출한 국가라면 더더욱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앞장서지는 못할 망정 최소한 자기 몫은 해야 하는 것이다. 이 곳은 부조리한 군대가 아닌 상식이 지배하는 지구다. 미국은 다른 국가들이 그를 위해 존재하는 졸병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바다를 떠돌던 쓰레기들이 뭉쳐 형성된 태평양 한복판의 쓰레기 섬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쓰레기 섬의 영토는 이미 프랑스의 3배 크기를 넘었으며 지금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이 소식이 지구를 향해 점점 커지고 있는 쓰레기의 위협을 함의하고 있음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골든 타임을 지나기 전에 쓰레기 섬의 대주주, 미국의 각성이 필요하다. 작은 국가들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지구 쓰레기 생산의 큰 지분을 갖고 있는 국가의 도움 없이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부디 태평양의 그 쓰레기 섬이 미국 본토를 습격하기 전에, 분리수거 습관이 그들의 거대한 쓰레기통 속에 자리 잡기를 바랄 뿐이다.



출처

OECD. (2019). Municipal waste (indicator). doi: 10.1787/89d5679a-en

Kaza, Silpa; Yao, Lisa C.; Bhada-Tata, Perinaz; Van Woerden, Frank. (2018). What a Waste 2.0 : A Global Snapshot of Solid Waste Management to 2050. Urban Development. Washington, DC: World Bank. © World Bank. https://openknowledge.worldbank.org/handle/10986/30317

매거진의 이전글 영어하는 한국인의 고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