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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야매 Mar 28. 2019

총의 위협이 삶과 함께하는 나라, 미국

총에 대한 미국인들의 양가적인 인식에 대하여

유튜브 조회수 5억을 기록하며 2018년을 강타했던 차일디시 감비노의 노래, <This is Amercia>의 뮤직 비디오는 충격적이다. 흥겨운 노래 소리에 맞춰 춤추던 감비노는 별안간 총을 꺼내 들고 함께 춤추고 노래하던 사람들을 쏴버린다. 그 직후에 부르는 가사가 이 곡의, 그리고 또한 이 글의 핵심을 관통한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This is America. Don’t catch you slippin’ up” (이게 미국이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녀)


이 장면의 모티브는 찰스턴 총기 난사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Childish Gambino - This Is America (Official Video), 유튜브 화면 캡쳐

“총 맞지 말고 와”. 미국 행 비행기 표를 끊고, 한동안 못 볼 친구들을 만나 한창 소주를 마시고 다닐 때 누가 걱정 삼아 해줬던 말이다. 그 친구야 농담 반으로 한 이야기겠지만, 미국에 온 이튿날 햄버거 먹으러 가던 점심 대낮에 총소리를 듣고 난 후부터는 그 친구의 얘기를 단순히 농담으로 여길 수만은 없었다. 언젠가는 내가 저 총소리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총은 가까이 있다. 구하기도 쉽다. 18세 이상의 미국 거주자라면, 신원 조회를 위한 간단한 서류 작성만 완료하면 간단히 총기를 구매할 수 있다. 비 이민 비자로 단기 체류하는 사람이라도 거주지만 증명하면 구매가 가능하다. 아마존을 통해 온갖 물건이 날아다니는 시대인 만큼 인터넷 주문도 환영이란다. 미국 사람들은 TV를 들여 놓듯이 총을 쇼핑해서 집에 구비해놓는다.


TV과 총의 차이점은, 하나는 살상 목적으로 제작되어 존재 자체 만으로 위협인 반면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TV처럼 쉽게 팔려 나간 총은 미국에서의 삶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어 시민들에게 다가온다. 실제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의 보고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미국서 총기로 인한 사망자의 수는 약 4만 명에 육박한다. 하루마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총기 사고로 죽어나간 셈이다.


지나가다 호기심에 들러보았던 총포사, 생각보다 프리한 분위기에서 총을 구경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총기 사고란 언제 마주칠지 모르는 실질적 위협이다. 미국인들도 안다. 이곳은 한국에서도 TV를 통해 짐짓 심각한 눈빛으로 보아오던 총기 난사가 1년에도 몇 번씩 실제로 일어나는 곳이니만큼 당연히 그들도 안다. 사태가 계속 되다 보니, 몇 년 전부터는 재난 대비 교육의 일환으로 총기 난사 대비 교육을 국가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다. 지진이나 화재 같은 재난과 같은 선상에 총기 사고가 놓인다는 것은, 그만큼 총기 범죄가 통제할 수 없고 예방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미국에서 총기 사고란 자연 재해나 마찬가지로 취급 받는다.


얼마 전 나도 회사에서 총기 난사 대비 교육을 받았다. 나를 빼고는 다들 미국에서 수십 년씩 거주해온 미국 토박이들인 만큼, 한국에서의 민방위 훈련 마냥 이번 교육도 무심하게 여기고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러나 교육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미국에 온 이래 그렇게 차분하게 가라 앉은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경찰서에서 나온 담당관이 교육을 마치고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달라고 하자, 마치 신앙 간증이라도 하듯이 사람들이 앞다투어 손을 들고 총기 사고에 대한 자신의 경험담이나 생각을 하나 둘씩 꺼내 놓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미국에서 아직 1년을 채 살지 않은 나 조차도 거리에서 총소리를 몇 번은 들었는데, 평생의 총기의 위협 속에서 살아온 미국인들이야 말로 얼마나 불안에 떨어왔겠는가.


그 중, 한 직원이 했던 이야기를 잠시 빌려와 쓰고자 한다. 가난한 흑인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는 그녀는 어릴 적부터 이러한 위협에 항상 노출됐었다고 했다. 미국 어디든 총기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기는 하지만, 특히 가난한 동네라면 더욱 그런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기에, 그녀는 항상 주변을 살피고 경계하는 삶을 살아왔더랬다. 그런 습관이 비록 때로는 피곤할지라도 자기 안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이 곳에는 총기의 위협이 실재하기 때문에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항상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주변을 경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그녀는 굳은 목소리도 말했다.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가 없었다. 운이 나쁘면 내가 오늘 TV 속보 속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동네를 걸어 다닐 때 조차도 누군가 총을 꺼내 들지 않을까 항상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 내 주변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항상 의심하며 살아야 하는 사실이, 그런 사실들이 당연한 현실인 이곳의 삶의 모습이 슬프지 않을 수 없었다. 


2018년 미국에서 총기 범죄로 인한 사상자표, 자살자가 포함되지 않아 CDC의 통계와는 수치 차이가 있다. 출처: Gun Violence Archive


미국에서 총을 없애버릴 수는 없을까? 민간 세상에 굴러다니는 총이 아무래도 낯설어 보이는 한국인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굳이 총과 함께 위험 속에서 살아 가려는 것인지, 그냥 총기 소지를 금지해버릴 수는 없는 것인지, 몇몇 미국인들에게 물었다. 안타깝게도 미국인들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총으로 인한 위협에는 대개 공감하면서도 총기 비합법화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험한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수정헌법 2조에 적혀 있듯이, 안보와 안전을 위한 무장은 허용되는 것이 미국의 룰이라고 했다. 그런 방식으로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어냈고, 스스로 그들의 자유를 지켜냈다고 했다. 고로 총기 소유란 미국이란 나라가 세워진 방식이자, 미국의 정신 그 자체라는 것이다. 많은 미국인들에게 무기 소지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것은 그들이 피 흘려 얻어낸 자유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로 받아 들여지기에, 결코 미국에서 총은 사라질 수 없다고 했다. 


사족일 수 있겠지만 한 마디 덧붙이자면, 미국에서 총이 사라질 수 없는 이유 중 전미총기협회(National Raffle Association, 이하 NRA)의 로비를 비롯한 정치적 사정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까지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거대한 규모의 로비를 가능케 하는 NRA의 자금력은 수많은 미국인들의 총기소지 권리에 대한 지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총기 소지에 대한 미국인들의 우호적인 인식을 먼저 논하지 않고 NRA 문제를 총기 비합법화의 실패의 주 요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시각이다. 미국과 총이 함께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기 소지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인의 근원적인 사고 방식에서 찾아야 한다. 


총으로 피 흘려 얻어낸 미국의 건국과 그 피를 바탕으로 미국인의 가슴 속에 뿌리내리고 자라난 총기 소지에 대한 우호적인 가치관 속에서, 미국과 총은 수채화 물감이 섞이듯 엉겨 붙어 뗄래야 뗄 수 없게 되었다.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의 미국 시민들이 총구 앞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총기의 위협 앞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함에도, 정작 총을 버리는 일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주저한다. 평생을 총의 위협 없이 살아온 나 같은 한국인으로써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미국인에게 총이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위협이자, 사라져서는 안 되는 자부심이다. 총의 위협이 삶과 함께 하는 나라, 앞서 서론에 언급했던 노래의 가사처럼, "This is America", 이게 미국이다. 




참고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2018). National Center for Health Statistics, Underlying Cause of Death 1999-2017 on CDC WONDER Online Database. Retrieved from https://wonder.cdc.gov/controller/saved/D76/D48F344

Gun Violence Archive. (2019). Gun Violence 2018. Retrieved from https://www.gunviolencearchive.org/past-to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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