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딜레마
아침 출근길에 비둘기 밥을 주워 먹는 사내를 보았다. 족히 며칠은 아니, 몇 주는 씻지 못한 것 같은 시꺼먼 얼굴에 근방 수 백 미터까지는 무난히 맡을 수 있는 악취를 가진 그 사내는, 집 없이 떠돌아 홈리스라 불리는 부류의 사람인 것 같았다. 아침부터 배를 많이 주렸는지, 누군가 비둘기를 위해 뿌려 놓은 감자칩을 정신 없이 주워 먹고 있었다. 쇼킹한 장면에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던 나는, 주변에 그 모습을 놀랍게 바라보는 사람이 오직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고 다시 한 번 놀라게 됐다.
미국의 홈리스들은 한국의 노숙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같은 하늘을 지붕삼아 풍찬노숙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겠으나, 그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차이는 진라면 순한 맛과 불닭볶음면쯤 된다고 감히 이야기 할 수 있겠다. 물론 미국 홈리스들이 훨씬 맵다. 그들에 비하면 을지로 입구역 노숙자 아저씨들은 순하디 순한 양반들이다.
미 전역에 집 없이 떠도는 홈리스의 숫자는 2017년 기준 대략 55만 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인구 대비 비율로 따지면 0.17%, 0.022%를 기록한 한국에 비해 한참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수치는 미국의 거리를 잠시만 돌아다녀도 금새 체감할 수 있다. 홈리스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도시 전역에 골고루 출몰한다. 비둘기보다 더 자주 보이는 것이 노숙자랄까.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굳이 그들을 더 자주 만나고 싶다면 저소득층 동네 상가 근처나 패스트푸드점 주변으로 가면 된다.
종류도 다양하다. 쇼핑 카트에 온갖 짐을 넣어서 돌아다니는 만물상 홈리스, 쓰레기통에서 먹다 남은 스타벅스 커피를 꺼내 마시는 절약왕 홈리스, 우주와 천지창조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으며 달러 대신 믿음을 요구하는 사이비 홈리스, 멀쩡히 서 있는 신호등을 상대로 분기탱천의 쿵푸를 선보이는 무술인 홈리스, 뜬금없이 길 건너편 사람에게 고래고래 욕을 퍼붓는 욕쟁이 홈리스, 온 세상이 그녀만의 화장실인 노상방뇨 홈리스까지, 그야말로 미국의 길거리는 홈리스 천태만상이다.
홈리스들을 어쩌다 한 번씩 만나는 것이라면 한국에 돌아가서 풀만한 무용담 거리도 생기고 좋겠지만, 만약 당신이 매일 같이 홈리스를 상대해야 한다면 그들은 실질적인 위험으로 다가온다. 일단 그들 중 대다수가 소위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LA 홈리스 서비스 관리국(Los Angeles Homeless Services Authority, 이하 LAHSA)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LA 카운티 내의 홈리스 중 42%가 심각한 정신 질환이나 약물 남용 문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치에 과장을 8%만 더 보태면, 오늘 내가 출, 퇴근길에서 만났던 홈리스들 중 한 명 걸러 한 명씩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미국은 총기 소지가 합법인 나라다. 상가를 조금만 둘러봐도 비비탄과 장난감 총 대신 실탄과 진짜 총을 벽에 잔뜩 걸어 놓고 파는 총포상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다시 말해, 제정신이 아닌 홈리스들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괜히 신경 안 건드리고 멀찍이 떨어져 다니면 그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홈리스와 내가 만나게 되는 순간은, 내가 그들에게 다가갈 때가 아니라 그들이 내게로 다가올 때다. 모든 홈리스가 구걸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와 직접 상호작용하게 되는 홈리스들은 대부분 달러를 요구하며 손을 들이미는 자들이다. 그들은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적당한 타겟을 발견하면 다가가 적선을 요구한다. 달라는 대로 주면 만족하고 돌아가는 나름 예의 바른 홈리스도 종종 있지만, 주면 더 달라고 쫓아오고 현금이 없어 못 주겠다 하면 그 앞에서 짜증과 신경질을 부리는 홈리스들의 수가 아무래도 훨씬 우세하다. 신경질만 부리면 다행이다. 돈을 줄 때까지 쫓아다니는 경우도 종종 목격했다. 지금까지 내가 체득한 바로는, 그냥 이어폰을 귀에 꽂고 못들은 척하며 빠르게 지나치는 것이 최선의 대처다.
적극적이고 위협적인 구걸이 끝이 아니다. 홈리스들이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굴다리 밑이나 건물 주변 길에 텐트를 줄지어 쳐놓으면, 그 길은 사실상 통행불가 구역이 된다. 지린내도 지린내지만, 언제 텐트에서 튀어나와 구걸을 할지 모르니 그 기나긴 텐트 촌을 뚫고 가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일례로 LA 다운타운 바로 아래에 위치한 스키드로우라는 동네는, 홈리스로 유명해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다. 처음 LA에 왔을 때부터 스키드로우 주변은 가능한 가지 말고 혹여 꼭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무조건 차를 이용하라는 이야기를 꾸준히 들어왔다.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은 동네다. 그래도 살다 보니 오며 가며 스키드로우 주변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허름한 건물들 사이로 텐트들이 빽빽이 설치되어 있는, 그야말로 세기말 풍경이었다. 굳이 사람들에게 충고를 듣지 않았더라도 걸어 지나가고 싶은 기분이 들만한 동네는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 바늘과 깨진 술병들이 굴러다니는 스키드로우의 거리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 중, 홈리스가 아니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홈리스가 모든 시민들의 공유물이어야 할 거리를 점거해버린 것이다.
이처럼 홈리스들은 일반 시민들에게 공포와 불편을 주는 존재다. 그렇다면 우리는 홈리스를 혐오해야 마땅할까.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왜냐면 그들도 스스로 원해서 홈리스가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하루를 구걸해 하루를 먹고 사는 홈리스라고 해서 어릴 적 장래희망으로 홈리스를 적어냈을 리는 없지 않은가. 모종의 이유로 인해 그들은 길바닥으로 나와야만 했을 것이다. 홈리스로 인해 매일 같이 불편을 겪어야 하는 나의 입장에서, 그들을 만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즉각적으로 미움과 기피의 감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서 거시적인 관점으로 그들의 처지를 숙고하고 나면, 쉽게 그들을 미워할 수 만은 없다. 홈리스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LAHSA에서 홈리스가 되는 경위를 2017년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실직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나태와 같은 개인적 요인이 아닌, 경제라는 개인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구조적 요인이 홈리스를 탄생시킨 가장 주요한 원인이었다. 또한 실직을 비롯한 빈곤의 문제로 길바닥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에, 지나치게 비싼 집값이 크게 한 몫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같은 연구에 따르면, LA 홈리스 중 퇴역군인의 비율도 10% 가까이 되는데, 이는 군생활간 받은 정신적 신체적 내, 외상으로 인해, 전역 후 사회 재적응에 실패한 군인이 그대로 길바닥에 나앉았음을 시사한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퇴역군인 홈리스의 비율은, 군에서 얻은 이상 증세를 돌봐주어야 할 사회 지원시스템의 부족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퇴역군인 홈리스 역시 구조의 문제로 볼 수 있다. 같은 논리로 홈리스 중 정신 질환 환자의 비율이 높은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정신 질환이나 약물 중독을 지원할 수 있는 복지 시스템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로 인해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길거리로 몰리는 일에 더욱 취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의 노력 여부와는 별개로, 한 번 길거리로 떨어진 자들이 스스로의 구원을 통해 원래의 삶으로 복귀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한 번 홈리스라는 딱지를 받고 나면 일자리 구하는 일이 훨씬 어려워진다. 솔직히 이야기로, 냄새 나고 헤진 옷을 입은 채 집도 없이 거리를 부랑하는 홈리스들에게 대체 누가 일자리를 선뜻 주려 하겠는가. 현실의 벽에 부딪힌 홈리스들은 좌절을 경험하고, 하루를 살아남기 위해 하루를 구걸하며 스스로 홈리스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게 된다. 그 정체성이 더욱 굳어질수록 정상적인 삶의 궤도로 돌아가는 일은 더욱 어려워진다. 결국 악순환 속에서 그들의 삶은 점점 비참해질 수 밖에 없다. 미국의 사회 시스템 자체가 홈리스를 생산하고 그들을 길거리에서 계속 맴돌게 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요지는, 홈리스들을 나태한 인간이 자연 도태되어 거리로 나앉은 결과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차가운 길거리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 사회 속에서 근근이 버텨내던 그들은 각자의 사정에 의해 불운하게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이때 그들을 붙잡아 주어야 할 사회안전망이라는 이름의 헐거운 그물은 그들 모두를 받아 낼 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물에 걸리지 못하고 틈새로 떨어진 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려 홈리스란 정체성을 부여 받고 본의 아니게 홈리스로 살아 가게 됐다. 그들의 잘못이라고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불운을 겪은 죄와 떨어지던 찰나 사회 안전망을 제대로 붙잡지 못한 죄뿐이다.
홈리스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사회 구조 속에서 본의 아니게 부서져 나온 사회의 부산물들이다. 이 불운한 부산물들은 으깨져 길거리를 굴러다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때 그들을 품고 있었던 사회를 향하여 반격을 날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그 반격에 맞아 상처 입는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마찬가지로 부서지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는 일반 시민들이다. 홈리스의 탄생에 그 어떤 책임도 없는 그들이 홈리스들로 인해 불편과 위협을 견뎌야 한다.
그렇다면, 그 일반 시민들이 홈리스를 대하는 스탠스는 어느 것이 합당할까. 그들의 사정을 생각하면 쉽게 혐오의 감정을 품어선 안되겠지만, 막상 그들 때문에 피해를 매일 같이 입다 보면 그러한 홈리스 감수성은 순식간에 조각이 난다. 그들의 사정이 어떻건, 그들 때문에 매일 같이 출근길을 돌아 가야 하는 것도 지겹고, 구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이어폰을 낀 채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녀야 하는 것도 지겹다. 성인 군자가 아니기에, 끊임 없이 불편과 불쾌감을 주는 그들을 좋은 마음으로 보아주기는 어렵다. 나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라면, 어쩌면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혐오의 감정으로 치우치지 않고자 한다. 홈리스들을 오로지 연민의 마음으로 대할 만큼의 대인배는 되지 못하지만, 무조건적인 홈리스들에 대한 미움은 거두려고 한다. 비둘기 밥을 주워 먹는 저 사내를 보며, 한 켠으로 드는 혐오는 잠시 미뤄두고, 비둘기와 감자칩을 경쟁해야만 하는 그의 사정을 어설프게나마 상상해본다. 그렇게 연민과 혐오 사이 그 중간 어딘가에서 갈팡질팡하며 무조건적인 혐오로 무게추가 쏠리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것이 길바닥으로 추락해야만 했던 홈리스들에게 내가 바칠 수 있는 최소한의 존중이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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