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사는 게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나는 평소에 귀차니즘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서, 해야 하는 일도 미루고 미루었다가 마감일 직전에서야 한 번에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isfp의 버릴 수 없는 천성이랄까...) 언제부터 그랬나 생각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아주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것 같고, 회사 생활을 한 지 6년 차가 되어가는 지금 시점까지도 정말 급한 업무가 아니고서야 '아 이제 시작하지 않으면 늦는다' 싶을 정도에 일을 시작한다. (그렇다고 절대 일을 대충한다거나 피해를 끼칠 정도로 늦게 하진 않는다. 남들에게 피해주는 걸 극혐하기 때문에)
무엇을 살 때도 그렇다. 사야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미적미적 구입을 늦춘다. 냉장고에 달걀이 3개 남아 있으면 그때 그냥 바로 사면 되는데, '아직 3개 남아있으니까 뭐...'라는 식으로 생각하다 결국 달걀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빨리 사놓을 걸...'하는 것이다. 그나마 그래도 식재료 구입은 양반인 편이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최대한' 빨리 사려고 의식한다. 하지만 옷은 다르다.
나는 평소에 아이쇼핑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딱히 물건을 살 일이 없어도 길거리의 가게라던지, 복합 쇼핑몰을 목적 없이 둘러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살 것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냥 쇼핑몰을 둘러본다던지 하는 것을 굉장한 시간 낭비로 생각한다. 정말 입을 옷이 없어서 이제 옷을 사지 않으면 평범한 인간의 범주에서 탈락하게 생겼구나! 싶지 않은 이상 옷 사는 건 항상 나에게 미루고 싶은 일 중 하나다.
물론 내 천성 자체가 게으르고 귀차니즘을 심하게 느껴서인 것도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팔아 재끼는 여성복들을 보면 더욱 옷이 사기 싫은 탓도 없지 않아 있다.
이전의 글로 말했듯이 나는 키가 남성 평균키보다 큰 178의 여자이고, 그렇다고 모델처럼 날씬한 사람도 아니다. 상체보다는 하체에 살이 몰린 하체 비만이지만 그렇다고 배에 살이 없는 것도 아닌, 통통-뚱뚱 어딘가의 사람인데, 길거리 옷가게나 일반 인터넷 쇼핑몰에서 내가 맞는 옷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랑 비슷한 일이다.
키가 크다 보니 다리도 길어서 일반 길이의 바지를 사면 보기 싫게 발목이 껑충 보인다. 패션을 위해 일부러 발목이 드러나는 패션이 아니라 의도치 않은 어정쩡한 핏이 되어버린다. 최근에도 바지를 세 개 정도 샀는데 (그 전까지는 청바지 한 개, 슬랙스 한 개로 버텼다) '롱 버전' 옵션이 있는 인터넷 쇼핑몰 중 고르고 골라 2박 3일 정도 고민한 뒤 구매했다. 바지의 총 기장이 100cm는 넘어야 안심이 된다. 역시나 그렇게 긴 바지를 샀더니 딱 괜찮았다. 하지만 이런 롱 버전이 없는 쇼핑몰도 많고, 있더라도 내가 원하는 디자인이 아니기도 하다. 종종 주변 사람들이 "옷 사기 힘들겠다~"라고 하는데 부정하지 않는다. 맞다. 나는 정말 옷 사는게 힘들다.
그리고 요즘 왜 이렇게 크롭이 대세인지. 배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길이의 상의를 찾기는 또 너무 어렵다. 길이만 짧으면 모를까 내가 초등학생 때 입었어도 꽉 끼었을 만큼 가슴 둘레도 너무 타이트하다. 유행이 무조건 싫은 건 아니지만, 나는 입고 싶어도 입지 못하는 옷들만 쇼핑몰에 가득하니 더욱 쇼핑몰 사이트 자체를 들어가지 않게 된다. 물론 타이트한 옷들만 있는 것도 아닌 걸 알지만, 어찌 됐든 대부분의 옷들은 나보다는 작고 마른 여성의 기준에 맞춰져 있으니 그렇지 못한 내 몸을 보면서 자괴감에 빠지는 것도 쉽다.
결국에는 돌고 돌아 그냥 기존 옷을 입지 못하는 내 몸이 싫고 내가 싫어진다. "살집이 있으면 있는 대로 예쁘게 입으면 되지~"하고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내 스스로 그렇게 '정신승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입고 싶은 스타일은 머릿 속에 가득한데 결국 그 옷이 '예쁘게 맞는 핏'이 아니니 시도조차 못하게 된다. 나와 체형이 비슷한 분들 중에서도 멋지게 옷을 입는 분들도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분들과 나는 또 다른 사람이니까... 거울을 들여다 볼 때마다, 새로운 옷을 고를 때마다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10kg 이상 불어난 내 몸뚱아리가 문제지, 그래. 스스로 불러온 재앙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옷을 작게 만드는 세상을 탓하기 보단 그냥 내 문제라고 치부하는 게 편하다. 세상을 탓하는 순간 나와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비교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언제쯤 이런 고민들을 안 하고 옷을 고를 수 있게 될까? 답은 나도 알고 있다. 다이어트를 해서 살을 빼는 수밖에 없겠지. 오늘 점심으로 싸 온 닭가슴살과 그릭 요거트가 냉장고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맛있는 음식이라고 자기 세뇌를 하면서 오늘도 어떻게 버텨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