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슬픈 삶을 위로하는,
바흐는 끝이 없네... 5

파리에서 본 세상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연습곡이라는데 왜 슬픈가.. 였다.

단순한 반복적인 음들이 만들어내는 선율이 왜 슬플까.. 였다.

예술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 그 작가의 삶을 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바흐의 삶을 돌아보면, 

그가 말년에 시력을 잃었다고 전해지는 것 외엔 딱히 힘든 삶으로 보이지 않았다.


요한 수난곡 그리고 마테 수난곡

마테 수난곡의 슬픈 선율을 들으며 느낀 것은,

그 곡안에 우리네 삶이 녹아 있다는 느낌이었다.

나약하고 허약하며 휘둘리고 짓밟히는 우리네 삶이 그렇게 녹아 있었다.

바흐는 어떻게 그런 우리네 삶을 알았을까.. 

그건 어쩌면 

바흐가 바라본 성서안에 예수의 삶을 보고 아팠던 것을 적어놓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죄 없이 고통받고 죽어간 예수의 삶이

어쩌면 다가올 우리네 삶은 아니었을지..


내용을 모르고도 음악을 듣고 감동하는 것은.

그 음악이 사연에서 출발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바흐가 보고 그린 에수의 수난이

바흐의 음악을 통해 우리의 수난과 닿을 때,

그때 눈물이 났다.


돌로 창녀를 쳐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너희 중 죄가 없는 자가 있다면 돌을 던지라 이른다.

우리네 세상은,

권력과 돈이 없으면 죄가 없어도 감옥문턱에 서게 되고,

권력과 돈이 많으면 죄가 있어도 감옥 근처에 가지 않는 세상.

매일 가자에선 어린 예수들이 죽어가고 있고,

매일 한국에선 죄 없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지금,

삶의 의미를 물으며,

바흐에게 위로를 받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G2skVF_9RlA


https://www.youtube.com/watch?v=UTl_DVE_69w



매거진의 이전글 두 한강의 기적, 어느 쪽으로 흐를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