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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준 May 23. 2022

해시 브라운의 급습

피넛 버터와 오후의 코끼리

 아침에 일어나 보니 냉장고가 고장 나 있었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이미 죽은 것이다. 사실 이미, 꽤 오래전에 죽어 버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식스 센스에 나오는 브루스 윌리스가 이미 죽어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냉장고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 

 냉장고를 살펴보니 채소와 과일들은 이미 냉기를 잃은 지 오래였고, 마치 시들어 버린 꽃처럼 힘없이 축 처져 있었다. 냉동고 문을 열자 식자재가 해동되면서 흘러나온 물들이 넘치면서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냉장고의 음식들은 이미 죽었거나,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냉동고에서 고등어와 다진 고기를 꺼냈고, 채소 칸을 열어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채소를 골라 건졌다. 아침부터 뜻하지 않은 요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고등어를 오븐에 굽고, 파프리카, 양파, 당근을 잘게 썰어 볶음밥을 만들었다. 다진 고기 일부는 간장을 넣고 볶았고, 나머지 고기는 햄버거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혼자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나는 캥거루에게 전화했다. 그는 이 근방이니 바로 오겠다고 했다. 10분 뒤 그가 도착했다.

 “오랜만이군, 맛있는 것을 준비했다 해서 서둘러 왔네.”

 캥거루가 말했다.

 “냉장고가 고장 났다고? 그럼 빨리 음식을 먹어 치워야지. 냉장되지 않은 음식은 3시간 이내에 먹어야 해”

 캥거루는 허겁지겁 햄버거 스테이크를 입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음, 이런 음식에는 모차르트 소나타가 제격인데, 미안하지만 피아노 소나타 16번 좀 틀어 줄 수 있겠나?”

 나는 모차르트의 레코드를 찾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때였다. 해시 브라운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 냉동고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해동되고 있던

해시 브라운들이 정신을 차린 것이다. 해시 브라운들은 생각보다 훨씬 호전적이었다. 해시 브라운은 햄버거 스테이크를 먹고 있는 캥거루의 뒤통수를 내리쳤고, 우리가 당황해하고 있는 사이에 유유히 집을 빠져나갔다.

 “이봐, 하필이면 왜 해시 브라운 따위를 냉동고에 만들어 놓은 거야? 이제 끝장이라고.”

캥거루가 말했다. 그의 입에는 브라운소스가 묻어 있었다. 정오의 하늘을 맑고 깨끗했으며, 함박스테이크의 브라운소스는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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