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감정 그리고 희망을 가득 담아 쓰는 음악 추천 글
한 순간을 함께 한 음악에는 시간이 흐른 후 그 음악을 다시 들었을 때 과거의 감정들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일 년 동안 제가 좋아했던 음악과 무대에 대해 생각해보고 한 해 동안 느꼈던 감정을 가볍게 정리해보고 싶어 글을 씁니다.
1. 아이유 - '아이와 나의 바다'
(IU 5th Album 'LILAC')
저는 아이유의 발라드 곡을 참 좋아합니다. 5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음악을 통해 기승전결이 뚜렷한 서사 한 편을 웅장하게 느낄 수 있거든요. 하지만 '아이와 나의 바다'는 단순히 곡 자체의 기승전결 흐름을 넘어 곡의 끝과 시작 상황이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형식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이런 형식이 곡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 같거든요. 전주도 없이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라고 이야기가 시작되어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 또다시 헤매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라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그러나'에서 '그럼에도'로 향하는 개연성 있는 가사들은 이야기로의 몰입을 높이고 가사에 따라 고조되는 음악은 가슴에 벅차오르는 무언가를 느끼게 해줍니다. 더불어 삶을 고민하고 그 고민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모습은 실제 우리의 인생을 닮은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사람들은 저마다의 상황에서 매번 새로운 과제들을 마주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순간의 고민들을 잘 해결하고 결국은 더 나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믿어요. 이 노래 속 화자처럼 말이에요.
2. DAY6(Even of Day) - '우린'
(Right Through Me)
고등학교 2학년 때 데이식스의 데뷔 곡 'Congratulations' 를 듣고 이 그룹은 대박이라며 친구들에게 열심히 앨범 전곡을 들려주고 다닌 기억이 있습니다. 타이틀곡이 좋아 호기심에 들어본 수록곡 모두가 타이틀 곡에 뒤처지지 않을만큼 좋았거든요. 이후에도 저는 데이식스가 컴백할 때면 무조건 1번 트랙부터 전곡재생해 저만의 타이틀곡을 선정해보곤 합니다. 데이식스의 음악은 '장르가 데이식스'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앨범마다 다양한 장르의 곡이 수록되어 있음에도 그 속에서 '데이식스' 만의 진정성이란 본질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진정성 때문에 저는 데이식스 특유의 밝은 위로곡을 특히 좋아해요. 밝은 분위기 속에서 덤덤하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가사가 오히려 무게를 잡고 진지하게 건네는 조언보다 마음에 더 와닿거든요. '우린' 역시 그런 곡으로 조금 지칠 때마다 가볍게 꺼내 듣기 좋은 곡입니다. 'Sometimes we fall and then we rise'라는 노래 가사처럼 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밝은 내일만 바라보며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3. 윤하 - '오르트 구름'
(YOUNHA 6th Album 'END THEORY')
존재론적 고민에서 출발한 과학 다큐 같은 앨범, 윤하의 정규 6집 'END THEORY'. 타이틀 곡 '별의 조각'부터 모든 수록곡들이 앨범 컨셉에 어울리는 제목이라 (오르트 구름, 물의 여행, 하나의 달 등) 트랙리스트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앨범이라 생각했어요. 그중에서도 제 최애곡은 바로 이 '오르트 구름'입니다. 평소 윤하의 '혜성'이 노래방 애창곡인 사람으로서 '혜성'만큼 숨 쉬는 구간 없이 경쾌하게 흘러가는 곡 분위기 자체에 심장이 반응했달까요. 게다가 얼음과 먼지들이 결집되어 태양계를 둘러싼 오르트구름을 뚫고 미지의 세계로 향해 가는 보이저호 이야기라니, 졸업 후 취준이라는 세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 제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밝은 곡을 부를 때 윤하 특유의 설렘과 희망이 느껴지는 표정을 좋아하는데 이 곡 역시 그러한 이유로 음원보다는 영상을 통해 감상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노래 자체의 경쾌한 분위기에 신나게 기타를 연주하는 윤하의 표정과 몸짓이 만나 더 큰 긍정적 에너지를 느낄 수 있거든요. 이 곡을 듣는 순간만큼은 정말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4. 2PM - '해야 해'
(MUST)
사실 저는 '우리집 준호'가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기 한참 전인 2013년 '하.니.뿐' 시절부터 준호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집 준호의 역주행 현상이 더욱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올해 2PM의 컴백은 개인적으로 제게 음악 자체보다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환경, 이유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는 것에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알고리즘의 선택이 기회가 되어 준호가 다시 인기를 얻은 것은 맞지만 이 모든 것은 그동안의 준호가 멈추지 않고 꾸준히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 기회처럼 말이에요. 우리집 직캠의 인기에서 시작해 2PM 컴백 활동, 그리고 현재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까지 꾸준히 성실하게 활동하고 여전히 사랑 받는 준호를 보며 기회는 언제든 잡을 준비가 된 사람만이 활용할 수 있는 거구나를 느끼고 있습니다. 더불어 2PM 활동에서 전환점 역할을 했던 곡이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곡인 '하.니.뿐'에서 느꼈던 2PM의 이미지를 '해야 해'를 통해 2021년 버전으로 더 세련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더욱 반가웠던 활동이었습니다.
5. TOMORROW X TOGETHER -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
(혼돈의 장: FREEZE)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의 음악을 띄엄띄엄 알던 지난 어느 날, '0x1=lovesong' 무대를 처음 접하고 '아니 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들어봤던 TXT 곡들의 분위기와 다른 몽환적이지만 강렬한 밴드 사운드에 아련하기도 하고 벅차오르기도 하는 기분을 느꼈거든요. 오랜만에 전주에서부터 취향을 저격하는 곡을 만나 짜릿한 순간이었습니다. 4세대 아이돌이 어렵다고 느껴지기 시작할 쯤이었는데 이 노래에 빠져 새로운 아이돌 세대에도 흥미를 갖기 시작했어요. 견고하게 짜여진 아이돌 세계관의 존재는 알았지만 그 세계관을 한 발짝 밖에서 살펴보는 것을 넘어 깊숙하게 들여다본 적은 없었기에 TXT로 찾기 시작해본 '요즘 아이돌'의 활동과 세계관은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선배 그룹 BTS가 사회적인 관점에서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춰 청춘을 이야기했다면 TXT는 그보다는 조금 더 개인적이고 사적인 측면에서 청춘의 내면을 섬세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대중가요는 보통 보편적이거나 이미 밖으로 드러나있는 이야기를 소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다 내면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리는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0x1=lovesong'는 곡 자체의 매력을 넘어 음악이 얼마만큼이나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어 팬들에게 닿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만큼이나 삶을 파고들어 표현할 수 있는지 고민해볼 수 있게 해준 점에서 올해 제게 꽤나 의미 있는 곡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