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8월에 첫 드래프트를 써놓은 포스트인데... 개강하고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정신없이 달렸더니 벌써 학기 중반을 넘어갔다. 학교를 다니다 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무서울 정도다.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인턴십, 또 스웨덴 생활에 대한 글도 많이 써서 올리려고 했는데 의욕만 앞서고 글이 항상 늦어져서 속상한 마음이다.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 뒤늦게라도 올려보는 스톡홀름 이야기.
*이 글은 인턴십을 처음 시작할 때 작성한 포스트입니다.
올해 7월부터 6주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대학 동문이 창업한 에듀테크 스타트업 imagiLabs에서 Business Development Intern으로 일하게 되었다. 이전에 파트타임 인턴십과 이런저런 교내 campus job은 해봤지만 풀타임으로 일하는 건 처음이라 나 자신의 능력치에 대한 의심과 걱정이 앞섰다.
imagiLabs는 청소년들 - 특히 12-16세 여자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 프로그래밍 교육을 제공하는 에듀테크 스타트업이다. 다른 수많은 코딩 교육 제품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흔히 초보자들이 쓰는 블럭 프로그래밍 교육이 아니라, 직접 파이썬 코드를 구현하며 배울 수 있는 모바일 앱을 제공한다는 점과, 자신의 코드를 형 형색의 불빛으로 시각화할 수 있는 LED 큐브와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사업개발 인턴으로써 나는 판매 전략을 수립 및 집행하고, 동시에 마케팅 업무도 맡게 되었다.
출근을 시작하기 전 주에, CEO분께서 인턴십 안내 메일을 보내 주시면서 나에게 '다음 주에 풀타임 직원들은 다 출장이나 여름휴가를 가서 사무실을 비우고, 인턴들끼리만 오피스를 지키는데 마침 화요일에 린셰핑에서 진행하는 코딩 워크숍이 있어. 너도 같이 갈래?'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얼떨결에 출근 이틀 차에 출장... 그것도 인턴들끼리 워크숍 진행을 담당하게 되어 준비를 같이 돕고 따라가게 되었다. 이처럼 정신없이 바로 일에 투입되면서, "아, 이런 게 스타트업인가"라는 생각도 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점을 꼽자면:
1. 출퇴근이 참 자유롭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하는 건 아니고, 주어진 시간 안에 맡은 일을 끝낸다면 일을 어디서 언제 하는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느낌이었다. (반면에 공동 설립자 분들은 삶과 일 사이에 경계선이 없는 듯했다.... 일이 곧 현재 생활의 무한 연장선 같은 느낌?) 제때 Slack과 Google Hangout 미팅에서 일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팀원들과 정기적인 check-in을 통해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하고 질문하는 시간 외에는 집에서 일을 하던, 카페에서 하던, 조금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것에 대한 제약이 별로 없는 느낌이다. 스톡홀름 스타트업이 다 이렇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문화가 어느 정도 잡혀 있는 듯했다.
2. 첫 번째 프로젝트인 시장조사 (Industry Analysis)를 하면서 느낀 건 단순히 '끝내면 그만'인 학교 과제와는 달리 끊임없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냥 경쟁사만 조사해서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리서치 과정에서 계속 'what if...'라는 질문을 하면서 이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소비자들은 어떻게 반응할지, 지금 가장 시장에서 충족되지 못한 니즈 (needs)가 뭔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할 거리가 생겨나는 기분이랄까나.
이렇게 주체적으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던 건, 인턴이라고 해도 내가 하는 일이 비즈니스에 어떻게 바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허나 무한히 주어지는 자유로움은 내가 스스로 목표 설정을 하고 열심히 밀어붙이지 않으면 흐지부지 되기 쉽다는 함정이 있다. 프로젝트 자체도 굉장히 한없이 뻗어있고, 끊임없이 내가 회사의 성장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부담감이 커지고 있다..ㅠ
그래도 지금까지는 한 번도 비즈니스 중심의 업무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주로 티칭이나 리서치 관련 업무를 했다), 신선한 경험이고 무엇보다도 나의 업무 외에 다른 동료들의 일이나 전반적인 회사 운영을 보면서 배우는 게 참 많다. 물론 찬란한 스웨덴의 여름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건 덤이고.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 해내야 할 업무도 많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는 중이다. 출퇴근길에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또 스트레스받을 때 강아지와 cuddling 하면서 차근차근 일을 해가려고 노력 중이다.
아, 그리고 스웨덴의 여름은 변덕스러워서 해가 나오면 따사롭고 찬란하지만, 사실 그만큼 흐리고 비바람이 부는 날도 많다. 그리고 아무리 여름이라도 해가 나오지 않으면 너무 춥다.... 그래서 처음 왔을 때 기온이 10도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데 내 옷장은 여름용밖에 없어서 오들오들 떨었다 (상사분이 집에서 후드 가져다주셨다..ㅎ).
그래도 낯선 타지에서 - 그것도 아부다비나 한국과는 한참 떨어져 있는 북유럽에서 -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일하면서 제품을 만들어나가고, 새로운 문화권을 접할 수 있어서 감사한 나날이다.
인턴십이 끝나면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조금 더 알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