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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그린드레스 Aug 15. 2021

다시 한번 해피 뉴 이어

다시 쓰는 <성냥팔이 소녀>

검은 어둠이 조금씩 옅어지고, 검푸른 빛이 돌았어요.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불었어요. 날씨는 춥지만 즐거운 새해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어요.


해가 완전히 뜨자 근사한 붉은 벽돌집에서 털장갑을 낀 아저씨와 목도리를 두른 아주머니가 차례로 나왔어요. 부부는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걸었어요.


“앗, 세상에. 이럴 수가.”


아저씨가 아주머니의 앞을 막아섰어요. 모퉁이 담벼락에 성냥팔이 소녀가 기대어 죽어 있었어요. 소녀의 발밑에는 타 버린 성냥개비가 놓여 있었어요.


아주머니는 아저씨의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소녀를 보았어요.

“설마 저 아이는 죽은 건가요?”


아저씨가 놀란 말투로 대답했어요.

“밤에 얼어 죽었나 보오. 저렇게 어린아이가.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아주머니는 소녀의 앞에 서서 눈물을 훔치며 말했어요.

“미리 알았더라면 죽는 걸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소녀는 둘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랐어요. 지난밤에 성냥불을 켜니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났고 따뜻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거든요. 소녀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돌아보았어요. 과연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말처럼 자신이 죽어 있는 모습이 보였어요. 소녀는 그제야 자신이 유령이 되었고, 어젯밤 일은 다 꿈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소녀의 앞에 다시 할머니가 나타났어요. 할머니는 말없이 소녀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갔어요. 검은 그림자가 스멀스멀 다가오더니 소녀에게 말했어요.

“이렇게 어린아이가 얼어 죽다니. 그것도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새해 선물로 네게 기회를 주마. 시간을 되돌릴게. 자, 이제 어젯밤으로 돌아간다. 살고 싶으면 기회를 잡아.”


소녀는 어리둥절했어요. 할머니는 검은 그림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고맙다고 말했어요.


할머니는 허리를 굽히고 소녀와 눈을 마주쳤어요.

“사랑하는 나의 손녀야. 이제 어젯밤으로 돌아간다. 너는 어제 성냥을 하나도 못 팔았지. 그대로 집에 돌아가면 네 아버지가 너를 몽둥이로 두들겨 팰 거니 무서워서 못 가고 급한 대로 성냥불로 몸을 녹이려다 그만 죽었지. 네가 살려면…….”


할머니는 말을 다 하지 못했어요. 갑자기 모든 게 뱅글뱅글 돌았거든요.


**********


어둠이 내리는 추운 겨울 저녁이 되었어요. 땅거미가 지고 있어요.


싸늘한 바람이 소녀의 머리칼을 흩날리자 소녀는 하루 전 날로 돌아온 것을 알았어요. 소녀는 주머니에 담긴 성냥갑을 들고 사람들에게 갔어요. 성냥을 사달라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어요. 하나도 못 판 게 생각났거든요.


잠시 머뭇대던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어요. 거리에서 얼어 죽는 것보다는 집에서 매를 맞는 게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소녀는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어요. 꽁꽁 얼어붙은 맨발이 벌갰어요. 아침에 어른 신발을 신고 나온 게 생각났어요. 한 짝은 잃어버리고, 한 짝은 도둑맞았어요.


길을 걷는데 모퉁이 담벼락이 보였어요.


‘어제 내가 이 시간에 저곳에서 죽었다니. 너무 무서워. 빨리 가자.’


오싹해진 소녀는 달리다시피 빨리 걷기 시작했어요.


어딘가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에구머니, 아이가 신발이 없네.”

“동상 걸렸겠어요. 어쩌나.”


소녀는 주위를 돌아보았어요. 자신이 죽은 것을 처음 본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한 말이었어요. 소녀는 용기를 냈어요. 저들이라면 성냥을 사줄 것 같았어요. 그럼 집에 돌아가도 아버지의 무서운 매는 피할 수 있어요. 소녀는 용기를 냈어요.

“저, 정말 죄송한데 성냥 한 갑만 사주세요. 부탁드려요.”


간신히 말을 마친 소녀는 목이 메었어요. 아주머니는 말없이 성냥갑을 받고, 동전을 주었어요. 소녀는 고맙다고 말하고 몸을 돌렸어요. 아주머니가 소녀의 어깨를 잡았어요.

“잠깐만, 어쩐지 낯이 익네.”


소녀는 차마 자신이 죽은 걸 본 사람이 아주머니라는 걸 말할 수 없어서 입을 굳게 다물었어요. 이번에는 아저씨가 말했어요.

“나도 언젠가 본 거 같아.”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눈을 마주치고 깜빡였어요.

“발이 얼마나 시리니? 바로 저기가 우리 집이야. 신발이라고 신고 가렴.”


아주머니가 손가락으로 담벼락 옆을 가리켰어요. 소녀가 성냥에 불을 밝혔을 때 본 집처럼 근사했어요.

 

소녀는 고개를 젓고, 무겁게 입을 열었어요.

“집에 늦게 가면 아버지가 화가 나서 더 많이 매질을 할 거예요. 성냥도 하나밖에 못 팔아서 맞을 건데 더 많이 맞고 싶지 않아요. 저 가보겠습니다.”


마음이 아픈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번갈아 가며 다시 말했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 우리 집에 가자.”

“날이 너무 추워. 걱정된다. 몸을 녹이고 가.”


자신의 아버지와는 달리 친절하고 따뜻한 부부의 태도에 감동한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어요.

“저 사실 어젯밤에 이 담벼락 앞에서 얼어 죽었어요. 하늘나라에 갔는데 살 기회를 한 번 더 주겠대요. 하루 전으로 돌아온 거예요…….”


소녀는 눈물이 나서 말을 다 잇지 못했어요. 말을 잇지 못하는 건 아주머니도, 아저씨도 마찬가지였어요. 둘은 동시에 말했어요.

“이제 기억났어. 꿈에서 본 아이가 너야.”

“어젯밤 꿈에 네가 나왔어.”


부부에게는 원래 아기가 있었어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알 수 없는 병으로 하늘나라에 갔어요. 작년 마지막 날에 죽었어요.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하늘에서 소녀를 보내주었다고 생각했어요.


소녀는 부부를 따라갔어요. 성냥을 켜고 본 것처럼 따뜻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어요. 소녀는 아주머니와 아저씨와 함께 즐거운 새해를 맞이했어요. 그다음 해도, 그다음 해도, 그다음도, 그다음도 소녀는 부부와 함께 새해를 맞이했어요.


해마다 12월 31일이 되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소녀를 찾아와 흐뭇하게 바라보고 돌아가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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