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성실 Apr 16. 2024

9년 만에 다시 '홈런 군단' 히어로즈가 돌아왔다

키움 히어로즈는 어떻게 다시 홈런의 팀이 되었나

키움 히어로즈가 4월 12일부터 지난 14일까지 고척 스카이돔에서 롯데 자이언츠와의 주말 3연전에서 4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시리즈를 스윕했다. 지난해 정규시즌 144경기서 61개의 홈런에 그쳤던 키움이지만, 올해는 겨우 17경기를 치르는 동안 무려 23개의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다. 키움은 현재 팀 홈런 지표에서 1위 SSG 랜더스(25개)에 이어 단독 2위에 올라서 있다.


키움이 마지막으로 팀 홈런 지표에서 순위권에 들었던 해는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15년이다. 당시 히어로즈는 리그에서 2위 롯데(177개)보다 무려 26개나 많은 타구를 담장 밖으로 넘기면서 리그에서 유일하게 200개가 넘는 홈런을 기록했다. 당시 히어로즈 선수단이 합작한 팀 장타율은 4할 8푼 6리로, 이는 리그 역대 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1위는 2014년 넥센·.509).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현재 리그 전체 홈런 순위 지표에서 키움 타자들의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4월 15일 기준 KBO리그 홈런 1위는 최정(8개), 공동 2위는 한유섬과 멜 로하스 주니어다(7개). 최정과 한유섬은 SSG, 로하스는 KT 위즈 소속의 타자다. 이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홈런 타자가 타선의 중심을 이끌었던 2015년의 히어로즈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다만 9년 전과 비교했을 때 달라지지 않은 한 가지 공통점 또한 존재한다. 한두 명의 타자에게 '큰 거 한 방'을 전적으로 기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 '웨이트 트레이닝 선도·거포 복권 저점 매수'로 일궈낸 '빅 버건디 히어로즈' 시대

마지막이 될 줄만 알았던 영광스러운 순간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2015년의 히어로즈는 거포 유망주를 대거 영입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선도하면서 무려 아홉 명의 두 자릿수 홈런 타자를 배출했다. 이는 목동의 영웅들이 시즌 전 '40홈런 유격수' 강정호를 미국 무대로 떠나보냈음에도 불구하고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4시즌 연속으로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쥔 '국가대표 4번 타자' 박병호가 타선의 중심을 지키고 있었다. 당시 시즌 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던 그에게 KBO리그는 너무 작은 무대였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2년 연속 50홈런'의 대기록을 작성하며 차원이 다른 홈런 타자로 도약했다. 매 타석마다 통나무를 휘두르는 듯한 스윙을 하면서도 3할 4푼 3리의 높은 타율을 기록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투수는 없었다.


물론 박병호라고 해서 무적은 아니었다. 당시 매일같이 목동 야구장을 찾아오는 미국 스카우터들을 의식한 박병호는 훔런 수의 세 배가 넘는 삼진을 당했다(161개·역대 2위). 하지만 상대 팀 입장에서는 운 좋게 홈런 대신 삼진으로 박병호를 돌려세운다고 해서 위기를 넘긴 것이 아니었다. 150개의 홈런을 합작한 14명의 타자들이 1번부터 9번까지 모든 타순에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강정호의 부재를 의식하여 영입한 브래드 스나이더는 전년도 외국인 타자였던 비니 로티노보다 무려 24개나 많은 홈런을 쳐냈다(26개). 유한준은 아시아 최초로 '40-40 클럽'에 가입한 에릭 테임즈와 타격왕 경쟁을 펼치면서도 23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여기에 무주공산이 된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한 '고졸 2년차 신인' 김하성이 19홈런으로써 'ML 15홈런 타자'의 공백을 완벽히 지웠다.


주전 3루수 김민성은 16개로 데뷔 이래 가장 많은 홈런을 쳐냈으며, 커리어 첫 풀타임 시즌을 소화했던 포수 박동원은 팀 역사상 최초로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포수가 됐다(14개). 부상으로 인해 3~40경기가량을 출장하지 못했던 윤석민(14개)과 이택근(10개), 사실상 전역 후 첫 시즌으로 박헌도(8개)와 주전 외야수 경쟁을 했던 고종욱(10개)도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이들은 모두 규정타석을 소화하지 못한 타자들이었다.




2010년대 초·중반의 히어로즈는 KBO리그에 '웨이트 트레이닝' 돌풍을 몰고 온 구단이었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사실 히어로즈는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홈런으로 유명한 팀이 아니었다. 오히려 외국인 선수 슬롯을 모두 타자 영입에 사용해야 할 정도로 '홈런 갈증'에 시달리는 팀이었다. 덕 클락과 클리프 브룸바가 51홈런을 합작했던 2009년에도 팀 홈런 4위에 그쳤으며, 에이스를 모두 현금 트레이드로 처분하며 외국인 투수를 영입해야만 했던 2010년과 2011년에는 단독 꼴찌로 추락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홈런타자의 천당은 대전, 지옥은 목동' 같은 헤드라인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웨이트 트레이닝 시스템이 자리 잡은 이후부터는 완전히 다른 팀으로 탈바꿈했다. 2013년에는 데뷔 이래 6년간 '통산 14홈런 타자'였던 김민성이 한 해 동안 15홈런을 몰아쳤다. 신인 시절 호리호리한 체형의 유격수 유망주였던 김민성은 2012년 강정호-서건창 키스톤 콤비가 자리 잡으며 입지가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kg를 증량하는 승부수가 통하며 거포 3루수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2013년 겨울에는 김민성의 성공을 지켜본 유한준이 10kg를 증량했고, 이듬해 커리어 첫 두 자릿수 홈런을 20홈런으로 달성했다. 이후에는 선수단 전체가 근육 트레이닝에 매진하는 문화가 자연스레 자리 잡게 되었다.


저점의 거포 유망주를 트레이드로 영입해 꽃피우는 구단의 안목도 빛났다. 2011년 마무리 투수 송신영과 선발 유망주 김성현을 LG 트윈스로 보내면서 심수창, 현금 15억 원과 함께 받아온 박병호는 당시에만 해도 '다 긁어본 복권' 취급을 받던 타자였다. 1군 273경기에서 700타석이 넘는 기회를 받으면서도 1할 타율과 .622의 OPS(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장타율)에 그쳤던 그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13시즌 후 두산 베어스에서 넘어온 윤석민은 구단에서 풀타임 4번 타자로 자리 잡길 기대했으나, 부상으로 21경기에 출장하는 데 그치며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트레이드 이후 두 거포 유망주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두 거래 모두 히어로즈의 완승으로 끝났다.




● '2루타·눈야구' 미련 버리고 다시 '빅 버건디 히어로즈' 시대 노린다

교타자 군단으로 타선을 꾸리려 했던 '고척 1기' 히어로즈 시대를 상징하는 외국인 타자 대니 돈.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히어로즈의 타선에 '넥벤저스(넥센+어벤저스)'라는 별명을 붙여준 벌크업&트레이드 효과는 영원하지 않았다. 웨이트 트레이닝이 더 이상 히어로즈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고, 덜 긁은 거포 유망주의 영입 난이도가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홈구장마저 투수 친화 구장인 고척 스카이돔으로 옮기게 된 키움은 의도적으로 홈런을 포기했다. 담장을 넘기려 하는 대신 고척의 광활한 외야를 가르는 2루타를 대량 생산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최대한 오래 공을 보는 '눈야구'와 루상에서 배터리를 흔드는 '뛰는 야구'로써 상대 팀 마운드를 흔들고자 했다. 기관총 군단이 점수를 벌어다 주고 예전보다 나아진 투수진이 실점을 덜 하면 여전히 높은 순위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16시즌 개막을 앞두고 팀내 홈런 2위 타자였던 스나이더와 재계약하는 대신 중장거리 타자인 대니 돈을 영입했다. 박병호와 정반대의 플레이스타일을 갖고 있었던 삼성 라이온즈의 주전 1루수 채태인을 트레이드로 데려왔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스윙으로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타자의 존재 유무는 분명한 차이를 낳았다. 3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던 팀 홈런 지표가 한순간에 중하위권으로 추락한 키움은 야수진의 sWAR 또한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그저 그런 타선의 팀'이 되었다.


'홈런 가뭄' 문제는 박병호가 2년 간의 빅리그 도전을 마치고 KBO리그로 돌아온 이후로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물론 박병호는 여전히 KBO리그 정상급 타자였으며, 김하성의 장타력은 홈구장을 옮기고 나서도 꾸준히 발전했다. 하지만 이들을 받쳐줄 다른 타자를 육성하지 못했다. 신인 드래프트의 실패였고 육성 시스템의 실패였다.


키움은 지난 한 해 동안 단 한 명의 '두 자릿수 홈런 타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이는 1993년의 태평양 돌핀스(35개·1위 김경기 8홈런) 이후 30년 만의 기록이었으며, 144경기 체제에서는 최초의 사건이었다.




2015시즌 이후 오랜 기간 멈춰 있었던 키움의 '홈런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이러한 신세에 처해 있었던 키움이 올해 들어 다시 '홈런 군단' 시절의 향기를 풍기고 있는 것이다. 한두 명의 타자에게 홈런을 의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무려 다섯 명의 타자(최주환·이형종·김혜성·로니 도슨·송성문)가 사이 좋게 4개씩 홈런을 치면서 '언제 어디서든 한 방이 터질 수 있는 타선'을 형성하고 있다.


돌풍의 중심에 서있는 키움 타자들은 입을 모아 '타격 접근법이 달라졌다'라고 이야기하는 중이다. 키움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타석에서 최대한 많은 공을 보고 높은 출루율을 기록하며, 라인 드라이브 타구로써 득점하는 방식의 타격 어프로치를 선호했다. 그렇기에 박준태, 김준완처럼 컨택이나 파워는 다소 아쉬워도 선구안이 좋은 타자들을 적극 기용했다. 박찬혁, 박주홍 등 신인 드래프트 최상위 라운드에서 지명한 거포 유망주도 그러한 유형의 타자로 개조하려 할 정도였다.


올해부터는 '20년 전 머니볼식 타격'을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타자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휘두르라고 주문하기 시작했다. 최근 자신의 타자로서의 잠재력을 본격적으로 개화하기 시작한 송성문은 "지난해에는 공 하나(초구)를 봐야하나 고민을 했다"면서 "(오윤) 코치님이 '내가 책임지겠다. 적극적으로 쳐라'고 말해 선수들이 마음 편하게 타석에 임한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의 커리어하이 시즌을 갱신할 기세인 이형종 또한 "지난해에는 우리 팀 선수들이 소극적인 타격을 했다"며 "감독님, 코치님과 함께 적극적인 타격에 많이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물방망이'에 지친 선수 개개인의 홈런을 향한 열망과 노력 또한 홈런 군단으로 거듭난 비결이다. 송성문은 지난 겨울 동안 탄산음료는 물론 밀가루 음식까지 끊어가며 혹독하게 몸을 만들었다. 지난 시즌 교타자의 모습을 보여준 도슨은 겨우내 몸무게를 증량하고 강점인 컨택을 다소 희생하는 대신 더 많은 하드힛을 만드는 방향으로 스윙을 교정했다. 반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배드 볼 히터에 가까웠던 이형종은 이번 시즌 노림수에만 풀스윙을 하는 '게스 히터'로 플레이 스타일을 바꿨다. 두 선수가 각각 '잠깐 부진하면 방출되는 외국인 타자', '다년 계약 1년차 시즌을 망친 고액 연봉자'의 위치에 있음을 생각하면 매우 과감한 도전이었다.




● '우승 도전팀' 예측 받은 23년은 단독 꼴찌... '압도적 1약'으로 예상된 올해는?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지난 9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팬들이 '홈런 군단' 시절의 히어로즈에 대해 서서히 잊어갔다는 것이다. 1년 144경기 중 72경기를 고척 스카이돔에서 치르는 타자들에게 '많은 홈런'에 대한 기대를 접게 된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응원하는 선수들이 그저 '사람 같이' 쳐주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하위권을 예측하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 강팀으로 분류되면 최악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이 청개구리 선수단은 이번에도 팬들의 기대를 배반했다. 그 어느 때보다 냉랭한 시선 아래서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꽁꽁 얼어 있던 관중들의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


키움은 이번 시즌 무수한 스포츠 언론과 야구 전문가들에게 '1약'으로 분류됐다. 최하위권으로 분류된 적은 적잖이 있었지만 만장일치로 꼴찌팀이 될 것이라 지목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홈런에 대한 예측은 아무도 안 했다. 아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올해가 시즌 초반의 선전이 '반짝'일 것이라는 예상을 한 번 더 오답으로 만들고 고척 스카이돔 시대에 팀 홈런 1위를 기록한 원년이 돼도 이상하지 않을 테다. 창단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해가 되더라도 문제 없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쨌건, 꿈을 그리면 결국에는 그 꿈을 닮아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