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초보였던 언제가 된장찌개 간을 맞추려 소금을 넣었던 적이 있었다. 뒷목에서부터 올라오는 짜릿함에 깜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던 그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레시피대로 하더라도 맛의 시행착오는 충분히 겪을 텐데, 내 식대로 만드는 첫 요리가 뚝-딱 하고 성공할 리가 만무했다. 서툰 연애를 하던 그때도 그러했을 것이다.
스물둘이었던 내가 스물다섯이었던 그를 만나 수년의 연애기간을 보내며 나름 어른의 연애라고 생각했었지만 지나고 보니 유치하게 내 식대로 밀어붙인 에피소드들이 이따금 기억난다. 이런 건 왜 하필 잘 때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신혼 초도 서툰 연애를 했던 그때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함께 살을 부딪히며 사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으니까. 앞전의 양말 사건을 들여다보면 나는 당연히 바로바로 치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 그에게는 양말을 당장 안 치운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이 아니니까 나중으로 미뤄도 괜찮은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이런 사소한 일상도 맞춰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내 생각대로 하는 게 더 좋은 건데 대체 왜 하지 않는 거야?”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다음에는 한 번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라고 한층 부드럽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나한테 당연한 게 그에게도 당연해야 한다는 일상의 일반화 오류를 범했던 게 화근이었다.
지나고 보면 다퉜던 이유조차 생각나지 않았던 일들 투성이었는데 무의미한 내가 맞네, 네가 틀렸네를 반복하니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지쳐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상대를 내 입맛대로 맞춰선 안 되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음에도 알량한 자존심은 굽힐 생각 따위는 없는 듯 나와 그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사소한 일로 다퉈도 먼저 사과하고 안아주는 남편이 되겠습니다.’
‘미안해하고 먼저 다가가는 너그러운 아내가 되겠습니다.’
수많은 하객들 앞에서 이 혼인서약서를 함께 읊으며 싱긋 눈 맞춤을 했던 그날의 우리는 그날에만 존재했던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