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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지 Sep 27. 2023

그를 살린 가짜 페르시아어 수업

ㅡ 목숨을 건 위험한 거짓말 게임

<인문학 in movie> 제7


그를 살린 가짜 페르시아어 수업

  목숨을 건 위험한 거짓말 게임



《페르시아어 레슨(Persian Lessons, 2020)》은 러시아, 독일, 벨라루스 합작의 전쟁 영화다. 독일의 각본가 볼프강 콜하세(Wolfgang Kohlhaase)의 단편 『언어의 발명(‘Erfindung Einer Sprache)』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콜하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자신의 친구가 들려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


                                      《페르시아어 레슨》(2020) / 이미지=IMDb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2,840개의 거짓말


영화의 시대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다. 유대인들을 가득 태운 나치의 트럭이 죽음의 장소로 달리고 있다. 유대인 포로 질은 옆자리 남자에게 페르시아어 책을 받고 먹을 것을 좀 나누어 준다. 트럭이 도착하자 독일군이 무차별 총기 난사로 포로들을 학살하기 시작하고, 질은 페르시아어 책을 보여주며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니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공교롭게도 나치 대위 하나가 언어를 배우기 위해 페르시아인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질은 가까스로 그에게 보내져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전쟁 전 요리사였던 코흐 대위는 나중에 이란의 테헤란에 가서 독일 음식점을 차리려고 페르시아어를 배우려는 것이었다. 그는 일상적인 회화만 하면 되니 하루에 네 단어씩 가르쳐달라고 주문한다. 질은 이름까지 레자로 바꾸고, 하루에 단어를 네 개씩 새로 만들며 페르시아인 행세를 한다.

어느 날, 레자는 빵을 뜻한다고 가르쳤던 ‘라지’를 나무라고 말해버린다. 대위는 그가 가짜라는 걸 눈치채고 수용소에서 가장 힘든 채석장으로 보내 고된 노동을 시킨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레자는 혼수상태에서 자신이 창조한 가짜 페르시아어로 ‘엄마, 집에 가고 싶어’라고 중얼거린다. 자기가 만든 단어를 계속 외우고 연습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무의식에서도 가짜 페르시아 말을 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영화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어떤 불가능한 영역에까지 닿을 수 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이에, 레자를 다시 믿게 된 대위는 다시 페르시아어 수업을 시작한다. 대위는 주기적인 수용자 처형에서도 번번이 레자를 빼내주어 그를 살린다.

시간이 흘러, 레자와 코흐 대위는 이제 가짜 페르시아 말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대위는 친구가 된 레자에게 자신의 동생이 반나치주의자로 지금 테헤란으로 도망쳤으며, 전쟁이 끝나면 그도 동생과 합류해 식당을 차릴 것이라는 비밀도 이야기해 준다. 레자가 대위에게 어떻게 나치가 되었는지 물어보자, 우연히 길을 가는 나치당원들을 만났고 그들의 당당한 모습이 참 좋아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는 친밀한 사이가 된 것이다.

전황은 나치에게 점점 불리하게 전개되고 패망의 기운이 짙어지자 상부에서는 모든 서류를 폐기하고, 포로들을 학살한 후 철수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위조여권과 돈을 챙긴 대위는 수용자 숙소에서 레자를 데리고 나와 도주한다. 대위는 안전한 곳까지 오자 레자에게 이제 헤어질 시간이라고 말한다. 코흐는 ‘가짜 페르시아어’로 “잘 살아”라고 말하며 떠난다.

다음 장면은 이란의 입국심사장. 코흐 대위는 벨기에 여권을 내밀며 페르시아 말로 인사를 하지만 물론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대위는 계속 가짜 페르시아어로 말을 하다가 결국 밀입국하려는 독일인으로 의심받고 체포된다. 한편, 레자는 연합군에게 붙잡혀서 조사받는다. 나치가 서류를 파기했기 때문에,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수만 명의 유대인들의 신원을 알 수가 없었던 연합국 당국은 생존자들에게 물어 확인 중이었다. 레자가 몇 년 동안 가짜 단어를 만들면서 외운 2,840명의 이름을 되뇌는 가운데 영화는 끝난다.


                                                     《페르시아어 레슨》스틸컷




‘인간됨’은 언어에서 비롯되었다.


인간 역시 생물학적으로는 4,000여 종의 현존 포유류 중 하나다. 그러나 인간을 다른 동물과 확연히 구분해 주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직립보행, 불과 도구의 사용, 그리고 언어다. 새들도 어떤 신호 체계를 통해 음식 위치를 서로 알리며, 고래의 경우는 초음파로 통신을 한다. 개 또한 주인의 목소리 톤과 바디 랭귀지를 이해하며 매우 친밀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다. 영리한 침팬지에게 간단한 단어를 가르치는 실험도 성공한 적이 있다. 그러나 언어가 곧 의사소통과 동의어인 것은 아니다. 인간이 아닌 어떤 동물도 복잡한 문장으로 말하지 못하며 추상적인 개념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만이 진정한 의미의 언어를 사용한다. 우리 종은 ‘언어적 인간’, 즉 호모 로쿠엔스(Homo loquens)으로 특징지어진다. 이것이 인간과 동물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이며 인류문명의 근간이다. 말과 글이 없었다면, 누대에 걸친 지식과 정보가 차곡차곡 축적되어 법률과 종교, 사회윤리, 경제제도, 학문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인간됨’은 언어의 발명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언어는 유인원류 중에서도 작고 약하고 보잘것없던 인류를 만물의 영장, 세상의 지배자로 만들어준 것이다.

언어는 하나의 기호다. 인간이 서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임의로 만든 기호체계인 것이다. 음성과 문자의 형식에 뜻(의미)을 담는다. 다시 말해서, 언어는 어떤 의미를 음성과 문자로 기호화화한 것이다.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다. 언어란 구성원들이 함께 만든 하나의 기호체계에 불과할 뿐, 그 자체가 본래부터 어떤 절대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개개인이 단어의 의미나 문법을 즉흥적으로 바꿀 수도 없다. 누군가가 제멋대로 ‘귤’이란 단어를 ‘배’로 지칭하면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어 레슨》의 핵심 키워드는 ‘인간의 언어’다. 지구상의 수많은 민족이 자기들만의 독자적인 언어를 창조했다. 현재 세계엔 7,000여 개가 넘는 언어가 있다고 한다. 각각의 언어는 모두 개개의 공동체에서 합의한 특정한 기호체계가 오랜 세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면서 다듬어지고 변화,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 레자는 개인적인 언어를 급조해 낸다. 유대인 강제 수용소의 포로들의 이름 2,840개를 바탕으로 가짜 페르시아 단어를 만든 것이다. 그는 매일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서 나치 장교에게 가르치고 그 자신도 잊지 않도록 암기하느라 고군분투한다. 자칫 사소한 실수라도 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거짓말 게임에 뛰어든 것이다.

물론, 자기 혼자만의 의미를 가진 말이 진짜 언어일 수는 없다. 그가 창작한 언어에는 언어의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다. ‘사회’란 보통 다수의 개인들의 집단으로, 가족, 학교와 직장, 각종 공동체, 국가 등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언어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의사소통을 위해 필수적인 도구다. 두 사람만으로 이루어진 관계를 사회라고 말할 수는 없으므로, 레자의 언어는 언어의 기능을 충족하지 못하는 불완전 언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유대인 레자와 나치군 대위 코흐가 가짜 페르시아어를 매개로 두 사람만의 의사소통 체계를 공유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영화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냉혹하고 비인간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어느덧 깊은 인간적 감정도 생긴다.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절박한 현실에서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언어’였다. 수용소 안의 누구도 레자가 창조한 페르시아어를 모른다.


코흐 대위는 자신에게 외국어를 가르쳐 주는 레자에게 많은 특혜를 준다. 레자는 다른 유대인이 고된 노역에 시달릴 때 비교적 편한 주방에서 일하고, 동료 수감자들은 꿈꿀 수도 없는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가짜 페르시아어 덕분에. 그들은 하나의 언어를 공유해가는 과정에서 감정과 느낌, 일신상의 개인적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존재하지도 않는 엉터리 말을 통해 적대관계인 유대인과 나치군 장교 사이에 끈끈한 우정의 싹이 돋아난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됨'의 기본 요건인 언어는 두 개인 간에  맺어진 최소한의 사회적 관계에서도 그 역할과 기능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우리 모두가 사람이라는 것, 우리 모두가 사랑할 수 있는 성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소름 끼치게 사악한 일을 할 수 존재라는 것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 같은 것은 없다. 인간은 늘 중간 어딘가에 있다.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나치를 로봇같이 감정이 없는 끔찍하고 사악한 캐릭터로 재현한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곧잘 잊곤 한다.


그러나 코흐가 그랬듯이, 그들 중 대다수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고, 살인에 대한 공포와 죄책감을 느끼는 인간성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코흐는 이란에서 독일 레스토랑을 열기 위해 현지어를 배우려는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이었다. 사실, 그것 때문에 결과적으로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 학살하는 그의 행동이 더욱 끔찍하게 느껴지지만 말이다.


《페르시아어 레슨》에서는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 잔혹한 나치가 유대인과 우정을 나누는 ‘인간’의 측면을 부각한다. 코흐 대위가 언어를 배우고 쓰는 순간만은 호모 사피엔스 종의 고유한 ‘인간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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