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OTT, 무너지는 경계는 혼란일까 기회일까
<의식의 흐름대로 60분 내 글쓰기>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가 개봉할 당시. 이제 막 한국에 들어서기 시작했던 넷플릭스는 영화계 왕따나 다름없었다. 극장은 넷플릭스 작품을 영화로 인정하지 않았고, IPTV 작품들과 같이 3개월가량의 홀드백 기간을 두지 않으면 극장에서 상영할 수 없다고 보이콧했다.
당시 학생에 불과했지만, 그와 같은 양상을 지켜보며 느꼈던 것은 '한심함'이었다. 한국 극장가는 오래전 할리우드에서 TV를 배격하던 모습 그대로를 재현하고 있었다. 포용력이라고는 조금도 엿볼 수 없었고, 넷플릭스가 갖췄던 비전에 대한 고민 역시 없어 보였다. 어쩌면 당시에도 올레 tv나 Btv 등 IPTV가 워낙 잘 갖춰져 있었으니,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자리잡지 못하게 아주 강한 장벽을 치려던 의도였을 수도 있겠다. 하나 그랬다면 넷플릭스를 따라 OTT를 내놨던 할리우드 여러 메이저 배급사들과 같이 극장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취했어야 할 터다.
웨이브(푹&옥수수), 티빙, 왓챠와 쿠팡 플레이까지.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국내 OTT 플랫폼 조차 다양하게 등장하는 와중에도 극장가는 조용했다. 그저 높아만 가는 관객 수에 즐거워했고, 영화와 극장의 위치는 굳건하리라 믿었던 듯싶다. 어느덧 한국 영화 산업에 체계가 자리 잡은 지 20년이 다 되었으니, 엉덩이가 무거워질 만도 했겠다. 하지만 어떤 결과가 기다릴지는 뻔했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보장해주는 넷플릭스 앞에서 국내 영화 시장은 급격히 규모가 축소됐다. 모두가 OTT만을 바라보고, 극장 경험은 잊혔다. 수많은 OTT와 콘텐츠의 범람에 시청자들은 이미 볼거리가 너무 많다. 더군다나 표값까지 올렸으니, 대단한 명작이라도 개봉하지 않는다면 극장에 구태여 갈 이유가 없다.
코로나 19라는 앙골 모아 대마왕이 없었다면 지금과 양상이 달랐을까. 글쎄, 관객의 영화관 관람 습관과 문화가 지금처럼 일소되지 않았을지 몰라도. 이미 영화와 드라마,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의 경계가 무너져가는 상황 속에서, 기존 극장 상영 방식에 금세 구멍이 생길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으리라. 엉덩이 무거운 극장가를 향한 손가락질을 접어두고, 이제 내일을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극장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극장에서 모두가 같은 시간, 같은 작품을 보고, 같은 경험을 하는 집단기억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릴까.
영화기자로서 코로나 19라는 엄중한 상황 속에도, 끊임없이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한 입장에서, 극장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으리라는 희망찬 기대를 해본다. 코로나 19에도 여전히 영화를 찾는 씨네필은 존재했고,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명확히 극장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체험'이라는 영역 덕분이다. 시야를 압도하는 커다란 스크린, 귓가를 때리는 웅장한 사운드. 집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순간의 집중. 그로부터 경험하게 될 카타르시스. 온라인으로, 작은 화면과 스피커로 영화/드라마를 시청했을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부분이다.
극장이 모바일과 TV, 컴퓨터 모니터를 이길 수 있는 방법도 그 외엔 존재하지 않는다. 극장이 데이트 코스라는 일종의 신화는 추락한 지 오래다. OTT보다 앞서 개봉하던 방식도 현재로서는 유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미 많은 OTT가 극장 동시 개봉을 시작했다. 편의성도, 가격도, 뒤쳐지는데, 심지어 극장 경험이 중요하다는 예술영화마저 최근 멀티플렉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돈이 안된다는 이유다. 아무리 유명한 예술 영화라도 지방 극장가에선 모두가 '이터널스' 뿐이다. 서울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심할지도 모른다. 극도의 효율성과 생산성만을 추구하는 이 도시에서 영화관의 낭만을 찾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영화에 집중해서, 극장 경험을 중시하며 영화를 보진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코로나 19 전 한국의 1인당 연평균 영화 관람 횟수가 4회에 달 할 정도로 높았지만, 그렇다고 전 국민이 영화 홀릭이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1년에 한 번, 누군가는 1년에 수십 번, 누군가는 상업영화만, 누군가는 예술영화만을 본다. 이 중 극장 경험을 중요시하는 이들은 분명히 소수다. 모두가 극장 경험의 소중함을 깨우친다면 영화인으로서 반가울 테지만, 강요할 수도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결국 영화관이 생존하기 위해선 아주 직접적으로 영화적 체험을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에 위치한 것처럼, 다른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차별화된 경험을 선물해야 한다는 것이다. IMAX, 돌비 시네마, 4DX관은 그와 같은 방향의 훌륭한 시작이다. 테마파크(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어트랙션들도 어쩌면 또 다른 방편이 될 수 있겠다. 결국 살아남는 콘텐츠는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플랫폼은 다르다. 보다 폭넓은 경험을 제공해야 하고, 다채로운 감각을 일깨울 수 있어야 한다. 멀티플렉스가 주류를 이룰 수 있던 것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영화와 드라마, 게임과 애니메이션, 웹툰과 소설, 모든 콘텐츠의 경계가 허물어가고 있다. 1분짜리 초 단편 영화도, 1화당 1시간 10분이 넘는 드라마도 나온다. 더 이상 콘텐츠의 성격을 구분 짓고 특정 콘텐츠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집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른, 시시각각 변해가는 거친 풍랑 속에서 극장이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영화를 사랑하고, 극장을 사랑하는 이로서, 짧게나마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