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행복의 속도’
느린 발걸음 옆 살아 숨 쉬는 초록과 포근한 삶
자연이 선사하는 깨달음과 아름다움 경애를
영화 ‘행복의 속도’가 관객과 만날 채비를 마쳤다. 일본 특별 천연기념물 ‘오제’를 국내 최초로 스크린에 담아낸 작품으로, 오제는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일본의 29번째 국립공원이다. 영화는 오제에서 활동하는 짐꾼 ‘봇카’의 삶을 그리며, 끊임없는 재촉과 불안에 시달리는 우리를 위해 포근한 여유와 묵묵히 나아가는 느림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꽃, 바람, 새, 나뭇길… 해발 1,500미터 천상의 화원 오제. 이가라시와 이시타카는 오제에 위치한 산장까지 짐을 배달하는 짐꾼, 봇카다. 매일 70~80kg의 짐을 지고 같은 길을 걷는 그들은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과 달리 느리지만 묵묵히 자신들의 선택에 책임을 지며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이다. 매 순간 오제의 길 위에서 그만의 찬란한 시간을 채워가는 이라가시와 봇카를 널리 알리고 싶은 이시타카.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이 건네는 이야기가 푸른 자연과 함께 카메라에 담겼다.
다큐멘터리 ‘행복의 속도’(감독 박혁지)는 오제 국립공원에서 산장까지 짐을 배달하는 봇카로 일하는 이가라시와 이시타카의 일상을 통해 각자의 길 위에 놓인 모든 사람을 응원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특별한 인연의 두 할머니를 담은 ‘춘희막이’를 선보이며 지난 제16회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을 수상했던 박혁지 감독의 신작으로, ‘행복의 속도’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습지 오제로 관객을 초대한다. 오제는 중요 습지를 보존하기 위한 국제 조약인 람사르 협약을 통해 보존 습지로 지정된 생태 보고다.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 달라지고, 하루하루 숨 가쁘게 흘러가는 요즘. 우리는 시대를 따라잡기 위해, 누군가에게 처지지 않기 위해 오늘도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렇게 극한의 정신적 핀치에 몰려 어느새 인생의 아름다움과 행복이 진정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린 우리. 영화 ‘행복의 속도’는 턱밑까지 쫓아온 조바심으로부터 매일 도망치려는 그런 우리를 위해, 조용하고 천천히, 그러나 진중하고 부드럽게 마음의 짐을 덜어준다.
영화는 핑거스타일 주법으로 흘러나오는 따뜻한 기타 음률에 따라 이야기를 시작한다. 단순히 아름답다 여겨지길 넘어 그리움과 따뜻함, 포근함을 자아내는 오제의 풍광이 자연스레 경애를 불러일으킨다. 허나 ‘행복의 속도’는 자연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박혁지 감독은 자연 속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그 또한 자신만의 길을 나아간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세태에 뒤쳐져 보이기도 하지만, 그만의 사명감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떼는 이들의 모습에서 이유 모를 벅참이 느껴진다.
격변의 파도에 휩쓸려 삶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우리기에, 더디지만 확고한 그들의 발걸음에 매료되는 것이기도 하겠다. 물론 봇카들 역시 대단한 현자가 아니다. 그들도 평범한 우리와 같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이고 산다.
그러나 보호 구역이 아니었다면 문명의 이기로 금세 잘 닦인 도로가 놓였을 그곳에, 순수한 사람의 힘으로 짐을 나르는 그들은 발길 옆 피어나는 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안다. 꽃의 향기를 가족과 즐길 줄 알고, 싱그러운 풀잎 소리를 마음에 담아낼 줄 안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을 지라도, 그들의 몸과 마음에는 그러한 여유가 풍긴다.
‘행복의 속도’는 봇카의 삶과 마음, 자연과 발자국을 그리며 조급한 우리네 마음에 한 송이 여유를 심는다. 비록 영화가 마치고 상영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내일의 걱정이 온몸을 휘감더라도, 찰나의 여유와 사랑이 지독해가는 마음에 쉴 틈을 준다.
개봉: 11월 18일/관람등급: 전체관람가/감독: 박혁지/출연: 이가라시 히로아키, 이시타카 노리히토/제작: ㈜하이하버픽쳐스/배급: ㈜영화사 진진/러닝타임: 114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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