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노트 |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
대범한 명제인가 성급한 일반화인가
평등주의와 사회 갈등의 상관관계
우리 사회가 맞이한 여러 과제에 대해 지식인들의 지혜를 모았다는 삼성경제연구소 SERI 연구에세이 시리즈. 10년 전 대학 입시 논술 준비를 위해 해당 시리즈의 몇몇 도서를 읽었던 경험이 있다. 한국 사회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밝히는 내용을 갖췄던 그 책들은,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가 극히 좁았던 19살 학생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그런 경험 덕분인지,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을 펼치며 괜스런 반가움과 기대가 앞섰다. 부동산을 비롯한 급격한 자산변동의 여파로 극심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며 ‘벼락거지’라는 신종 용어까지 등장한 요즘인 만큼, 정의로운 사회를 일구는 추진력이 되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이 흥미를 더했다. 비록 15년 전인 2006년 집필한 글일지라도, 당시를 통찰했던 글이 반복되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오늘을 새롭게 비춰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와 같은 기대란 허상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의심이 싹텄다. 해당 도서의 명제나 논리가 허술하다거나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166페이지의 짧은 글로 사회를 통찰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의심이었다. 19살 고등학생에게 해당 시리즈는 시야를 넓혀주는 안경과 같았다. 그러나 사회와 사람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맛보기 시작한 29살 직장인에겐, 해당 도서는 지나친 확대해석과 성급한 일반화로 사태를 단순화하는, 색안경과 같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국 사회의 수많은 현상과 갈등, 부조리와 불협화음의 근원을 ‘평등주의’로 명명한 명제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도서는 ‘평등주의’에 대해 개인적 차원에서 바라보자면, 타인과 평등하길 바라는 심성이라 정의했다. 이것이 집단정신으로 발현됐을 때 평등주의는 사회적 차원의 이데올로기로 화(化)하는데, 결국 정책적으로 자산과 권력, 지위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중요한 재화를 평등하게 분배하자는 사회적 함의를 뜻하게 된다.
한국의 평등주의는 사회 발전에 있어서 매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이미 사회 경제적으로 성공한 타인과 비교하며, 개인으로 하여금 강한 성취동기를 유발했고, 그로 인해 한국 사회의 교육열은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 됐다. 이는 전후 폐허 상태의 한국 사회의 경제를 성장시키는데 가장 큰 요소로 작용했다. 이로부터 지속적인 토지, 자본, 학력 등에 대한 분배 정책이 실시됐고,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돼 사회 안정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책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역사적으로 자원이 이미 불평등하게 배분된 상태에서 출범했으며, 시장경쟁이 지속될수록 계층간 격차가 심화될 수 밖에 없기에 자유주의 사회와 평등은 양립 불가능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에선 평등주의가 야기한 강한 성취동기가 연고주의와 결합했으며, 이에 대한 적절한 제재가 이뤄지지 않아 합리적 경쟁과 규칙이 결여된 파행적 사회구조가 생산됐다는 논지다. 이에 따라 고학력 전문직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낮고 돈을 많이 번 이들에 대한 불신은 강하다. 부패하고 부도덕하다는 이유다.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시기를 걸쳐 형성된 사회 기득권층의 견고한 방벽을, 일반 서민들은 경멸한다. 때문에 한국인들은 성공을 향한 강한 열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성공한 이들을 향해 은근한 경멸과 무시를 서슴지 않는다. 책에 따르면 서민들은 그들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고, 성공 수단에 대한 시비를 밝히려 시도한다. 그로부터 시작된 불만과 분노가 사회적 갈등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이어 책은 경제 성장 수준에 따라 법과 제도의 성숙에 따라 공정한 경쟁 질서가 기틀을 갖추게 될 것이라 말한다. 그럼으로써 바탕이 충분히 그려졌을 때 정부가 ‘고소득층과 성공한 사람들의 불만을 사지 않는’ 분배 정책을 취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경제 수준의 성장이 사회 성장의 동력이 되고, 평등에 대한 개념이 다원화돼 단순 자산보단 ‘삶의 질’ 측면으로 평등주의 역시 변화하며, 분노와 불만, 갈등이 해소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 책에 대한 불편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기인한다. 얼핏 책의 내용은 사회 경제적 노력으로 법과 제도를 보완하고 사회 갈등을 해결하자는 메시지로 보여진다. 그러나 차분히 곱씹다 보면, 책은 사회 갈등이 야기되는 부정의에 대한 개인의 토로를 성공한 이를 인정하지 않고, 시시비비를 끊임없이 밝히려는 질투로 보여지게 한다.
한국전쟁과 민주화 운동 시기를 분석하며 평등을 바라는 마음의 기원을 사회와 역사에서 찾으려 하지만, 결국 해결책은 ‘모두가 정의롭다 여기는 사회 만들기’가 아닌 ‘각자의 삶에 안분지족하는 다원적 평등으로 발전시키기’다. 책 144페이지 ‘전제 3’에선 그에 대한 연장선으로, 사회 갈등의 해결을 개인적 차원으로 책임을 전가시킨다. 사회 경제적 노력만으론 부족하니 개인의 노력으로 사회 분위기를 일신시켜야 한다는 취지다.
물론 책은 성공한 사람이 사회적 책임을 지고, 타인의 성공을 인정하는 관용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말로 포장했다. 허나 속 뜻이 다가오기론 경제 발전과 법제의 보완은 시간의 흐름과 결부해 자연스럽게 일어날 일이고, 노력해야 할 주체는 개인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의 일신 없인 경제 발전이 무용하다는 논리지만,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선 개인의 노력이 아닌, 정의 사회 구현이 먼저임을, 구조적 변화가 앞서야 함을 무시한 말이다.
이는 이 책이 출간한지 15년이 지난 현재 사회를 바라봤을 때 더욱 명징하다. 책에서와 같이 소득 수준이 크게 상승함에 따라 골프가 더 이상 사치스러운 스포츠가 아니며, 단순한 ‘부자 되기’가 아닌 ‘윤택하게 살기’가 주된 분위기를 이룬다. 여전히 재벌 등에 대한 따가운 눈초리가 있으나, 다양한 경제적 성공 기반이 마련됨에 다라 신화를 이룩한 이들은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사회가 ‘정의롭다’고 여기지 못한다.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갈등은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붉어지고, 불공정에 대한 분노와 상대적 박탈감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여전히 기득권층은 지위를 이용해 신분을 세속하고, 권력을 이용해 자산을 증식시킨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여러 의혹들, LH 공사 직원들의 투기는 이를 대표한다. 우리 사회의 갈등이 ‘평등주의’라는 말로 포장한 질투심에서 기인함이 아니라는 의미다.
책은 평등주의를 해로운 것이 아니라 말하면서도 ‘다원적 평등주의’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부자 되기’가 아니라 ‘윤택하게 살기’다. 주택을 포기하고, 자동차 등 사치품을 구매하며, 해외 여행을 즐기는, 이에 따르면 출세와 고소득은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일차원적 평등 가치다. 결국 기존 기득권층과의 완전한 유리다. 신분 상승의 통로는 갈등 완화와 사회 안정이라는 그럴듯한 명분 앞에 굳어버릴 터다.
책은 한국의 평등주의를 설명하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귀족사회와 상층사회의 생활양식을 무너뜨려 하향평준화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엘리트가 엘리트라 말하지 못한 채 한국의 평등주의는 품위 없는 문화의 확산, 고급 문화의 소외, 엘리트 의식의 해체를 재촉했다고 말한다. 이는 한국 사회를 설명하기 위한 예시일 뿐일까. 우리 사회 갈등의 기원을 통찰하고, 정의 사회 구축을 위한 메시지를 전한다는 책 속에서 은근한 엘리티즘과 계급 분화의 기조를 발견하는 것은 편향된 해석일까. 이 책의 내용이 갖는 저의에 물음표가 가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