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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씨네 WeeCine Jul 29. 2022

[기자]를 떠난 4개월의 소회

조선반도에서 영화인으로 살아남기 #1

지난 3월을 끝으로 기자를 그만뒀다.


2019년에 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대략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돌아보니 유난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 깊이 자리한 불안감에 하루가 더디게만 흘러가곤 했다.

기자를 그만두고 몇 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여유가 생겼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멋들어진 변명도 있겠지만, 결국 이제야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됐을 뿐이다. 나만의 감상을 어딘가에 적는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임에도, 최근 몇 개월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고 또 즐겼다.


짜내듯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그렇게 쓰인 글들이 그저 흩날리듯 사라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가

한껏 어깨에 들어간 힘을 조금씩 빼게 했다.


그렇게도 기자 일을 싫어했고, 끝내 도망친 내가 할 말은 아닐 수도 있겠으나, 도저히 향방을 알 수 없는 인생의 파고에서 기자가 됐던 것은 분명한 행운이었다. 기자였던 덕에 만날 수 있었던 다양한 인연들과, 기자이기 때문에 해야 했던 일들과, 기자로서 배우게 된 세상과, 기자로서 얻은 경험들은 참으로 값지다.


누구에게도 찾을 수 없고, 얻어낼 수 없는 나만의 결정일 터다.

기자라는 명목으로 글을 쓰던 시간과 노력은 어스름이 내 인생을 좌우하리라 확신한다.


다만 누군가를 재단하기 불편하다는 마음과 다른 이의 영화가 아닌 나의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무엇보다 컸다. 


크레디트 윗줄에 이름이 걸리기란 물론 요원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상상만으로 행하던 일을 직접 수행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여전히 즐거울 따름이다. 흑백 전자사전 속에 판타지 소설을 넣어 놓고 밤 몰래 읽다 잠들었을 때, 꿈속에서 펼쳐졌던 그 화려한 세계는 여전히 생생하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당시의 작은 마음이 이제는 크게 부풀어있다.


물론 옮겨 와 하는 일은 여러모로 고되다. 내가 알던 글쓰기와 조직 내에서 활용되는 글쓰기는 전혀 다르다.

영화를 잘 몰랐다는 생각도 든다. 시나리오를 읽는 것은 영화를 보는 것과 또 달랐다. 


일도 많다. 낯설고 다른 일이니 배울게 산더미인 것도 당연하고,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스스로 주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평생 자세만은 바르리라 자신했지만, 요 몇 개월 만에 목 디스크도 얻어버렸다. 무엇보다 술이 싫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량이 아주 적은 편은 아니나 술맛은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사람에게 생각보다 더 큰 의지처가 되는 듯하다. 아무리 몸이 편했을 지라도 어디로 흩날려 가버리게 될까 매일 두려워하던 당시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결국엔 좋다는 말이다. 더없이 만족스럽다. 물론 작고 소중한 나의 귀여운 월급은 문제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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