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남자하기 나름이다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부부들 역시나 영화처럼 시댁 간의 고충은 여전해 보인다.
'시댁'과 친정이라는 단어에서조차 그 차별은 시작된다.
'댁'은 유교적 배경에서 지위가 높던 시절 어미에 붙이던 글자다.
예를 들면 최부자댁, 이조판서 댁 등 집안을 일컫는 존칭어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걸음 뒤로 물러서면 동양문화는(문화라고 고급어를 쓰고 싶지 않지만) 유교가 근간이 된다.
오래전 한나라를 시작으로 제후들이 각 영역을 지휘하고 다스리려면 종적 관리체제가 필요했고 그런 질서를 퍼뜨리기 위한 학문이 공자 맹자의 유교다.
이게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고 성리학이 조선시대 지배체제로 사용되었다.
어느 시대나 권력을 잡으면 사람들을 잘 다스리는 게 우선이고 그러기 위한 명분이 필요하다.
나름 중국에서 선진교육을 배우고 온 세력이 나라를 장악했으니.
그런 국가의 지배 정신이 우리의 어른들이 교육받고 그것이 진리인 양 받아들여 우리의 할아버지에서 그 아들로 그리고 오늘의 남편들에게 무의식적 세뇌된 것이다.
종적 유교의 근간에서 어른의 말은 거역할 수 없고 당위성을 가진다.
게다가 남자가 가정을 이끄는 포지션이 인정되다 보니 그 자리는 황당한 권위를 부여받는다.
권위는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부여받는 건 일처리를 위한 질서일 때다.
횡적인 사람 존중의 문화에 가까운 서구의 실학이 조선시대 들어왔다면 어땠을까.
최소한 지금 처럼의 시댁 갈등은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보며 주인공 지영과 똑같이 남편 대현에게 마음이 갔다.
내가 본 대다수(개인적 의견이니 이해하시고) 남편들은 영화의 대현만큼도 못했다.
시댁 다녀오면 어떻게든 아내를 품어주려는 노력.
자신의 부모님 앞에서는 강성으로 큰소리 한번 못하지만 대신 미안하다고 하며 안절부절못한다.
자신을 키워주고 나름 '아들'우대하며 키워온 부모님들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배우지 못한 남편이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지만 나의 경험은 반대다.
'여자는 남자하기 나름이다'.
여자는 모성과 감성을 흠뻑 가지고 있다.
그 부분을 만져주고 배려하면 사실 여자는 견딜 수 있다.
대현이 시댁 식구 앞에서 지영을 보호하고 대변하는 '큰소리'를 냈더라면 지영의 힘듦은 크지 않았을 거다.
남편의 지지는 위로와 힘이다.
영화에서 지영의 엄마는 지영에게 '네가 하고 싶은 거 해'라 말한다. 엄마도 모르는 거다.
그 지영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남편의 지지와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남자는 남편이 되려면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에게서 '분리'되어야 한다.
다 뿌리치고 새롭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다.
아내 지영은 분리되어있어 보인다.
부부는 한 가정을 같이 만드는 공동체이며 독립체이다.
우리는 새롭게 구성된 가족이며 누구도 지적할 수 없고 때론 따로, 때론 또 같이로 살게 되는 완전한 가정이라는 사실을 대현이 인식했어야 한다.
미움을 받더라도 시부모들 앞에서 아내를 보호해주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유교적 관념의 잔존하는 어른들에게 나는 이 사람이 중요하며 이 사람 편이다 라는 정확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나 영화에서 대현이 그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은 지혜와 한 셋트다.
때론 나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나중에 부모님께 잘 설명해 드릴지라도 아내의 자존감과 남편에 대한 든든한 신뢰를 연출해야하지 않을까.
우왕좌왕하며 힘들어하는 대현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런 교육과 문화를 만들어주지 않은 윗 세대가 밉다.
요즘은 여성의 목소리가 더 커서 친정과의 갈등이 있다는 사위들의 이야기도 들린다.
그래서 결혼시킬 성인자녀가 있는 나 같은 연배의 어머니 아버지가 꼭 말해주고 알려주면 어떨까.
기준을 잘 모르는 영화의 대현이 불쌍해서 글을 써본다.
여보 이 글 읽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