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한 의사에 대한 고마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어마한 것들이 가득.
그것도 살아 움직이며 상상할 수 없는 크기로 커지다가 결국엔 보이는 몸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순간이 있다.
행복해서, 너무 좋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 반대도 공존한다.
오래 알았던 친구와의 결혼, 연년생으로 태어난 두 딸들.
첫아이는 임신중독으로 둘째는 전치태반으로 이어져 나에게 출산이란 고통과 두려움과 같은 수준이다.
둘째아이 임신 중에는 병원 생활하느라 조금 언니인 큰애를 친정에 맡기고 안정을 취해야하는 시간이 필요했었다.
임신 7개월을 지날 즈음.
대부분 여성이 보지 못하는 내 몸의 태반조각을 확인하며 하혈을 했다.
앵앵거리는 앰뷸런스를 타고 대형병원에 실려 가던 날.
흔들리는 차 안에서 무섭고 힘듦과 동시에 그간 누가 아프구나 정도로 받아들였던 도로의 앰뷸런스들이 떠올랐다.
각각의 사연과 그 안의 세상들이 벌어지고 있었을 공간들.
어떤 사람들의 인생과 눈물이 실려가고 있었음이 새삼 묵상되었다. 나처럼.
힘들게 9개월에 세상에 나온 둘째를 데리고 큰애를 만났을 때 나는 펑펑 울었다. 조금씩 말을 배우기 시작한 큰애가 나에게 '언니'라고 불러서.
엄마라는 단어보다 이웃집들의 언니라는 단어부터 배워버린 큰애.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건강하게 태어난 동생과 만나게 해 주었기에 우리는 또 함박 웃을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그렇게 이겨내고 있었다고 생각했고 기쁜 인생이라고 세뇌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직장에 대학원에 바빠 대하기도 힘든 남편이었지만 그보다 힘들었던 건 내가 잠식되고 있고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아니었는데 남편의 성장에 나의 인생이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출근한 남편은 어머니께 전화했느냐 지나가는 말처럼 챙기며 자신의 효를 내게 원하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우리 엄마한테 전화드렸냐고.
지쳤다.
평행선은 철도길이나 종이 위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오히려 편했다.
아니 그 거리를 유지하려는 힘든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당신 성격이 예민하고 문제인 것 같아 병원 좀 가봐야겠어
나는 당신 성격이 문제지라고 대응했고 큰소리가 났다.
그날 밤 나는 결심했다. 이혼을.
그래.
내가 문제여도 헤어져야 하고 저 사람이 문제여도 헤어져야 해.
법정 가기 전에 내가 먼저 병원 가서 상담 받고 내가 문제없다면 남편이 문제라는 걸 깨닫게 하고 내가 당당히 이혼 요청할 거야.
나는 그런 명분이 필요했다.
다음날 오후 아이들을 부탁하고 신경정신과로 향했다.
번잡한 시내 사거리지만 익숙한 병원 간판들.
그리고 하나밖에 없었던 신경정신과와 진료 항목 맨 아래의 학업 상담과 부부상담에 평소 힘든 나의 시선이 여러번 갔던 곳이기에 물 흐르듯 향할 수 있었다.
아. 신경정신과에서 저런것도 진료하는구나 했었다.
지하에 주차를 하고 굳은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래 가면 뭔가 답을 말해줄 거야.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나는 구원의 나라로 분리되어 가는 희망의 기분을 느꼈다.
괜히 부부상담이겠어.
사람은 어떤 생각에 골몰하면 보이는 것이 없나 보다.
지금이 저녁 퇴근시간이라는 것을 잊었다.
병원에 들어서자 데스크의 여자는 우산을 챙기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향한 그녀의 표정이 사뭇 흔들린다.
아주 짧은 찰나여도 어떤 마음인지 내게 전달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영적인 동물이라더니.
때마침 문 열고 나온 의사는 분위기를 파악한 듯 말한다.
접수해 드리세요
간호사를 퇴근시키고 의사와 나 단둘이 진료실에 마주 앉았다.
어떻게 오셨나요?
생각해보니 그간 나의 이야기를 작정하고 들어주려는 사람을 못만나고 지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의사는 이미 나의 마음을 다 알고 해결해줄 준비가 된 것일까. 하고싶은 이야기 다해보라는 자세다.
지친 한 여자의 마음이 마주하고 있는 책상 위에 꺼내어져 훌러덩 올려져있는 느낌이었다.
눈물을 참지 못하며 눈앞의 티슈를 여러장 죽죽 꺼내고 있었다.
눈물 콧물을 닦으면서 나는 아 다른사람들도 그러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코앞에 커다란 티슈상자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울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쉬지않고 뭔가를 말하면서 울고 울고 울었다.
밖에 내리는 비도 나를 공감하고 있는듯 했다.
샤프하고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이 젊은 의사가 나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겠어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잖아.
나는 낭떠러지에서 누군가를 잡아야 하는 희망적 마음으로 숨을 고르며 차근차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마 한 1시간 가까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것 같다.
그런것치면 정신과 진료비는 시간으로 계산해도 무척 저렴하다.
이제 의사의 퇴근시간은 이미 의미를 잃고 있다.
한쪽은 말하고 다른한쪽은 쏟아내는 장면만 있을 뿐.
작은 눈이 퉁퉁 불어 오르도록 울고 있는 한 여자에게 발목 잡혀 도망갈 수도 없다.
책상 위에는 마치 흰 솜을 가득 쌓아놓은 것 같은 나의 마음속 덩어리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그리고 의사는 말했다.
남편을 오시라고 하시죠
나만 상담하고 빨리 집에 가는 게 좋은데 그는 남편을 부른다.
절대 대화 안되고 안 올 사람이라 했지만 의사의 말은 간단하다.
'일단 한번 연락해보고 안 오면 말죠뭐'.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표정과 말투.
그리고 그때 내가 장악당했던 그 상담실의 위엄을 기억한다. 의사의 부추김에 힘입어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말도 하고 싶어서다.
"당신이 병원가 보라며 그래서 병원 상담하고 있어. 의사가 당신 와보래" 라고.
남편은 잠시 멈칫하더니 알았다고 대답한다.
남편이 도착해 의사를 만나러 들어갔고 아이가 한참 울고 나면 잠드는 것처럼 나는 따스한 병원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한참 뒤 남편이 깨워 눈을 떴다.
의사는 병원에 있던 간단한 약을 담아주며 결재를 했다.
시간은 8시를 한참 넘기고 있었다.
남편과 의사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한참 지나 들었다.
당신 아내 너무 힘들다는 것.
남자와 여자에 대해 남편이 너무 모른다는 것.
당신이 너무 잘못하고 있다는 것.
당신 아내는 지극히 정상이라는 판결(?)까지 받았다.
남편은 간단하게 말해주지만 내가 모르는 은밀한 뭔가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변해도 너무 변한걸 보면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 남편과 아직도(?) 살고 있다. 그때의 서툰 남편과는 헤어진 느낌이다.
우리는 가끔 이야기한다.
늦은 시간 그 의사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 의사는 다른 환자들에게도 그렇게 친절했을 것이다.
그 친절이 우리 가정을 지켰다는 사실을 언젠가 말해주려고 한다. 바카스 들고 가서.
육아와 부부갈등에 상처투성이던 두사람이 이후 헤어지지 않고 여전히 한이불 덮고 살고 있다고.
퇴근을 늦추고 애써준 덕분에 회복되었다고.
가끔 그곳을 지나다보면 여전히 간판이 그대로다.
여전히 남편은 그대로 효자다.
그러나 지혜로운 효자로 눈치있게 정치한다.
다행이다.
때론 전문가의 개입이 부부에게 필요하다.
정말 필요하다.
좌충우돌 심약한 시절. 정말 감사한 신경정신과 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