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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새 Mar 05. 2023

소설 쓰고 싶다구요

근데 배우지 않고 어떻게 써요?

처음이 주는 묘한 긴장과 설렘이 있다. 자전거를 처음 탈 때도 수영을 처음 배울 때도 알파벳의 읽는 법을 하나씩 익혔을 때도 비슷했다. 지나간 모든 '처음'의 순간을 되돌아봤다. 그중 무언가 터득해야 하는 순간에는 대부분 누군가로부터 배울 때보다 스스로 익혔을 때가 재밌었던 것 같다. 반대로 흥미로워서 스스로 익혔을지도 모른다.


여덟 살 때 처음 소설을 썼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 내용을 보여주진 않는다. 어린 나이에 쓴 소설이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그런 흑역사를 처분하지 않은 인내심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자물쇠가 걸린 다이어리에 연필로 꾹꾹 눌러쓴 이 소설은 한창 사춘기 때 몇 번이고 버려질 위기에 처했지만 살아남았다. 내용은 부끄럽지만 추억이라 생각하니 버리고 싶지 않았다. 개학 전 날, 선생님 도장을 받기 위해 쓴 일기장처럼 말이다. 오히려 중고등학생 때 노트에 썼던 이야기들은 대부분 풀다 만 참고서들과 함께 묶여 버려졌다.


서른이 넘어가며 깨달은 것이 있다. 부끄러운 건 엉터리 맞춤법도, 못난 글씨도, 유치한 스토리가 아니었다. 글 쓰는 걸 좋아한다면서 지금까지 미뤄온 지금의 내 모습이다. 엉성한 완벽주의 때문에 무슨 글을 어떻게 쓸까 고민만 하다가 시간을 버려왔다.

버리지 않은 게 대견하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먹고살고 싶었다. 글과 가까운 직업을 찾다 보니 논술 과외, 카피라이터, 마케터를 거쳤다. 글에 대한 집착은 업무에 도움이 될 때도 있었지만 보통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을까.' 하는 걱정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일하면서 크리에이터나 작가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보고 듣는 게 있으니 마치 나도 특별한 사람이라고 착각했었던 적도 있다. 물론 창작자만이 특별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가끔 퇴근하고 집 근처 대형 서점에서 그들의 책을 보고 있자니 심히 질투가 나고 배가 아팠다.


나도 저 정도는 쓸 수 있지 !..?

5~6년 전이었던가. 독립출판물을 보거나 갑자기 급부상하는 젊은 작가들을 보고 했던 생각이다. 주변의 인정 없이 나 홀로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 있던 시절이었다. 오만하고 창피하지만 솔직했다. 반면 요새 글을 읽거나 쓰자니, 세상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글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면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잘 쓰는 일에 앞서 쓰는 일이 참 고된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저들처럼 쓰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났다. 글을 쓴다면서 이제껏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한 글은 짧은 에세이뿐이다. 우연한 자리로 작가들과 대화할 기회에도, 글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더 이상 글을 쓴다는, 글 쓰는 걸 좋아하다는 말을 꺼내기 어려워졌다. 안타깝게도 이는 자존감을 내리누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최선을 다해 써놓고 찌꺼기라 여겼던 나

가지각색의 핑계가 먼저 떠오르지만 꿋꿋이 써보려고 한다. 내가 나를 잘 알기에 선언하거나 다짐해 봤자 완성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기록하다 보면 출퇴근하다 지친 미래의 내가 꺼내 읽다가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년 가을에 퇴사를 하고 속초와 제주로 한 달 살기를 다녀온 적이 있다. 처음엔 쑥스러웠지만 주변 이들에게도 글을 써보려 떠난다고 떠들었다. 글을 쓴다는 걸 지인에게 말하는 건 내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나름대로 숨기고 있던 칩을 배팅한 셈이다. 의외로 많은 응원을 받았다. 좋은 사람들을 둔 것에 감사하고 다시 한번 쓰는 힘을 낼 수 있었다.

퇴사 후 속초 살이

콘텐츠나 브랜드를 기획하고 마케팅하는 일을 주로 하다 보니 소설을 쓰기에 앞서 버릇이 드러난다.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소설을 구체화하고 써 내려가는 과정을 콘텐츠로 만드는 등의 일이다. 소설 쓰는 법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 없기 때문에 내 스타일대로 밀어붙였다. 물론 중간중간 작법서나 강의를 찾아보면서 말이다.


소설을 쓰다 보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다른 시대와 배경을 살아볼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써내려 가는 건 나 자신이기에 답답한 마음, 고민되는 순간, 마침내 해결하는 과정을 이곳에 기록해보려 한다. 개인적인 글이지만 내가 전개하는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은 없더라도, 가상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한 사람에겐 티끌만 한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싶다. 레퍼런스까진 못 돼도 '참고할만한 망한 사례' 정도는 될 수 있지도 모른다.

소설을 이렇게 시작해도 될까

MBTI J답게 걱정과 생각과 계획이 많다. 소설 하나를 쓰더라도 많은 준비를 할 테고 그만큼 더디지만 유용한 데이터를 쌓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인물과 사건, 배경을 만들기 위한 기획이나 취재 등의 과정 같은 것들 말이다.


대단한 노하우는 없다. 전문적으로 소설 쓰기를 배워본 적도 없지만 도움 될만한 자료를 찾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노력하고 기록하다 보면 함께 격려를 나누며 빈 종이를 채워볼 수 있지 않을까. 근본은 없지만 근성을 다짐해 본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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