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완벽주의자의 시작 울렁증
시작이 어려운 사람은 완벽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 '난 그렇게 꼼꼼하고 철두철미하진 않은데?'라고 생각하면서 부정할 수도 있지만 그냥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게으른 완벽주의자라고 단어를 바꾸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는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고 향후 계획이 잘 세워져 있다면 누구보다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시작부터 탄탄대로를 걸을 수는 없다. 그러면 어설프게나마 시작해야 하는데 우리는 출발선 알레르기가 있다.
시작을 시작하는 일을 주저한다. 물론 게으른 완벽주의자들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이런 문제를 겪는 것이다. 그 기특한 마음을 칭찬해주고 싶지만 시작한다면서 누워있는 모양새를 보면 혼내주고 싶기도 하다.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할 때, 고집 대신 두 손 두 발을 내려놓고 있으니 걱정이다.
영어를 잘하는 상태가 되고 싶을 뿐, 영어를 잘하지도 못하고 어렵게만 느껴진다면 점차 울렁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유창한 발음을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시작도 마찬가지다. 주저하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살아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작 울렁증이 생긴 것만 같다. 시작을 못하는 일에 익숙해져 버려 애초에 에너지를 쏟지 않게 된다.
또 시작도 못하고 끝내겠지. 그리고 후회하겠지. 한 2~3년 뒤?
위 문장을 내 인생의 명대사로 남게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최근에 새롭게 시작한 게 하나 있다. 도대체 무엇을 내려놓아야 시작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결정한 것은 단 한 가지를 제외한 전부였다.
시작하지 못할 이유 수 백 가지는 중요하지 않다. 해야만 할 이유 한 가지면 충분하다. 이번 시작에서 내 한 가지는 재미였다. 재미가 있으니 도전하고 싶었고 재미가 없어지면 포기하자는 마음으로. 하지만 잘 해내려는 욕심이 절대 재미보다 커지지 않게만 하자. 그렇게 다짐했다.
나를 비롯한 게으른 완벽주의자들이 덜 게으르고 덜 완벽하게 힘찬 시작을 할 수 있길 응원하는 마음이다. 결국 완벽한 사람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