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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새 Apr 15. 2023

물감을 쏟아버린 듯

일상의 채도가 올라간다

앙상한 가지에 풀이 돋는 형상은 소름이 돋을 만큼 감탄할 만한 광경이다. 죽은 듯 수개월을 버티던 것들에서 생명력이 뿜어져 나오는 일은 봄에만 관찰할 수 있다. 고동색과 흰색, 검은색을 조금씩 섞어 바른 길거리는 어느새부턴가 형형색색의 물감을 쏟아버린 듯 화려하게 변모한다. 어제 없던 꽃이 오늘 피어나고 그제 없던 색이 오늘 모습을 보인다.


채도를 2 정도 높여 보정한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순히 싱그러워진 환경을 즐긴다기보다, 자연이 급격히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4월은 흥미롭다. 이번 달에 접어들면서 동네 버스정류장 옆에 서있는 앙상한 나무에 노릇한 낌새가 있더니 마침내 꽃을 피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매년 여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좁은 정류장 지붕 아래 모여 뜨거운 태양을 피했고 자리를 선점하지 못한 사람들은 바로 저 나무의 울창한 잎들 아래서 쉬곤 했다. 나무의 그늘은 그만큼 거대했었다.


계절은 매년 돌고 돌지만 참 쉽게 잊어버린다. 겨울이 되면 매미소리가 아득히 먼 과거처럼 느껴지듯이 말이다. 우리는 환경이 변하면 금세 적응해야만 버틸 수 있는 뚜렷한 사계절을 살고 있기에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4월이란 달은 어떨까? 사계절, 열두 개의 달 중에 가장 화려하고 급변하는 4월은 말 그대로 형형색색이다. 살구색 얇은 패딩을 입는 어머니와 푸르고 두터운 셔츠 차림의 아버지, 일찍이 반소매를 입은 친구와 봄이니까 벚꽃색 카디건을 걸친 직장 동료까지.


나무가 겨울을 대비해 가진 나뭇잎을 죄다 떨어뜨리고 추위를 버티다가 다시금 푸른 잎을 두르는 모습은 매년 이맘때쯤 보는 광경이지만 신기한 일이다. 에너지를 잔뜩 모아 겨울을 나기 위해 나뭇잎을 놓아준다는 얘길 들었을 때 나무에게서 강한 생명력을 느꼈다.


‘너도 살아내기 위해 버티는구나.'


4월은 투박하고 건조한 스케치 위에 물감을 칠하는 시기라 생각하고 싶다. 겨우내 잘 버텨냈기에 맞이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달이다. 4월의 허리까지 지나간 오늘, 이제 과감하게 칠하고자 한다. 형형색색으로 칠해버린 도화지에 색 하나 잘못 쓴다고 문제 될 건 없다. 덧칠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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