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흐르는 피를 종이에 옮기라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현재 시제로 글을 쓰는 것에는 어떤 힘이 있다.(...) 힘든 시기에 글을 쓰라. 기괴한 시기에 글을 쓰라. 두려운 시기에 글을 쓰라. 개인적인 전환기에 글을 쓰라. 그리고 무엇보다 깊은 상처를 받은 시기에 글을 쓰라. (p165)
누군가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날이 있다. 마치 빗자루로 쓸어 담은 쓰레기를 받아내는 쓰레받기처럼 누군가의 화를 받아내는 화받이가 된 그런 날이 있다.
어느 누구도 그날 그 시간의 여자를 위로하지 않았고, 그 일이 얼마큼의 상처인지 묻지 않았다. 여자 스스로도 들추어내거나 끄집어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날 그 시간을 여자는 그냥 묻었다.
그렇게 묻고 덮는 것으로 끝이라 여겼고 모든 것의 처방이 되는 시간이라는 명약 덕분에 그 아픔과 쓰라림의 상처는 희미해지고 옅어졌다.
해가 바뀌고 상처가 사라져 갈 무렵 여자는 또 한번 화받이가 된 일로 좌절을 넘어 상실감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그 바닥에서 혼자 울었다. 울면서 여자는 다짐했다. 나서지 말자. 아무 말도 하지 말자. 참자. 그렇게 조금씩 혼자 만의 성을 쌓으며 스스로 치유하고 회복하려 애썼다.
회복해 가면서 알았다. 마음의 상처는 묻었다고 덮는다고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깊은 상처는 마음속 어딘가에 굳은살로 오래된 벽지에 눌어붙은 얼룩자국처럼 흔적이 되어 남아 있다는 사실을.
해가 또 바뀌었다. 얼룩이 되어 남아 있는 오래된 상처의 흔적을 덮어두지 않고 지우려고 애를 썼다. 묵은 감정의 더께를 벗겨내고 삭히며, 글로 비우고 또 비우며 그렇게 버리고 태웠다. 그 노력이 더께가 된 굳은살을 긁어냈다. 조금씩 조금씩 얕아지고 무뎌지고 둔감해지면서 오래된 흔적에 치유의 벽지가 발렸다.
얼룩진 마음의 상처엔 노력과 시간으로 얻어지는 치유의 벽지가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