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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빈 Jun 06. 2024

블랙빈에게 쓰다

45 이야기는 시멘트 바닥을 뚫고 뻗어나간다

이야기 전달자인 우리는 빛을 향해 뻗어나가는 법을 배운 생존자들이다. 우리는 모두 작은 보라색 꽃이다. 자전적 에세이를 쓰면서 당신은 아주 작은 빛 조각을 향해 뻗어나간다.(p234)


앨리스 워커의 『컬러 퍼플』을 읽으며 주인공 샐리가 슈그를 통해 신이 만든 세상에서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보라색을 보게 되는 것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색깔을 찾고, 또 그것으로 찬란한 빛의 조각이 되어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삶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이 사유의 시작임을 보았다.


항상 그러하듯 글로 배운 것들은 어떤 사건이나 계기로 행동화되어 변환되지 않는 한 기억에서 쉽게 잊히고 사라진다. 여자는 『컬러 퍼플』 속의 샐리를 잊었다. 보고 배운 것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러다 낸시의 글을 읽으며 문득 무엇을 어떻게 써야 작은 빛 조각을 향해 뻗어나가는 생존자가 된 샐리처럼 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


여자는 자신 안에 숨어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또다시 살펴보면서 자신의 무의식 속에 어떤 감정보다 불안을 움켜 잡고 있음을 알았다. 그동안 알면서도 모른 척 등한시했다. 굳이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드러내는 순간 그 불안이 나무에 묶여 있는 밤을 기억하는 낮의 낙타처럼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묶어두는 족쇄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스스로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자고 늘 말은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항상 내일을 생각하고 고민한다. 무난한 하루를 보내며 일상의 삶을 평범하게 하다가도 문득문득 내일을 떠올린다. 괘념치 않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어느 순간 불안의 방의 스위치를 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자신을 지금의 평안에 두지 않고 불안 속에 갖다 놓는 자신이 자신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여자는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다.


사랑에 자신감이 없는 여자는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서 불안의 이유를 찾는다. 결혼하고 아이의 육아를 전담하면서 온전히 혼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라고. 또 출동으로 집을 비우는 남편을 대신해 스스로 자신과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오늘이 아닌 내일을 걱정하는 불안을 스스로에게 심어주었다고 핑계를 댄다.


이제 퇴직한 남편이 항상 곁에 있고, 아들도 자립한 터라 별 걱정 없는 오늘의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평탄한 지금에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다가올 시간에 일어나지도 않을 어떤 일들에 더 신경을 쓰느라 불안한 여자는 30년 넘게 자신을 지배해 온 생각의 의식이 습習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에 배어들어 악념惡念처럼 고착되었음을 깨닫는다.


이 악념을 버리지 않는 한 여자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스스로 너무나 잘 안다. 알면서도 바꾸지 못한다. 못한다는 명제 앞에 불안이 더 엄습한다. 해서 이제라도 자신 안의 불안의 방에 스위치가 켜지려고 할 때마다 그것을 켜지 않을 방법을 여자는 찾아야 한다. 지금의 자신에 집중하며 호흡으로 불안을 뱉어내고, 무탈한 오늘에 감사하는 것으로 자신을 감싸 안아야 한다.


짧은 여행들이 산재散在해 있는 6월을 정신없이 시작하면서 자기 안으로 불어 들어오는 불안의 바람 역시 ‘이 또한 지나가리라’ 담대하게 생각하며 여자는 오늘의 시간여행을 즐기기로 한다. 낯선 이들과의 만남을 걱정대신 기대감으로 전환시키려고 애쓴다. ‘부딪혀보자!‘ 맹세같은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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