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분노
당신이 글에서 분노를 폭발시키면 오히려 나를 밀어내게 된다. 그냥 이야기를 들려주고, 내가 당신 대신 분노할 수 있게 해 달라. 당신을 위해서.(p231)
낸시는 여자에게 분노를 고스란히 쏟아낸 글을 쓰고 그런 다음 화를 내지 않으면서 대신 독자가 화를 내게 만드는 글로 바꿔 쓸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라고 한다.
순간을 참지 못하고 뱉어낸 말로 분노가 사라지지 않음을 경험한 여자는 분노를 말이 아닌 글로 표출한다. 화가 난다. 짜증이 난다. 언짢다. 불안하다. 슬프다. 고단하다. 피곤하다. 성가시다. 속상하다. 귀찮다. 힘들다. 따분하다. 쓸쓸하다. 야속하다 등등.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드러나는 감정들이 분노가 되어 입으로 쏟아져 나오려고 하면 노트를 펴 들고 그 말들을 적는다. 여자의 분노는 그렇게 노트 위에 쌓인다.
여자는 적으면서 알아간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해소되지 않으면 자신 안에 분노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과 화를 해결하는 데 있어 그 발아점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지점을 찾게 되면 해소의 실마리가 잡힌다는 사실을. 그러나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면서 왜 화가 나는지 무엇 때문에 짜증이 나고 힘이 드는지를 적어가면서도 그 지점을 찾아내지 못하면 결국 분노는 여러 가지 모양의 감정으로 위장 분출되어 자신을 암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분노의 방향과 방법을 글을 쓰며 조정하고 바꿔도 해소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집을 나와 무작정 걷는다. 집 안에서 노트로 풀리지 않는 분노가 해결되지 않으면 들고 나온다. 빠른 걸음으로 혹은 느린 걸음으로 걸으면서 한숨으로 내뱉고 두 숨으로 내리쉬고, 세 숨으로 풀고 네 숨으로 쏟아 낸다. 호흡에 집중하며 무작정 걷고 또 걸으면서 자신 안에 있던 화를 바람 속으로 날려 내보 내다보면 ‘그래 이렇게 버리면 되는 것을 무엇하러 담아두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에 의해서든 상황에 의해서든 분노의 감정은 자신이 가진 고유성과 자신 안의 평정심을 잃게 만든다. 글을 쓰며 여자는 자신을 파괴시키는 분노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지만 구속될 필요도 없음을 깨닫는다.
여자는 일상 속 일희일비의 순간마다 밀려드는 여러 감정이 화로 뭉쳐져 분노로 표출되지 않도록 노트에 감정을 적으며 쏟아내는 자신만의 해소법이 있음에 감사하고, 거리를 무작정 걸어도 버틸 수 있는 두 다리가 있음에 고마워하며 오늘도 쓰고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