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글쓰기 워크숍에 참가하라
당신의 목표가 자전적 에세이를 쓰는 것이라면, 그 목표를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전적 에세이를 쓰는 것이다.(p229)
글쓰기 워크숍에 참가해 본 적은 없지만 한문단 글쓰기에 참가해 글쓰기를 한 적이 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합평의 글쓰기로 내 글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더불어 쓰고 있는 글의 방향을 잡고 싶었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다른 온라인 방식의 원웨이 글쓰기이다 보니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없었다. 결국 오래 이어지지 못하고 끊어졌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 나는 나를 너무 몰랐다. 몰라서 핑계를 대기 급급했다. 핑계는 내 안의 슬픔이나 아픔이 내가 아닌 누군가의 탓이라는 마음으로 변질됐다. 변질된 마음이 나를 더 많이 외롭고 서럽게 했다. 서러움에 지쳐 우울해하면서 알았다. 누군가가 아닌 나부터 내 마음을 잘 들여다봐야 하고 그 마음을 어느 누군가가 아닌 내가 다독여야 한다는 사실을.
방편으로 택했으나 갯벌 같은 내 마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또 보이는 마음이 무엇인지, 그렇게 보이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라 많이 헤맸다. 그 마음으로 가는 길로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더 깊은 뻘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수단으로 택했으나 하루에도 열두 번 널을 뛰는 마음을 잡을 수가 없어서 사소한 일에도 그 마음이 덮였다 쓸렸다 했다. 그렇게 찾았다 싶으면 사라지고 사라졌다 싶으면 나타나는 내 마음속으로 가는 길을 오래 길게 헤집고 다녔다.
내 안의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글을 쓰는 일이 점점 더 무거워졌고, 글 쓰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글쓰기가 나를 알아가는 유일한 방법이자 수단이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억지로라도 한문단을 썼다. 그렇게 스스로를 찾아내는 방편의 글쓰기를 하면서 배워가는 과정은 지난했다.
하루하루 여러 각도로 나를 찾으러 다니며 ‘내 마음 나도 모르는 어려움’이라는 높은 벽을 오르느라 힘들었지만 한문단의 글을 쓰는 시간으로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어느 정도 내려놓는 법을 배웠고, 배우면서 나의 글쓰기 목표가 책의 출판이 아니라 나를 보살피는 수단이자 방편임을 자각하는 시간으로 우울이 사라졌다.
지금도 내 안의 나를 지면 위에 옮기는 작업은 여전히 어렵고, 나를 알아가고 알아주는 나‘를 만나기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다. 어제보다는 조금 편안할 내일의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