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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May 05. 2021

시가 되었다면

ktx magazine, 2021_02


조카의 꽃 이름


이우성


네 살배기 조카 데리고 과자 사러 가는데

조카가 손가락으로 개나리를 가리키며

삼촌, 진달래 한다

진달래 아니라 개나리야 해도

진달래! 한다

기우뚱 기우뚱 신나게

진달래 한다

길가에 벚꽃이 줄지어 피었기에 조카에게

목련, 한다

조카도 따라서 목련 한다

내 손을 꼭 잡고

목련 한다

산들바람 불자 맞장구치듯

벚꽃도 목련하며 고개 끄덕인다

어딘가에서 목련이 벚꽃! 하는 소리 들린다.      






이 시는 대학교 3학년 때 썼으니까, 음… 스물네 살이었다. 쓰고 나서 행복했다. 교수님께 보여드렸더니 좋다고 하셨다. 그때 나는 시라는 게 어렵고 복잡하고… 뭐 이런 거라고 믿었다. 내가 ‘공부’하는 현대시가 대부분 그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를 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그냥 어느 한순간의 기록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았다. 기록은 영원하니까.

조카는 이제 스물세 살이다. 나는, 와, 못 믿겠어, 마흔두 살이라고? 과거는 기억 속에 있다. 기억이 희미해지면 사라지겠지. 글을 쓰는 재주 덕분에 다행히, 보다시피 이렇게 남겨 둘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아름다운 순간들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저 날 저 풍경은 유난히 빛난다. 잊을 수 없다, 기보다, 잊고 싶지 않다. 봄이었다. 모처럼 놀러 온 조카를 데리고 슈퍼에 갔다. 과자랑 사탕 사주려고. 작은 손이 내 손안에 들어왔다. 아플까 봐 꽉 쥐지는 못하지만 놓칠까 봐 힘을 빼지는 못하는 상태로 잡고 걸었다. 조카는 마치 내가 삶의 전부인 것처럼 의지하며 나아갔다. 내가 있어서 무엇도 두렵지 않은 사람의 표정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막내 아들이고, 사실은, 조카 못지않게, 어렸으니까.

조카가 “진달래”라고 외쳤다. 개나린데.

우리가 주고받은 말은 시에 나와 있다. 대화를 그대로 적었다.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시를 만들려고 무엇을 더하거나 뺄 필요가 없었다. 옮겨 적기만 했는데 시가 되는 걸까, 이 시를 쓰고 종종 생각했다. 어떤 시는 5시간, 5일, 5주를 써도 완성되지 않는다. 그 시가 더 시처럼 보이는 건 분명한데 좋은 시인지는 모르겠다. 무엇보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이 시는, 시처럼 보인다고 할 순 없지만,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나는 이 시를 신문사 신춘문예 투고할 때 보냈다. 스물아홉 살 겨울이었으니 6년 전 5분 만에 쓴 시를 보낸 것이다. 6년 동안 시를 많이 썼는데 이 시를 보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가 하는 일을 내가 다 아는 건 아니니까. 그냥 이 시는, 내 기억의 일부이고 아직 기억하는 기억이다. 기억은, 거기에 뭘 더 해볼 수가 없는 거잖아!

아, 단어 하나를 바꿔보려고 했는데 못했다. ‘산들바람’이다. 뻔한 단어라서. 꽤 오랫동안 산들바람을 대신할 바람을 찾다가 그냥 두었다. 고민할수록 확실해졌다. 그건 그냥 산들바람이다. 진부해도 산들바람이다.

조카를 본 지 15년이 넘었다. 개인사다. 조카는 나에게 그때 그 모습으로 남아 있다. 나는 지금도 개나리를 보면 진달래라고 부른다. 꽃이름을 아무렇게나 말하는 건 내가 하는 흔한 바보짓 중 하나다. 나에게 틀린 꽃이름을 알려준 건 조카다. 꽃이름 같은 건 아무렴 어때, 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준 것도 조카다. 꽃의 풍경을 이루는 공기와 바람, 빛과 소리를 느끼게 해준 것도 조카다. 시가 되었다면 그것은 이름 따위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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