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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Jul 25. 2023

달리지 않는 달리기

오늘은 달리기를 하지 못했다. 저녁에 약속이 있었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자정이 넘으면 달리러 갈 수 없다. 아, 더 늦은 시간에도 달리러 간 적이 있구나. 빨리 5km만 뛰고 와야지,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뛰다 보면 6km가 되고 8km가 된다. 달려야 한다는 강박 혹은 집착이 아니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 나는 그런 감각들이 싶었다. 내가 나를 묶는 것 같아서. 하지만 서서히 받아들였다. 묶으면 끊어야지. 이겨내는 것 역시 달리기의 과정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니 어떤 면에선 달리고 있지 않을 때도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극복할 것들은 계속 밀려오고 나는 그것들과 싸우고 있다. 이렇게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달리기 실력이 늘고 있냐고 물으면 그것 역시 확신이 느껴지지 않는다. 상관없다. 나는 이 투쟁의 순간들이 좋다. 달리고 있지 않을 때도 달리기라는 행위를 생각하느라 받는 스트레스가 좋다. 사실 그게 좋을 이유가 없는데 자꾸 좋다고 말하니까 뇌가, 아, 좋은가 보다, 받아들이게 되었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고 난 후에 이런 날들을 돌아볼 때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격정의 순간을 보냈구나 하고 웃을 것 같다. 아닐까? 후회하게 될까? 그러나 나에겐, 미래의 우성이에겐 돌아볼 순간이 있지 않은가! 선명하고 강력한 근육이 세차게 뛰던 순간들이 차고 또 차고 넘치게 있지 않은가, 미래의 우성아, 너에겐 아름다운 기억이 몸과 마음에 산처럼 깊어질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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