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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bling Aug 29. 2022

네가 뭘 잘한다고 그래?

무시하자. 부정 언어들.

최근 친한 친구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잘하는 게 없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뭔가를 하려고 해도 게을러서 못하고 있고. 참 답답해.'라는 말에 가슴이 아팠던 나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를 얘기해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하는지 모르고 살아간다. 세상의 기준대로 평가받고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고 노력한다. 중고등학생 때는 명문대 입학을 위한 입시전쟁, 그 뒤에는 대기업에 가기 위해 스펙 쌓기를 하며 대학 생활을 보낸다. 왜 그렇게 살아왔을까?


우리가 태어나면 매사에 답을 정해 주려는 부모들이 있다.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해. 그게 더 나은 삶을 보장해 줄 거야. '시간 지나 봐 봐 나한테 고마워할걸?' 하며 자녀를 통제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부모 중 존경과 감사를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은 자녀가 성인이 되어도 비슷한 문제로 갈등이 계속될 것이다.

나는 이걸 너무나 잘 안다. 내가 이런 성장과정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아빠는 나의 의사를 존중해주셨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멋내고 싶었던 중학생 때는 친구들처럼 앞머리 자르기 조차 정말 힘들었다. 시험에서 몇 문제가 틀리면 곧바로 꾸중 듣기 일쑤였고, 수능을 보고 들어온 날 가채점을 한 뒤 엄마에게 온갖 잔소리를 듣던 나는 집을 나가버리기도 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이 꼭 불행했다고만 말할 수 없다. 희생으로 키워주셨다. 하지만 커가면서 알았다. 나에게 과도한 통제와 억압 그리고 부정 암시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 암시는 쉽게 말해 '네가 뭘 잘한다고 그래?' 같은 부정적인 말로 상대방의 정신상태를 장악하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 나는 나의 방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렇게 바꾸면 내 공간이 더 이뻐질 것 같은데. 바꿔보고 싶다.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디자인이 하고 싶었는데 엄마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너 옷 입는 거 보면 내가 알아. 컬러 매칭도 못하는데 네가 무슨 디자인이야?' 그 말에 상처를 받고 으레 그래왔던 것처럼 속상한 마음을 몇 주 내비치고는 수긍하고 마음을 접게 되었다. 그 뒤 대학교는 수능 점수에 맞춰 들어갔다.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고 처음으로 엄마와 장기간 떨어져 지내게 됐다. 그 자유가 너무나 좋았다. 나를 통제하려는 사람도 없고 원할 때만 공부하면 된다. 성적이 괜찮았다. 어떤 학기에는 장학금을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걸 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고등학생 때 얘기를 꺼냈던 '디자인'. 그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그 길로 휴학 후에 유학을 준비했다. 나는 이때부터 나의 진짜 인생이 시작됐다고 여긴다. 모든 과정은 엄마에게 상의하지 않고 통보하기만 했다. 무슨 얘기를 듣던지 나는 내가 하고 싶은걸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엄마의 통제, 부정 암시에 눌렸지만 이제는 내가 방법을 찾으면 다 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학 비용을 벌기 위해 계약직으로 일했고 퇴근 후에는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정말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유학을 갔다가 여러 이유로 다시 한국에 들어와 디자인으로 학위를 마무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알아봤다. 5개월 안에 2개의 국가 자격증을 따는 게 나의 목표가 되었다. 2018년 1차 국가 자격증 시험 때는 컬러리스트 산업기사실내건축기사, 2차 국가 자격증 시험 때는 실내건축기사를 취득했다. 내가 원하는 목표가 확실하니 집중력이 샘솟았다. 지하철에서는 틈틈이 개념을 읽고 틀린 문제는 몇 번이고 다시 풀었다. 컬러리스트를 준비하면서 문득 고등학생 때 들었던 부정 암시가 떠올랐다. '너 컬러 매칭 못하잖아'라는 부정 암시 말이다. 이렇게나 오래도록 남아있다니. 부정 암시의 영향력에 소름 돋았지만 나는 나의 목표를 더 크게 느꼈다. 그리고 그걸 정말 이루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 집중하니 부정 암시는 잊히고 진짜로 해냈다. 합격한 뒤 그런 생각을 했다.



엥 뭐야? 나 할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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