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인지 내가 좋아하는 해바라기 노래가 차를 타자마자 들려온다. 아침 출근길에 차에 오르면 늘 올드팝송이 흘러나오는 에드먼튼 96.3 The Breeze 사이클의 라디오에서 예전 70년대 80년대 전후 노래가들릴 텐데 아마도 내가 어제저녁에 전화기 설정을 만지작거리다가 음악 플레이리스트 앱에 손을 댔던 모양이다.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 채널에서 나오는 팝송이 아니라 해바라기의 노래가 들려와서 순간적으로 어떻게 여기서 한국라디오가 나오나 하는 바보 같은 착각을 했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Rabbit hill road에 올라서니 어두컴컴한 하늘과 땅 사이로 어스름 붉은 노을과 같은 새벽녘의 해가 떠오르는 동쪽으로 햇빛의 기운이 보인다.
따람따람
우리들 가슴에 사랑이 필요한 것은 당신과 내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예요 엇갈린 생각 속에 우린 사연도 많지만 하늘이 내게 당신을 준 것은 사랑이예요
사랑이예요
사랑이예요
따람 따람
우리들 마음에 말 못할 일이 있다면 당신과 내가 말이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예요 엇갈린 생각 속에 우린 사연도 많지만 하늘이 내게 당신을 준 것은 사랑이예요
사랑이예요
사랑이예요
엇갈린 생각 속에 우린 사연도 많지만 하늘이 내게 당신을 준 것은 사랑이예요
사랑이예요
사랑이예요 따람 따람
따라라라라
오래간만에 해바라기 노래를 듣다 보니 예전으로 돌아간 듯 이런저런 추억거리들이 떠오른다. 그러다 문득 "사랑이예요~"에서 매일 아침에 도시락을 챙겨주는 아내가 생각난다. 하하 웬일이지? 하하하
어쩌면 어제 아내가 도시락에 콩으로 하트를 만들어 애정표현을 해줘서 아내가 생각나고 웃음이 났는지 모르겠다.
내 아내는 다정다감하게 애교를 보여주는 편이 아니다. 가끔씩 아내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나 혼자 마음속으로좀 더 부드러운 말투로 대해주면 훨씬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결혼한 지 30여 년이 지났으니 나의 바람은 말 그대로 '희망사항'일 뿐이다. 우리가 처음 만남을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아내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미소 띠게 해주는 매력이 있어서 나는 그게 참 좋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밝은 얼굴로 미소를 보여주었던 아내는 아직도 날 설레게 하기 충분한데 언제부터인가 그 밝고 명랑했던 아내가 시월드에 치이고 힘든 세상 풍파에 흔들리면서 무뚝뚝하고 어두운 얼굴표정으로 변하면서 밝은 미소를 잃고 말았나 보다. 신혼 때부터 힘들고 어려웠던 시댁에 대한 마음이 얼굴에 나타나기 시작해 이민을 한 다음에도 현실적인 어려움들 때문에 밝게 웃는 내 아내의 얼굴을 자주 만나지 못했을 터이다.
한국에서는 속된 표현으로 주일에만 성당에 나가는 '나이롱 신자'였던 우리는 캐나다에 도착해 이민생활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그랬는지 에드먼튼에 하나만 있는 한인성당에서사람들과의 관계도 늘리고 구역별로 진행한 소공동체 모임도 참석했다. 더불어 두 아이도 성당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운영하는 주일학교에서 친구들과 한국말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서 장기적으로 아이들이 한국말을 잊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도 될 수 있어서 우리 가족은 한인성당의 구성원으로 열심히 참여했다. 그리고 성당의 구성원들로부터 좋은 에너지를 받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의 얼굴에서 조금씩 더 밝은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내가 매사에 부족한 사람인 나와 함께 이 거친 세상을 살아나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걸알면서도가끔 나만의 입장에서 이기적인 생각으로 꽁하는 마음이 생겨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이민생활 초기보다는 우리 두 사람이 꽤나 밝은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아내가 엄청난 재료의 반찬으로 나를 놀라게 해 주는 게 아니라 어쩌다가 한 번이나 있을까 말까 하는 사랑의 콩하트를 만들어서 밥 위에 수를 놓아주는 도시락 이벤트가 나에게 미소를 만들어 줌에 감사한다.
우리가 이제 나이 육십을 목전에 둔 초로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으니 아내는 좀 더 안정된 생활을 기대하고 있겠지만, 부족한 나와 함께작은 기쁨 하나씩 찾으면서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사이가 되도록 더 분발해야겠다.
어제는 도시락을 열고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카톡으로 맛있게 잘 먹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대략 1년 전쯤에 아내가 만들어 준 콩하트 도시락은 내가 사진만 찍고 고이 간직해 두고 있었는데, 어제는 웬일인지 사진과 문자로 감사표시를 하고 싶었나 보다. 이제는 정말 쉴 때도 되었는데 매일 6명이나 되는 꼬맹이 고객들을 맞이하면서 먼 타국에서도 남편의 도시락을 챙기는 아내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지금은 아내에게 고마움이 더 큰 시간이다.
반찬은 토종 입맛인내가 원하는 데로 김치에 오징어채볶음 두 가지가 모두 다였지만 7첩 반상이 부럽지 않게 맛있는 점심 도시락을 먹고 후식으로 챙겨준 상큼한 오렌지를 입에 넣으면서 작지만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