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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우영 Nov 21. 2023

진천 00 공장 기숙사 이야기 - 1편

처음 공장설계를 의뢰받았을 때만 해도 이번 일의 설계 과정을 기록하고 또 글로 옮길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단순하고 (단순하다는 것은 발주처의 요구사항이, 그 규모와 기능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설계비 역시 비교적 상대적으로 단가가 낮게 책정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신속하게 일을 마무리하는 게 가장 큰 미덕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고민의 시간보다는 속도가 필요한 프로젝트였다. 서둘러 마무리하고 다른 프로젝트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설계의 과정은 '건축가가 해야 할 일'과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을 깊게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번 글은 발주처의 요구조건을 만족하는 설계를 넘어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지만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어떤 고민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떤 프로젝트든 관계없이 건축설계 제1의 필요충분조건은 두말할 것 없이 '기능'이다. 거실과 주방, 방이 그 기능을 정확히 수행하는 주택의 일이며, 교회의 예배실, 숙박실이 완벽한 호텔 등 모든 용도가 그에 맞는 기능을 요하고 있다. 하물며 특수한 목적을 가진 공장의 설계는 어떠하겠는가. 게다가 의뢰받은 공장은 이제 막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는 신축공장이 아니라 이미 탄탄한 기반을 가진 중견기업의 공장이다. 이미 규모가 꽤 큰 공장을 운영 중이었으며 진천에 그보다 두 배 가량의 공장을 새로 짓는 일이었다. 이런 경우 건축사는 공장의 시스템을 박사 수준으로 아는 공장장의 강의를 듣고 그 시스템에 적합한 설계를 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공장의 기능을 가장 효율적으로 담을 수 있는 공장의 설계, 그것이다.


지인의 소개로 공장의 설계를 의뢰받고 계약을 할 때까지 회사의 대표를 만날 기회도 그럴 필요도 없어 보였다. 회사의 사옥을 짓는 일도 아니고 더욱이 이미 정해진 면적대로 패널 외장의 박스를 설계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공장 시스템에 맞는 기둥 간격과 지게차와 근로자 등 동선의 처리다. 기둥 간격이 건물의 폭 (20미터~30미터)만큼 이라면 내부공간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으니 이보다 효율적 일순 없다. 하지만 2층 규모라면 그 하중을 버티기 위해 공사비가 몇 배 더 들어가는 공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으니 그 적정 간격을 제안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사비는 곧 회사 이윤의 직접적인 요인이다. 



[사진은 기존 공장 3개 동의 내부이다.  이 정도 규모의 공장 1개 동과 그보다 약 3배가량 큰 공장 1개 동, 총 2개 동을 증축하는 프로젝트다.(내부 폭 20미터가량의 일반적인 공장 모습이다. 철골기둥의 간격과 경사지붕의 형태가 공사비를 결정한다)]


외국인 그로자를 위한 기숙사 얘기가 나온 것은 기존 공장을 견학하고 몇 번 더 실무미팅을 가진 후였다.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이제 한다고? 아무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외국인 근로자 20여 명의 숙소는 원래 시내 어디쯤 마련해 줄 계획이었다. 공장의 설계가 진행되는 와중에 갑자기 숙소 계획이 공장부지 안으로 들어온 이유는 너무 뻔했다. 비용절감이다. 시내에 20여 명이 묵을 아파트를 구입하고 아침저녁으로 교통비에 관리비를 계산한 것보다 기숙사를 신축, 유지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장부지에 근로자를 위한 기숙사를 짓기로 하고 그 위치를 지정하는 회의에 건축사는 필요하지 않았다. 


A4 용지의 지적도에 빨간펜으로 동그랗게 표시된 종이 한 장을 전달받았다. 기숙사의 위치였다. 회사의 임원들 몇몇 이서 현장을 방문했을 테고 공장장의 설명을 들었을 것이다. 이곳은 공장이 들어서는 곳이고 여긴 주출입구, 방문차량은 이곳에 주차하고 등등 그리고 여기쯤이 가장 외진 곳이니 시끄러울 것도 없이 기숙사 짓기는 좋을 것이라고 그렇게 기숙사의 위치는 결정되었을 것이다. 가장 후미진 곳의 부속건물로. 그것도 공장과 같은 패널 건물로 말이다.


앞서 얘기했듯 이번 공장 프로젝트는 기존의 공장건물 3개 동을 개보수함과 동시에 남은 부지에 2개 동의 공장을 추가로 증축하는 일이다.


지적도.  기존 배치도


기숙사의 위치가 표시된 종이 한 장을 전달받은 날 저녁, 발주처의 실무진을 통해 그간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들었다. 


그림의 1번으로 표기된 건물 3개 동이 기존 공장건물이고 2번으로 표기된 건물 2개 동이 이번에 새로 증축하는 공장 건물이다. 3번 주진출입로는 주도로에서 공장 바닥 까지는 약 3미터가량의 레벨차로 이루어져 있다. 4번 표기된 부분은 이번 증축 이후에 향후 또 다른 증축부지로 활용될 예정부지이다. 규모가 상당한 공장 프로젝트이다. 기숙사의 후보지는 5번으로 표기된 두 곳이다. 


기숙사 부지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몇 가지 기본조건이 나열되었다. 평일, 주말에 상관없이 공장을 방문하는 외국 바이어가 상당하며 이곳을 거점으로 국내 곳곳으로 물류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결국 가능하면 기숙사의 근로자들과 방문객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는 좋을 거라는 뜻이 된다. 두 번째 근로자들이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이후에도 간혹 공장은 돌아가야 한다. 이경우 공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기숙사가 있다면 공장이 관리나 혹여 발생할지 모르는 야간의 돌발상황에 대처하기 용이할 것이라는 점이다.


거의 모든 공장들이 그렇듯이 공장 후면에는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잡다한 기능의 다양한 시설들이 존재한다. 준공 이후에 필요에 따라 설치되는 시설들이어서 그 관리도 체계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지근거리에서 관리할 수 있다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기숙사의 부지는 철저하게 공장 운영자의 입장에서 결정되는 과정이었으며 어떤 결정일지라도 이곳에 근무하는 외국 근로자들에게는 다른 곳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복지일 거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날밤 오래도록 토론을 거듭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일하고 밥 먹고 잠을 잔다. 그들에게 기숙사는 어떠해야 할까. 우선 공장의 부속건물로 가장 후미진 곳에 지어져야 할까 그걸 그들은 모를까 그곳에서 잠자고 일하면 그 능률이 좋을까 무엇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휴식이다. 또한 주말에도 대부분 기숙사에서 생활한다면 기숙사 건물은 개개인의 휴식을 넘어 서로 간의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의 역할도 담당해야 한다. 소음, 단열 등 쾌적한 공간을 위해서는 공장의 철골조가 아닌 철근콘크리트조가 유리할 것이다. 아울러 그들에게 건물 옥상을 활용할 수 있게 한다면 철근콘크리트 구조는 훨씬 유리한 구조이다.


발주처의 실무진도 이제 거의 같은 생각을 할 때쯤 누군가 상황을 냉정하게 지적했다. 이런 변경을 윗선에 보고하고 결정받기 위해선 결국 갑의 요청 없이 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취미생활도 아닌데 그 추가 비용을 어쩔 것인가. 만약 다른 제안의 변경사항으로 결정되지 않을 때 그 시간과 노력은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무엇보다 이미 사업일정이 빡빡하게 세워져 있는데 이런 변경으로 그 일정을 다시 맞춰 나갈 수 있겠는가 괜한 일을 불필요하게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존 공장 건물 전경 사진


우선 이 상황을 좀 더 냉정하게 파악해 보기로 했다. 이미 발주처 팀장은 포커페이스가 되지 못한 표정을 그대로 드러낸 채 한숨만 쉬고 있다. 다만 한편으로는 이 모든 사태가 회사를 위해 좋은 방향으로 결론지어진다면 그 성과는 팀장의 몫일수 있다고 은근히 얘기하고 있는 참이었다.


우선 발주처의 입장은 비용절감이 가장 크다. 또한 그와 못지않게 새로운 공장을 증축하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회사의 모습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 점은 향후 가장 효율적인 공장의 관리와 새로운 공장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의 입장은 무엇인가 두말할 필요 없다. 휴식이다. 물론 그 휴식이 주간의 업무 효율과 공장의 이익으로 직결되겠지만 양쪽 모두 거기까지 생각을 확장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그리고 공장 관리자들의 입장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공장이 관리의 효율과 업무의 용이함을 위해 사무동의 배치를 공장 내부로 두는 경우가 많다. 독립된 사무공간을 원하고 있다. 쾌적한 식당 공간은 너무 당연한 요구이다.


마지막으로 건축가의 입장은 무엇인가. 발주처의 모든 요구 조건을 충족해야 함과 동시에 그 땅에서 가장 적합한 답을 찾아내야 한다. 그 답이 발추처와 상이하다면 올바른 방향으로의 설득과정이 따라야 한다. 게다가 취미생활이 아닌 다음에야 이 모든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의 지불도 약속받아야 한다.


모든 회의에 발주처의 팀장이 참석한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번 해보기로 작정하는데 까지 피곤한 토론이 이어졌고 모두가 지칠 때쯤 팀장의 호기 어린 결론이 있었으니. 

물론 이런 경우 밤 깊은 술자리의 도움은 거의 절대적이다.


드문 경우다. 

공장장이 스케치한 대로 2개 동의 규모와 기능을 도면에 옮기고 아울러 각종 부대시설을 적당한 위치에 배치하면 될 일이었다. (부대시설을 '설계'한다기보다는 어떤 위치에 '배치'한다는 표현이 차라리 어울리겠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회의에 참석한 모두는 눈에 뻔히 보이는 피곤한 과정을 선택하게 되었다. 

건축가 혼자만의 제안과 고민으로 될 일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들은 좋은 공간, 가치 있는 공간에 대한 어떤 막연한 생각들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생각이 확연하게 눈앞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어떤 제안이 실현가능한 계획안이 되는 기본적인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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