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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미 Oct 15. 2019

내가 그 은희였구나.

벌새 House of hummingbird , 2018

감독 : 김보라

출연 : 박지후(은희), 김새벽(영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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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94년,


    1994년에 대해서 생각한다. 영화를 검색해보거나 타이틀, 시놉시스 등을 보면 온통 1994년으로 시작한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나 역시 그 해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1994. 10. 21. 성수대교는 무너졌고 1994. 10. 25. 나의 친할아버지가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건으로 사망했다. 은희 외삼촌의 장례식이 있던 날, 은희 엄마가 은희에게 옷장에서 검은 옷을 꺼내 입으라고 했던 것과 비슷하게, 하교 중이었던 동생과 나를 지방에 사는 고모가 급작스럽게 차에 태워 어디론가 데려갔고 동생과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허름한 모텔방에 앉아 있었다. 친척들 중 누군가는 나에게 할아버지가 너를 그렇게 예뻐했는데 왜 울지도 않냐고 했던 말과 임신 중이던 작은 엄마가 익사한 채로 떠오른 할아버지 시신을 보지 못하게 막으라고 한 덕에 내가 할아버지의 시신과 마주한 기억, 아빠의 오열, 며칠간 다른 사람들과 불에 탄 시신을 두고 다투던 모습, 며칠 내내 비가 왔던가 도통 온 세상이 까맣거나 먹구름 잔뜩 낀 것처럼 뿌옇던 것 같은…… 유가족들의 울음과 곳곳에 피워진 향이 퍼져 꿈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책 마지막 부분, 김보라 감독과 앨리슨 벡델 작가의 인터뷰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상한 동시성’이 그 해, 나에게도 있었다. 손글씨를 잘 쓰는 학생을 유달리 예뻐하던 단발머리의 담임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은 쉽게 옮겨 갔고 각자의 비누를 가지고 다니던 시절, 친구의 비누를 허락도 없이 썼다는 이유로 나는 왕따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급작스럽게 사고로 돌아가셨고 나는 몸도 아팠다. 이상한 동시성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머피의 법칙처럼, 설상가상으로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한 해를 내게 안겨주었다.  

그때 내 나이 고작 열한 살이었다. 

할아버지의 부고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집안의 불화는 쌓여만 갔다. 모두에게 급작스런 사고로 인한 집안의 기둥을 잃은 분위기는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우리는 애도할 틈도 없이, 할아버지를 그리워할 틈도 없이 싸우고만 있었다. 


영화와 책은 어쩌면 감독이 트라우마라고 일컫는 그 시절의 나를 조우하게 만들고 말았다. 


2. 영지에 대해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94년을 만나게 된 나는 날씨만큼이나 우중충한 기분을 가진 채로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자꾸 생각을 돌렸다. 영지에 대해서. 영지란 사람에 대해서. 


    영지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등장인물 모두에게 눈길이 가지만 나 역시 영지라는 인물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나아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다. 영지는 휴학을 오래 해서 대학생이지만 나이가 적지 않다고 자기소개를 통해 밝혔다. 그렇다면 그녀는 몇 살 일까. 궁금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을 규정짓는 많은 것들 중 가장 큰 잣대가 외모와 나이인데, 아마 나도 그러한 편협한 생각에 갇혀 영지를 처음 본 듯하다. 끝끝내 몇 살 정도라면 은희에게 저렇게 대해줄 수가 있을까. 사실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삶, 가치관, 아마 그녀의 세계관에 의해 보인 행동들임이 분명함에도 나는 자꾸 몇 살이면 되는 걸까. 를 되뇐다. 20대 초 중반 시절, 청소년 캠프 등의 선생님으로 활동했던 나는, 영지와는 달랐고 영지 같을 수 없었으며 서른 중반이 된 지금도 영지처럼 할 수 있을까를 되묻게 되니 결코 그녀를 재는 잣대가 나이인 것에 대한 부정을 할 수가 없다. 어른보다 더 어른 같았던 영지의 모습 속에서 어쩌면 영화 벌새의 속편은 영지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생각하기도 한다. 

중학교 시절, 낯선 어른에게 마음을 열고 당신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달라졌을까. 지난 시절 나와 함께 교실에서 웃고 떠들었던,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낯간지러워하며 프로그램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내가 조금은 선생님답게 행동했을 수 있었을까. 

과연 영지는 어떤 삶 속에서 살아온 사람일까. 

은희의 삶에서 영지가 사라지는 부분은 어쩌면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타이트하게 잡힌 영지와 은희의 얼굴이 교차될 때마다 영지가 죽음을 선택하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은희가 갖게 될 상처가 상상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지의 죽음은 재난 속으로 사라졌다. 은희가 그 사실을 모른 채로 받은 영지의 소포는 은희가 당시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따뜻함과 위로였다. 그래서 은희는 영지를 애도할 수 있었다. 성수대교를 바라보며 영지의 명복을 비는 은희의 모습에서 은희는 곧 극복할 거 같다는 막연한 희망을 봤다. 


영지의 편지 내용 속에서도 영화는 상처, 아픔만이 아닌 희망을 그리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나쁜 일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엇을 나눈다는 것.” 사랑하고 사랑받고 연이 되었다가 단절되기도 하는 일상에서 수도 없이 벌어지는 일에 대해 우리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3. 예기치 못한 상실에 대한 애도


    2014년 7월 중순, 나는 한국에 돌아왔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가고 싶어 했지만 돈이 참 부족했다. 두 어달의 어학공부는 열의가 사그라들고 있었고 퇴직금 통장잔고는 이유 없이 줄어들고 있었다. 도무지 이렇게 버틸 수가 없어 결국은 유럽여행이라도 가야지 싶어 비행기 표를 끊고 숙박을 예약하고 한 두 달 만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떠났다. 서른의 생일엔 파리 에펠탑이 보고 싶다고 했던 나는 일 년 늦은 서른한 살 생일에 파리 에펠탑 앞에 있었다. 장기간의 여행 때문에 사람들과의 연락도 쉽지 않았고 오로지 나의 감각에 의해서만 다녔고 핸드폰은 소형 카메라 역할 뿐이었다. 돌아온 그즈음, 한국은 온통 세월호 사건의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여행의 여운을 가질 틈도 없이 뉴스에서 쉴 새 없이 나오는 세월호의 모습은 참상 그 이상이었다. 아직 스무 살도 아니, 아직 어른도, 아니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 다시 할아버지를 기억했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할아버지를 잃었을 때 우리 집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고성이 오갔고 어른의 빈자리는 그 울타리 안에 있던 우리 모두가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며 위로보다는 할아버지 혼자 짊어지고 있던 여러 문제들이 속절없이 터져 나왔다. 무서웠다. 

    나는 세월호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무엇으로 대신할 말이 없어 먹먹했고 국가의 모습은 환멸을 느낄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수많은 사람이 그렇게 예기치 못한 재난 속에서 상실감에 울부짖고 있는 모습을 도무지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빠의 눈물을 곁눈질로 바라보던 열한 살의 나로 되돌아 간 상태였다. 당시 가까스로 봉합이 되었던 우리 가족은 경제 위기 속에서 아빠의 실직도 받아들여야 했고 더 이상 고성은 들리지 않았지만 모두 날카롭고 예민한 침묵만을 가진 채로 살았던 것 같다. 

할머니는 이후 건강이 악화되기도 했으며 가는귀먹은 정도였던 청력의 상태는 보청기를 껴야 할 만큼 나빠졌다. 그리고 집에는 폐지가 쌓여갔다. 폐지를 모아 파는 것뿐 아니라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음식들이 쌓여 갔고 누구도 할머니의 그러한 정신적인 공황 상태를 짐작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중 고등학교 시절 나는 할머니와 자주 부딪혔고 엄마 역시 제2의 시집살이보다 더 심한 고부 갈등이 벌어지고 있었다. 매년 할아버지 제사 때마다 할머니는 오열했다. 그렇게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해마다 점점 할머니의 오열은 줄어갔고 극에 달했던 고부 갈등도, 할머니의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결국 우리 모두 그저 시간이 지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사람들처럼.

벌새는 나를 버젓이 그 시절로 자꾸 데려다 놓았다. 열한 살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어떠한 상실도 면밀히 살피기 어려웠던 나의 무심함을 질책하기도 하며, 어려서 뭘 몰랐던 숱한 시간들의 이면을 추측하고 당시 부모의 나이가 된 나에게 벌어지길 바라지 않는 상실을 미리 느껴보게 만든다. 




나 여서가 아니라, 벌새는 은희가 누구나의 은희로, 영지가 누구나의 영지가 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고맙다. 몸도 아프고 며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불쑥불쑥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녀줬어도 끝내 모르고, 눈 감고 살아가는 것보단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쁜 일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엇을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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