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나 사진을 보고 드로잉을 시작하면서 여러 차례 난관에 부딪힌다.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화장실에 가는 시간을 빼고는 앉아 있는데,
그건 대부분 인내심이 강하거나 집중력이 좋아서 라기 보다는 빨리 완성된 그림을 보고 싶은 조급함과 참을성 없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슷한 색을 찾아 보려고 팔레트 위의 색을 이것 저것 찍어보지만 도저히 지금 보고 있는 색을 찾을 수 없을 때가 너무 많다.
처음엔 감각, 경험치 등 드로잉에 대한 나의 모든 부족함을 시시콜콜 따져가며, 속앓이로 시작해 결국 ‘이건 내 그림, 내가 보고 있는 사진이나 그림은 다른 사람의 것.’ 이라고 합리화 시킨 결론에 도달한다.
‘다 눈이 다른 거야.’라며.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다음 그림을 그릴 땐 ‘덜 신경써보자.’ 하지만 어느새 나는 또 ‘왜 이 색은 없는 거야?’ 하고 만다.
아이패드로 그리다보니, 보고 있는 사진이나 그림의 디스플레이나 지정한 색, 프로그램, 조명 등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내 탓을 하면서 몇 시간을 앉아 그린 나의 그림을 미워한다.
무언가를 본 경험이 선과 색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그림은 때론 온갖 기억을 몰고 오기도 한다.
어떤 노란색이었더라? 하천 주변에 핀 개나리와 같은 색이었던가?
카레를 먹으려고 양파를 채 썰어 카라멜라이징을 했던 그 색인가? 팬 케익과 같은 색이었던가.
팔레트를 찍어도 그 색은 없다. 빛과 그림자가 머금은 현실의 색을 표현하는 고수의 경지는 멀고도 험한 길이다.
내 눈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색을 조합하는 일은 결국 많이 그려보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집중이 흐트러진 채로 ‘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지’ 묻는다. 밑도 끝도 없는 고민을 하다보면 어느새 아이패드 화면은 먹으로 꺼져 있다.
그저 단순히 힐링하려고 어느 날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시간이 얄미워서, 번잡한 마음을 지워내 보려고 시작했던 거 같은데.
결국 다시 무엇하나 단순하고 명쾌하게 하지 못하는 나를 탓하는 시간
이 무슨 지옥을 순회하는 짓인가.
다시 아이패드를 켜고 드로잉 할 거리를 찾는 나를 보면서 오늘은 그래도 한 번 피식 웃게 되니,
그걸로 족하다.
“잘 그렸네!”라는 남편의 말만 곱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