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보스턴무늬고사리]
곧 일 년이 되어간다. 녀석을 만난 지.
일 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새 집 냄새를 도대체 어쩌지 고민하던 끝에
사실은 하고 싶지 않았던 선택을 했다. 식물을 집에 들여오는 일.
이 전에 살던 집에서 몇몇 식물들을 죽이고 나선, 도저히 식물을 기르는 일에 자신 없었다.
말은 못 하지만 최소한의 표현이라도 하는 동물들과 달리, 식물은 정말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변화를 알 수 없다.
조용한 생명력을 관찰하는 즐거움이 있지만 동시에 죽음이 온전히 내 탓으로 느껴지는 마음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아 같이 이사 온 식물 외엔 더 이상 늘리고 싶지 않았다.
비가 온다 라는 표현으로는 모자랄 정도로 퍼붓던 날 이사를 하고 난 뒤에 장마까지 지나고
빛이 잔뜩 들어와 있는 남향의 거실을 보고 용기 내 보기로 했다.
새집 냄새도 잡고, 거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더 푸릇하고 예쁘게 보자라고.
스파티필룸, 뱅갈고무나무, 녹보수를 구매해 거실에 두고 전 집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함께 온 스킨답서스와 테이블야자는 서재에 둔 상태로 몇 개월을 보냈다. 당시 테이블야자는 잎이 타 들어가는 현상이 있었고 스킨답서스는 노란 잎이 나는 상태로 전혀 건강하지 못했다.
뱅갈 고무나무는 우리 집에 온 지 한 두 달 만에 잎이 모두 스스로 떨어져 버리고 앙상하게 바뀌어갔다.
지워지지 않던 마음에 무거운 죄책감이 더해져 괴로웠다. 이대로 애꿎은 식물들을 죽일 순 없었다.
인스타를 통해 동네 식물가게를 검색하고 가드닝 클래스를 신청했다. 나의 무지 탓에 생명을 이어가지 못하는 식물들에 대한 직접적인 공부가 필요했다. 코로나가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고 사람들과의 대면이 낯설게 느껴져 원예 선생님과 일대일로 수업을 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다행인 건 그래서 나는 지금 10여 종이 넘는 식물과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두서없는 질문에도, 지난 나의 죄책감도, 무심한 듯 다정하게 짚어 준 선생님 덕분이었다.
첫 수업에서 식재한 녀석이 보스턴 무늬 고사리다. 다른 보스턴 고사리와 달리 무늬 고사리는 잎마다 연둣빛을 띤 무늬가 있다. 반짝거려 보이기도 하고 그늘진 곳에서는 혼자 빛을 내는 것처럼 보이는 특징이 있다. 풍부한 잎을 가진 고사리를 식재하고 주신 식물 설명서를 열심히 보고 또 보고 한 결과, 한 계절을 온전히 함께 보내고 이제는 두 녀석이 되었다.
올해 장마가 오기 전에 포기를 나눠 심은 보스턴 무늬 고사리는 아주 잘 자라고 있다.
필라델피아에서 보스턴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지어진 별명인데. 사실 녀석과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다.
덩굴 고사리과에 속한 양치류라고 하는데, 주로 열대지역에 서식한다. 장마를 아주 기쁘게 받아들이는 녀석일 거다. 야생에서는 습한 숲 속이나 습지에서 서식하지만 건조 기후에도 강한 특성이 있어 요즘은 실내에서 많이 키우기도 한다. 위로 솟았다가 움켜쥔 작은 손처럼 생긴 잎의 끝 부분이 돌돌 풀리면서 길게 뻗어지면서 아래로 쳐지는 모습 때문에 행잉으로도 많이 키운다. 아래로 쳐지는 방향을 한쪽으로만 잡아 수형을 만들어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나처럼 자라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는 경우도 더러 있다. 어떠한 경우든 녀석은 풍성하고 반짝이는 잎과 푸르름을 지니고 있다.
거실 앞 창가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보스턴 무늬고사리 화분 두 개는 우리 집이 식물을 키우는 집이라는 곳임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식물을 죽여 마음에 지우고 있던 죄책감을 날려 준 고마운 녀석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보스턴 고사리는 순하다고.
특별한 관리 없이도 잘 자란다고 알려진 공기정화식물들 중에 보스턴 고사리는 잎에 독성도 없어 반려동물,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도 편하게 키울 수 있다.
여름과 장마철에 부쩍 자라고 겨울에는 잠시 성장속도가 좀 느려진다. 그러다 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푸른 잎을 콱 쥐고 올라온다.
지치고 힘든 날, 길고 길었던 장마와 뜨거운 폭염 속에서도 가끔 녀석을 쳐다보면, 뭐 어때. 괜찮아하는 듯한 마음이 전달되는 푸근함이 있다.
사람들마다 혹은 식집사들마다, 식물을 처음 접하는 누군가에 추천하는 식물이 다르겠지만 나는 보스턴 고사리를 추천한다. 희귀하고 어렵거나 작고 귀엽게 수형이 잡힌 형태로 자라는 식물들도 있지만 고사리만큼은 멋대로 순하게 잘 자라주고, 금세 새로운 잎이 솟아오르니 키우는 재미를 붙이기에 적당하다.
보스턴 고사리는 물을 줄 때 흠뻑 흙이 다 젖어 밖으로 물이 줄줄 샐 정도로 주는 것이 좋다. 2회 정도.
그늘에서도 잘 자라지만, 물을 주고 하루 이틀 뒤에는 환기와 빛을 주기 위해 이동시켜주는 것이 좋다.
키우던 화분에서 보스턴 고사리가 너무 자라 화분이 넘치게 되면 잎 끝쪽부터 색이 바래는 줄기를 흙 가까이까지 잘라주면 된다. 혹은 봄이나 여름에 포기 나누기를 통해 개체수를 늘려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