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새해에는 그 어떤 계획이나 다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이십대는 파란만장한 계획들로 가득했다. 마치 도장 깨기를 하듯, 나를 증명해내야 하는 것들로 싸여있었다. 대학원을 준비하며 공인 영어 성적, 연구 주제, 스터디 등의 빠짐없는 스케줄로 다이어리를 채워갔다. 그럼에도 항상 조금씩 모자란 것 같고, 어딘가에 구멍이 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누구도 재촉하지 않은 길을 빠르고 멀리 가야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쉼 없이 달려가기만 하니 제동이 아주 기막힌 타이밍에 걸렸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서 달리지 못하고 털썩 퍼져버리고 말았다.
이십대에 엔진 과열을 경험하면 삼십대는 조금 수월해지는 반면 매우 느려진다. 타인과 같은 선상에 서서 경주해야 할 때, 엔진을 손보며 재정비하는데 시간을 쏟고 만다. 처음엔 두 세 걸음만 느려졌다가, 어느새 반 바퀴, 한 바퀴 이상 차이가 난다. 속도의 차이를 인지하기 시작하면 이미 늦었다. 느려진 것은 늦은 것이 되고, 늦은 것은 뒤처지게 된다.
그러나 인생은 누구에게나 총량의 법칙을 들이댄다. 엔진의 과열이 나의 이십대에 찾아왔다면, 누군가에겐 삼십대에, 사십대에, 혹은 십대에 찾아오기도 한다. 자신만의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 진짜 레이스가 시작된다. 누구나 나를 잊거나 잃지 않고, 트랙에서 벗어나지 않고, 꾸준하게 달려야 하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새해엔 어떤 계획이나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저 내 발 앞만 보며 걷는다. 오늘 디디고 걷는 이 한 발이 넘어지지 않기 위해, 오롯이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일상을 마주하는 일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년 돌아오는 생일이 다른 날과 크게 변함없는 보통날이라는 것을 습득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 특별한 하루보다 더 많이 살아내야 할 평범한 날을 위한 발걸음을 준비하는 것이 긴 인생길에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래도록 걸어야 할 길 위에 나의 보폭이 흔들리지 않도록, 인생의 걸음마가 조금은 편안하도록 말이다.
나의 연하장은 마음 가득한 응원을 담아 보낸다. 크게 달라지지 않을 새해에도 변함없이 너만의 보폭을 유지하며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너의 걸음 앞에 놓인 돌부리나 물웅덩이에 너무 조바심 느끼지 않고 그저 보통의 날처럼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