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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carus Dec 09. 2021

호호백발 새내기가 자연스러운 이곳  

노르웨이, 늦깎이 임산부 대학생의 기록

2019년 8월, 대학교 첫날의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던 벌렁대던 마음을 기억한다.


노르웨이에서 대학교를 밟던 첫날, 젊음의 열기가 가득한 대학 캠퍼스에서, 어느덧 삼십대가 되어버린 내가 이질적으로만 느껴졌다.


나 혼자 겉돌면 어쩌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일률적으로 대학에 가는 분위기도 아니고, 일을 하다가 혹은 일과 병행하며 대학에 다니는 사람이 많다고 듣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실제로 겪는 일은 참으로 떨리는 일인게다.


첫 수업에서 대형 강의실을 꽉꽉 채운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초조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두리번 거리던 중 내 눈을 단숨에 사로잡는 이가 있었으니…


새하얀 백발을 자랑하는 그녀가 거기 그렇게, 시크하게 앉아있었다.


아마 60-65세 사이로 추정되는 그녀는, 나이때문에 전전긍긍하던 내 불안한 마음을 한방에 잠재워주었다. 그렇다, 배움에 나이가 따로있나.


그리고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니 조금 더 용기가 생겼다. 호호백발까지는 아니어도, 군데군데 삼사십대로 추정되는(!) 동지들이 생각보다 꽤나 보였다.


그리고 휘황 찬란한 머리색들 사이로, 나처럼 까만 머리를 가진 동양인도 두엇 눈에 들어왔다.


아, 혼자가 아니구나.

University of South-Eastern Norway(USN)

이곳에는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 USN 공식 페이스북 계정

어쨌든 노르웨이 대학교이기때문에, 금발에 허연 피부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풋풋한..? 새내기들이 대부분이어 보이긴 했지만 (솔직히 여기는 청소년기만 되어도 너무나 성인포스라 그닥 풋풋한느낌은 잘 안나긴한다)


그래도 군데군데, 그리고 꽤 많이보이는(!) 다른 피부색을 가진,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나를 안심하게 했다.




노르웨이의 고등교육 현황을 보면 노르웨이 대학교가 어떻게 이렇게 다양성이 가득한지를 추측할 수 있는 데,


일단 고등학교 마치고 대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 수가 많지가 않다. 음, 사실 꽤나 적은 것 같다.


© 노르웨이 통계청 SSN


노르웨이 19-24세 인구 중 대학교에 등록하고 공부중인 사람은 2020년 기준 총 30만명정도로, 37.8%에 불과하다. 고등학교 갓 졸업하는 19세만 포함하는 게 아니라 19-24세를 조사했는데도(!) 갭이어 갖고 대학등록하는 사람들도 이미 다 통계치에

포함 된 숫자가 37.8%…. (참고로 한국은 2020기준 대학진학률이 70%를 넘는다.)


반면 이민자들의경우 나이 불문 대학교육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데, 2021년 기준 19-34세 사이 고등교육에 등록되어있는 이민자는 총 24만명정도로 전체 이민자의 42%에 달한다.


이러니 대학교에 다양한 인종, 국가, 나이의 사람들이 모여있는게 당연하지.


어쨌건, 대학교육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듯한 노르웨이 교육환경덕에 나는 큰 이질감을 느끼지 않으며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수업료도 없는데다 생활비 명목의 학자금 대출을 쉽게 내주고*, 그마저도 F만 안나오면 40%정도를 장학금으로 감면해주기때문에 (저리로 빚을 내주고 일부를 안갚아도 되는 빚이라니.. 웬떡이야) 사실상 대학교 공부를 하면 돈을 버는것과같은 효과가 있다(!)


*학색비자로 온 외국인 학생들은 안타깝게도 학자금 대출을 받을수는 없다. 그래도 어쨌건 외국인 학생에게도 학비는 공짜.


이렇게 돈을 쥐여주면서 공부좀 해라고 하는데도 안하는걸 보면 노르웨이 사람들은 어지간히 공부하기가 싫은걸까.


생각해보면 주변에도 고등학교만 졸업한 상태로 일을 바로 시작한 케이스들이 꽤 많다. 우리 시아주버님이나 형님, 친구 남편이라든지 보면 각자 자리에서 커리어 쌓고 경제적으로도 그닥 불편해 보이지 않는데 대학은 다니지 않았던 케이스들이 많고, 중도에 커리어에 한계를 느껴 삼사십대 되어서 대학에 처음 입학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교육을 받지 않아도, 먹고살만한 길이 충분히 열려있기 때문에 각자 하고싶은일 찾아가서 대학 진학율이 이렇게 낮은걸까. 하긴 공부 안해도 그럭저럭 잘먹고 잘살수 있는 길이 있으면, 굳이 머리 싸매가며 공부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겠지..


대학진학율이 낮은 탓인지 사회 곳곳에 전문직을 갖고 일하는 사람 중에 노르웨이인이 아닌 경우도 많은 편이다. 특히 의료계는 옆동네인 스웨덴에서 오는 의사도 많고, 지인의 하우스닥터는 음.. 러시아 출신이었던가. 노르웨에서 약사로 일하는 내 친구 클라라도 체코출신이다.




교육에 있어서는 참 느긋해 보이는 나라, 노르웨이.

교육 철학도 엘리트 위주의 뛰어난 학생들을 격려하고 영재로 키우는 것 보다, 모두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도록 조금 뒤쳐지는 학생들을 챙기는 데에 훨씬 더 집중한다.


그래서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우려하는 노르웨이 친구들을 보긴 했지만 - 한국에서 무한 경쟁에 치여왔던 학창시절을 생각해보면, 교육에있어 한없이 느긋한 쪽이 아무래도 더 편하게 느껴지긴 한다.


어차피  사회가 굴러가려면, 다양한 직종에서 업무 난이도에 맞는 정도의 다양한 교육이 필요하고, 그게  학문적으로 성취도가 높아야만 하는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하지. 유치원에서 아이들 돌보는 일이, 배관공으로 싱크대 파이프 연결하는 일이 박사학위까지 따야  해낼  있는 일은 아니니까.


대학은 졸업했지만, 취업문은 바늘구멍이라 꾸역꾸역 고학력 실업자를 생산해내고 있는 한국의 시스템 보다 차라리 나은걸지도 모르겠다.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종들에 인력이 부족해서 타국의 전문인력을 끌어와야하는 시스템에도 문제가 크긴 하지만.


공부를 너무 많이해서 vs. 공부를 너무 안해서 골머리를 썩고있는 두 나라를 적당히 섞어놓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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