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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carus Jan 03. 2022

너에게 띄우는 편지 - 2

D-10

Dear J


네가 엄마 뱃속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엄마가 가장 먼저 했던 일 들 중 하나는, 바로 책을 읽는거였어. 엄마는 세상을 글을통해 배우는 편이거든.


다양한 육아서적들을 읽고 주변의 경험담들과 조언에 귀기울이면서 그렇게 차근차근 엄마가 될 준비를 해 나갔단다.


엄마가 될 준비를 하면서 가장 와 닿았던 조언은, 네 조산사였던 마릿이 첫 상담 세션에서 엄마와 아빠에게 해준 이야기였어.


한국에는 조산사(midwife) 제도가 보편화 되어있지는 않아서, 마릿과의 첫 만남이 굉장히 낯설었는데 임산부 검진이나 체크 위주일 줄 알고 갔다가 부부상담을 받고 온 기분이었달까.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어.


“어린시절에 너희가 가졌던 부모와의 관계나, 부모의 양육방식이, 네 자신이 어떤 부모가 될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야. 어릴 때 혹시 가정폭력에 노출 된 경험이 있니?”


너무 사적인 질문을 훅 치고 들어와버리니, 당황해서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더라고.


“지금 여기서 이야기를 꺼내기에 곤란하다면 이야기 하지 않아도 좋아. 그렇지만 너희 부부가 서로가 어떤 어린시절을 보냈는지, 너희 부모님의 양육 스타일은 어땠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톺아보고, 어떤 점이 좋았었는지 어떤점이 좋지 않았었는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눠보길 바라. 그리고 너희의 원가정에서 받은 삶의 유산들 중에 어떤 것들을 네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지, 어떤 것은 물려주고싶지 않은지를 이야기해봐. 그게 다음세션까지 미션이야.”


그 전에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인데, 곱씹어볼수록 옳은 말이라 그런 질문거리를 엄마와 아빠에게 던져준 마릿이 고마웠어.


덕분에 엄마의 어린시절을 돌아보고, 그 중에서 어떤게 좋았는지 어떤 양육방식은 옳지 않았다고 생각하는지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거든.


엄마의 어린 시절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단다.


누구인들 마냥 행복한 사람이 있었겠냐만은, 그래도 엄마의 어린시절은 엄마 또래의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조금 더 가혹했던 것 같아. 네 할아버지 할머니는 가난했고, 가난하면 삶에 여유가 없어지고 팍팍해지거든.


엄마는 어릴 때 가난이 정말 지겨웠어. 엄마는 어릴때도 작았기때문에, 반에서도 키가 제일 작았는데 -

한눈에 보기에도 커다란 물려받은 교복을 거적떼기처럼 두르고 학교에 등교하던 중학교 시절의 내가 나는 아직도 스스로 가여워.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강인하고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네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렇게 강인한 사람들은 아니었단다.


언성을 높여 싸우는 일이 잦으셨고, 서로에게 폭언을 쏟아내셨어. 싸움 끝에 집을 나가버리는 일도 잦았는데, 그럴때마다 엄마는 이모, 삼촌과 집나간 아빠가 언제 화를 풀고 돌아오실지를 맘졸이며 기다려야했어.


가정폭력에 노출된적이 있느냐는 마릿의 질문에 선뜻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었던 건, 육체적 폭력은 없었지만 화목하지 못했던 엄마의 어린시절이 정신적 폭력으로 느껴졌기 때문일거야.


그렇게 어린시절을 톺아보고나니, 분명한 몇가지 원칙들을 세우게 되더라.


- 아이 앞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지 않기

- 혹여나 피치못하게 다투게 된다 하더라도, 꼭 화해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 무슨 일을 시키기 전 스스로 모범을 보이기

- 아이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지 않기

- 경제적 부담을 아이에게 지워주지 말기

- 칭찬 많이 해 주기

-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기

- 다양한 분야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

-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정신적 지지대가 되어주기

- 아이와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갖기


위에 엄마가 세운 원칙들은 내가 내 부모로부터 받고싶었으나 받지 못했던 것들이겠지. 엄마가 내 부모로부터 바랐던 울타리를 네게 제공 해 줄수 있어야할텐데.


비록 엄마의 어린시절은 상처 투성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불행하고 힘들기만 했던것은 아니야. 세상의 많은 일들은 양면적이고 복합적이라, 마냥 좋을 수 많은 없는 것 처럼, 마냥 고통스럽기만 하기도 어렵거든.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네 외할아버지는 가정을 어떻게든 유지하기위해 애쓰셨고, 정직과 성실함노력의 가치를 믿는 분이셨어.


고됐던 어린시절을 보낸 덕분에 엄마는 세상을 좀더 치열하게 겪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 모순같지만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악착같은 노력들이, 삶을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됐었거든.


어릴때부터 아끼고 절제하는 방법을 배웠고, 철도 비교적 일찍 들었지. 그리고 사실 네 조부모는 한국의 많은 부모와는 다르게, 엄마의 선택에 있어서 자율성을 많이 존중 해주셨어.


‘네 인생 네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자신들이 바라는 방향대로 삶의 방향을 조정하려 하지 않으셨거든.


엄마가 내린 크고 작은 선택들이 자신들이 생각한 이상적인 선택과 다르더라도 충분히 지지 해주셨는데 그런 부분들은 긍정적인 삶의 유산이고, 네게도 물려주고 싶은 부분이야.


엄마의 엄마, 아빠로부터 받았던 긍정적 유산들을 네게도 전달 해 주면서, 부정적이었던 유산들은 물려주지 않도록 스스로 계속 상기 시키며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노력 해볼게.


엄마는 네게 좋은 엄마가 되고싶어.


아마 나의 부모도 나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싶었겠지만 방법을 잘 몰랐던 거겠지. 나의 부모의 최선이 나에게는 최선이 아니었던 것 처럼, 나의 노력들이 너에게는 지나치거나 혹은 부족할지도 몰라.


그래도 이렇게 서로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잘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제 가족이니까 네 도움도 많이 필요할거야. 엄마아빠가 잘 해낼 수 있도록 너도 많이 도와주렴.


2022.01.03

With love,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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