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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금비씨 Apr 06. 2024

되는 일이 없었다.

일이 그냥 재미있으면 된 건가? 2편

역시 애들이 일찍 자야 뭐라도 끄적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이게 바로 마음의 여유라는 거겠지?






2. 두 번째 흔적-바리스타(두 번째 이야기)

'아니, 슈퍼바이저님.. 전 분명 그만두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왜 제가 여기에 있는 거죠?'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어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던 차였는데, 퇴사가 아니라

집 근처 매장으로 발령이 났다.


그래 뭐, 광화문까지 버스 타고 가서

청계천 따라 쭉 어느 정도 걸어야 당도하는

청계천 매장보다는 훨씬 가깝기는 하다.

하지만 일에 몸과 마음이 지쳐 그만두고

싶은 마당에 매장 이동이 반가울 리 없었다.


그렇게 매장 이동 후 첫 근무 날이 되어

출근을 하게 되었다. 청계천 매장은 숨 쉴

틈도 없이 너무 바쁜 매장이다 보니 힘들고

마음이 지쳐서 그렇지, 일 자체는 밌었기

때문에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근을 했다.

그런데 여기서 복병이 나타났다.

그놈의 라인 라인 라인!!!






청계천 매장 근무 시 첫 번째 점장님과 두 번째

점장님의 라인이 다르다고 듣긴 했지만...

그래서 두 분이 사이가 안 좋다는 이야기도

듣긴 했지만... 새롭게 일하게 된 매장의

점장님은 바로 첫 번째 점장님의 라인이자

나를 예뻐해 주신 두 번째 점장님과는 사이가

엄청 안 좋은 관계였다고 한다.


첫 출근을 했는데  점장님의 첫마디가 이거였다.

" ㅇㅇ씨, 일 잘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래서 ㅇㅇㅇ점장이 엄청 예뻐한다면서?

ㅇㅇㅇ점장 라인이라던데 맞요?"


' 네? 무슨 라인이여?ㅇㅇ점장님이 저랑 둘이

점심러시 쳐 본 이후로 손발이 잘 맞는다고

더 예뻐해 주신 건 맞지만.. 일개 바리스타가

무슨 라인을 타요.. 라인 타면 뭐가 좋은 건데요?'


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이렇게

대답했다.


"네. ㅇㅇ점장님이 많이 예뻐해 주시긴 했지만

라인 이런 건 아닌데요."


내 말을 들은 점장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의 끈을 놓 않았고, 청계천 매장에서의

오랜 오픈경험이 여기저기 소문이 난 건지

어쩐 건지 난 다음 날부터 바로 혼자서 오픈을

하게 되었다.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저절로

움직이는 수준에 이른 상태다 보니 재료의

위치 파악을 시작으로,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끝마친 상태로 점장님을 마주했다.


일 잘한다고 들었는데 뭐 빠뜨린 건 없는지

눈에 불을 켠 점장님의 점검이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다른 지적사항은 없었는지

온수기 밑에 고이 접어 받쳐 둔 행주 접힌

모양을 지적했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고 하라는 대로 다시 접어두는 걸 택했다.


분명 나보다 나이 많다고 들었는데

저렇게 라인 타령하면서, 싫은 티 팍팍 내면서,

내가 뭐 할 때마다 쫓아다니면서 감시하는 

바람에 진절머리가 났지만, 나중에는 점장님의 갑작스러운 퇴사 이후에도 사적으로 만나 밥도

먹는 등의 교류가 있었다. 






이곳은 청계천 매장 대비 아주 작고, 

손님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보니

근무하는 직원도 점장님바리스타 

세 명이 끝이었다.


점장님과 동갑인 여자 바리스타님 한분과

목소리와 몸짓, 손짓은 여성스럽지만

제일 나이가 많았던 남자 바리스타님 그리고

나, 이렇게였다. 아르바이트생조차 필요 없는

매장이지만 가끔 바쁠 때면 혼자서만 죽어나는

그런 곳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모두가 서로에게 편해졌을

때즈음 휴무라 집에서 쉬고 계셨던 점장님께

갑작스러운 사고가 생겼다. 화장실에서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 치아 및 얼굴 일부까지

다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알고 보니 근무인원이 적다 보니 점장님 및 

바리스타님 두 분만으로 매장을 운영해야

했고, 한 명은 오픈, 한 명은 마감, 한 명은

오픈과 마감 사이에 근무하다가 한 사람이

휴무인 날이면 한 명은 오픈, 한 명은 마감을 하면서 매장 운영을 해왔던 것이다.


손님이 없어도 자리는 지켜야 하고, 화장실은

매장 밖으로 나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되다 보니 밥을 먹는 것도, 화장실을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손님이 계신데 매장

문을 잠그고 나갈 수도 없는 일이고..


거기다 갑자기 많은 손님이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주문부터 시작해서 음료, 브래드,

샌드위치, 팥빙수 제조, 테이블 청소 및

홀 청소, 설거지 및 각 종 재료 채우는 일까지..

난리도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점장님은 휴무날에도

쉬지 못하고 계속 근무를 하셨던 거였다.

그러다 갑자기 과로로 쓰러져 크게 다치는

바람에 더 이상의 근무는 어렵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서 산재처리를 받고

퇴사를 하셨는데 점장님 빼고 나면

또 바리스타 셋 밖에 남지 않는다.


그 와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담당 슈퍼바이저님.....

갑자기 나보고 점장대행을 하란다.

나이는 나보다 많지만 바리스타를 단 지

얼마 안 된 두 분이라.. 본사에서도 선택권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점장대행이 되면 세 명 밖에

안 되는 인원으로 오픈, 마감은 물론이고

나는 재고조사 및 수발주 업무, 한 달에

한 번씩 왕복 3시간이나 걸리는 본사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매출보고 및 회의까지

참석해야 한다.


기다 한 번씩 들이닥치는 슈퍼바이저님의

매장 점검까지 대비해야 한다.

아 별로 짤건 없지만 그래도 신경 쓰이는

스케줄까지.. 내가 다 관리해야만 한다.

급여를 더 줘도 할까 말까 한 일들인데

그것도 아니면서 진짜 너무 한다.


'아니 진짜 미친 거 아니야? 화가 난다.

화가 나. 이 인원으로 매장운영을 시킬 거면 인원보충을 해주던가, 아니면 운영시간을 줄이던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매장을

접던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답이 없다. 답이 없어. 또 나만 죽어나겠네. 그만둔다 했는데 인심 써주는 척하면서

근거리 매장 배정 해준 것도 조금 어이없긴

했지만, 이젠 셋이서 이 매장에 혼을

갈아 넣어야 할 판이네. 아주'


그렇게 한동안은 셋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화장실도 겨우 다녀오면서 영혼을 갈아

었다. 한 번씩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몰려들 때면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주문 순서 대로 빠르게 나가고 있는데도

내 음료는 언제 나오냐,

내 브래드는 언제 나오냐,

내 샌드위치는 언제 나오냐,

내 팥빙수는 언제 나오냐!!!!

주문은 도대체 언제 받아줄 거냐!!!


거기다 근무하다 말고 왕복 시간 고려하여

본사 회의까지 참석해야 해서 진짜 너무너무

힘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내가 없으면

두 분이 오롯이 내 몫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 다 힘들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안 그래도 아팠던 몸이 남아나질 않는구나

진짜 더러워서 못해 먹겠네! 이번에는 내가

무조건 그만둔다.'


시간이 이래저래 안 맞아서 그만둔다는

얘기를 하기 전에 어시매니저 진급을 위한

시험까지 치르게 됐고, 진급이 확정됐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다 필요 없고 이젠 진짜

그만두고 싶다고 솔직히 얘기했다.


그런데 뭐? 고생 많이 하고 있는 거 다 알고

있다. 다른 매장으로 보내주겠다?????

두 번은 안 당해요. 슈퍼바이저님....

안녕히 계세요. 다시는 안 보고 싶네요. 정말.






렇게 나의 두 번째 매장에서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 나는 끈기가 없는 편도 니며,

조금 힘들다고 해서 금방 금방 포기하고

그만두는 그런 성격은 더더욱 아니다. 

이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쉬는 날에도 도와주겠다고 나가서

일만 하던 사람이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뭐든지 돈 받은 만큼만 하면 되는데,

내가 너무 과했다. 의욕만 넘쳤다.

그래서 결국 무너지고 부러지고 말았다.

뭐든 완급 조절이 필요한 건데....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했을

나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지금 생각해도 너무 슬프네 정말.






일이 그냥 재미있으면 된 건가? 3편은

어느 정도 쉬고 나서 몸과 마음이 회복된

상태에서 그래도 대기업 계열사라는

이름 있는 매장으로 이직하여 근무했던

그때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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