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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금비씨 Apr 10. 2024

되는 일이 없었다.

일이 그냥 재미있으면 된 건가? 3편

요즘은 뭐 하나 확실하게 정해진 게 없어서

하루하루 걱정으로 머릿속이 꽉 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계획형 인간인 나에게 지금의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뭐 하나 손댈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가만히 기다리는 것. 정말 스트레스받는다....


어차피 시간은 내가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으니 곧 이 머리 아픈 상황의 끝도 곧

보이겠지. 그날이 하루라도 더 빨리 오기만을 바라며.






2. 두 번째 흔적-바리스타 (세 번째 이야기)

두 군데 매장에서의 경험은 나를 즐겁게도

했지만, 나를 망가뜨리기도 했다.

그냥 무작정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흘렀고,

몸과 마음이 어느 정도 회복 되고 나니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몸이 근질거렸다.

'이번에도 바리스타일을 해야 하나?

몸이 좀 힘들기는 해도 재밌는 일이긴 하지.'


그렇게 나는 점장님과의 면접 끝에 대기업

계열사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매장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이 놈의 빨간 버스...

이번에는 서울역으로 출퇴근을 해야 해서

청계천 매장에서 근무할 때 지겹도록 탔었던

빨간 버스를 다시 타게 되었다.

왕복교통비는 다른 버스 대비 비싼 편인데,

그만큼 노선이 많아서 골라 타는 재미는 있었다.


이곳 매장의 점장님은 카리스마 있는 언니

느낌이었다. 같이 근무하는 분들 중에는

점장님보다 나이 많고 독특한 헤어 스타일의

남자 바리스타님도 있었고, 아르바이트생들, 온오프가 명확한 나보다는 나이 어린 남녀 바리스타님들도 여럿 있었다.


난 참 일복이 터진 사람이라고 느끼는 게...

이곳도 청계천 매장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라 쉴 틈 없이 바다.

중간에 돌아가면서 밥 먹는 시간이 있기는

한데, 짧은 시간이다 보니 위층에 있는 푸드코트에서 먹기 일쑤였는데,

가격 좀 나가는 라서 매 번 사 먹기는

많이 부담스러웠다.






이번에는 신입이지만 경력자다 보니 다들

하나같이 '얼마나 잘하나 보자'에 초점이

맞춰진 듯했다. 감시자가 한 두 명이 아닌

여러 명으로 늘어났다. 시도 때도 없는 레시피

점검부터 시작해서 음료를 만들 때마다

잘하고 있는지 쳐다보는 눈들이 아주 매웠다.


그러던 어느 날, 헤어스타일이 독특한

점장님보다 나이 많은 남자바리스타님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점장님이 계시긴

하지만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나이가 제일 많은 남자바리스타님이 대장

이었나 보다. 드디어 감시자들로부터 벗어나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손님들은 미어터지게 많았지만, 언니 같은

점장님과 여러 바리스타님들과 함께 하다 보니

점 점 일하는 재미가 붙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대기업 계열사 프랜차이즈 매장이서 그런지

다른 곳과 다르게 주 5일 근무제였고,

그렇다 보니 생각보다 급여가 많지 않았다.


나는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부터

월급의 절반은 적금을 넣고 있었고, 나머지 금액으로 교통비, 식비, 핸드폰 요금, 각 종

필요 물품들을 구매하며 생활했다.

는 동안에는 그동안 조금씩 남겨두었던

잔액으로 버텼다.


쉬는 날 친구를 만나 여유를 부리는 일에도

돈은 필요했으니, 최대한 아끼면서 알차게

살았다. 


그러다 가끔씩 경조사 등을 챙겨야 할 때면

알게 모르게 압박감이 밀려왔고, 큰돈이

나가는 일들이 종종 있다 보니 한 번은

카드결제일에 잔고가 부족한 상황까지 생겼다.

(이때 부족했던 금액이 3만 원 조금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3만 원 때문에 열심히 붓고 있는 적금을

깨기도 그렇고, 엄마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돈을 빌리는 건 너무너무 싫고........

(이미 엄마에겐 일 안 하는 백조기간에 돈을

빌린 적이 있었다. 그 돈도 아직 갚지 못한

상황에서 소액이지만 또 빌려달라는 얘기를

하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5만 원을 빌려 해결했다.

(동생에게 돈 빌려달라는 얘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긴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금액이

크든 작든 간에 정말 필요할 때 빌려준 게

너무나도 고마워서 빌린 금액에 10만 원을 더 얹어서 아주 시원하게 갚았다.)






처음에는 대기업 계열사에서 운영하는

매장이고, 주 5일제다 보니 전보다는 더 몸과

마음이 편해지고 여유로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었다.


다른 곳 보다 적게 일하는 만큼 급여도 적었고

교통비와 식비로 지출되는 금액이 많아서

그전처럼 월급의 절반을 적금에 넣으면서

매 달 생활하기엔 너무나도 빠듯한 액수였다.


거기다 돈 벌면 갚는 조건으로 엄마에게

200만 원가량 빌려 라섹수술을 했던 터라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남동생도

같은 조건으로 엄마에게 돈을 빌려

나보다 먼저 라섹수술을 했는데, 단기간의 아르바이트 수익으로 저 돈을 갚은 지 오래

였기 때문이었다.


엄마, 아빠는 안 그래도 바리스타로 일하는

못마땅해하셨는데 약속한 돈도 갚지 못할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다는 말을 내 입으로

하는 건 더더욱 힘들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다녔는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동생은 아르바이트해서 이미 다 갚았는데, 너는 언제

그 돈을 갚을 거냐는 얘기를 꾸준히 하셨다.

(엄마는 몇 번 얘기 꺼낸 게 전부였다고 

하는데, 엄마가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얘기했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에게 빌린 돈도 갚지 못할 정도의 급여를

면서, 그저 일하는 게 재밌다고 열심히

왔다 갔다 하는  내가 너무 작고, 초라하고,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계속 이렇게

열심히 일해봤자 엄마한테 매 달 단 돈 10만

원도 갚지 못한 채 스트레스만 받을 게 뻔해서, 점장님께 내가 처한 사정을 솔직하게 얘기하면서 퇴사 얘기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 말을 들은 점장님그 돈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거라면, 당장이라도  내가

빌려줄 수 있으니 이 돈으로 먼저 갚고

본인한테는 천천히 갚아도 된다는 얘기를

하셨다.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이 돈을 또 언제 갚을 수 있을지 몰라서 마음만

감사하게 받겠다 전했다.


일하는 동안 내색은 많이 안 하셨지만,

장님께서 날 내심 좋게 보셨었지,

담당 슈퍼바이저님 매장 방문 상담 때

요즘 자신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아끼는

바리스타 직원이 적은 급여로 인해 그만두겠다고 하는 거라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갑자기 예정에도 없었던 면담이 뤄졌다. 아주 깐깐하게 보이는 여자 슈퍼바이저님이셨는데


"진짜 급여 때문에 그만두려는 거예요?

 다른 데는 얼마나 더 주는데요?

여기처럼 주 5일 근무하는 곳이 없을 텐데요?"


나를 쏘아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들만

잔뜩 쏟아냈다. 내 말은 제대로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은 채....


자기가 예뻐하는 점장의 고민거리였기에

한 번 상대해 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네, 그래서 주 6일 근무하는 곳으로 다시

알아보려고요."


라고 대답하고 퇴사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점장님께는 너무나도 죄송했지만,

'아 저게 바로 나 대기업 다닌다 이런 건가?

나이 어린 직원한테는 항상 말을 저런 식으로

하나? 진짜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은 여자네!'


알고 보니 저 슈퍼바이저님은 점장님 아래

직원은 상대 안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랑 내가 면담을 하고 있으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봤을 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면담 이유에 대해서 많이들 궁금해했다.


'모두들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요.

다음에 시간 되면 밥 한번 먹어요.'






렇게 나의 세 번째 매장 이야기가 끝이 났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이것은 내 인생이고,

내가 주인이어야 하는 게 맞는데

버팀목이 되어줄 줄 알았던 가족들의 반대와

의견충돌로 인해 한 공간에서 함께 지내는 게

너무나 많이 불편했던 나날들이었다.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나 혼자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엔 턱없이

적은 급여였기에 더 이상 고집부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 먹고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치열하게 고민해 봤다. 지금 내가 가진 경력이라고는 세 군데 매장에서 일한 거밖에

없다 보니 직종변경 쉽지 않았고, 라도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 편에서는 내가 무엇을 배워서 직종변경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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