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기이택생 Jul 09. 2021

사회가 정해주는 일그러진 청년상

그가 세상을 거부하는 방법

 내 인생이 지독한 새드엔딩이면 좋겠어. 인생에서 아름답게 성공하기보다 보잘것없이 실패하는 게 훨씬 쉽잖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남는 돈 조금씩 모아 여가나 주거비 충당하며 시간 죽이다 보면 서른 즈음엔 흔한 백수가 돼있지 않겠어? 돈 떨어지면 다시 편의점 알바건 택배 상하차건 좀 해서 벌고, 그 돈 다 쓸 때까지 또 시간 죽이고. 얼마나 편하냐? 자칭 프리랜서인 거지.


애초에 실패는 죽음이라는 밑바닥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데, 성공은 꼭대기가 어디쯤인지 아무도 모르잖아? 성공이라는 달콤함에 속아 불확실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느니, 적당히 실패한 인생으로 기대할 것도 없지만 걱정할 것도 없이 날마다 맘 편히 살다 가겠다는 거야.


"그렇다고 보잘것없는 삶이라거나 야망이 부족하다는 식의 비난은 말아줘. 현실적인 내 사회·경제적 위치를 인정하고, 시류에 편승해서 주위 사람에게 피해 안 주며 보통 인간으로 지내겠다는 거라고. 얼마나 어른스러워? 꿈을 좇는다고 서른 넘어서까지 대학원생이니, 예술가니, 고시생이니... 부끄럽지 않아? 적어도 난 월에 300은 번다고.

“꿈을 좇는다고 서른 넘어서까지 대학원생이니, 예술가니, 고시생이니... 부끄럽지 않아? 적어도 난 월에 300은 번다고.”



대신에 난 기억될만한 죽음을 통해 내 야망을 실현할 거야. 내가 죽고 나서 사람들이 내 발자취를 돌이켜 볼 때, 멋진 행보가 아니라 처절한 발버둥으로 여겨져서 눈물 흘렸으면 해. 멋지게 성공하는 일로는 사람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하기 힘든 거, 말 안 해도 알지? 오히려 내가 죽음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눈물짓게 할 수 있다니까?


일용직과 알바를 오가며 끼니마저 삼각김밥 따위로 대충 때우다 보면, 세상은 멋대로 나를 사회의 어두운 면이나 일그러진 청년상 정도로 대하기 시작한다? 정작 그 인생이 내가 선택한 삶의 형태더라도, 겉보기에 안쓰러우면 불쌍한 인생으로 여겨지는 거야. 세상은 애초에 꿈 좇기를 포기하고 현실에 눌러앉으려는 젊은이의 선택을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았거든.


그러다 적당히 어린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죽기라도 해 봐. 그러면 세상은 나를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홀로 짊어지고 발버둥 치며 살아가다 처절히 산화한 인물로 포장해. 내 죽음을 기폭제로 사회가 바뀌고, 어쩌면 몇몇 책에도 내 이름이 실릴걸? 어떤 의미로는 성공한 인생 아니겠어?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당신의 팬이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