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세상을 거부하는 방법
“난 내 인생이 지독한 새드엔딩이면 좋겠어. 인생에서 아름답게 성공하기보다 보잘것없이 실패하는 게 훨씬 쉽잖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남는 돈 조금씩 모아 여가나 주거비 충당하며 시간 죽이다 보면 서른 즈음엔 흔한 백수가 돼있지 않겠어? 돈 떨어지면 다시 편의점 알바건 택배 상하차건 좀 해서 벌고, 그 돈 다 쓸 때까지 또 시간 죽이고. 얼마나 편하냐? 자칭 프리랜서인 거지.”⠀
“애초에 실패는 죽음이라는 밑바닥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데, 성공은 꼭대기가 어디쯤인지 아무도 모르잖아? 성공이라는 달콤함에 속아 불확실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느니, 적당히 실패한 인생으로 기대할 것도 없지만 걱정할 것도 없이 날마다 맘 편히 살다 가겠다는 거야.”⠀
"그렇다고 보잘것없는 삶이라거나 야망이 부족하다는 식의 비난은 말아줘. 현실적인 내 사회·경제적 위치를 인정하고, 시류에 편승해서 주위 사람에게 피해 안 주며 보통 인간으로 지내겠다는 거라고. 얼마나 어른스러워? 꿈을 좇는다고 서른 넘어서까지 대학원생이니, 예술가니, 고시생이니... 부끄럽지 않아? 적어도 난 월에 300은 번다고.”⠀
“대신에 난 기억될만한 죽음을 통해 내 야망을 실현할 거야. 내가 죽고 나서 사람들이 내 발자취를 돌이켜 볼 때, 멋진 행보가 아니라 처절한 발버둥으로 여겨져서 눈물 흘렸으면 해. 멋지게 성공하는 일로는 사람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하기 힘든 거, 말 안 해도 알지? 오히려 내가 죽음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눈물짓게 할 수 있다니까?”⠀
“일용직과 알바를 오가며 끼니마저 삼각김밥 따위로 대충 때우다 보면, 세상은 멋대로 나를 사회의 어두운 면이나 일그러진 청년상 정도로 대하기 시작한다? 정작 그 인생이 내가 선택한 삶의 형태더라도, 겉보기에 안쓰러우면 불쌍한 인생으로 여겨지는 거야. 세상은 애초에 꿈 좇기를 포기하고 현실에 눌러앉으려는 젊은이의 선택을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았거든.”⠀
“그러다 적당히 어린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죽기라도 해 봐. 그러면 세상은 나를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홀로 짊어지고 발버둥 치며 살아가다 처절히 산화한 인물로 포장해. 내 죽음을 기폭제로 사회가 바뀌고, 어쩌면 몇몇 책에도 내 이름이 실릴걸? 어떤 의미로는 성공한 인생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