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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WUK7CyIDfhg&t=10s
여러분, 오늘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는 정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이 이야기를 꺼내려니 손이 떨리네요.
저는 올해 서른여덟살이에요. 평범한 워킹맘이고, 두 아이의 엄마예요. 큰애가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고, 둘째는 여섯살이에요. 제가 이렇게 사연을 보내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제 남편... 아니, 이제는 고인이 된 그 사람과 저는 초등학교 동창이었어요. 솔직히 학창시절엔 그렇게 친하지 않았어요. 그냥 같은 반이었던 적도 있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정도? 그런 사이였죠.
그러다 스물여덟에 친구 결혼식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어요. 친구들이랑 2차 가서 술 마시는데, 옆 테이블에 그 사람이 있더라고요. "야, 너 우리 초등학교 같은 반 아니었어?" 이렇게 시작된 거죠.
그날 이후로 연락이 왔어요. 처음엔 그냥 옛날 얘기하다가, 점점 자주 만나게 됐고요. 그 사람이 음악하는 사람이었어요. 기타도 치고, 작곡도 하고. 프리랜서로 이것저것 하면서 음악 관련 일을 했죠.
솔직히 처음엔 별로 매력 못 느꼈어요. 그냥 옛날 친구 만난 거니까 재밌게 술이나 한잔하자, 그 정도였는데... 그 사람이 저한테 고백을 했어요. "나 너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어. 근데 그땐 용기가 없어서 말 못했어."
지금 생각하면 그게 진짜였는지도 의심스럽지만, 그때는 정말 설렜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나를 좋아했다니. 영화에나 나올 법한 얘기잖아요.
그렇게 3년 정도 연애를 했어요. 음악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되게 감성적이고, 로맨틱했어요. 깜짝 이벤트도 잘하고, 기념일도 잘 챙기고.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였죠.
그래서 결혼했어요. 서른한살에. 작은 결혼식이었지만 행복했어요. 신혼집은 전세로 얻었고, 저는 회사 다니고, 그 사람은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우리 나름대로 꿈을 꾸며 살았죠.
신혼 초에는 정말 좋았어요. 매일 같이 저녁 먹고, 주말엔 데이트하고. 그 사람이 기타 치면서 노래 불러주면 저는 옆에서 듣고. 그런 소소한 행복들이 있었어요.
1년 후에 큰애를 가졌어요. 임신했을 때도 그 사람이 정말 잘해줬어요. 입덧 심할 때 등 쓸어주고, 새벽에 갑자기 뭐 먹고 싶다고 하면 나가서 사다 주고. "우리 아기 엄마, 고생 많아" 하면서요.
큰애 낳고도 좋았어요. 물론 육아가 힘들긴 했지만, 그 사람도 나름 육아에 참여했고요. 기저귀도 갈아주고, 밤에 애 울면 같이 일어나서 달래주고.
그런데 뭔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게... 큰애가 세 돌 지나서부터였어요. 2015년이었죠.
처음엔 정말 사소한 거였어요. 핸드폰을 자꾸 뒤집어 놓고 다니더라고요. 예전엔 그냥 아무렇게나 놔뒀는데, 어느 순간부터 화면이 안 보이게 항상 뒤집어 놓는 거예요.
그리고 전화가 오면 자꾸 밖에 나가서 받아요. "아, 일 때문에" 이러면서요. 근데 프리랜서잖아요? 집에서도 충분히 통화할 수 있는데 왜 자꾸 밖에 나가서 받을까.
그때부터 저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들었어요. 근데 제가 원래 의심이 많은 성격이 아니거든요. 그냥 "일이 좀 바쁜가 보다" 생각하고 넘어갔죠.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사람이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어요. 별것도 아닌 일에. 예를 들면, 제가 "오늘 저녁 뭐 먹을까?" 물어보면 "아, 씨... 나한테 왜 물어봐? 알아서 해" 이런 식으로요.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었어요. 부드럽고 다정했던 사람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거예요.
그리고 자꾸 집을 나가요. "답답해서 좀 나갔다 올게" 하면서 나가는데, 새벽 두세시에 들어와요. 심지어 어떨 땐 아예 집에 안 들어올 때도 있었어요.
전화해도 안 받아요. 문자 보내도 읽씹. 한 번은 일주일 동안 연락이 안 닿았어요. 일주일이요. 남편이 어디서 뭐하는지 모르는 채로 일주일을 보냈어요.
미칠 것 같더라고요. '사고라도 난 건 아닐까' 걱정도 되고, 동시에 '이게 정상인가?' 싶기도 하고.
그러다 불쑥 집에 들어와요. 그것도 아무렇지 않게. "아, 미안. 일이 좀 바빠서" 이러면서요.
근데 이상한 게 뭐냐면요, 그렇게 일주일씩 연락 두절됐다가 돌아오면... 엄청 잘해줘요. 미안하다고, 앞으로 잘하겠다고. 선물도 사오고, 애들이랑도 놀아주고.
그래서 저도 '아, 진짜 일이 힘들었나 보다' 하고 넘어갔던 거 같아요. 음악하는 사람들이 좀 자유로운 기질이 있다잖아요. 그런가 보다 했죠.
지금 생각하면 제가 정말 바보였어요. 아니, 바보라기보단... 믿고 싶었던 거겠죠. 내 남편이 나쁜 사람일 리 없다고. 우리 가정이 무너질 리 없다고.
그렇게 2016년이 지나가고, 2017년이 됐어요. 둘째를 가졌을 때예요.
둘째 임신했을 때는 큰애 때와는 완전히 달랐어요. 그 사람이 별로 관심이 없는 거예요. "아, 그래? 축하해" 이 정도?
입덧할 때도 그냥 자기 방에 박혀서 음악 들어요. 뭐 좀 사다 달라고 하면 "피곤해. 내일" 이러고요.
제가 임신 7개월쯤 됐을 때였어요. 가족 여행을 가기로 했어요. 괌으로요. 큰애가 "엄마, 아빠, 비행기 타고 싶어!" 해서, 그래 애 아빠 기분도 전환시킬 겸 여행 가자 싶었죠.
괌에 도착해서 둘째 날이었나? 호텔 방에서 쉬고 있는데, 그 사람 핸드폰에 전화가 계속 와요. 근데 발신자 표시가 안 돼 있는 거예요.
한 번도 아니고, 열 번도 넘게 왔어요. 누르르르, 누르르르. 계속.
"여보, 전화 좀 받아. 급한가 봐" 제가 말했죠.
그 사람이 핸드폰 보더니 "아, 스팸이야" 하면서 무시하는 거예요.
근데 또 와요. 또 와요. 계속.
그래서 제가 "내가 받아볼까?" 했더니, 그 사람이 갑자기 화를 내요. "왜 남의 전화를 네가 받으려고 해!" 이러면서요.
그때 확신했어요. '이건 스팸이 아니구나.'
그날 저녁, 그 사람이 샤워하러 들어갔을 때 핸드폰을 확인했어요.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더라고요. 예전엔 비밀번호 없었거든요.
손이 떨렸어요. 근데 해봤어요. 생일, 결혼기념일, 큰애 생일... 다 틀렸어요. 그러다 그 사람 엄마 생일을 눌렀는데 열리더라고요.
카톡을 봤어요. 그리고... 거기서 그 여자를 봤어요.
대화방 이름이 '♥'였어요. 하트 하나.
메시지를 읽는데 손이 너무 떨려서 핸드폰을 놓칠 뻔했어요.
"보고싶어"
"언제 만날 수 있어?"
"당신이 없으니까 하루가 너무 길어"
제 남편한테 온 메시지들이었어요. 그리고 제 남편이 보낸 답장들.
"나도 보고싶어"
"이 여행만 끝나면 바로 볼게"
"조금만 참아"
샤워실에서 물소리가 들렸어요. 빨리 원래대로 돌려놔야 했어요.
카톡방을 나오려는데, 최근 메시지가 보이더라고요.
"오빠, 나 오늘 집 보러 가요. 우리 둘만의 공간 만들어요."
집?
뭔가 목이 막히는 기분이었어요. 그냥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니라... 집까지 구한다고?
샤워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어요. 급하게 핸드폰을 원래 자리에 놓고, 저는 화장실 가는 척했어요.
거울 앞에 선 제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어요.
그날 밤 한숨도 못 잤어요. 옆에서 코 고는 그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이 정말 내 남편이 맞나?' 싶었어요.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계속 생각이 나요. 그 여자가 누굴까. 어떻게 생겼을까. 언제부터 만난 걸까.
그러다 그 여자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혹시... 댁의 남편분이 제 아내와 이상한 관계 아닌가요?"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아니, 그게 무슨..." 제가 떠듬거렸죠.
"제 아내가 요즘 늦게 들어오고, 핸드폰을 계속 보더라고요. 확인해 보니 댁 남편분과 연락을 자주 하는 것 같아서요."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그날 저녁, 그 사람이 들어왔을 때 조심스럽게 물어봤어요.
"여보, 회사에 김서연이라는 사람 있어?"
그 사람 얼굴이 딱 굳더라고요.
"왜? 왜 갑자기 그 사람 얘기를 해?"
"아니, 그냥... 그 사람 남편한테 전화가 왔는데..."
"뭐? 무슨 전화?"
"당신이랑 그 사람이 뭔가 이상한 관계 아니냐고..."
그 사람이 화를 내요. 갑자기 막.
"미친 거 아니야? 그 사람이? 우리는 그냥 같은 부서 동료야. 일 때문에 연락하는 거고. 세상에, 이런 터무니없는 의심을 해?"
그렇게 발뺌을 했어요. 근데 저는 봤잖아요. 카톡 메시지들을요.
"여보, 나 괌에서 당신 핸드폰 봤어. 그 사람이랑 주고받은 카톡."
순간 그 사람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어요.
"...남의 핸드폰을 봤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바람을 피워? 집까지 구한다면서?"
목소리가 커졌어요. 큰애가 자는 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그 사람은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냥... 짐 챙겨서 나갔어요.
그리고 사흘 동안 연락이 안 됐어요.
2막 A: 무너지는 일상 (10,000자)
그 사람이 나간 후 3일째 되는 날, 제가 먼저 전화했어요.
"우리 얘기 좀 해야 되지 않아?"
전화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렸어요.
"...미안해."
그게 전부였어요.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그게 끝이야?"
"내가 잘못했어. 근데 이혼할 생각은 없어. 우리 그냥 이대로 살면 안 돼?"
귀를 의심했어요. 방금 뭐라고 한 거죠?
"지금 뭐라고 했어? 바람을 피워놓고 그냥 이대로 살자고?"
"나도 힘들어. 근데 애들 생각해야지. 애들한테 아빠 없으면 어떻게 해."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애들 핑계 대지 마. 애들 생각했으면 바람을 피웠어?"
"아, 씨... 너무 몰아붙이지 마. 나도 사람이야. 실수할 수 있지."
실수? 바람을 실수라고 표현하네요.
그 통화 이후로 저는 결심했어요. '이 사람이랑은 못 살겠다'고.
변호사를 알아봤어요. 이혼 소송 상담을 받으러 갔죠.
변호사가 물었어요. "증거가 있으세요?"
"네, 카톡 메시지 스크린샷이 있어요."
"좋습니다. 그럼 위자료도 청구할 수 있고요, 상간녀 소송도 가능합니다."
상간녀 소송. 그 여자한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거였어요.
"그것도 하고 싶어요. 그 여자도 우리 가정을 파괴한 거잖아요."
소송을 준비했어요. 이혼 소송과 상간녀 소송을 동시에요.
소장이 나간 후, 그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야, 미쳤어? 진짜 소송까지 할 거야?"
"응, 할 거야."
"상간녀 소송까지? 서연이는 왜 끌어들여?"
서연이. 그 여자 이름을 입에 담는 게 그렇게 자연스럽더라고요.
"당신이 그렇게 만들었잖아. 내가 원한 게 아니라 당신들이 자초한 거야."
"제발... 그냥 우리끼리 정리하자. 서연이는 아무 잘못 없어."
아무 잘못 없다고요? 남의 남편이랑 바람을 피워놓고?
"나한테 전화하지 마. 변호사 통해서 연락해."
전화를 끊었어요.
그 후로 몇 주 동안 그 사람한테서 계속 연락이 왔어요. 전화, 문자, 카톡.
"미안해, 다시 생각해봐"
"애들한테 이러지 마"
"제발"
무시했어요. 전부 다.
재판 날짜가 잡혔어요. 2017년 9월 15일.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전날 밤에 잠을 못 잤어요. 내일이면 법정에서 그 사람을 보게 되고, 그 여자도 볼 거고. 어떤 얼굴로 나타날까.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입었어요. 검은색 정장. 딱 봐도 법정 가는 사람 같은 옷이었죠.
큰애가 물었어요. "엄마, 오늘 어디 가요?"
"응, 엄마 일 때문에 좀 나갔다 올게."
"아빠는요?"
"...아빠는 아빠 일 있어서 못 와."
거짓말이었어요. 아빠도 법정에 나와야 하는데, 거짓말을 한 거죠.
법원에 도착했어요. 변호사님이 먼저 와 계시더라고요.
"준비 되셨어요?"
"네... 떨리네요."
"괜찮아요. 증거가 확실하니까 잘 될 거예요."
법정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그 여자를 봤어요. 김서연.
생각보다... 평범했어요. 키도 작고, 외모도 그냥 그랬어요. '저런 사람한테 내 남편을 빼앗긴 거야?' 싶었죠.
그 여자 옆에 변호사가 앉아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도 제 남편은 안 왔어요.
판사가 물었어요. "피고 본인은 출석하지 않았습니까?"
"네,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제 변호사가 답했어요.
결국 그날 재판은 연기됐어요. 피고가 출석하지 않았으니까요.
법정을 나오는데, 그 여자가 저를 쳐다봤어요. 눈이 마주쳤죠.
그 여자가 웃었어요. 비웃는 듯한 미소였어요.
화가 나서 그쪽으로 가려는데, 변호사님이 제 팔을 잡았어요.
"진정하세요. 여기서 문제 일으키면 안 돼요."
집에 돌아와서 남편한테 전화했어요. 수십 통. 다 안 받았어요.
문자를 보냈어요.
"왜 법정에 안 나타난 거야? 도망가려고?"
답장이 없었어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연락이 안 됐어요.
일주일이 지났어요. 두 주일이 지났어요.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며느리야..."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어요.
"네, 어머니."
"...너희 남편이... 너희 남편이..."
말을 잇지 못하시더라고요.
"어머니, 무슨 일이세요?"
"죽었어... 우리 아들이 죽었어..."
그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았어요.
"...네?"
"경찰에서 연락 왔어. 한강에서... 시신이 발견됐대..."
핸드폰을 놓쳤어요.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에서 시어머니 울음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경찰서에 갔어요. 신원 확인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영안실에 도착했어요. 하얀 천으로 덮인 시신이 있었어요.
경찰이 천을 걷었어요.
그 사람이었어요. 제 남편. 아니, 이제는 전 남편이 될 뻔했던 사람.
얼굴이... 너무 차가워 보였어요.
"확인해주세요. 본인이 맞습니까?"
"...네."
그렇게 대답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요.
경찰이 설명했어요. 재판 날 저녁에 한강에서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CCTV에 찍혔다고.
"유서는 없었어요?"
"아니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유서도 없이. 그냥 사라진 거예요.
장례식장에서 3일을 보냈어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지만, 저는 멍하니 앉아만 있었어요.
큰애가 물었어요. "엄마, 아빠 언제 와요?"
"...아빠는... 아빠는 먼 곳으로 여행 갔어."
"언제 돌아와요?"
"...한참 후에."
거짓말이었어요. 돌아올 수 없다고 말할 수가 없었어요.
장례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어요. 그 사람 물건들이 그대로 있었어요. 옷, 신발, 기타...
기타를 보는 순간 눈물이 났어요. 처음 만났을 때 저한테 노래 불러주던 모습이 생각났어요.
'왜 이렇게 된 걸까. 우리가 왜 이렇게 됐을까.'
그때 핸드폰이 울렸어요. 변호사님이었어요.
"사모님, 이혼 소송은 자동으로 종결됩니다. 하지만 상간녀 소송은 계속 진행됩니다."
"...네."
"힘내세요."
힘을 내라고. 어떻게 힘을 내요. 남편은 죽었고, 저는 두 아이의 엄마로 홀로 남았는데.
그런데 더 기가 막힌 일은 그 다음부터였어요.
2막 B: 예상치 못한 반격 (10,000자)
상간녀 소송이 진행됐어요. 그 여자, 김서연은 끝까지 부인했어요.
"저희는 그냥 동료였어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증거를 내밀었죠. 카톡 메시지, 통화 기록, 목격자 진술.
그제야 그 여자가 인정했어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진심은 없어 보였어요.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사과였죠.
3년 반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어요. 그 사이 큰애는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둘째도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저는 회사를 다니면서 아이들을 키웠어요. 시어머니가 가끔 도와주셨지만, 대부분 혼자였어요.
힘들었어요. 아침에 아이들 깨워서 밥 먹이고, 유치원이랑 학교 보내고, 회사 가고, 저녁에 퇴근해서 애들 데리고 와서 저녁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매일매일이 전쟁 같았어요.
그런데도 소송은 계속됐어요. 법정에 몇 번이나 갔는지 몰라요.
그러다 드디어 2021년, 판결이 났어요.
승소했어요.
김서연은 위자료 2천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어요.
변호사님이 축하한다고 했어요.
"드디어 끝났네요. 수고 많으셨어요."
끝났다. 이제 정말 끝난 거구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울었어요. 기쁜 눈물인지, 슬픈 눈물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이제 이 악몽 같은 시간이 끝났어. 이제 애들이랑 새로 시작하면 돼.'
그렇게 생각했어요. 정말로요.
그런데 한 달 후, 등기우편이 도착했어요.
발신인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김서연.
손을 떨면서 봉투를 뜯었어요. 그 안에는 소장이 들어 있었어요.
'구상권 청구의 소'
구상권? 그게 뭐지?
내용을 읽는데 정말... 정말 믿을 수가 없었어요.
김서연이 저를 상대로, 그리고 제 두 아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거예요.
내용은 이랬어요.
"원고 김서연은 피고의 남편과 함께 불륜 관계를 맺었으나, 이는 양측의 잘못이었음. 그러나 법원은 원고에게만 위자료 2천만원을 지급하라 판결했음. 피고의 남편 역시 절반의 책임이 있으므로, 원고는 피고의 남편이 부담해야 할 1천만원을 대신 지급한 것임. 따라서 피고의 남편의 상속인인 피고 및 피고의 자녀들은 원고에게 1천만원을 반환해야 함."
읽고 또 읽었어요. 이게... 이게 말이 돼요?
내 남편이랑 바람을 피워놓고, 위자료를 내라는 판결을 받았으면 그냥 내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근데 이제 와서 '당신 남편도 잘못했으니까 그 사람 몫은 당신이 내라'고요?
그것도 모자라서 제 아이들한테까지 소송을 걸었어요.
큰애는 이제 겨우 아홉살이에요. 둘째는 여섯살이고요.
이 어린 아이들한테 '너희 아빠가 바람을 폈으니까 너희도 돈을 내라'고 소송을 건 거예요.
손이 떨려서 소장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어요.
벽에 머리를 박고 싶었어요. 아니, 그냥 죽고 싶었어요.
'이게 끝이 아니었어? 이게 진짜 끝이 아니었던 거야?'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옆방에서 자고 있었어요.
입을 틀어막고 울었어요. 소리 없이. 목이 터질 것 같았어요.
다음 날 변호사님한테 전화했어요.
"변호사님, 이게 대체 무슨... 이게 말이 돼요?"
목소리가 떨렸어요.
"아... 구상권 청구를 했군요."
"제 애들한테까지요? 겨우 아홉살, 여섯살짜리 애들한테요?"
변호사님이 한숨을 쉬었어요.
"법적으로는... 가능한 청구이긴 합니다. 상속인이니까요."
"그럼 제가 져요? 애들이 돈을 내야 돼요?"
제 목소리가 점점 커졌어요.
"진정하세요. 싸워볼 수 있습니다. 이건 명백히 신의칙에 반하는 청구예요."
신의칙. 그게 뭔데요. 그게 뭐가 중요해요.
제 애들이, 아빠 얼굴도 제대로 기억 못하는 제 애들이 소송을 당했는데!
그날 밤 잠을 못 잤어요.
아니, 그 후로 한 달 내내 제대로 잠을 못 잤어요.
밤마다 악몽을 꿨어요. 법정에서 제 아이들이 울고 있는 꿈. 그 여자가 웃으면서 돈을 달라고 하는 꿈.
회사에서도 제대로 일을 못했어요. 실수가 잦아졌어요.
상사가 불렀어요.
"최근 일 처리가 영 엉망이던데. 무슨 일 있어요?"
"죄송합니다. 개인적으로 좀..."
"개인적인 일이 뭐가 그렇게 심각해요? 여기 회사예요. 정신 좀 차려요."
화장실 가서 울었어요. 변기에 앉아서 소리 죽여 울었어요.
'나 정말 미쳐가는 거 같아. 이러다 진짜 죽을 거 같아.'
재판 날짜가 잡혔어요.
법정에 갔어요. 김서연을 다시 봤어요. 4년 만이었죠.
그 여자는... 변해 있었어요. 옷차림도 초라했고, 얼굴도 많이 상해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동정심 따윈 느껴지지 않았어요.
재판이 시작됐어요. 김서연 측 변호사가 말했어요.
"원고는 현재 매우 어려운 경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상간녀 소송으로 인해 직장에서 해고당했고, 남편과도 이혼했습니다."
아, 그래서구나.
그 여자도 이혼당한 거예요. 당연하죠. 자기 부인이 바람을 피웠는데 남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잖아요.
변호사가 계속 말했어요.
"원고는 위자료 2천만원을 지급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고, 현재 이자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따라서 피고 측에 정당한 부담액을 청구하는 것입니다."
정당하다고?
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판사가 물었어요. "피고 본인,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네, 있습니다!"
목소리가 법정 안을 울렸어요.
"저는... 제 남편을 잃었습니다!"
목이 메었어요.
"그 사람이 바람을 피운 건 잘못이에요. 맞아요. 하지만 그래도 제 아이들의 아버지였어요!"
김서연을 똑바로 쳐다봤어요.
"저는 4년 동안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았어요. 밤마다 울면서요. 아침에 일어나면 죽고 싶었어요. 근데 애들 때문에 버텼어요!"
눈물이 났어요.
"그런데 지금 원고는 제 아이들한테 소송을 걸었어요. 겨우 아홉살, 여섯살 된 아이들한테요!"
목소리가 커졌어요.
"이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했나요? 이 아이들이 원고한테 뭘 잘못했어요?"
김서연이 고개를 숙였어요.
"원고가 경제적으로 어렵다고요?"
웃음이 나왔어요. 비웃는 웃음이었어요.
"저도 어려워요! 혼자 애들 둘 키우면서 회사 다니는데 안 어렵겠어요?"
김서연을 가리켰어요.
"근데 차이가 뭔지 아세요? 저는 제가 선택한 게 아니에요. 원고가 저를 이렇게 만든 거예요!"
"원고는 선택했잖아요. 남의 남편한테 가는 거를요. 집까지 구하는 거를요!"
목소리가 떨렸어요.
"그래놓고 이제 와서 힘들다고? 돈 없다고? 그래서 죽은 사람 자식들한테 돈 내라고요?"
"이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재판장이 조용히 하라고 했어요.
"피고, 진정하시고 앉으십시오."
자리에 앉았어요. 온몸이 떨렸어요.
재판이 계속됐어요. 양측 변호사가 공방을 벌였어요.
그런데 그때, 문이 열렸어요.
한 남자가 들어왔어요.
김서연의 전 남편이었어요.
김서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요.
"뭐... 뭐하러 왔어?"
그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그냥 증인석으로 걸어갔어요.
판사가 물었어요. "증인은 어떤 분이십니까?"
"원고의 전 배우자입니다. 증언하러 왔습니다."
김서연이 소리쳤어요.
"당신! 당신 지금 뭐하는 거야!"
재판장이 주의를 줬어요.
증인 신문이 시작됐어요.
"증인, 원고와 이혼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원고가 피고의 남편과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이혼 당시 원고의 태도는 어땠습니까?"
그 남자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어요.
"...전혀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김서연이 다시 소리쳤어요.
"거짓말이야! 내가 얼마나 미안해했는데!"
"조용히 하십시오!" 판사가 호통쳤어요.
증인이 계속했어요.
"원고는 이혼 후에도 피고의 남편과 계속 연락했습니다. 피고의 남편이 사망하기 직전까지도요."
저는 귀를 의심했어요.
"그게 사실입니까?" 판사가 물었어요.
"네. 통화 기록이 있습니다."
서류가 제출됐어요.
그 남자가 말을 이었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하세요."
"원고는 현재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뭐라고?
"원고는 최근 부동산 투자로 상당한 손실을 봤습니다. 그것 때문에 돈이 필요한 겁니다."
김서연이 벌떡 일어났어요.
"닥쳐! 당신이 뭘 안다고!"
"원고, 퇴정 명령하겠습니다!" 판사가 소리쳤어요.
법정이 술렁거렸어요.
김서연은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집어 들고 법정을 나갔어요.
재판은 계속됐어요. 하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어요.
재판이 끝나고, 그 남자를 찾았어요.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당연한 일을 한 겁니다."
"왜 도와주시는 거예요?"
그 남자가 쓸쓸하게 웃었어요.
"제 전처가 저지른 일에... 저도 책임이 있으니까요. 제가 좀 더 잘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수도 있잖아요."
"그건..."
"아니에요. 변명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남자가 저를 봤어요.
"부인의 아이들이... 불쌍해서요.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이 이런 일을 겪다니."
눈물이 났어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2주 후, 판결이 났어요.
법정에 들어갔어요. 김서연도 와 있었어요.
판사가 입장했어요.
"지금부터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주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이겼어요!
"이유. 원고는 피고의 배우자와 불륜 관계를 맺어 피고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 당사자이다. 이러한 원고가 자신이 지급한 위자료 중 일부를 피고에게 구상한다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한다."
판사가 계속 말했어요.
"더욱이 원고는 미성년자인 피고의 자녀들까지 피고로 삼았는데, 이는 더욱 부적절하다. 자녀들은 부모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
"따라서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한다."
탕!
망치 소리가 울렸어요.
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어요.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렸어요.
변호사님이 저를 부축했어요.
"이기셨어요. 축하드립니다."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어요.
법정 밖으로 나왔어요.
하늘이 보였어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어요.
'이제... 진짜 끝난 거야?'
그런데 아직 끝이 아니었어요.
3막: 뜻밖의 전환 (10,000자)
일주일 후, 김서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여보세요..."
"...뭐예요?"
"제가... 위자료를 지급하려고 해요."
"갑자기 왜요?"
"돈을 마련했어요. 그래서... 직접 드리고 싶은데요."
뭔가 이상했어요. 목소리가 너무 기운이 없었어요.
"내일 오후 2시에 신촌역 앞으로 나오세요."
"...알겠습니다."
다음 날, 약속 장소에 갔어요.
김서연이 먼저 와 있었어요. 큰 봉투를 들고요.
"세어보세요."
봉투를 받아서 열었어요. 돈이 빼곡히 들어 있었어요.
그런데 뭔가 이상했어요. 만원짜리, 오만원짜리가 섞여 있는데... 돈이 너무 구겨져 있었어요.
"이거..."
"급하게 모은 거예요. 여기저기서 빌리고..."
세기 시작했어요. 김서연은 고개를 돌리고 창밖만 봤어요.
다 세는 데 한참 걸렸어요.
"천만원 맞네요."
영수증을 꺼내서 사인을 받았어요.
"이제 됐죠?"
"네."
일어서려는데, 김서연이 말했어요.
"저...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요?"
"뭔데요?"
"당신 정말... 행복해요?"
저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저는 너무 불행해요. 남편도 잃고, 직장도 잃고, 빚더미에 앉았어요."
김서연이 울먹였어요.
"근데 당신도 남편 잃었잖아요. 당신도 혼자 애들 키우잖아요. 그런데도 당신은 멀쩡해 보여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멀쩡하다고?
웃음이 나왔어요.
"멀쩡해 보여요? 제가요?"
김서연을 똑바로 봤어요.
"저 밤마다 악몽 꿔요. 약 먹어요, 잠 못 자서. 회사에서는 실수 연발해서 상사한테 혼나고요."
"애들 보면서 울어요. 아빠 얼굴도 모르는 애들 보면 가슴이 찢어져요."
김서연이 고개를 숙였어요.
"그런데 제가 왜 이렇게 됐죠? 왜 제 인생이 이렇게 망가졌어요?"
목소리가 커졌어요.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이 제 남편한테 간 거예요. 당신이 제 가정을 파괴한 거예요!"
"그런데 이제 와서 저보고 행복하냐고 물어요? 당신도 불행하다고요?"
김서연이 울기 시작했어요.
"저도... 저도 힘들어요..."
"그래요, 힘들겠죠. 근데 그게 제 문제예요?"
일어섰어요.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이제 정말로 끝이에요."
밖으로 나왔어요.
손이 떨렸어요. 분노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집에 가는 길에 은행에 들렀어요. 돈을 입금하려고요.
창구에서 직원이 돈을 세더니 말했어요.
"손님, 천만원 맞으세요."
"네."
"그런데... 이 돈들 상태가 좀 안 좋네요.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별일 있었어요."
입금을 마치고 나왔어요.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왔어요.
아이들이 놀고 있었어요.
"엄마!"
달려와서 안겼어요.
"엄마, 오늘 학교에서 칭찬받았어!"
"진짜? 잘했네!"
아이들을 안으면서 생각했어요.
'이제 정말 끝났어. 이제 우리 평범하게 살 수 있어.'
그런데 그날 밤 9시쯤, 전화가 왔어요.
모르는 번호였어요.
"여보세요?"
"아... 저기요..."
김서연 목소리였어요.
"왜 또 전화하세요?"
"그게... 제가 돈을 좀 더 드린 것 같아요."
"네? 제가 다 세어봤는데 천만원 맞았어요."
"아니에요. 십일만원이 모자라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뭐라고요?"
"제가 다시 세어봤는데 십일만원이 부족해요. 그러니까 다시 주셔야 해요."
"제가 세어볼 때 왜 같이 안 세어봤어요? 제가 영수증에 사인까지 했잖아요!"
"그래도 돈이 모자란 건 사실이잖아요!"
"그건 제 문제가 아니에요! 저한테 전화하지 마세요!"
전화를 끊으려는데, 김서연이 소리쳤어요.
"그 십일만원으로 애들 과자나 사주세요!"
귀를 의심했어요.
"...뭐라고요?"
"제가 여기까지 가는 데 차비도 들었는데,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가주시라고요. 애들 과자 사주세요!"
손이 떨렸어요. 핸드폰을 던져버리고 싶었어요.
"김서연 씨."
목소리가 낮게 깔렸어요.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만약 또 연락하면, 저도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뭐? 당신이 뭘..."
전화를 끊었어요. 그리고 그 번호를 차단했어요.
그날 밤 잠을 못 잤어요.
'세상에 저런 사람이 진짜 있구나.'
며칠 후, 또 다른 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받지 않았어요.
문자가 왔어요.
"전화 좀 받으세요. 중요한 얘기가 있어요."
무시했어요.
또 문자가 왔어요.
"제가 고소하겠어요. 돈을 횡령했다고."
피가 거꾸로 솟았어요.
전화를 걸었어요.
"지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
"제가 천십일만원을 드렸는데 당신이 십일만원을 빼돌린 거잖아요. 횡령이죠."
"미쳤어요? 제가 세어볼 때 당신도 거기 있었고, 영수증까지 받았잖아요!"
"그래도 실제로는 더 많았어요. 증거도 있어요. 은행 인출 기록이요."
"김서연 씨, 그만하세요. 이러시면 제가 무고죄로 고소할 거예요."
"하세요! 저도 횡령으로 고소할 테니까!"
전화가 끊겼어요.
변호사님한테 전화했어요.
"사모님, 걱정 마세요. 영수증이 있으니까 문제없어요."
"근데 만약 정말로 고소를 하면..."
"하게 내버려 두세요. 오히려 무고죄로 역고소할 수 있어요."
며칠이 지났어요.
그리고 정말로 경찰서에서 우편이 왔어요.
손이 떨려서 봉투를 뜯을 수가 없었어요.
"고소장 접수 통보. 고소인 김서연은 피고소인을 횡령 혐의로 고소하였음..."
주저앉았어요.
'진짜로 했어. 진짜로 고소를 했어.'
눈물이 났어요. 분노의 눈물이었어요.
'이 여자가 날 죽이려고 작정했구나.'
일주일 후, 경찰서에 출석했어요.
조사실에 들어갔어요. 형사가 앉아 있었어요.
"앉으세요."
조사가 시작됐어요.
증거를 제출했어요. 영수증, 통화 녹음, 모든 걸 다요.
형사가 서류를 보더니 말했어요.
"이건... 명백히 무고죄네요."
"네?"
"영수증이 있는데 횡령이라고 주장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혐의 없음 처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역고소하실 거면 도와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어요.
우리도 김서연을 무고죄로 고소했어요.
몇 달 후, 재판이 시작됐어요.
또다시 법정에 섰어요.
김서연을 봤어요. 더욱 초라해진 모습이었어요.
재판이 진행됐어요. 증거는 명백했어요.
판결이 났어요.
"피고인 김서연을 무고죄로 벌금 3백만원에 처한다."
끝났어요.
법정을 나오는데, 김서연이 저를 불렀어요.
"잠깐만요!"
돌아봤어요.
"뭐예요?"
"제발... 선처를 부탁해 주세요. 제가 정말..."
"선처요?"
웃음이 나왔어요.
"당신이 저한테 선처를 바래요? 제 애들한테 소송 걸고, 횡령으로 고소한 사람이요?"
"저도... 살아야 하잖아요..."
"저도 살아야 해요. 제 애들도요."
다시는 제 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어요.
집에 도착했어요. 아이들이 숙제를 하고 있었어요.
"엄마!"
두 아이가 달려왔어요.
안아줬어요. 꼭.
'이제 괜찮아. 우리 이제 괜찮아.'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혼자 앉아 있었어요.
지난 몇 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남편의 외도, 이혼 소송, 남편의 죽음, 상간녀 소송, 구상권 소송, 무고죄...
정말 긴 터널이었어요.
근데 이제 빛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4막: 새로운 시작과 통쾌한 마무리 (10,000자)
그렇게 2022년이 지나가고, 2023년이 됐어요.
저는 회사에서 승진했어요. 팀장이 됐죠.
아이들도 잘 자라줬어요. 큰애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됐고, 둘째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됐어요.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행복했어요.
더 이상 김서연한테서 연락은 없었어요. 완전히 잊고 살았죠.
그러던 어느 날, 대학 동창회가 있었어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어요.
"야, 너 요즘 어떻게 지내?"
"응, 잘 지내. 애들도 크고."
"남편은... 미안, 물어봐도 돼?"
"괜찮아.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
그렇게 얘기하다가, 한 친구가 말했어요.
"그나저나 너 그 상간녀 소송했다며? 나도 뉴스에서 봤어."
"응, 그게... 좀 복잡했어."
"근데 그 여자 지금 어떻게 됐는지 알아?"
"아니, 관심 없어. 알고 싶지도 않고."
"근데 내가 우연히 들었는데..."
친구가 말을 이었어요.
"그 여자, 지금 식당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 한대. 신촌 쪽에."
"...그래?"
"응, 내 친구가 거기서 일하는데 봤대. 완전 초라해져서."
뭔가 복잡한 감정이 들었어요. 동정심? 아니면 쾌감?
잘 모르겠더라고요.
동창회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그 식당 앞을 지나갔어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안을 들여다봤어요.
그리고 봤어요. 김서연을요.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어요.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은 지쳐 보였어요.
순간 눈이 마주쳤어요.
김서연도 저를 봤어요.
깜짝 놀란 표정이었죠.
저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갔어요.
뭐라고 할 말이 없었어요.
집에 돌아와서도 그 장면이 계속 생각났어요.
'저 사람도 결국 자기가 뿌린 씨를 거두는 거겠지.'
다음 날, 회사에서 일하는데 비서가 들어왔어요.
"팀장님, 면회 오신 분이 계신데요."
"누구?"
"김서연이라고 하시는데..."
심장이 덜컥했어요.
"...들어오라고 해."
잠시 후, 김서연이 들어왔어요.
더 초라해진 모습이었어요. 옷도 남루했고, 화장기도 없었어요.
"앉으세요."
김서연이 조심스럽게 앉았어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어제 보셨죠."
"네."
"부끄러웠어요. 당신한테 보이기가."
"왜 저한테 그런 감정을 느끼세요? 저는 당신이 어떻게 살든 상관없어요."
김서연이 고개를 숙였어요.
"제가... 사과하러 왔어요. 진심으로."
"사과요?"
"네. 그동안 제가 저지른 일들에 대해서요."
한동안 김서연을 봤어요.
"계속하세요."
"저는... 정말 어리석었어요. 남의 남편을 탐했고, 가정을 파괴했어요.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면서도 반성하지 않았어요."
목소리가 떨렸어요.
"오히려 당신을 원망했어요. 당신 때문에 제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했죠. 근데... 아니더라고요."
"..."
"제 인생을 망친 건 저 자신이었어요. 제 선택이었고, 제 잘못이었어요."
김서연이 눈물을 흘렸어요.
"당신한테 정말 미안해요. 당신 남편분한테도 미안하고요. 그리고... 당신 아이들한테도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왜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세요?"
"늦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었어요. 제가 정말 잘못했다고."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어요.
"김서연 씨."
"...네."
"저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김서연이 고개를 들었어요.
"당신이 저지른 일은 용서받을 수 없어요. 하지만..."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어요.
"당신이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그건 당신 스스로를 위한 거예요. 저를 위한 게 아니라요."
"...네."
"이제 가세요. 그리고 다시는 저를 찾아오지 마세요."
김서연이 일어섰어요.
"감사합니다. 듣어주셔서."
그렇게 말하고 나갔어요.
문이 닫히고, 저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왠지 모를 후련함이 들었어요.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었어요.
"엄마, 오늘 학교에서 발표 잘했어!"
큰애가 자랑했어요.
"그래? 우리 딸 잘했네!"
"나도! 나도 그림 잘 그렸어!"
둘째도 끼어들었어요.
"오, 그래? 엄마한테 보여줘."
아이들이 웃으면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따뜻해졌어요.
'이게 내 행복이야. 이게 전부야.'
며칠 후,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야, 너 그거 알아? 그 김서연이 고향으로 내려갔대."
"응? 고향으로?"
"응, 서울에서 더 못 살겠다고 시골 내려갔대. 거기서 농사일 도우면서 산다던데."
"그래..."
"이제 다시 안 볼 거 같아. 완전히 사라진 거지."
전화를 끊고 창밖을 봤어요.
'잘 됐네. 새로 시작하는 거겠지.'
그리고 한 달 후, 놀라운 소식을 들었어요.
회사 후배가 말했어요.
"팀장님, 그 김서연이요, 재판 관련해서 뉴스 나온 거 보셨어요?"
"무슨 뉴스?"
"무고죄 재판이요. 그게 판례가 됐대요."
"판례?"
"네, 상간녀가 구상권을 청구하고, 그게 기각되었는데, 이후 무고죄까지 저지른 사례로 법조계에서 화제래요. 악의적 소송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컴퓨터로 기사를 찾아봤어요.
정말로 여러 법률 관련 사이트에 우리 사건이 올라와 있었어요.
"이런 악의적인 소송을 방지하기 위한 판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의 전형적인 사례"
"상간녀의 뻔뻔한 행태에 법원이 경종을 울렸다"
댓글들도 읽어봤어요.
"이런 사람이 진짜 있구나. 세상에..."
"피해자분 너무 힘드셨겠다. 응원합니다"
"악인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걸 보여준 사례"
눈물이 났어요.
'사람들이 알아주는구나. 내가 겪은 고통을.'
그날 저녁, 시어머니한테 전화했어요.
"어머니, 우리 사건이 판례가 됐대요."
"그래? 그게 무슨 뜻이야?"
"다른 사람들이 저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기준이 됐다는 거예요."
"어휴... 그래도 네가 그 고생을 해서 다른 사람들은 안 당하겠구나."
"네,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은 위안이 돼요."
"며느리야, 정말 잘 견뎠어. 고생 많았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제가 경험한 이야기를 한 법률 잡지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어요.
고민했어요. 이걸 공개해도 될까?
하지만 결심했어요. 다른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인터뷰를 했어요. 제 경험을, 제 고통을, 그리고 제가 어떻게 이겨냈는지를요.
기사가 나갔어요.
반응이 뜨거웠어요.
"저도 비슷한 일을 겪었는데, 이 기사를 보고 용기를 얻었어요"
"포기하지 않으면 정의는 승리한다는 걸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정말 존경스러워요"
수많은 응원 메시지가 왔어요.
그리고 놀랍게도,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한테서 상담 요청이 오기 시작했어요.
"저도 남편이 바람을 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상간녀가 저한테 소송을 걸었어요. 도와주세요"
저는 제가 아는 선에서 조언을 해줬어요. 그리고 제 변호사님을 소개해 줬어요.
시간이 흘러 2024년이 됐어요.
큰애는 이제 중학생이 됐고, 둘째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됐어요.
저는 회사에서 부장으로 승진했어요.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어요.
회사 협력업체 대표였어요. 정직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죠.
처음엔 거부감이 있었어요. '또 상처받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그 사람은 달랐어요. 제 과거를 알고도 이해해 줬어요.
"힘드셨겠어요. 하지만 이제 과거예요. 앞으로가 중요하죠."
천천히 마음을 열었어요.
아이들도 그 사람을 좋아했어요.
"엄마, 그 아저씨 괜찮은 것 같아. 우리한테도 잘해주고."
큰애가 말했어요.
"정말?"
"응, 엄마가 행복하면 나도 좋아."
눈물이 났어요.
'내 딸이 이렇게 컸구나.'
그해 가을, 우리는 결혼했어요.
작은 결혼식이었지만, 의미 있었어요.
시어머니도 오셨어요.
"며느리야, 행복하게 살아라. 우리 아들이 하늘에서도 기뻐할 거야."
"네, 어머니."
신랑과 함께 아이들 손을 잡고 입장했어요.
하객들이 박수를 쳤어요.
그 순간, 지난 몇 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고통스러웠던 순간들, 절망했던 순간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순간들.
그리고 지금, 이 행복한 순간.
'나는 해냈어. 나는 이겨냈어.'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을 하는데 한 통의 문자가 왔어요.
발신인은 '김서연'이었어요.
순간 심장이 덜컥했어요.
문자를 열어봤어요.
"결혼하신다는 소식 들었어요. 축하드려요. 행복하세요. 진심으로. - 서연"
그리고 마지막 줄이 있었어요.
"저는 이제 진짜로 사라질게요. 다시는 연락 안 할게요. 부디 행복하세요."
문자를 읽고, 핸드폰을 내려놓았어요.
신랑이 물었어요.
"무슨 문자예요?"
"아니에요. 그냥... 과거에서 온 작별 인사예요."
"그래요? 이제 과거는 다 보내요. 우리 미래만 보면 돼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날 밤, 신혼집에서 창밖을 봤어요.
서울의 야경이 아름다웠어요.
신랑이 뒤에서 안아줬어요.
"행복해요?"
"네, 행복해요."
그리고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어요.
다음 날, 아이들과 함께 아침을 먹었어요.
"엄마, 이제 우리도 아빠 있는 거지?"
둘째가 물었어요.
"응, 그렇지."
"좋다!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아이들이 웃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찼어요.
'이게 진짜 행복이구나.'
일주일 후, 회사에 복귀했어요.
부서원들이 축하해 줬어요.
"부장님, 축하드려요!"
"고맙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왔어요.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
그리고 한 달 후, 놀라운 소식을 들었어요.
김서연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어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야, 너 그거 들었어? 김서연이 사고로 죽었대."
"...네?"
"응, 시골에서 버스 타고 가다가 사고 났대. 현장에서 즉사했다던데."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복잡한 감정이었어요.
미움? 동정? 슬픔?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날 저녁, 신랑한테 얘기했어요.
"김서연이... 죽었대요."
"...그래요? 안타깝네요."
"안타까운 건가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신랑이 제 손을 잡았어요.
"당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든, 그건 다 괜찮아요. 당신이 겪은 일을 생각하면 당연한 거예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날 밤, 혼자 생각했어요.
김서연이라는 사람에 대해서요.
그 사람도 결국 불행했던 거겠죠. 그래서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 대가를 치른 거고요.
며칠 후, 김서연의 전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혹시 소식 들으셨나요?"
"네, 들었어요."
"...장례식에 다녀왔어요. 정말 초라했어요. 조문객도 거의 없었고."
"..."
"제가 장례비를 냈어요. 그 사람 가족들도 없고, 친구들도 다 등을 돌렸더라고요."
"왜 그렇게까지 하셨어요?"
"그래도... 한때는 제 아내였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좀 더 잘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잖아요."
착한 사람이었어요. 정말로.
"힘드셨겠어요."
"아니에요. 이제 정말로 모든 게 끝난 것 같아요. 부인도 새로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당신도 행복하세요."
전화를 끊고, 창밖을 봤어요.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어요.
'이제 정말로 끝이구나.'
그날 이후로, 저는 더 이상 과거를 돌아보지 않기로 했어요.
아이들과 신랑과 함께하는 현재, 그리고 미래에 집중하기로요.
2025년이 됐어요.
큰애는 중학교 2학년이 됐고, 둘째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됐어요.
그리고... 저는 새 생명을 가졌어요.
임신 3개월이었어요.
신랑과 아이들에게 말했을 때, 모두가 기뻐했어요.
"엄마, 진짜? 동생 생겨?"
"응, 그렇대."
"남동생이었으면 좋겠다!"
둘째가 소리쳤어요.
"여동생도 좋지."
큰애가 웃으면서 말했어요.
행복했어요. 진정으로.
그리고 깨달았어요.
힘든 시간들이 저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을요.
과거의 고통이 있었기에, 지금의 행복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