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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J64_JvKieSQ&t=16s
"이혼 동의서에 도장을 찍어주세요."
사위가 내 앞에 서류를 내밀던 그날, 저는 정말 이 사람이 미쳤나 싶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가 있죠? 제 딸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본인이 제일 잘 알잖아요. 그런데 이혼이요?
저는 지금도 그날이 생생합니다. 2018년 3월 14일, 제 손녀가 태어난 날이요. 그날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침부터 설레서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드디어 우리 딸이 엄마가 되는구나, 나는 할머니가 되는구나 하면서요.
그런데 그날이 제 인생 최악의 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 이야기 한번 들어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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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딸 은서는 어릴 때부터 정말 똑똑한 아이였어요. 공부도 잘했고, 착하기까지 했죠. 대학교 나오자마자 대기업에 들어갔어요. 제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친구들이 딸 자랑에 귀에 못이 박히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딸이 대학교 2학년 때였나요? 집에 와서 엄마한테 말했어요. "엄마, 나 남자친구 생겼어." 저는 그때 좀 걱정됐어요. 공부에 방해되면 어떡하나 싶어서요. 근데 은서가 그러더라고요. "엄마, 걱정 마. 같이 공부하는 사이야. 내가 사회 과목 가르쳐주고 있어."
그 남자가 바로 지금의 사위, 아니 곧 남이 될 사람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괜찮은 사람 같았어요. 예의도 바르고, 은서를 대하는 태도도 좋아 보였거든요. 둘이 졸업하고 나서 사위가 저희 집에 정식으로 찾아왔습니다. "은서와 결혼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날 사위가 무릎 꿇고 말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저희 남편이랑 저는 흔쾌히 허락했죠. 둘 다 대기업 다니니까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이었고, 뭣보다 둘이 정말 사랑하는 게 눈에 보였거든요. 결혼식 날 은서가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요. 행복해하는 딸을 보니까 제 마음도 뿌듯했습니다.
결혼하고 2년쯤 지났을 때 은서에게 전화가 왔어요. "엄마, 나 임신했어." 저는 그 소리 듣자마자 눈물이 났어요. 기쁜 눈물이었죠. 우리 딸이 엄마가 되다니, 제가 할머니가 되다니. 그날 하루 종일 웃고 다녔던 것 같아요.
임신 기간 내내 은서는 정말 조심했어요. 회사에 출산휴가도 미리 내고, 몸관리도 열심히 했죠. 저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은서네 집에 가서 이것저것 챙겨줬어요. 사위도 그때는 정말 잘해줬어요. 퇴근하고 와서 은서 발 마사지해주고, 주말에는 같이 산책 다니고 그랬거든요.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니까 저는 매일 핸드폰만 붙들고 있었어요. 언제 연락 올까, 언제 연락 올까 하면서요. 그러다가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새벽 4시쯤이었나요? 사위한테 전화가 왔어요. "어머님, 은서가 진통 시작했어요. 지금 병원 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 소리 듣자마자 벌떡 일어났죠. 남편 깨우고, 급하게 옷 입고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병원 도착하니까 은서가 분만실로 들어가는 중이었어요. 저를 보고 손 흔들면서 "엄마, 나 잘하고 올게" 하고 웃더라고요. 그게 마지막으로 본 정상적인 우리 딸의 모습이었습니다.
제왕절개 수술이었어요. 처음에는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했어요. 저랑 남편이랑 사위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죠. 한 시간쯤 지났을 때 간호사가 나와서 "공주님 입니다" 하더라고요. 저는 그때 정말 기뻤어요. 드디어 손녀를 만나는구나 싶어서요.
그런데 시간이 더 지나도 은서가 안 나오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었죠.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가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었어요.
그때 의사 선생님이 급하게 나오시더라고요. 표정이 심상치 않았어요. "보호자분들, 잠깐 이야기 좀 해야겠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수술 중에 갑자기 다량출혈이 발생했대요. 그래서 응급처치를 하는데 은서 심장이 멈췄다는 거예요. 심폐소생술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뇌에 산소 공급이 안 돼서 뇌손상이 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했어요. 뇌손상이요?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우리 딸이 멀쩡하게 들어갔는데 뇌손상이라니요?
"지금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입니다. 상태가 안정되면 면회 가능할 겁니다." 의사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들어가셨어요.
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더라고요. 남편이 저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지만, 저는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사위는 벽에 기대서 멍하니 서 있었어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죠. 그 모습을 보니까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도 충격이 크겠구나 싶었죠.
중환자실 앞에서 저희는 3일을 밤낮으로 기다렸어요. 면회 시간마다 들어가서 은서를 봤는데, 온몸에 튜브가 꽂혀 있었어요. 기계 소리만 삐삐 거리고, 은서는 눈도 못 뜨고 누워만 있었죠.
일주일쯤 지나서 은서가 겨우 눈을 떴어요. 저는 그때 정말 기뻤어요. 깨어났구나, 이제 괜찮아지겠구나 싶었죠. 근데 의사 선생님이 저희를 따로 부르시더라고요.
"환자분의 뇌손상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MRI를 찍어봤는데 대뇌피질이 광범위하게 손상됐어요. 지금으로서는 어느 정도까지 회복될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요. "그럼 재활치료 하면 나아지는 거 아니에요?" 제가 물었죠.
의사 선생님이 한숨을 쉬시더니 말씀하셨어요.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인지기능이 많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지금은 말도 못 하고,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예요."
그 순간 제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말도 못 하고 사람도 못 알아본다고요? 우리 딸이요? 30년 동안 멀쩡하게 잘 살아온 우리 딸이 지금 그렇게 됐다고요?
병원에서 퇴원할 때쯤 은서는 겨우 말을 조금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하는 말이 "엄마", "배고파", "아파" 이런 단어들뿐이었어요. 문장은 거의 못 만들었어요. 5살짜리 아이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이게 꿈이길 바랐죠. 아침에 일어나면 은서가 멀쩡하게 "엄마, 잘 잤어?" 하고 전화할 것만 같았어요. 근데 그건 꿈이 아니었습니다. 잔인한 현실이었어요.
퇴원하고 나서 사위가 말했어요. "어머님, 제가 회사 다녀야 해서 은서를 낮에 돌볼 수가 없어요. 어머님 댁에서 좀 봐주실 수 있으세요?" 저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 딸인데 제가 안 돌보면 누가 돌보겠어요?
그렇게 은서는 저희 집으로 왔습니다. 손녀는 사위네 부모님이 돌보기로 했고요. 저는 그때만 해도 이게 일시적인 거라고 생각했어요. 재활치료 열심히 하면 나아질 거라고 믿었죠.
근데 시간이 지나도 은서는 나아지지 않았어요. 매일 복지관 가서 언어치료 받고, 미술치료 받고 했지만 큰 변화가 없었어요. 여전히 5살 아이처럼 색칠공부하고, TV 보고, 인형 가지고 놀았어요.
가장 마음 아픈 건 은서가 자기 상태를 어느 정도는 아는 것 같다는 거예요. 가끔 거울 보다가 울어요. "나 왜 이래?" 하면서요. 그럴 때마다 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은서는 매일 밤 자기 전에 사위한테 문자를 보냈어요. "오빠 잘 자" 이렇게요. 처음에 사위는 답장을 했어요. "잘 자" 이렇게 짧게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답장이 점점 늦어지더니 나중에는 아예 안 왔어요.
그래도 은서는 매일 밤 문자를 보냈어요. 읽음 표시도 안 뜨는데 말이죠. 제가 보다 못해 "은서야, 이제 그만 보내" 했더니, 그다음 날부터는 문자 보내는 걸 잊어버린 것 같았어요.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사위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저희 집에 왔어요. 올 때마다 은서한테 "잘 지내?" 하고 물어보고, 30분 있다가 "일이 있어서요" 하고 가버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사위네 부모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손녀를 보러 오라는 거예요. 저는 너무 기뻤죠. 드디어 손녀를 볼 수 있구나 싶어서요. 은서를 데리고 사위네 집에 갔습니다.
손녀는 정말 예뻤어요. 엄마 닮아서 눈이 크고 예쁘더라고요. 저는 손녀를 안아보고 싶었는데, 시어머니가 그러시는 거예요. "애가 낯을 많이 가려서요." 그러면서 제가 안지 못하게 하시더라고요.
은서도 손녀를 보고 싶어 했어요. "내 딸" 하면서 다가가려고 했죠. 근데 손녀가 울음을 터뜨렸어요. 엄마를 못 알아본 거예요. 당연하죠. 태어날 때부터 떨어져 있었으니까요.
시어머니가 손녀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가버렸어요. 저희는 거실에 앉아 있었죠. 분위기가 너무 어색했어요. 바깥사돈은 신문만 보고 계셨고, 사위는 핸드폰만 만지작거렸어요.
한 시간쯤 있다가 저희는 나왔어요. 은서가 차에 타자마자 울기 시작했어요. "내 딸 보고 싶어" 하면서요. 저도 눈물이 났어요. 제 딸이 자기 딸도 제대로 못 보고 오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요.
그다음부터는 사위네 집에 자주 가지 못했어요. 전화해도 "바쁘다", "애가 아프다" 이런 핑계만 대더라고요. 나중에는 아예 전화를 안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손녀 유치원 앞에 가서 기다렸어요. 하원할 때 멀리서라도 보려고요. 은서도 데리고 갔죠. 손녀가 나오면 은서가 "내 딸" 하면서 손 흔들었어요. 근데 손녀는 저희를 못 알아봤어요. 할머니 손 잡고 그냥 지나갔죠.
그렇게 몇 번 갔는데, 어느 날 시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화가 잔뜩 난 목소리였어요. "유치원에 왜 자꾸 오세요? 애한테 혼란만 주잖아요. 이제 오지 마세요." 그리고 전화를 끊어버리더라구요.
저는 그때 너무 화가 났어요. 제 손녀인데 왜 제가 맘대로 못 보게 하나요? 은서 잘못이 뭐가 있어요? 아이 낳다가 이렇게 된 건데 말이에요. 근데 화를 낼 수도 없었어요. 손녀 키우는 건 사위네 집이니까요.
그렇게 1년, 2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저희는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어요. 변호사님 말씀이 의료과실이 있을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 저희도 처음엔 소송 같은 거 하기 싫었어요. 근데 은서 치료비가 만만치 않았어요. 재활치료에 매달 수백만 원씩 들어갔거든요.
사위가 보험료랑 병원비를 좀 도와주기는 했어요. 처음 1년 정도는요. 근데 점점 지원이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아예 안 주더라고요. 핸드폰비도 안 내줘서 제가 대신 냈어요. 보험료도 밀려서 제가 냈고요.
저희는 농사지어서 겨우 먹고사는 형편인데, 은서 치료비까지 대려니 정말 힘들었어요. 연금으로는 턱도 없었죠. 그래도 제 딸인데 어떡해요. 해줘야죠.
의료소송은 3년째 진행 중이었어요. 변호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이번에 1심 판결 나올 것 같아요." 저는 그 말을 듣고 기대했어요. 이기면 치료비라도 받을 수 있겠구나 싶었죠.
드디어 판결 날이 왔습니다. 2024년 10월이었어요. 저는 떨리는 마음으로 법원에 갔어요. 사위도 왔더라고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어요.
판사님이 판결문을 읽으셨어요. "원고 패소"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패소라고요? 이렇게 은서가 아픈데 패소라고요?
법정 밖으로 나왔는데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갔어요. 사위는 변호사님이랑 뭔가 얘기하고 있었고 저는 그냥 혼자 밖으로 나왔어요. 눈물이 계속 났어요.
법원 앞 벤치에 앉아서 한참을 울었어요. 3년 동안 준비한 소송인데 이렇게 끝나다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죠. 변호사 비용도 엄청 들어갔는데 말이에요.
핸드폰이 울렸어요. 안사돈한테서 온 전화였어요. "사돈 댁, 지금 친정 집에 계세요?" "아뇨, 법원 왔다가 집에 가는 중이에요." "그럼 제가 잠깐 집에 들러도 될까요? 할 말이 있어서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위안이 됐어요. 아, 사돈 어머니가 위로해주러 오시나 보다 싶었죠. 패소한 거 안타까워서 오시는 거겠구나 생각했어요.
집에 도착해서 정신없이 방 정리하고 차 준비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어요. 문을 열었더니 사돈 부부랑 시누이까지 셋이서 왔더라고요. 저는 좀 의아했어요. 왜 셋이 같이 왔을까?
"어서 오세요, 들어오세요." 제가 인사했는데 대답이 없었어요. 그냥 신발 벗고 들어오시더라고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어요.
거실에 앉자마자 시누이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요. 정말 예상도 못 한 일이었어요.
"사돈어른 도대체 대비를 어떻게 하셨길래 이런결과가 나오나요? 왜 우리 오빠만 혼자 그 힘든 걸 견뎌야 해요? 은서는 사돈어른 딸이잖아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아니, 제가 왜 욕을 먹어야 해요? 지금 가장 마음아프고 속상한게 누구인데 말이에요.
제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으니 시누이가 눈을 부릅뜨고 저한테 고함을 질렀어요. 옆에 있던 안사돈도 한마디 거들었어요.
"사돈 댁,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이제 은서를 이혼시킬 생각 없으세요?"
그 순간 저는 이해했어요. 아, 위로하러 온 게 아니구나. 이혼 얘기하러 온 거구나.
"은서랑 우리 아들이 이혼을 해야 우리 아들도 새 인생을 살 수 있지 않겠어요? 지금 상태로는 우리 아들만 고생이잖아요."
안사돈이 말을 이었어요. 저는 기가 막혔어요. 고생이요? 우리 은서는요? 우리 은서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말이에요.
"사돈 댁, 우리 은서가 뭘 잘못했어요? 애 낳다가 이렇게 된 건데 그럼 우리 은서는 어떻게 해요?" 제 목소리가 떨렸어요.
시누이가 다시 소리를 질렀어요. "그러니까 이혼을 하자는 거잖아요! 지금은 우리 오빠가 경제적 능력이 있다고 해서 정부에서 장애수당도 안주는데 이혼하면 은서도 장애수당 받을 수 있고, 우리 오빠도 새 출발할 수 있고, 서로 좋은 거 아니에요?"
저는 화가 났어요. 정말 화가 났어요. "새 출발이요? 그럼 우리 은서는 죽으라는 거예요? 30년 같이 산 부부인데 아프다고 버려요?"
"아니, 지금 상황을 좀 보세요! 은서가 지금 애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어요? 할 수 없잖아요! 우리 조카는 엄마 없이 크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시누이 말에 저는 할 말을 잃었어요. 틀린 말은 아니거든요. 은서는 지금 자기 딸도 제대로 돌보지 못해요. 근데 그게 은서 잘못인가요?
"사돈 댁도 참 그러시네요. 왜 하필 오늘 오셨어요? 오늘 패소해서 제 마음이 얼마나 아픈데, 하필 오늘 와서 이런 얘기를 하세요?"
제가 울먹이면서 말했어요. 그랬더니 시누이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래서 오늘 온 거예요. 어차피 충격받을 거 한 번에 끝내는 게 낫잖아요."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이 사람들이 인간인가 싶었어요. 충격 받은김에 한꺼번에 받으라고요? 이게 사람이 할 소리예요?
"나가주세요. 제발 나가주세요." 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우리 오빠 생각도 좀 해봐요! 앞길 창창한 30대 남자가 장애인 아내 때문에 인생 망치고 있는 거 모르세요? 재혼도 못 하고, 애도 제대로 못 키우고!"
시누이는 계속 소리를 질렀어요. 안사돈은 제 손을 잡으면서 말했어요.
"사돈 댁, 우리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아요. 근데 우리 아들이 너무 힘들어해요. 제발 이혼 좀 시켜주세요. 은서도 그게 더 나을 거예요."
저는 손을 뿌리쳤어요.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은서가 이혼 안 한다고 했어요. 열 번을 물어봐도 열 번 다 안 한다고 했다고요!"
"그게 제대로 된 대답이에요? 은서가 지금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태예요?"
바깥사돈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어요. 지금까지 가만히 앉아만 있던 분이요.
"물론 상황 판단은 힘들죠. 근데 감정은 있어요. 우리 은서가 아직도 사위를 좋아해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이혼을 시켜요?"
제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진짜 이해가 안 됐거든요.
"그럼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예요? 5년? 10년? 평생이요?"
시누이가 비웃듯이 물었어요.
"평생이면 어때요! 결혼할 때 아프나 건강하나 함께한다고 약속했잖아요! 그게 부부잖아요!"
저는 소리를 질렀어요. 제 인생에서 이렇게 큰 소리로 남한테 화를 낸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참을 수가 없었어요.
"약속이요? 웃기지 마세요. 세상에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약속했겠어요? 이건 불가항력이에요!"
시누이가 책상을 탁 쳤어요.
저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나가주세요. 제발 나가주세요. 더 이상 이 얘기 하기 싫어요."
사돈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어요. "사돈 댁, 며칠 생각해 보세요. 우리 다시 올게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나갔어요. 문이 닫히자마자 저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었어요. 정말 한참을 울었어요.
은서가 방에서 나왔어요. "엄마 왜 울어?" 하고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얼른 눈물을 닦았어요. "아니야, 엄마 안 울었어."
"엄마 울었어. 나 봤어." 은서가 제 옆에 앉았어요.
저는 은서를 꼭 안았어요. 이 아이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이 아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까. 그런 생각뿐이었어요.
그날 밤 사위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몇 달 만에 오는 전화였죠.
"어머님, 오늘 저희 어머니가 좀 실례를 하신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사과부터 하더라고요. 저는 속으로 코웃음 쳤어요. 진심으로 미안해서 하는 사과가 아니라는 게 느껴졌거든요.
"그래. 솔직히 오늘은 좀 실망이 크네."
"어머님, 저도 고민이 많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상황이 저한테는 너무 힘들어요."
사위 목소리가 떨렸어요. 우는 건지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힘들다고? 은서는 안 힘들까?"
"은서는 모르잖아요. 자기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잘 모르고."
"알아! 은서도 알아! 가끔 거울 보면서 울어. 나 왜 이러냐고 물어봐. 그럴 때마다 내 가슴이 찢어져!"
제 목소리가 커졌어요. 사위는 한동안 말이 없었어요.
"어머님, 저도 은서 사랑했어요. 지금도 미안해요. 근데 저도 살아야 해요. 제 인생도 있어요."
"그럼 은서 인생은? 은서는 겨우 서른에 인생 끝난 거야?"
"그게 아니라... 어머님이 잘 돌봐주시잖아요. 저는 경제적으로 도와드릴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혼하자고? 그 소리 하려고 전화했어?"
사위가 깊은 한숨을 쉬었어요.
"어머님, 제가 재혼하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근데 지금 상태로는 제 딸한테도 미안해요. 애가 자라면서 왜 엄마가 없냐고 물어봐요. 어떻게 설명해야 해요?"
"엄마 있다고 하면 되지! 엄마가 아파서 지금은 못 보는 거라고 하면 되잖아!"
"그게 평생 가요? 애가 크면 다 알게 돼요. 그럼 그때는요?"
사위 말에 저는 할 말이 없었어요. 맞는 말이거든요. 손녀가 크면 결국 다 알게 될 거예요. 엄마가 장애인이라는 거, 자기를 돌볼 수 없다는 거.
"그때 가서 생각해. 지금은 이혼 얘기 하지 마. 제발."
저는 울먹이며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그날 이후로 한 달 정도는 연락이 없었어요. 저는 그 한 달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어요. 밤마다 잠을 못 잤어요. 이혼을 시켜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은서한테는 뭐가 더 나은 걸까.
그러다가 어느 날 은서가 물었어요. "엄마, 오빠는 왜 안 와?"
오랜만에 사위 얘기를 하더라고요. 저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어요.
"바쁘나 봐."
"나 보고 싶은데."
은서가 슬픈 표정을 지었어요. 그 표정을 보니까 가슴이 아팠어요.
"은서야, 엄마가 물어볼게. 너 오빠랑 이혼하고 싶어?"
저는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은서는 고개를 저었어요.
"싫어. 나 오빠 좋아해."
"오빠가 안 오는데도?"
"응. 그래도 좋아해."
은서는 단호했어요. 열 번을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이었어요. 이혼은 싫다고, 오빠 좋다고.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결심했어요. 안 돼. 이혼은 절대 안 돼.
그런데 2주 뒤에 사위가 집에 찾아왔어요. 혼자 왔더라고요. 오자마자 현관에서 무릎을 꿇었어요.
"어머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혼 좀 시켜주세요."
저는 어이가 없었어요. 무릎을 꿇는다고 해서 제 마음이 변할까요?
"일어나. 그렇게 빌 거면 은서한테 가서 빌어. 나한테 빌지 말고."
"은서한테 얘기해봤어요. 근데 은서가 이해를 못 해요."
"당연하지. 은서가 왜 이해를 해.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사위가 고개를 들었어요. 눈이 빨갰어요. 운 것 같았어요.
"저도 은서 버리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에요. 근데 제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세요? 회사 다녀서 돈 벌어서 애 키우고, 부모님 용돈 드리고, 은서 치료비까지 대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세요?"
"그래서? 그게 이혼 이유야? 돈 때문에?"
"돈 때문만이 아니에요! 저도 힘들어요! 매일 밤 잠도 못 자요! 은서 생각하면 미안하고, 애 생각하면 답답하고!"
사위가 소리를 질렀어요. 저는 가만히 듣고 있었어요.
"그럼 뭐 어쩌라고. 힘든 거 나도 알아. 근데 그게 이혼 이유는 안 돼."
"장애수당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지금 제가 있어서 수당도 못 받잖아요. 이혼하면 은서가 수당 받아서 치료비 쓸 수 있어요."
"장애수당 얼마나 되는데?"
"한 달에 30만 원 정도요."
"30만 원? 그거 받자고 이혼하라고? 그럼 내가 30만 원 줄게. 이혼은 하지 마."
저는 비웃었어요. 30만 원이 뭐가 중요해요. 부부가 헤어지는 게 더 큰 문제지.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제가 은서한테 묶여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요!"
사위가 드디어 본심을 드러냈어요. 저는 그 순간 확신했어요. 아, 결국 다른사람을 만나고 싶은 거구나.
"혹시 사람 있어?"
"없어요! 저 아직 서른다섯밖에 안됐어요. 인생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사위가 울먹였어요. 근데 저는 전혀 불쌍하지 않았어요.
"그래, 근데 은서 인생은? 은서는 서른에 인생 끝났어. 그게 공평해?"
"공평하지 않죠! 그렇지만 이게 현실이에요! 어머님은 원론적인 얘기만 하시는데, 저는 현실을 살아야 해요!"
사위가 벌떡 일어났어요.
"현실? 현실이 뭔데? 그럼 그 현실 누가 만들었어? 은서 잘못이야?"
"잘못이 아니죠! 사고였죠! 근데 그 사고 때문에 저까지 평생 고생해야 해요?"
사위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저도 화가 났어요.
"그래, 자네 고생하기 싫은거 알겠어. 근데 은서는? 그냥 애 낳다가 이렇게 됐잖아. 자네 애 낳다가!"
"그게 제 잘못인가요?"
"자네 잘못 아니야. 근데 은서 잘못도 아니잖아!"
저는 소리를 질렀어요. 사위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한참 서 있다가 한숨을 쉬었어요.
"어머님, 생각 좀 해보세요. 이혼이 서로한테 나아요."
"나가. 당장 나가. 다시는 이혼 얘기 꺼내지 마. 은서 보고 싶으면 찾아와. 근데 이혼 얘기는 하지 마."
저는 문을 열었어요. 사위는 그대로 나갔어요. 뒤도 안 돌아보고요.
그날 밤 저는 남편한테 물었어요. "여보, 내가 잘못하는 거 맞지?" 남편이 고개를 저었어요. "아니야. 당신은 엄마니까 딸 편드는 거야. 당연한 거야."
"근데 사위 말도 틀린 말은 아니잖아. 그 사람도 인생 있는데."
"부부면 책임도 져야지. 결혼이 뭐야. 좋을 때만 같이 있는 거야? 힘들 때도 같이 있어야 부부지."
남편 말이 맞았어요. 근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어요.
다음 날 복지관에서 전화가 왔어요. 은서 언어치료 담당 선생님이었어요.
"어머님, 요즘 은서씨 상태가 좀 안 좋아 보여요. 치료 시간에 자꾸 울어요."
"왜요? 어디 아픈가요?"
"몸이 아픈 건 아니고, 감정적으로 힘들어 보여요. 자꾸 딸 보고 싶다고 그러고, 오빠는 왜 안 오냐고 물어봐요."
선생님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어요. 은서도 힘든 거예요. 말은 잘 못 해도 감정은 다 느끼고 있는 거죠.
"제가 좀 더 신경 쓸게요."
전화를 끊고 은서 방에 갔어요. 은서는 색칠공부 하고 있었어요. 공주 그림에 색연필로 색칠하고 있더라고요.
"은서야, 엄마가 물어볼게. 넌 지금 행복해?"
은서가 고개를 들었어요. "응, 행복해."
"오빠 보고 싶지 않아?"
"보고 싶어. 근데 엄마가 있으니까 괜찮아."
은서가 웃었어요. 그 웃음을 보는데 눈물이 났어요. 이 아이는 지금도 행복하다고 하는데, 왜 주변 사람들은 이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려고 할까요.
그렇게 또 몇 달이 지났어요. 2025년 봄이었나요? 어느 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혹시 강은서씨 어머니 되십니까?"
남자 목소리였어요. 좀 나이 든 목소리 같았어요.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저는 은서씨 남편 회사 동료입니다. 제 이름은 박성훈이라고 하고요."
박성훈? 사위 회사 동료라고요?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요
"무슨 일이세요?"
"직접 만나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혹시 시간 되실까요?"
뭔가 심상치 않았어요. 목소리가 진지했거든요.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전화로 말씀드리기 좀 그렇고요. 은서씨에 관한 중요한 얘기입니다."
은서에 관한 얘기라니요. 내 딸 이름을 알고 있는것도 수상했고 저는 궁금했어요.
"그럼 내일 만날까요?"
다음 날 그 박성훈이라는 사람을 만났어요. 40대 후반쯤 돼 보이는 남자였어요. 양복 차림에 안경 쓴, 점잖아 보이는 분이었죠.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사람이 정중히 말했어요.
"무슨 얘기인지 말씀해 주세요."
저는 조금 초조했어요. 혹시 사위가 무슨 사고라도 쳤나 싶었거든요.
"사실 저는 은서씨 남편, 그러니까 사위분과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팀장이고요."
"네."
"그런데 제가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 있어서요. 어머님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박성훈씨가 핸드폰을 꺼냈어요. 뭔가를 보여주려는 것 같았어요.
"이거 보시겠어요?"
핸드폰 화면에는 사진이 있었어요. 사위가 여자랑 같이 있는 사진이었어요. 둘이 식당에서 밥 먹고 있는 모습이었죠.
"이게 뭐예요?"
제 목소리가 떨렸어요.
"사위분이 회사 후배랑 만나고 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계속 봤어요."
"만나다니요? 그냥 동료 아니에요?"
저는 믿고 싶지 않았어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근데 아니더라고요. 둘이 너무 자주 만나요. 퇴근하고 매일 같이 나가고, 주말에도 만나고."
박성훈씨가 사진을 몇 장 더 보여줬어요. 사위랑 그 여자가 영화관에서 나오는 사진, 카페에서 마주 앉아 있는 사진, 손 잡고 걷는 사진까지 있었어요.
"이 사진들은 어떻게..."
"제가 우연히 봤습니다. 그리고 확인하고 싶어서 몇 번 더 지켜봤어요."
"왜 그렇게까지 하셨어요?"
저는 이해가 안 됐어요. 가족도 아니고 회사 사람이 남의 일에 그렇게까지 신경을 쓸 리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제 아내도 뇌종양으로 5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성훈씨가 조용히 말했어요.
"아내가 아플 때 주변에서 재혼하라고 많이 얘기했어요. 젊은데 혼자 어떻게 사냐고. 근데 저는 끝까지 아내 곁을 지켰습니다. 그게 부부라고 생각했거든요."
박성훈씨 눈이 촉촉해졌어요.
"그래서 사위분 얘기 들었을 때 화가 났어요. 장모가 이혼 안 시켜준다고, 자기 인생 망치고 있다고. 그 여자한테도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기가 막혔어요. 사위가 회사에서 그런 얘기를 하고 다녔다고요?
"그 여자는 알아요? 사위가 결혼했다는 거?"
"알죠. 근데 곧 이혼한다고 사위분이 얘기했대요.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박성훈씨 말에 저는 한숨이 나왔어요. 그래서 그렇게 이혼하자고 난리였구나. 다른 여자가 있었구나.
"그 여자는 누구예요?"
"신입사원이에요. 올해 입사했고, 스물여덟 살이에요."
"스물여덟?"
은서보다 두 살 어린 여자였어요. 저는 화가 났어요. 정말 화가 났어요.
"왜 저한테 이 얘기를 해주시는 거예요?"
"제가 은서씨를 한 번 본 적이 있거든요."
"언제요?"
"2년 전쯤이었나요? 사위분이 회사 행사에 가족을 데리고 온 적이 있어요. 그때 은서씨를 봤습니다."
박성훈씨가 잠시 말을 멈췄어요.
"은서씨가 정말 밝고 예쁜 분이었어요. 사위분한테 애정표현도 많이 하고, 행복해 보였죠. 그런 사람이 지금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다들 알아요."
"그래서요?"
"은서씨가 불쌍해요. 자기 잘못도 아닌데 이렇게 버림받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머님께 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성훈씨는 진심이었어요. 그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고개를 숙였어요. 이 사람이 아니었으면 저는 계속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 사위가 거짓말하는 줄도 모르고요.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박성훈씨가 말했어요.
"사위분이 은서씨 보험금을 해지했어요."
"뭐라고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은서씨 명의로 된 보험이 몇 개 있었잖아요. 그거 다 해지했어요. 돈도 다 찾았고요."
"그게 가능해요? 은서 명의인데?"
"성년후견인이 어머님이시잖아요. 근데 재산 관련해서는 남편도 권한이 있어요. 그래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럼 그 돈은 어디로 갔어요?"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제 짐작에는 그 여자한테 쓴 것 같아요."
박성훈씨 말에 저는 정말 기절할 것 같았어요. 은서 보험금을 해지해서 다른 여자한테 쓰다니요.
"증거가 있어요?"
"보험 해지 서류는 제가 우연히 봤어요. 사위분 책상에 있더라고요. 사진 찍어둔 게 있습니다."
박성훈씨가 또 핸드폰을 보여줬어요. 보험 해지 신청서였어요. 은서 이름으로 된 서류에 사위 서명이 있었죠.
"이거 불법 아니에요?"
"글쎄요. 법적으로는 애매할 수 있어요. 남편이니까 권한이 있다고 볼 수도 있고요. 근데 도의적으로는 문제가 있죠."
저는 그 자리에서 울고 싶었어요. 정말 울고 싶었어요. 근데 참았어요. 지금 울면 안 돼. 정신 차려야 돼.
"이 사진들 제가 가져도 돼요?"
"네, 제가 이메일로 보내드릴게요."
박성훈씨가 제 이메일 주소를 받아적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쪽이 아니었으면 저는 계속 속고 살았을 거예요."
"아니에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예요."
박성훈씨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저도 일어나서 다시 한번 인사했어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머리가 복잡했어요. 사위한테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하지. 그런 생각뿐이었어요.
집에 도착하니까 은서가 마당에서 놀고 있었어요. 꽃에 물 주고 있더라고요.
"엄마, 꽃 예쁘지?"
"그래, 예쁘다."
저는 은서를 안았어요. 이 아이를 꼭 지켜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날 밤 남편한테 모든 걸 얘기했어요. 사위가 바람피우는 것, 보험금 해지한 것, 다 얘기했죠.
"그 자식이 진짜..."
남편이 화를 냈어요. 남편이 화내는 거 정말 오랜만에 봤어요.
"내가 당장 가서 따지고 올까?"
"아니야. 조금만 기다려봐. 제대로 된 방법으로 해야 해."
저는 남편을 진정시켰어요. 지금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안 되고 냉정하게 생각해야 해요.
다음 날 변호사 사무실에 갔어요. 의료소송 맡아주셨던 그 변호사님한테요.
"변호사님, 사위가 은서 보험금을 해지했대요. 이거 문제 삼을 수 있나요?"
변호사님이 서류를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였어요.
"성년후견인이 어머님이시니까 재산 관련 사항은 어머님 동의가 필요합니다. 근데 남편이 임의로 해지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일단 은행에 가서 거래내역부터 확인하세요. 돈이 어디로 갔는지 추적해야 합니다."
변호사님 말대로 은행에 갔어요. 성년후견인 서류 들고 가니까 은서 계좌 거래내역을 보여주더라고요.
충격적이었어요. 지난 1년 동안 4천만 원이 빠져나갔어요. 보험 해지한 돈도 있었고, 은서 적금 해지한 것도 있었어요. 그 돈이 다 사위 계좌로 들어갔다가 어디론가 나갔더라고요.
"이거 추적할 수 있어요?"
제가 은행 직원한테 물었어요.
"본인 계좌가 아니면 어렵습니다. 법적 절차를 밟으셔야 할 것 같아요."
집에 와서 남편한테 통장 보여줬어요. 남편 얼굴이 새하얘졌어요.
"4천만 원이나? 이게 다 은서 돈인데?"
"그러니까. 그것도 모자라서 이혼하자고 난리야. 도대체 그 돈을 어디다 썼을까?"
저는 화가 났어요. 정말 화가 났어요.
다음 날 사위한테 전화했어요.
"자네, 당장 집으로 와. 얘기 좀 하지."
제 목소리가 차가웠어요. 사위가 놀란 것 같았어요.
"어머님, 무슨 일이세요?"
"오면 알아. 30분 안에 와."
전화를 끊고 기다렸어요. 정확히 25분 후에 사위가 왔어요.
"어머님, 무슨..."
"앉아."
저는 소파를 가리켰어요. 사위가 불안한 표정으로 앉았어요.
"은서 보험금 해지한 거 알아."
그 말을 듣자마자 사위 얼굴이 굳었어요.
"그게..."
"말 꺼내지 마. 내가 다 알아. 자네가 여자 만나는 것도 알고, 은서 돈으로 그 여자한테 쓴 것도 다 알아."
사위가 입을 다물었어요. 뭐라고 변명할 수 없는 거죠.
"회사 동료한테서 다 들었어. 자네가 6개월째 신입사원이랑 만나고 있다며? 그 여자한테 은서 돈으로 뭐 사줬어? 가방? 옷? 반지?"
제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어머님,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냐! 증거 다 있어! 사진도 있고, 은행 거래내역도 있어!"
저는 핸드폰을 사위 얼굴에 들이밀었어요. 박성훈씨가 보내준 사진들이 있었죠.
사위가 고개를 숙였어요.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다는 걸 아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넌 은서한테 못 할 짓을 한 거야. 아내가 아파서 누워 있는데 바람을 피워? 그것도 아내 돈으로?"
제 목소리가 떨렸어요. 분노 때문이었어요.
"저도 사람이에요. 외로웠어요."
"외로우면 바람을 피워도 돼? 그게 말이 돼?"
"은서는 제 아내가 아니에요. 이제는."
사위가 고개를 들었어요.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어요.
"뭐?"
"은서는 이미 7년 전에 죽었어요. 지금 있는 사람은 은서가 아니에요. 겉모습만 은서일 뿐이에요."
사위 말에 저는 정말 기가 막혔어요.
"너 지금 제정신이야? 은서가 죽었다고? 은서가 지금 저 방에 있어. 숨 쉬고 있다고."
"몸은 살아 있죠. 근데 정신은 죽었잖아요. 제가 사랑했던 은서는 이미 없어요."
"부부가 뭔지 알아? 좋을 때만 같이 있는 게 부부가 아니야. 힘들 때 더 꽉 잡고 있는 게 부부야. 근데 넌 뭐 했어? 은서가 아프니까 도망갔잖아."
"도망간 거 아니에요! 저는 7년 동안 참았어요! 매일 밤 은서 생각하면서 울었어요! 근데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사위가 소리쳤어요.
"그래, 자네가 참았다고 치자. 근데 은서는? 은서는 얼마나 힘들겠어. 남편도 안 오고, 딸도 못 보고, 5살 지능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건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은서 잘못도 아니야! 근데 왜 은서만 벌을 받아야 해?"
저는 울먹였어요. 사위도 울고 있었어요.
"어머님, 저 진짜 힘들어요. 제발 이혼 좀 시켜주세요."
"안 돼. 절대 안 돼."
"왜요? 왜 안 돼요?"
"은서가 싫다고 했어. 열 번을 물어봐도 열 번 다 싫다고 했어. 그게 답이야."
"은서가 뭘 알아요? 제대로 판단도 못 하는데!"
"판단은 못 해도 감정은 있어. 은서가 자네 좋아해. 아직도. 매일 밤 자기 전에 자네 생각해. 보고 싶다고 그래. 그런 은서를 내가 어떻게 버려?"
제 말에 사위가 고개를 떨궜어요.
"그리고 말이야. 자네가 바람피운 거, 돈 훔쳐간 거, 다 증거 있어. 이혼하고 싶으면 법정에서 하자. 내가 다 폭로할 거야."
사위가 고개를 번쩍 들었어요.
"어머님, 그러시면 안 돼요. 제 인생 망가져요."
"자네 인생? 은서 인생은 이미 망가졌어. 자네 손으로."
"제 손으로요? 제가 뭘 어떻게 했다고요?"
사위가 화를 냈어요.
남편이 제 어깨를 잡았어요. "여보, 진정해."
"진정이 돼? 이 인간이 은서 버리고 도망가려고 하는데?"
저는 남편 손을 뿌리쳤어요.
"어머님, 그만하세요. 저는 단지 새 출발하고 싶은 거예요. 뭐가 잘못됐어요?"
"새 출발? 웃기지 마. 넌 비겁하게 도망가는 거야."
제 말에 사위가 문을 열었어요.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어차피 법정 가면 이혼할 수 밖에 없어요. 은서 상태로는 혼인 지속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거예요."
"그럼 법정에서 보자. 자네가 한 짓도 다 까발리고."
"맘대로 하세요."
사위가 문을 쾅 닫고 나갔어요.
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어요. 남편이 저를 안아줬어요.
"여보, 괜찮아. 우리가 은서 지킬 거야."
"어떻게 지켜? 법정 가면 질 것 같아. 변호사님도 그러시더라. 은서 상태로는 이혼 판결 날 수도 있대."
"그래도 포기하면 안 돼. 끝까지 싸워야지."
남편 말에 저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래, 포기하면 안 돼.
그날 밤 은서가 제 방으로 왔어요.
"엄마, 왜 오빠랑 싸웠어?"
은서가 들었나 봐요.
"안 싸웠어. 그냥 얘기했어."
"소리 질렀잖아. 나 들었어."
은서가 제 옆에 누웠어요.
"엄마, 오빠가 나 싫어해?"
"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해?"
"요즘 안 와. 전화도 안 해."
은서 목소리가 슬펐어요.
"바쁜가 봐."
"엄마, 나 때문이야? 내가 이상해져서?"
은서가 울기 시작했어요. 저는 은서를 안았어요.
"아니야. 네 잘못 아니야. 넌 아무 잘못 없어."
"근데 왜 오빠가 안 와? 나 보기 싫은 거야?"
"아니야. 절대 아니야."
저는 은서를 달래줬어요. 근데 제 마음은 무너지고 있었어요.
다음 날 변호사 사무실에 갔어요. 박성훈씨도 같이 갔어요. 증인으로 필요하다고 하셨거든요.
"어머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변호사님이 말씀하셨어요.
"사위 측에서 이혼소송 준비하고 있어요. 변호사도 선임했고요."
"그럼 우리는요?"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승산이 높지 않습니다."
"왜요? 사위가 바람피운 것도 있고, 보험금 가로챈 것도 있는데요."
"그건 유리한 증거이긴 한데, 결정적이지는 않아요. 법원은 혼인관계가 회복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이혼을 허락할 수 있거든요."
변호사님 말씀에 저는 한숨이 나왔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일단 사위 측 주장을 막아야 합니다. 은서씨가 아직 혼인 의사가 있다는 걸 법정에서 입증해야 합니다. 은서씨 의사가 명확하다는 걸요."
"근데 은서가 법정에 나올 수 있을까요?"
"그게 문제예요. 은서씨 상태로는 증인으로 서기 힘들어요."
변호사님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어요.
그때 박성훈씨가 말했어요.
"제가 증언하겠습니다. 그댁 사위가 회사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다른 여자랑 어떻게 만났는지, 다 증언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변호사님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집에 돌아와서 은서한테 물었어요.
"은서야, 엄마가 물어볼게. 법원이라는 데 가서 판사님한테 니 마음을 말할 수 있겠어?"
"판사님?"
"응. 오빠랑 이혼하고 싶은지 안 하고 싶은지 물어보실 거야."
"나 이혼 안 해. 오빠 좋아해."
은서가 단호하게 말했어요.
"그걸 판사님한테도 말할 수 있어?"
"응. 할 수 있어."
"무섭지 않아?"
"엄마가 같이 있으면 안 무서워."
은서가 웃었어요. 저는 은서를 꼭 안았어요.
한 달 후 1차 조정 기일이 잡혔어요. 법원에 갔더니 사위가 와 있었어요. 옆에 변호사도 있었고요.
조정실에 들어가니까 조정위원님이 계셨어요.
"양측 다 왔으니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신청인 측 입장 들어보겠습니다."
사위 변호사가 서류를 꺼냈어요.
"저희 의뢰인은 7년 동안 배우자를 헌신적으로 돌봤습니다. 하지만 배우자의 상태가 호전될 가능성이 없고, 의뢰인 또한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살 권리가 있습니다."
사위 변호사가 말했어요. 저는 가만히 듣고 있었어요.
"특히 의뢰인에게는 어린 자녀가 있습니다. 자녀에게 정상적인 가정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이혼이 필요합니다."
"그 말씀 잠깐만요."
제 변호사님이 끼어들었어요.
"헌신적으로 돌봤다고요? 신청인은 지난 3년 동안 배우자를 단 한 번도 병원에 데려간 적이 없습니다. 병원비도 장모님이 다 냈고요."
"그건..."
"그리고 헌신적으로 돌봤다는 사람이 다른 여자를 만났습니까? 여기 증거가 있습니다."
제 변호사님이 박성훈씨가 제공한 사진들을 내밀었어요.
사위 얼굴이 굳었어요. 사위 변호사도 당황한 것 같았어요.
"이건 오해입니다. 단순한 직장 동료일 뿐..."
"손 잡고 걷는 것도 동료 사이에 하는 건가요? 영화 보러 가는 것도요?"
제 변호사님이 따졌어요.
"그리고 더 심각한 건 이겁니다."
제 변호사님이 은행 거래내역을 꺼냈어요.
"신청인은 배우자 명의 보험을 임의로 해지하고 4천만 원을 인출했습니다. 성년후견인 동의 없이 말입니다. 이건 명백한 재산 횡령입니다."
조정위원님이 서류를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였어요.
"신청인, 이게 사실입니까?"
"저는... 치료비로 쓴 겁니다."
사위가 변명했어요.
"치료비요? 그럼 영수증 있겠네요? 4천만 원이면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다 기록 있을 텐데요."
제 변호사님이 추궁했어요. 사위는 아무 말도 못 했어요.
"그리고 조정위원님, 피신청인 본인의 의사도 중요합니다. 은서씨는 이혼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은서씨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상태입니까?"
조정위원님이 물었어요.
"지적 능력은 떨어지지만 감정과 의사는 명확합니다. 본인이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은서씨, 들어오시겠습니까?"
밖에서 기다리던 은서가 들어왔어요. 은서는 조금 긴장한 것 같았어요.
"안녕하세요, 은서씨. 앉으세요."
조정위원님이 부드럽게 말씀하셨어요. 은서가 제 옆에 앉았어요.
"은서씨, 제가 몇 가지 물어볼게요. 천천히 대답하시면 돼요."
"네."
"은서씨는 남편분이랑 이혼하고 싶으세요?"
"아니요. 싫어요."
은서가 고개를 저었어요.
"왜 이혼하고 싶지 않으세요?"
"오빠 좋아해요. 나 오빠 사랑해요."
은서 목소리가 떨렸어요.
"남편분이 요즘 안 오시죠? 그래도 좋으세요?"
"슬퍼요. 근데 그래도 좋아해요. 오빠 기다릴게요."
은서가 울먹였어요. 저도 눈물이 났어요.
조정위원님이 사위를 봤어요.
"신청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위가 고개를 숙였어요. 한참 있다가 말했어요.
"미안합니다."
"누구한테요?"
"은서한테요."
사위 목소리가 작았어요.
"은서씨, 남편분이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용서해주실 수 있으세요?"
조정위원님이 은서한테 물었어요.
"오빠가 나한테 미안해?"
은서가 사위를 봤어요.
"응. 미안해."
사위가 은서를 봤어요.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어요.
"왜?"
"내가 잘못했어. 너 혼자 두고 나만 살려고 했어."
"오빠 나 버릴 거야?"
"나도 모르겠어. 그냥 힘들었어."
사위가 울기 시작했어요. 정말 우는 거예요.
"오빠 울지 마. 내가 잘할게. 내가 더 노력할게."
은서가 사위한테 다가갔어요. 사위를 안았어요.
그 모습을 보는데 제 마음이 무너졌어요. 은서가 뭘 잘못했어요. 은서가 뭘 더 노력해요. 이미 충분히 힘든데.
"은서야, 네 잘못 아니야."
제가 은서를 떼어냈어요.
조정위원님이 말씀하셨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신청인분, 한 번 더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일은 한 달 후입니다."
조정은 그렇게 끝났어요. 밖으로 나오는데 사위가 저를 불렀어요.
"어머님, 잠깐만요."
"뭐?"
저는 차갑게 대답했어요.
"오늘 은서 보니까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제가 정말 나쁜 놈인 것 같아요."
"알았으면 됐어. 이제 그만 괴롭혀."
저는 은서 손 잡고 가려고 했어요.
"어머님, 근데 저도 힘들어요. 정말로요."
"그래서 어쩌라고? 은서보다 네가 더 힘들어? 웃기지 마."
제 말에 사위가 고개를 숙였어요.
그날 밤 집에서 남편이랑 얘기했어요.
"여보, 오늘 사위 표정 봤어? 흔들리는 것 같았어."
"그래도 믿으면 안 돼. 저 인간 또 변할 거야."
저는 냉정했어요. 한 번 믿었다가 배신당했거든요.
"그래도 은서가 안아줬을 때 울던 거 봤잖아. 진심 같았는데."
"그게 진심이면 왜 지금까지 안 왔어? 7년이나 지났는데."
제 말에 남편도 할 말이 없는 것 같았어요.
한 달 후 2차 조정 기일이 왔어요. 법원에 갔더니 사위가 먼저 와 있었어요.
"어머님."
사위가 저한테 인사했지만 저는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조정실에 들어갔어요. 조정위원님이 말씀하셨어요.
"지난번 이후에 생각을 정리하셨습니까?"
"네."
사위가 대답했어요.
"이혼소송 취하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귀를 의심했어요.
"뭐라고요?"
"이혼소송 취하합니다. 은서랑 계속 살겠습니다."
사위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어요.
"갑자기 왜요?"
조정위원님이 물었어요.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힘들다는 이유로 가족을 버리려고 했어요. 근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신중하게 결정하신 겁니까?"
"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사위가 저를 봤어요.
"어머님, 용서해주세요.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저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이게 진심일까? 아니면 또 거짓말일까?
"입으로만 그러는 거 아니지?"
"아니요. 진심이에요. 오늘부터 은서 제대로 돌보겠습니다."
"그 여자는?"
"헤어졌어요. 완전히."
"보험금 횡령한 거는?"
"갚겠습니다. 천천히라도 다 갚겠습니다."
사위가 계속 고개를 숙였어요.
조정위원님이 말씀하셨어요.
"그럼 오늘 조정은 양측 합의로 종결하겠습니다. 신청인이 소송을 취하하고, 앞으로 부부로서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조정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어요. 사위가 저를 따라왔어요.
"어머님, 은서 보러 가도 될까요?"
"당연하지. 은서는 자네 아내인데."
저는 쌀쌀맞게 대답했어요. 아직도 사위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거든요.
집에 도착하니까 은서가 마당에서 놀고 있었어요.
"은서야."
사위가 불렀어요. 은서가 고개를 들었어요.
"오빠!"
은서가 달려와서 사위를 안았어요.
"보고 싶었어."
"나도."
사위가 은서를 꼭 안았어요. 진짜로 울고 있었어요.
"미안해. 내가 너무 못됐어."
"괜찮아. 이제 왔잖아."
은서가 웃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눈물이 났어요.
그날부터 사위가 정말 달라졌어요. 주말마다 와서 은서를 데리고 산책을 갔어요. 손녀도 데려왔어요.
"은서야, 우리 딸이야. 기억나?"
"내 딸?"
"응, 은서랑 내 딸."
은서가 손녀를 안았어요. 손녀는 처음에 낯설어했지만 금방 익숙해졌어요.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이게 가족이구나. 힘들어도 함께 있으면 가족이구나.
몇 달 후에 사위가 은서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어요.
"어머님, 이제 제가 은서 돌보겠습니다."
"혼자서 할 수 있어?"
"어머니가 와서 도와주시면 되죠. 근데 은서가 자기 집에서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사위 말이 맞았어요. 은서도 자기 집에서 살아야죠.
은서를 보내던 날 저는 많이 울었어요.
"은서야, 엄마 자주 보러 갈게."
"응. 엄마도 보고 싶으면 와."
은서가 제 손을 잡았어요.
은서가 웃었어요.
사위네 집에서 은서는 손녀랑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비록 엄마 역할을 완전히 하지는 못했지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어요.
1년쯤 지났을 때 사위가 저한테 전화했어요.
"어머님, 은서가 좀 나아진 것 같아요."
"진짜?"
"네. 언어치료 계속하니까 말이 좀 더 늘었어요. 문장도 길어졌고요."
"그래? 다행이다."
저는 기뻤어요.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리고 어머님, 제가 하나 말씀드릴 게 있어요."
"뭔데?"
"은서가 임신했어요."
"뭐?"
저는 깜짝 놀랐어요.
"아니, 은서 상태로 임신이 가능해?"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가능하대요. 물론 위험하긴 하지만요."
"위험하면 어떡해! 지난번 일 잊었어?"
저는 화가 났어요.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해요.
"어머님,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셨어요. 제왕절개로 안전하게 낳을 수 있대요."
"정말?"
"네. 이번엔 큰 병원에서 제대로 케어받을 겁니다. 돈 아끼지 않고요."
사위 말에 저는 조금 안심했어요.
"은서는 뭐래?"
"좋아해요. 아이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9개월 후 은서가 무사히 둘째를 낳았어요. 아들이었어요.
"어머님, 손자예요."
사위가 아기를 안고 나왔어요.
"은서는?"
"괜찮아요. 이번에는 아무 문제없었어요."
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요.
병실에 들어가니까 은서가 누워 있었어요.
"엄마."
"은서야, 괜찮아?"
"응. 나 아기 낳았어."
은서가 웃었어요.
"잘했어. 정말 잘했어."
저는 은서 손을 잡았어요.
"엄마, 나 이제 엄마야?"
"응, 넌 이제 두 아이 엄마야."
"나 잘할 수 있을까?"
"그럼. 넌 잘할 거야."
저는 은서를 안았어요. 은서도 저를 꼭 안았어요.
그날 저는 깨달았어요. 가족이라는 건 완벽하지 않아도 돼요. 힘들어도 함께 있으면 돼요. 포기하지 않으면 돼요.
은서는 비록 5살 지능이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아내고 엄마예요. 그리고 제 소중한 딸이에요.
사위도 처음에는 도망가려고 했지만, 결국 돌아왔어요. 그리고 지금은 진짜 남편이 되어가고 있어요.
완벽하지 않아요. 여전히 힘든 날도 많아요. 은서가 우는 날도 있고, 사위가 지쳐서 힘들어하는 날도 있어요.
근데 그래도 괜찮아요. 함께 있으니까요.
지금 은서네 가족은 행복해요. 완벽한 행복은 아니지만, 그들만의 행복이에요.
그리고 저는 그게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가족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니까요. 완벽하지 않아도, 힘들어도, 서로 손잡고 가는 거.
그게 진짜 사랑이고, 진짜 가족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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