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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만지지는 마세요. 며느리가 말했어요. 죄송하지만 손주는 눈으로만 보셨으면 좋겠어요. 내 귀를 의심했어요. 뭐? 눈으로만? 아기가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감염될 가능성이 높아지잖요. 너 지금 바이러스라고 그랬니? 우리 여기 오자마자 손씻고 소독했단 말이다. 그래도 손으로 만지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아기는 면역력이 약하니까요. 당당한 며느리의 말에 우린 말문이 막혔고 차가운 반응에 가슴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내손주도 맘껏 안아보지 못하는데 과연 우리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오늘 괘씸한 며느리를 한방에 무릎꿇게 만든 그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이야기 시작전에 좋아요 버튼과 구독, 그리고 알림 버튼을 눌러주시면 새로운 에피소드를 가장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어요. 지금 가장 보고싶은 사람을 댓글에 달아보세요. 오늘 그분에게 꼭 전화가 올거에요. 그럼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들어줬으면 해서 사연을 신청하게 됐습니다. 제 이름은 최경숙이고요, 올해 66살 먹은 평범한 엄마입니다. 이 이야기는 제 아들 얘기, 그리고 제 며느리 얘기인데,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요.
제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정말 말 없는 아이였습니다. 다른 엄마들과 달리 저는 아들이 말썽을 부릴까봐 걱정한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학교에서 선생님이 부르는 일도 없고, 집에서 대들은 적도 없고, 그냥 공부할 때 공부하고 밥 먹을 때 밥 먹는 그런 착한 아이였어요. 주위 어른들이 "아, 이렇게 착한 애가 다 있냐"면서 제 아들을 부러워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무난하게 자란 아들이 서울로 대학을 갔고, 졸업하고 취직도 하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서른네 살이 되던 해에 갑자기 결혼한다는 연락이 왔어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연애한다는 예길 못들었으니까요. 제 남편도 마찬가지였어요. "우리 아들이 언제 여자를 만났어?"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아들이 1년을 사귀고 있었던 거더라고요. 그냥 말을 안 했을 뿐이었어요. 어쨌든 이제 결혼을 한다니까 저도 남편도 얼마나 기뻤던지 몰라요. 아들이 34살 때 식을 올렸고, 신혼집은 서울 강남에 있는 아파트로 마련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땅이 나라에 수용되면서 적지않은 토지보상금을 받아놓았거든요. 크진 않지만 둘이살기엔 부족함이 없는 집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대전에서는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거리였어요.
처음에는 한 해에 두세 번 아들이 내려올 때 만났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까 그것조차 어려워졌어요. 아들도 가정이 생기다 보니까 자주 내려올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명절이 되면 아들 내외가 내려왔고, 저는 남편이랑 함께 온 종일을 상차림 준비로 바쁘게 보냈습니다.
제 남편과 저는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우리 아들도 처가에 가면 사위라고 대접받지 않겠나? 그럼 우리도 며느리를 최고의 손님처럼 모셔야지 이게 저희의 원칙이었거든요.
명절 전날부터 제 남편이랑 저는 하루를 꼬박 들여서 밥상을 준비했습니다. 며느리가 고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를 종류별로 다 구워놨고요, 여러 가지 반찬도 만들었어요. 손이 많이 가는 반찬들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걸 전혀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내가 잘 대하면 며느리도 나를 어려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두 번의 명절이 지나갔어요. 아들 부부를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사이가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어요. 그런데 명절마다 만나다가 어느 순간 아들 부부가 더 이상 내려오지 않게 됐어요. 아들이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아내가 임신했어요. 아직 임신 초기라서 설에 못 내려올 것 같아요.
아, 그 소식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손주가 생긴다는 거예요. “그러려므나 몸이 우선이지, 자나깨나 몸조심하라고 전해다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지요. 가을 추석이 되자 이번엔 만삭이라 또 못 온다고 했어요.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산후조리원에 있다고 해서 못 봤고요. 아들이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엄마, 아내가 회복 중이라서 아직은, 나중에 괜찮아질 때 보여드릴게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아들을 믿기로 했어요. 첫 아이니까 신경 쓸 수 있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며느리의 엄마는 자주 아들 집에 가서 손주를 봐주고 있었다는 거였어요. 아들이 우연히 그 얘기를 꺼냈거든요. 엄마, 그나마 장모님이 자주 와 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제 마음이 조금 서운하더라고요. 손주가 태어난지 백일이 다되가는데도 우린 아직 실제로 본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6개월이 지났고, 드디어 아들이 전화를 했어요. 엄마, 아빠 이번 주말에 우리 집으로 아이 보러오세요. 그 전화를 받고 얼마나 기뻤던지 몰라요. 밤새 잠을 못 자고 옷을 뭘 입을까 생각했어요. 제 남편도 기대하는 눈빛이 보였어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말이에요.
그런데 그 순간 제 마음 한 구석이 불안했어요. 이전에 아들 집에 갔을 때 며느리의 반응이 자꾸만 떠올랐거든요. 결혼하고 첫해 여름쯤에 아들 집에 한 번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생각났어요. 그날은 정말 더웠어요. 제 남편과 저는 친척 행사에 갔다가 아들 집에 잠깐 들르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당일날 오전에 아들한테 전화가 오더니 엄마, 미안한데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어요. 데릴러 못갈 것 같은데 어떡하죠?
괜찮아. 얼마나 오래 걸려? 제가 물었고요. 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주소만 보내 드릴게요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버스를 탔다가 나중에 택시로 갈아탔어요. 처음 가보는 길이었으니까요. 아들이 사는 아파트를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주변에 비슷한 아파트가 많았거든요. 우리는 빈손으로 갈 수는 없어 마트에 들렸어요. 과일 상자를 사들고 다시 돌아다니면서 아들 집을 찾으려고 했는데, 길을 잃고 말았어요. 한 15분쯤 헤매다가 겨우 찾았어요.
초인종을 눌렀을 때 나온 사람은 며느리였어요. 잘있었니? 오랜만이구나. 제가 인사했어요. 그런데 며느리는 네, 오셨어요라고만 말했어요. 차가운 목소리였어요. 아범은? 아직 안 왔네? 제가 아들을 찾으며 물었고요. 아들은 회사에 일이 있어서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집으로 들어가 쇼파에 앉았어요 더운 날씨에 오랫동안 헤매서 그런지 목이 정말 말랐어요. 그런데 며느리는 휴대폰만 계속 보고 있더라구요. 말도 거의 없었고요. 날씨가 많이 덥구나. 제가 말을 꺼냈어요. 그랬더니 며느리가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휴대폰을 보는거에요. 좀처럼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어요. 저는 물 한 잔을 마시고 싶었지만 청을 할 수가 없었어요. 며느리가 싫은 티를 낼게 분명했거든요.
10분 정도 지났을 때 제 남편이 제 옆구리를 쿡쿡 찔렀어요. 그리고 눈으로 가자는 신호를 했어요. 저도 그게 맞는 것 같아서 슬그머니 가방을 챙겼어요. 아무래도 아범이 바쁜 것 같으니까 우리 이만 갈게. 다음에 시간있을 때 같이 밥이라도 한끼 하자꾸나.
그러자 며느리가 반색하며 일어났어요. 아, 그래요? 그러세요 그럼 안녕히 돌아가세요. 그 반응을 보고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몰라요. 마치 우리가 일찍 나가길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말이에요. 현관까지 가는 그길에 왜이렇게 길게 느껴졌나 몰라요
아파트 단지를 나오자마자 제 남편이 중얼거렸어요. 며느리 대하는 것도 쉽지가 않네. 저도 공감했어요. 그리고 얼마 있다 아들에게 전화가 왔어요. 그런데 아들이 한 말이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엄마, 다음에 오시면 밖에서 뵙는 게 어떨까요? 집도 좁고 불편하실 텐데. 그 말을 들는 순간 제 마음이 철렁했어요. 우리 방문이 달갑지 않다는 뜻인가 싶었죠. 저는 명절마다 종일 아들내외를 위해 밥상을 차려왔는데 말이에요.
알겠어. 다음엔 밖에서 편하게 보자꾸나. 제가 힘없이 대답했어요.
그런데 이제 6개월 만에 다시 집으로 오라는 아들의 전화를 받은거에요. 또 그런 상황이 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지만 손주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토요일 아침, 저는 남편과 함께 샤워를 하고 깨끗하게 준비했어요. 손소독제를 여러 개 챙겼고요. 손주가 어리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버스를 타고 올라갔는데 이번엔 길을 제대로 찾았어요.
아들 집 앞에 도착했어요. 현관 앞에서 가방을 열었어요. 당신, 이거 좀 문질러서 들어가자. 마지막으로 소독 한 번 더 하고. 제가 남편에게 말했어요. 뭘 또 해? 이미 몇 번을 했는데. 남편이 한숨을 쉬었지만 손을 내밀었어요. 손소독제를 다시 묻혔어요.
현관이 열리고 아들이 나왔어요. 그런데 인사도 없이 아들이 화장실을 손으로 가리켰어요. 손부터 씻으세요. 그 말에 저는 약간 놀랐지만 어쩔 수 없이 화장실로 들어갔어요. 남편도 따라갔고요. 손을 씻고 나오니까 아들은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손주는 보이지 않았어요. 손주는? 제가 물었어요. 낮잠 자고 있어요. 깨면 데리고 나올게요. 지금 아내도 함께 자고 있어서 조용히 해 주세요.
아, 그 말을 들었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어요. 손주가 낮잠을 자고 있다니. 같이 잠들었다며 나와보지도 않는 며느리가 괘씸했지만 밤새 아이 돌보느라 피곤했겠지라며 마음을 진정시켰어요. 아들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주가 깨기를 기다렸지요. 30분이 지났을 때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어요. 저와 제 남편은 얼굴이 확 밝아졌어요. 드디어 기다리던 손주를 볼 수 있다는 마음에 말도 못하게 설렜지요
그제야 며느리가 아이를 안고 나왔어요. “아가야 할머니 처음 보지?” 제가 얼마나 기뻤던지 몰라요. 피부도 하얀 예쁜 아기였어요. 제가 팔을 내밀며 안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순간 며느리가 몸을 휙 돌려 버리는거에요. 제 손이 허공에서 갈길을 잃었어요.
만지지는 마시고요. 며느리가 말했어요. 죄송하지만 손주는 눈으로만 보셨으면 좋겠어요. 내 귀를 의심했어요. 뭐? 눈으로만? 아기가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안되잖아요.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갓난아이는 감염될 가능성이 높대요. 그래서 만지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아기는 면역력이 약하니까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정말 황당했어요. 그런 이유 때문에 손주를 못 만진다고? 제 남편도 얼굴이 굳었어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죠
네, 저희가 좀 조심스러워서요. 사실 병원에서도 신생아 때 감염병 때문에 주의를 당부했거든요. 조심해서 나쁠 것 없잖아요
그 순간 제 남편이 말했어요. 그럼 우리가 뭐 하러 왔어? 사진으로 보는 것과 뭐가 다르다고.
아들이 변명하듯 말했어요. 엄마, 아빠 죄솧해요. 하지만 다 손주를 위한 거니까 너무 기분나빠하지 마시고 이해해 주세요, 제 남편의 눈빛이 변했어요. 그럼 나중에 아이 어린이집은 어떻게 보낼 건데? 여러사람이 섞여 생활하는데 그건 괜찮겠나?
며느리가 대답했어요. 어린이집은 나중에 생각하고 있고요. 지금은 좀 조심스러워서요. 제가 목소리를 높였어요. 도대체 우리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데? 우리가 병균 덩어리라고? 오늘 하루종이 수도없이 손씻고 오면서도 계속 손 소독했어. 몇 번을 했는데? 들어오자마자 또 씻었고 그런데도 안 된다고?
아들이 미안한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어요.
그런데 그 순간, 현관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났어요. 누군가가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하는 거예요. 들어온 사람은 며느리의 친정엄마 였어요. 어머나, 사돈이 오셨네요?
우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어요 안녕하세요. 사돈이 와 계신 줄은 몰랐네요. 미안해요, 연락도 없이 들어와서. 아기 보고 싶어서 말이야. 아들이 서둘러 말했어요. 장모님, 어서오세요! 손주 많이 보고싶으셨죠?
장모님이 화장실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손을 씻고 나왔어요. 근데 아주 자연스럽게 아들이 안고 있던 손주를 안아갔어요. 그리고 얼굴에 뽀뽀를 하고, 손도 문질러주고, 입도 비비고 하면서 예뻐 죽겠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손은 물에 젖어 있었어요. 물기 묻은 손으로요.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며느리도 당황한 안색이었어요 지금까지 우리는 못 만지게 하더니 친정엄마에게는 아무 제지를 하지 않는게 본인도 불공평하다는 걸 알아 차렸겠지요
아들이 나서서 말했어요. 어, 장모님은 평소에 아이를 많이 봐 주셔서 양육자나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엄마, 아빠는 외부인이라 아이한테 아직 면역이 생성되지 않았을거에요. 열심히 설명하는 듯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졌어요. 그리고 아들 자신도 이상하다는 걸 아는 것 같았어요. 아들은 얼굴이 벌게졌거든요. 사부인도 무언가 눈치를 챘는지 조용히 손주를 며느리 품에 되돌려 주었어요.
외부인? 뭐 하는 소리야? 안사돈은 손주를 자유롭게 안고 만지는데 우리는 못 만진다고? 이게 말이 돼? 우리가 혐오 대상이야? 바이러스 덩어리야?
아들이 고개를 숙였어요. 하지만 아무 말도 없었어요. 보다못한 남편이 제 팔을 잡아끌며 말했어요 우리가 나갈게. 제 남편이 일어나자 저도 일어났어요.
죄송해요. 아들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어요. 됐다. 너는 네 아내 말 들어. 그게 맞지. 우리는 이제 가야 해. 손주한테 바이러스 옮길까봐 걱정이니까.
현관을 나오면서 제 남편이 속삭였어요. 이제 여기 다신 오지 말자. 저번에도 그렇고 도무지 눈에 뵈는 게 없어.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이 정말 길게 느껴졌어요. 제 가슴이 철렁철렁했어요. 제 손이 떨렸어요. 이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싶었지요.
그 일이 있고 한 달이 지났어요. 며느리는 아직도 아무 연락이 없고 그렇게 한 달이 더 지나니 제 마음도 점점 식어갔어요.
다음 명절이 됐을 때, 저는 아들에게 말했어요. 이번 명절은 오지 마. 엄마 아빠 바쁘거든. 너희들 오면 진수성찬 차려 놓고 기다렸는데 이제 그럴 마음이 없어. 피차 바쁜데 각자 보내자꾸나.
아들은 아무 말을 못했어요. 그 다음 명절도 그렇게 했어요. 그렇게 한 1년이 지나갔어요. 때론 미안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손주가 2살이 채 되기도 전에 아들이 전화를 했어요. 그 전화 통화가 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변곡점이 될꺼라고는 그땐 알아차리지 못했지요. “몇 달 전부터 아내가 직장에 복직했거든요. 2년간 장모님이 아이를 봐 주시고 그 다음에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는데 장인어른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다음 달에 귀촌하신대요. 그래서 장모님도 갑자기 시골로 내려가시게 됐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제 머리 속에 뭔가 번쩍 했어요. 아, 이제 알겠다. 아들이 내게 전화를 한 이유를 말이에요. ”혹시 1년 정도만이라도 올라와서 우리 아이 좀 봐 줄 수 있으세요? 어린이집 가기 전까지만요.“
제가 한참을 말 없이 있었어요. 정말 얘가 뭐라고 하는 건가 싶었거든요. 손주를 못 만지게 하더니 이제는 와서 애를 봐달라고? 그것도 1년 동안? 너 기억 안 나? 손주를 못 만지게 한 거? 저희 규칙이라 한 거? 외부인한테서는 바이러스 전염될 수 있기 때문에 못 만진다고 한 거? 그런데 이제는 와서 애를 1년을 봐 달라고?
너도 너 아내도 우리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데? 이제 손이 필요해지니까? 우리가 만만해?
제 목소리가 떨리면서 눈물이 흘렀어요. 그리고 장모님이 못 봐 주니까 아쉬워서 나한테 연락한거야? 엄마는 맨날 올라와서 밥 해 주고, 애 봐 주고, 빨래도 해 주는 당연한 존재야? 생각 좀 해. 정신 차려. 우리는 봐 줄 생각이 없어.
그리고 너 아내한테도 말해 줘. 우리는 더 이상 손주를 못 본다고. 우리는 너희 반갑지 않은 손님이잖아. 뭐 하러 시간 낭비해? 너희끼리 알아서 해.
전화를 끊었어요. 그 통화 후 아들은 계속 전화를 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받지 않았어요. 문자도 무시했어요. 제 남편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3개월이 지났어요. 저는 아들과 며느리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아들은 이제 내 자식이 아니라 며느리의 남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게 내 마음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거든요. 그런데 한 달이 더 지났을 때, 아들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목소리가 다르게 들렸어요. 뭔가 단호했어요.
엄마, 저 말인데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이제부터 엄마, 아빠와는 연을 끊기로 했어요. 아내도 같은 생각이고요.
제 가슴이 철렁했어요. 절연? 아들이 천륜을 포기한다는 말인가? 너 무슨 소리하는 거야?
그럼 잘 지내세요. 그리고 아버지한테도 전해주세요. 우리는 이제 엄마 아빠가 안계시다고 생각하고 살아갈 거라고.
전화가 끊어졌어요. 제 손이 떨렸어요. 절연이라니. 우리 아들이 나를 끊겠다고?
그날 저녁, 제 남편에게 이 일을 말했어요. 남편은 아무 말도 없었어요. 그냥 침묵이었어요.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어요. 아들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어요. 정말 절연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제 남편이 휴대폰을 들고 와서 놀라는 표정을 지었어요.
여보, 이거 좀 봐 줄래? 남편이 휴대폰을 저한테 내밀었어요. 거기에는 부동산 광고가 있었어요. 강남 아파트 매매 공지. 우리가 아들 부부를 위해 사줬던 신혼집 아파트였어요. 저희 이름으로 등기되어 있던 아파트가 매물로 올라와 있었어요.
제 가슴이 철렁했어요. 그게 뭐야? 저는 남편에게 물었어요. 혹시 아들이 아파트를 팔아버렸어? 남편이 말했어요. 아니, 내가 판 거야.
뭐? 내가 귀를 의심했어요. 당신이? 남편이 말했어요. 응, 내가 화나서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어. 그 아파트 우리 이름으로 되어 있잖아. 그래서 팔아버리라고 했어. 아들과 며느리한테 나가라고 하고 집을 팔아버리기로 했어. 괘씸해서.
제가 깜짝 놀랐어요. 당신 뭐 하는 거야? 그 아파트가 아들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이잖아. 아들이 절연한다고 해서 우리가 다 빼앗아야 돼? 남편이 말했어요. 여보, 저 아이들이 우리를 포기했잖아. 그럼 남이나 마찬가진데. 우리 이름으로 된 아파트에 모르는 남이 그것도 공짜로 산다는게 말이 되나?
순간 제 머리가 복잡했어요. 우리가 이래도 되는 건가? 아들이 절연을 선언했으니까 당연히 빼앗아야 하는 건가? 제 머리가 정리 되기도 전에 남편은 이미 계약을 하고 있었어요.
부동산 사장님한테 저희 사정을 얘기했더니 우리 이름으로 된 집이니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했어요. 다만 아들 부부한테 3개월 안에 집을 비우라고 전달해야 한대요. 그런데 저희는 아들에게 연락하는게 불편했어요. 결국 우리는 직접 연락하는 대신 내용증명을 보내기로 했어요. 이게 피차 얼굴 보지 않고 깔끔하다고 생각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어떻게 그렇게 냉졍했나 싶어요. 하지만 그만큼 저희가 받은 상처도 깊었던 거지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났어요. 집을 팔려고 하는 과정에서 제 마음은 계속 불안했어요. 이게 맞는 건가? 아들도 어린애 데리고 많이 힘들텐데. 마음이 아팠어요.
그렇게 또 일주일이 지났어요. 아들 부부한테 공식 통보가 나갔어요. 두 달 안에 집을 비워야 한다고. 그날 밤, 제 남편은 자책하는 표정이었어요. 남편이 말했어요. 여보, 내가 너무 했나? 우리가 이 정도까지 가야 하나?
제가 대답했어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먼저 우리가슴에 대못박은건 아들이잖아. 절연한다고 선언했을 때 걔네도 이정도는 감수했어야지
그날 밤, 저는 잠을 못 잤어요. 아들이 어떻게 나올지 생각만 했어요. 손주를 데리고 집을 비워야 하는데 어디로 갈까? 아마도 아내 쪽 부모님 집으로 갈 거 같았어요. 우리한테 버림받은 아들이 기댈 곳은 그쪽 밖에 없었거든요
한 주일이 더 지났어요. 아들이 집을 비우는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부동산에서 받았어요. 이사업체도 예약했다고 했어요. 이제 정말 끝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제 휴대폰이 울렸어요. 아들이었어요. 제 손이 떨렸어요. 엄마. 아들의 목소리가 목이 메어 있었어요. 제가 말했어요. 무슨일이야? 엄마, 저희 아파트 때문에 전화드렸어요.
엄마, 아빠가 아파트를 팔기로 했다는 거 알아요. 왜 팔려고 하시는 지도 알고요. 근데 엄마, 저 하나만 부탁드려요. 제 손이 떨리고 있었어요. 집에서 나가기 전에 한 번만 만나 주세요. 손주가 엄마, 아빠를 마지막이라도 보고 싶어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가슴이 철렁했어요. 마지막?
제가 말했어요. 알겠어. 와. 우리 집에 와.
전화를 끊고 난 뒤, 제 마음은 복잡했어요. 남편에게 말했어요. 당신 들었어? 아들이 온대. 그리고 손주가 우리를 보고 싶어 한대. 남편이 대답했어요. 그아파트는 이미 계약이 끝났잖아. 제가 말했어요. 몰라. 일단 만나서 얘기나 들어보자.
그주 주말에 아들 부부가 찾아왔어요. 현관 앞에서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주를 봤을 때, 제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어요. 아들의 얼굴은 지쳐 보였어요. 며느리는 손주를 꼭 안고 있었고, 손주는 엄마품에 기대 울고 있었어요.
들어와. 제가 약간 차갑게 말했어요. 아들은 현관에 그대로 서 있었어요. 신발을 벗지 않고 마치 오래 있을 생각이 없다는 듯이요.
엄마, 아버지 죄송합니다. 아들이 갑자기 무릎을 꿇었어요. 제 앞에서 그냥 무릎을 꿇었어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너, 뭐 하는 거야? 아들이 목소리가 떨리면서 계속 말했어요. 엄마, 제가 미쳤어요. 정말 미쳤어요.
아들이 무릎을 꿇은 채로 손으로 얼굴을 감쌌어요. 그 어깨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어요.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한테 혼나는 것처럼요.
제 남편도 무릎을 꿇은 아들을 보고 있었어요. 남편의 눈도 빨갛게 부어 있었어요.
제가 손으로 아들의 얼굴을 들었어요. 눈이 벌겋게 부어 있었어요. 엄마, 지난 몇 주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어요. 엄마 아빠는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 주셨는데.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지?
아들의 목소리가 더 커졌어요. 더 이상 억지르지 못하고 목이 메인 목소리로요.
엄마, 정말 죄송해요. 제가 정신을 못 차렸어요.
며느리도 그 뒤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요. 어머님 아버님... 죄송합니다. 며느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정말... 제가 잘못 했어요.
제 남편이 아들을 일으켰어요. 일어나. 일어나서 얘기해. 무릎 꿇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아들이 일어났지만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어요. 저는 거실 소파를 가리켰어요. 앉아. 며느리도 앉아. 손주도 내려놓고.
며느리가 손주를 소파에 내려놨어요. 손주는 낯선 환경이 불안한지 계속 울고 있었어요. 제 손주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였어요. 예전보다 많이 컸더라고요.
아들이 먼저 입을 열었어요. 엄마, 아빠. 제가... 변명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냥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날 이후로 정말 많이 생각했거든요.
제가 차분하게 물었어요. 그래, 말해봐. 왜 그랬는지.
며느리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어요. 제가... 제가 산후 우울증으로 너무 힘들어했어요. 아기를 낳고 나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밤낮으로 애가 울고,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계속 걱정만 됐어요. 혹시 아기한테 뭔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병에 걸리면 어떡하나...
며느리의 목소리가 떨렸어요. 인터넷을 찾아보니까 신생아 감염이 얼마나 위험한지, 면역력이 약해서 조금만 방심해도 큰일 날 수 있다는 글들만 보였어요. 그래서 점점 더 예민해졌어요. 누가 만지는 것도 무서웠고, 외출하는 것도 무서웠어요.
아들이 이어서 말했어요. 저도 그 당시에는 아내 말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의사 선생님도 조심하라고 했고, 인터넷에도 그런 정보가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까 제가 너무 지나쳤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가슴이 뭉클했어요. 적어도 솔직하게 말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며느리가 계속해서 말했어요. 그때는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산후우울증도 있었고, 불안감도 심했어요. 밤낮없이 아기만 보면서 세상이랑 단절된 것 같았어요. 제 엄마한테만 의지가 됐고, 다른 사람들은 다 멀게 느껴졌어요. 어머님, 아버님한테도요.
아들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어요. 엄마, 아빠. 저희가 정말 잘못했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어요. 엄마 아빠가 얼마나 상처받으셨을지...
특히 집을 팔겠다는 통보를 받고 나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아, 우리가 정말 큰 잘못을 했구나. 엄마 아빠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구나.
며느리가 훌쩍이며 말했어요. 어머님, 아버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너무 어리석었어요. 처음 키우는 아이라 불안한 건 맞지만, 그게 어머님 아버님께 상처 드려도 되는 이유는 아니잖아요. 늦었지만... 용서해 주세요.
제가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물었어요. 너희, 진심이야?
아들이 고개를 들었어요. 눈이 충혈되어 있었어요. 엄마, 진심이에요. 정말 진심이에요. 저희가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몰라요.
며느리도 말했어요. 지난 몇 주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어머님 아버님 생각하면 너무 죄송하고...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제 남편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어요. 그래도 이미 집은 계약했어. 새 주인이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고.
아들이 말했어요. 알아요. 그건 저희가 감수해야 할 몫이에요. 저희가 먼저 절연을 선언했으니까요. 다만... 엄마 아빠랑 관계만은... 회복할 수 있다면...
그때 손주가 갑자기 제 쪽을 보면서 손을 내밀었어요. 할미... 아기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어요.
제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어요. 제 남편도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돌렸어요.
제가 손을 뻗어 손주를 안았어요. 이번엔 아무도 말리지 않았어요. 손주의 체온이 느껴졌어요. 따뜻했어요.
제 남편이 옆에 앉아 손주의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아들과 며느리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요.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제가 말했어요. 집 문제는... 이미 계약이 진행 중이야. 그건 어쩔 수 없어.
아들이 말했어요. 알아요, 엄마. 저희가 잘못한 거니까요. 전세로 구할게요. 작은 집이라도.
제 남편이 한숨을 쉬었어요. 그리고 말했어요. 부동산한테 전화해 봐야겠어. 계약금만 물고 취소할 수 있는지.
제가 놀라서 남편을 봤어요. 당신...?
남편이 말했어요. 손주가 할아버지를 찾는데. 우리가 뭐 하는 거야. 우리도 늙어가는데 손주랑 이렇게 멀어져 살 수는 없잖아.
아들이 벌떡 일어났어요. 아버지...! 정말요?
남편이 손을 저었어요. 확답은 못 해. 계약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봐야지. 그리고 너희가 정말 달라졌는지도 지켜봐야 하고.
어머님, 아버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정말 달라질게요. 다시는 그런 실수 안 할게요.
제가 말했어요. 이제부터 우리도 손주를 자주 봐야 해. 그리고 명절 때도 와. 우리가 밥 차려 놓고 기다릴게.
며느리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어요. 네, 어머님. 제가 준비 도와드릴게요. 이제부터 진짜 가족처럼 지낼게요.
그날 저녁, 우리는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었어요. 며느리가 주방에서 저를 도왔고, 남편은 손주를 안고 거실을 돌아다녔어요.
밥을 먹으면서 며느리가 말했어요. 어머님, 제가 산후우울증 상담을 받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제 상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는데, 병원에 가니까 확실히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래, 잘했어.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지. 제가 말했어요.
며느리가 계속 말했어요. 그리고 깨달았어요. 제가 너무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아기한테 조금이라도 해가 될까 봐 모든 걸 차단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쳤네요.
남편이 말했어요. 우리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야. 첫 아이니까 긴장할 수 있지. 하지만 너무 극단적으로 가면 안 돼. 적당한 선이 있는 거야.
그날 밤, 아들 가족이 돌아간 후 남편과 저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어요.
남편이 말했어요. 여보, 우리도 좀 지나쳤나?
제가 물었어요. 뭐가?
집을 파는 게 말이야. 그건 좀... 너무 극단적이었던 것 같아.
맞아. 우리도 감정적으로 대응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도 너무 상처받았잖아.
남편이 말했어요. 그래도 손주 얼굴 보니까... 다 풀리네. 우리도 인생 얼마 안 남았는데 가족끼리 이러고 살 순 없잖아.
다음 날, 남편은 부동산에 전화를 했어요. 운 좋게도 아직 계약금만 주고받은 상태였어요. 위약금을 물면 취소할 수 있다고 했어요.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남편은 취소하기로 했어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집 취소했다. 계속 살아도 돼.
전화 너머로 아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어요. 감사합니다, 아버지.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 후로 상황이 많이 달라졌어요. 며느리가 먼저 연락을 하기 시작했어요. 어머님, 아버님 이번 주말에 시간 되세요? 저희가 내려갈게요.
명절이 됐을 때, 이번엔 며느리가 직접 음식 준비를 도왔어요. 저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가르쳐줬어요.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그래, 잘하네.
며느리가 웃으면서 말했어요. 어머님, 제가 요리를 잘 못해서요. 많이 가르쳐 주세요.
손주도 우리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하면서 달려왔어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제 가슴이 벅찼어요.
어느 날, 며느리가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어머님, 제가 직장 복귀를 좀 미뤘어요. 아이랑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요. 그리고 어머님 아버님도 자주 뵙고 싶고요.
그래, 좋은 결정이야. 아이가 크는 건 순간이거든. 제가 며느리의 손을 잡으며 말했어요.
며느리의 눈에 눈물이 맺혔어요. 어머님, 정말 죄송했어요. 그리고 감사해요. 저 같은 며느리를 용서해 주셔서.
제가 말했어요. 다 지나간 일이야. 이제는 진짜 가족으로 지내자.
그날 밤, 제 남편에게 말했어요. 여보, 우리 잘한 거 맞지?
남편이 웃으면서 말했어요. 뭐가?
용서한 거 말야. 다시 기회를 준 거.
남편이 제 손을 잡았어요. 그럼. 잘한 거지. 가족인데 뭐.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중요한 건 깨닫고 고치는 거잖아.
그렇게 시간이 흘렀어요. 이제 손주는 4살이 됐어요. 주말마다 우리 집에 놀러 와요. 할머니, 오늘 뭐 해 줄 거예요? 손주가 물어요.
뭐 먹고 싶은데? 제가 물으면 손주가 웃으면서 대답해요. 할머니 잡채! 할머니가 해 주는 게 제일 맛있어요!
할머니, 나 다음 주에 유치원에서 발표회 해요. 올 거죠?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가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을게. 제가 대답했어요.
손주가 환하게 웃었어요. 그 웃음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우리가 용서를 선택하길 정말 잘했구나.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계신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가족이라는 건 완벽하지 않아요. 실수도 하고, 서로에게 상처도 줘요.
저희도 많이 힘들었어요. 손주를 못 만지게 했을 때, 절연을 선언했을 때, 그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돌아보니 그 시간들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아요.
며느리도 변했고, 아들도 변했고, 저희 부부도 변했어요.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됐거든요.
혹시 여러분 중에도 가족과의 관계가 어려운 분이 계신가요? 포기하지 마세요. 진심은 통해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심으로 다가가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진심으로 용서한다면 관계는 회복될 수 있어요.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 가족과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