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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SwtAdpnvUKQ&t=6s
"엄마, 진짜 이기적이다. 나 지금 애 둘 키우면서 임신까지 했는데, 엄마는 자기 건강만 생각해? 가족이 이럴 때 서로 돕는 거 아니야?"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35세 딸 최은서의 목소리는 원망으로 가득했습니다. 66세의 박정희 씨는 딸의 말을 들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은서야, 엄마도 사람이야. 엄마도 아프고 힘들 수 있어..."
"그래서 뭐? 엄마 아프면 나는 어떡하라고? 애들은? 엄마가 나 키울 때도 할머니 도움 받았잖아. 이제 내 차례인 거지. 당연한 거 아니야?"
당연하다는 말. 그 한마디가 정희 씨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정말 당연한 걸까요? 66세의 나이에도 딸의 집에서 가사도우미처럼 살아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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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박정희 씨는 40년 가까이 중학교 국어 교사로 일했습니다. 퇴직을 앞두고 제2의 인생을 계획하고 있었죠. 박정희씨의 하나뿐인 딸 최은서 씨는 35세로 약사로 일하다가 결혼 후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습니다.
정희 씨의 남편은 10년 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생전에 모아둔 퇴직금과 보험금, 그리고 정희 씨 자신의 교사 연금으로 경제적으로는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었죠.
딸 은서는 대학병원 약사로 일하다가 IT기업에 다니는 남편 김태준씨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결혼 당시에는 맞벌이를 할 계획이었지만, 첫째를 임신하면서 딸은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엄마, 아이 키우면서 일하기 너무 힘들어. 그리고 남편 월급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어."
정희 씨는 딸의 결정을 존중했습니다. 자신도 자식을 키우면서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엄마, 나 입덧이 너무 심해서 아무것도 못 먹겠어. 엄마가 좀 와서 해줄 수 있어?"
첫째가진 은서는 임신 초기였습니다. 정희 씨는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딸이 힘들다는데 엄마가 안 갈 수 있나요?
일주일 정도만 도와주고 오겠다던 말은 한 달이 되었고, 한 달은 세 달이 되었습니다.
"엄마, 조금만 더 있다가 가. 아직 몸이 힘들어."
정희 씨는 당시 아직 교사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업무가 밀려 있었고, 교장 선생님께서는 넌지시 학교 일에 집중해 달라는 말씀을 하셨죠.
"정희 선생님, 요즘 수업 준비가 예전 같지 않으세요. 뭔가 힘든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죄송합니다, 교장 선생님. 딸이 임신해서 도와주느라..."
"따님도 이제 성인이시잖아요. 요즘은 산후조리원도 있고, 남편분도 계시는데..."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틀린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정희 씨는 딸이 힘들다는데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정희 씨는 딸의 출산 전후로 휴직을 내야 했습니다. 동료 교사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말이죠.
첫째가 태어나고 백일이 지났을 때, 정희 씨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는 사위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고, 딸도 어느 정도 회복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엄마, 애가 이유식을 안 먹어. 엄마가 한번 만들어봐 줄래?"
"엄마, 애가 밤에 안 자서 미치겠어. 며칠만 와서 봐줄 수 있어?"
"엄마, 남편이 출장 가는데 혼자 애 보기 힘들어. 와줄 수 있지?"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가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점점 횟수가 늘어났죠.
퇴직을 앞둔 마지막 학기, 정희 씨는 거의 매주 금요일 수업이 끝나면 딸의 집으로 달려가 월요일 아침에 돌아오는 생활을 했습니다.
"엄마, 주말에 집에 있으면 뭐 해? 손주 보는 게 더 행복하지 않아?"
딸의 말에 정희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정희 씨가 퇴직을 했습니다. 동료들은 "이제 편히 쉬시면서 하고 싶은 일 하세요"라고 축하해 주었습니다.
정희 씨도 계획이 있었습니다. 미뤄뒀던 여행도 가고, 취미 생활도 하고, 독서 모임에도 나가고 싶었죠.
하지만 퇴직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이제 퇴직했으니까 시간 많이 나지? 나 둘째 가질 건데, 엄마가 좀 도와줄 수 있어?"
"은서야, 엄마도 이제 좀 쉬고 싶은데..."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는 이미 퇴직해서 할 일도 없잖아. 나는 지금 애 키우면서 죽을 맛인데, 엄마는 편하게 집에서 쉬겠다고?"
여러분, 이 말을 들은 정희 씨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40년을 교직에서 일하고 퇴직한 사람에게 '할 일도 없다'는 말. 그 말이 얼마나 가슴 아픈지 아시나요?
하지만 정희 씨는 또 참았습니다.
딸이 둘째를 임신했습니다. 그리고 정희 씨는 다시 딸의 집으로 들어갔죠.
이번에는 아예 몇 달을 머물 계획이었습니다. 임신 중기부터 출산 후까지 말이죠.
"엄마, 요즘 혈압이 높아서 안정을 취해야 한데. 첫째도 봐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엄마가 아니면 안 돼."
정희 씨는 딸의 집에서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식사 준비, 첫째 깨워서 씻기고 유치원 보내기, 설거지, 빨래, 청소, 점심 준비, 유치원 마치고 돌아온 손자 돌보기, 저녁 준비, 손자 재우기...
밤 11시가 되어서야 침대에 누울 수 있었습니다.
사위는 퇴근하면 소파에 앉아 휴대폰만 봤습니다.
"장모님,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고생 많았다는 말뿐, 설거지 한 번 거들지 않았습니다.
딸은 임신 중이라며 소파에 누워 TV를 보거나 휴대폰을 했죠.
"엄마, 나 임신 중이라 피곤해. 좀 쉬어야 돼."
정희 씨는 임신한 딸이니까, 당연히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내일 친구들이랑 약속 있어서 나갔다 올게. 준이 좀 봐줘."
"은서야, 너 몸도 무거운데 밖에 나가도 돼?"
"엄마, 나 임신한 거지 병에 걸린 거 아니야. 답답하게 어떻게 맨날 집에만 있어? 친구들도 만나야지."
다음 날, 딸은 오전 11시에 나가 밤 9시에 들어왔습니다. 백화점 쇼핑백을 여러 개 들고 말이죠.
"오늘 재밌었다! 엄마, 준이는 잘 놀았어?"
정희 씨는 그날 하루 종일 다섯 살 손자와 씨름했습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화장실도 마음 편히 못 갔죠.
그런데 딸은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왔습니다.
"은서야, 너 백화점 갔다 왔어?"
"응, 왜? 엄마, 나도 스트레스 풀어야 하잖아.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데."
여러분, 이 말이 이해가 되나요?
어느 날 저녁, 딸이 정희 씨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내일 봉사 활동 가야 해."
"봉사 활동? 너 임신 중인데?"
"응, 임산부 봉사 프로그램이 있어. 병원에서 추천해줬어. 임산부들끼리 모여서 아기 옷 만들어서 기부하는 거야. 하루 종일 걸릴 것 같아."
"그래? 그런 좋은 프로그램이 있구나."
다음 날, 딸은 아침 일찍 나갔습니다. 정희 씨는 하루 종일 손자를 돌봤죠.
저녁 7시가 되었지만 딸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밤 9시가 되어서야 딸이 돌아왔습니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로.
"은서야, 봉사 활동 어땠어? 왜 이렇게 늦었어?"
"응... 좋았어. 엄마, 피곤해서 먼저 들어갈게."
다음 날 아침, 정희 씨는 딸의 가방에서 뮤지컬 티켓을 발견했습니다. 어제 날짜의 티켓이었죠. 그것도 두 장.
정희 씨는 딸을 불렀습니다.
"은서야, 이거 뭐니?"
딸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아... 그게..."
"너 어제 봉사 활동 간 거 아니지? 뮤지컬 보러 간거잖아."
"엄마, 그게... 미안해. 친구랑 스트레스 풀려고... 솔직히 말하면 엄마가 또 잔소리할 것 같아서..."
"은서야, 그게 문제가 아니야. 너가 쉬고 싶어하면 엄만 얼마든지 그렇게 해줄 수 있어. 근데 봉사 활동이라고 거짓말하면서까지 나가야 했어? 엄마를 뭐로 보는 거야?"
"엄마,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 나도 답답해서 그런 거잖아. 엄마는 이미 인생 다 산 사람이니까 집에서 애나 보면 되지만, 나는 아직 젊잖아. 친구도 만나야 하고, 문화생활도 해야 하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정희 씨의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것 같았습니다.
'이미 인생 다 산 사람.'
66세면 인생 다 산 건가요?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은데?
그 사건 이후로도 정희 씨는 딸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떠날 수가 없었죠. 딸이 임신 중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정희 씨의 몸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무릎에서 소리가 났죠.
손목도 아팠습니다. 매일 설거지하고 걸레질하고 빨래하다 보니 손목 터널 증후군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허리도 좋지 않았습니다. 손자를 안아 올리고 내릴 때마다 허리가 삐끗했죠.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혈압이 오르기 시작한 겁니다.
정희 씨는 평생 혈압이 정상이었습니다. 건강 검진에서도 늘 좋은 결과를 받았죠.
하지만 딸의 집에서 3개월을 지낸 어느 날,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꼈습니다.
"엄마, 왜 그래? 얼굴이 새하얗네."
"어지럽고 머리가 아파..."
사위가 혈압계를 가져왔습니다. 180/110. 고혈압 위기 수준이었습니다.
"장모님, 이거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엄마, 괜찮아? 어떡해..."
딸은 걱정하는 척했지만, 정작 병원에 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위도 마찬가지였죠.
"일단 오늘은 푹 쉬세요. 내일 더 안좋아지시면 병원 가시고..."
다음 날, 정희 씨는 혼자 병원에 갔습니다. 딸은 몸이 무거워서 함께 갈 수 없다고 했고, 사위는 회사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어머님,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죠?"
"네... 요즘 딸 집에서 지내면서..."
"혈압이 이 정도면 뇌졸중 위험이 있습니다. 당장 스트레스 환경에서 벗어나셔야 해요. 약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딸이 임신 중이라..."
"따님이 임신 중이시면 따님이 조심하셔야죠. 어머님이 쓰러지시면 따님은 어떡하시려고요? 어머님 건강이 최우선입니다."
의사의 말이 정희 씨의 귀에 울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정희 씨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은서야, 엄마 혈압이 너무 높대. 의사 선생님이 스트레스를 많아 받아서 그렇다고 하시더라. 엄마 이제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러자 딸이 발끈했습니다.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나 임신 중인데 혼자 어떻게 해? 엄마 혈압은 약 먹으면 되잖아. 나는 약도 못 먹어. 태아한테 안 좋으니까."
"은서야, 엄마도 사람이야. 엄마도 아프고..."
"엄마, 지금 딸 뱃속에 엄마 손주가 있어. 손주보다 엄마가 더 중요해?"
여러분, 이 말을 들은 정희 씨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정희 씨는 그래도 참았습니다. 딸을 위해서, 아니 뱃속의 손주를 위해서.
하지만 한 달 후,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엄마, 나 내일 정기 검진 가야 해. 하루 종일 걸릴 것 같아. 병원에서 여러 검사 받아야 한대."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
다음 날, 딸은 아침 일찍 나갔습니다.
정희 씨는 혈압약을 먹고 하루를 버텼습니다. 손자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저녁을 준비했죠.
저녁 6시가 되었지만 딸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7시, 8시, 9시... 시간이 흘렀지만 딸은 연락이 없었습니다.
정희 씨는 걱정이 되어 산부인과에 전화를 했습니다.
"여보세요, 혹시 오늘 최은서 씨 검진 있었나요?"
"최은서 씨요? 오늘 예약이 없으신데요. 다음 주 수요일에 예약되어 있으시네요."
전화를 끊은 정희 씨의 손이 떨렸습니다.
밤 10시, 딸이 돌아왔습니다. 쇼핑백을 여러 개 들고.
"엄마, 미안 늦었어. 검진 받고 나니까 배고파서 외식하고 왔어."
정희 씨는 조용히 물었습니다.
"은서야, 오늘 누구랑 같이 갔어?"
"응? 혼자 갔지."
"혼자서 쇼핑백을 이렇게 많이?"
"아... 그게... 병원 근처에 백화점이 있어서..."
"은서야, 엄마가 병원에 전화해 봤어. 너 오늘 검진 없었대."
딸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엄마... 미안해... 사실 친구들이랑..."
"친구들이랑 어디 갔는데?"
"스파 리조트... 원래 취소하려고 했는데, 친구들이 계속 오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어... 미안해, 엄마."
그 순간, 정희 씨의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임신 중이라며 집에서 쉬어야 한다고 했던 딸. 무거운 것도 못 들고, 오래 걷지도 못한다던 딸. 그 딸이 제게는 거짓말을 하고 스파 리조트에 다녀온 겁니다.
"은서야, 너 정말..."
정희 씨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엄마, 진정해. 미안하다니까. 나도 스트레스 풀어야..."
"스트레스? 엄마는? 엄마는 스트레스 안 받아?"
정희 씨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평생 딸에게 큰소리 한 번 낸 적 없는 정희 씨가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엄마는 혈압이 180까지 올라가서 쓰러질 것 같아도 참고, 무릎 아파도 참고, 손목 아파도 참고, 하루에 3시간밖에 못 자도 참았어! 왜? 너 임신했다고, 네가 힘들다고 하니까! 근데 너는 친구들이랑 스파 리조트를 갔다 왔다고?"
"엄마, 목소리 좀 낮춰. 준이 깰라..."
"지금 그게 중요해? 은서야, 엄마는 네게 뭐야? 가정부야? 보모야? 엄마도 사람이야. 엄마도 아프고 힘들어!"
사위가 나왔습니다.
"장모님, 진정하세요. 은서가 잘못했죠. 하지만 장모님도 너무 흥분하시면..."
"사위 자네도 마찬가지야. 퇴근하면 소파에 앉아서 휴대폰만 보고, 설거지 한 번 안 하고, 애 한 번 안 봐주고. 응?"
"장모님, 그게..."
"됐어. 엄마 집에 갈 거야. 지금 당장."
정희 씨는 방으로 들어가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지금 뭐 하는 거야!"
딸이 울면서 정희 씨를 붙잡았습니다.
"엄마가 가면 나는 어떡해! 애는? 뱃속의 애는?"
"네가 알아서 해. 너 이제 35살이야. 애 둘 엄마고. 네가 알아서 해야지."
"엄마, 진짜 이기적이다! 나 지금 애 키우면서 임신까지 했는데, 엄마는 자기 건강만 생각해? 가족이 이럴 때 서로 돕는 거 아니야?"
"돕는 거? 이게 돕는 거야? 은서야, 엄마는 가정부가 아니야!"
"가정부? 엄마가 손주 보는 게 가정부야? 무슨말을 그렇게 해? 다른 할머니들은 손주 보는 게 행복하다는데, 우리 엄마는 아니네!"
"행복? 그래, 처음에는 행복했어. 근데 네가 엄마를 뭐로 대하는지 알아? 엄마가 해주는 모든 게 당연한 줄 알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어. 대신 거짓말이나 하고!"
"내가 좀 놀다온게 엄만 그렇게 배가 아파? 엄마는 퇴직했으니까 남은 인생 계속 놀기만 할꺼 아니야? 지금 좀 고생하는 게 그렇게 억울해?"
여러분, 딸의 이 말을 들은 정희 씨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정희 씨는 딸을 조용히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은서야, 엄마가 퇴직했다고 해서 할 일이 없는 게 아니야. 엄마도 하고 싶은 게 많아. 여행도 가고 싶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취미 생활도 하고 싶어."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되잖아. 지금은 내가 급한 거고."
"나중에? 은서야, 엄마가 몇 살인 줄 아니? 66살이야. 나중이 얼마나 남았을 것 같아?"
"엄마, 그런 말 하지 마. 엄마 건강하잖아."
"건강해? 혈압이 180인데? 무릎이 아파서 계단도 못 올라가는데? 손목이 아파서 병원 다녀야 하는데?"
"그래도 나보다는 괜찮잖아. 나는 임신 중이라고..."
정희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은서야, 엄마가 널 잘못키웠다"
"뭐가?"
"엄마가 너한테 뭐든지 다 해줬어. 네가 힘들까 봐, 네가 고생할까 봐. 그러다 보니 너는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됐어."
"엄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은서야, 너 약사 자격증 있지? 일 다시 시작해 봐.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남편이랑 역할 분담하고, 네 인생을 네가 살아봐."
"지금 무슨 소리야? 내가 일하면 애들은 누가 봐?"
"어린이집, 유치원 있잖아. 없으면 베이비시터 구하고. 돈 들겠지만, 네가 일하면서 벌면 돼."
"엄마가 봐주면 돈도 안 들고 좋잖아."
"은서야, 엄마는 네 무료 베이비시터가 아니야."
그 말에 딸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엄마 너무해! 다른 할머니들은 다 손주 봐주는데!"
"은서야 그건 '도와주는' 거야. '당연히 해야 하는' 게 아니야. 너 한 번이라도 엄마한테 고맙다고 말한 적 있어?"
딸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은서야, 엄마는 너를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해. 그래서 이제 놓아줄 거야. 네가 혼자 설 수 있게."
정희 씨는 짐을 다 싸고 집을 나섰습니다.
정희 씨가 집을 나간 다음 날 아침, 은서는 눈을 떴습니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 평소 같았으면 엄마가 이미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이었죠.
하지만 집 안은 조용했습니다.
"엄마?"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은서는 어젯밤 일이 떠올랐습니다.
침실에서 들려오는 다섯 살 준이의 울음소리.
"엄마! 배고파!"
은서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습니다. 임신 7개월의 배는 생각보다 더 무거웠습니다.
주방에 가니 설거지가 쌓여 있었습니다. 어젯밤 엄마와 싸우느라 그냥 둔 채 잤던 겁니다.
"엄마, 밥 줘!"
"알았어, 준아. 조금만 기다려."
은서는 냉장고를 열었습니다. 반찬이 몇 가지 있었지만, 밥을 해야 했습니다.
밥솥에 쌀을 씻어 넣고 물을 부었습니다. 평소에 엄마가 하는 걸 본 대로 했지만, 물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밥이 되는 동안 준이를 씻기고 옷을 입혔습니다. 평소에는 엄마가 다 해줬는데, 직접 하니 시간이 두 배로 걸렸습니다.
"엄마, 이 옷 싫어!"
"준아, 그냥 이것 좀 입자. 응?"
"싫어! 할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옷 입혀줬는데!"
은서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밥이 다 됐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밥이 질척거렸습니다. 물을 너무 많이 넣은 것 같았습니다.
"이거라도 먹어야지..."
준이와 함께 아침을 먹는데, 남편이 일어났습니다.
"여보, 아침 준비됐어?"
"응... 밥이 좀 질척한데 먹을 만해."
남편은 밥을 한 숟가락 떠먹더니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이거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데... 그냥 빵 먹고 갈게."
은서의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니 설거지가 더 쌓였습니다. 어젯밤 것과 오늘 아침 것까지.
은서는 싱크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10분도 안 돼서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이걸 매일 했구나...'
첫 번째 주가 지나갔습니다.
은서는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준이를 깨우고, 씻기고, 밥을 먹이고, 유치원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집안일을 시작했습니다. 설거지, 빨래, 청소, 점심 준비, 준이 유치원 마치면 데리러 가고, 놀아주고, 저녁 준비, 씻기고, 재우고...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습니다.
임신 중이라 몸은 무겁고, 배는 당기고, 허리는 아프고...
'엄마는 이걸 어떻게 했지?'
남편은 퇴근하면 소파에만 앉아 있었습니다.
"여보, 설거지 좀 도와줄래?"
"여보, 나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해서... 미안."
은서는 혼자 설거지를 해야했습니다.
그날 밤, 은서는 침대에 누워 울었습니다.
'엄마... 미안해...'
2주가 지났습니다.
은서는 손목이 아파서 병원에 갔습니다. 손목터널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임신 중이시라 약 처방은 어렵고요, 집안일을 줄이셔야 해요."
"집안일을 줄이다니... 어떻게요?"
"가족 분들께 도움을 요청하시거나, 아니면 도우미를 쓰시는 게 좋겠습니다."
은서는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내가 손목이 아파서 병원 다녀왔어. 의사가 집안일을 줄이래. 당신이 좀 도와줄 수 있어?"
"여보, 나도 회사 일 바쁜거 알잖아... 장모님한테 다시 부탁해 보는 게 어때?"
"엄마는... 엄마는 안 올 거야."
"왜? 전화해 봐. 죄송하다고 하고."
"내가...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어..."
그날 밤, 은서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나야."
"은서야."
"엄마, 미안해. 돌아와 줘. 나 혼자서는 안 돼."
하지만 정희 씨는 단호했습니다.
"은서야, 네가 할 수 있어. 남편이랑 상의해 봐. 어린이집도 알아보고."
"엄마... 제발..."
전화가 끊겼습니다.
은서는 그날 밤 한참을 울었습니다.
한 달이 지났습니다.
은서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역할 분담을 해야 할 것 같아. 나 혼자는 정말 못 하겠어."
"역할 분담? 나도 회사 다니는데 어떻게 집안일까지 해?"
"나는? 나는 임신 중인데 집안일하고 애 돌보는 건 괜찮고?"
"그건... 여자들이 원래 잘하는 일이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은서는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건 엄마가 제일 잘하는 일이잖아."
자신이 엄마에게 했던 말이었습니다.
"여보, 잘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야. 나 혼자서는 할 수 없어."
"그럼 장모님한테..."
"엄마는 안 와! 우리가 해야 해!"
은서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편에게 소리를 지른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놀란 표정으로 은서를 바라봤습니다.
"여보, 우리 부부잖아. 이 집은 우리 집이고, 준이는 우리 아들이야. 왜 엄마가 와서 다 해줘야 해? 엄마도 예순 여섯살이야. 엄마도 아프고 힘들어."
남편은 처음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
그날부터 남편은 조금씩 집안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달이 지났습니다.
은서는 준이를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종일반으로요.
처음에는 준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집에 있는데 애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괜찮을까?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니 조금 숨통이 트였습니다. 오전에는 집안일을 하고, 오후에는 잠깐 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은서는 바닥을 걸레질하다가 주저앉았습니다. 배가 너무 무거워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으윽..."
한참을 바닥에 앉아 있다가 겨우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엄마는 이걸 매일 했구나... 예순 여섯살의 나이에...'
은서는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 달이 되었습니다.
은서는 더 이상 엄마에게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죠. 엄마에게 문자를 하려고 창을 연 순간 그동안 엄마에게 보냈던 원망 섞인 문자들이 보였습니다.
'엄마 때문에 나 너무 힘들어.'
'엄마는 손주가 안 중요해?'
자신이 보냈던 문자들을 보며 은서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은서는 새로운 문자를 썼습니다.
"엄마, 미안해. 그때 내가 너무 심했어.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조금 알 것 같아. 엄마, 건강해?"
하지만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문자로 사과하는 게 맞나?'
은서는 문자를 지우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은서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습니다.
"너 많이 야위었다. 혼자 애 보느라 힘들지?"
"응... 정말 힘들어. 엄마가 없으니까 너무 힘들어."
"어머니 어디 가셨어?"
"그게... 내가 엄마한테 심하게 말해서 엄마가 집에 가셨어."
은서는 친구에게 그동안의 일을 얘기했습니다.
친구는 은서의 이야기를 듣더니 한숨을 쉬었습니다.
"은서야, 너 정말 심했다. 어머니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나도 알아..."
"은서야, 우리도 엄마야. 우리 딸이 커서 나한테 그렇게 한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서운할까."
은서는 눈물이 났습니다.
네 번째 달, 은서는 둘째를 낳았습니다. 건강한 딸이었습니다.
산후조리원에서 2주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는 아직 내가 돌봐야할 준이가 있었습니다.
첫날 밤, 은서는 잠을 한숨도 못 잤습니다.
둘째는 밤새 울었고, 준이는 악몽을 꾸었다며 울었습니다.
남편은 내일 출근해야 한다며 다른 방에서 잤습니다.
은서는 혼자 두 아이를 돌봤습니다.
새벽 4시, 은서는 싱크대 앞에 서서 우유병을 씻으며 울었습니다.
'엄마... 엄마는 이걸 혼자 했구나... 나 때문에...'
그때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예순여섯의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 우유를 타고, 아기를 안고, 큰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엄마... 미안해... 진짜 미안해...'
다섯 번째 달이었습니다.
은서는 약국에 파트타임으로 복직했습니다. 주 3일, 하루 4시간씩.
아이들은 어린이집과 육아도우미에게 맡겼습니다.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일을 시작하니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약사로서 일하는 시간이 그리웠습니다.
하지만 퇴근하면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날, 은서는 약국에서 나이 드신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선생님, 이 약은 어떻게 먹어야 하나요?"
"하루 세 번, 식후 30분에 드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요즘 손주 돌보느라 약 먹는 것도 잊어버려요."
"손주를 돌보세요?"
"네, 딸이 일한다고 해서요. 저야 뭐 할 일도 없고, 손주들 예쁘니까 돌봐주죠. 그래도 이제 나이가 드니까 힘들긴 하네요."
할머니는 웃으며 말했지만, 은서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피곤함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 건강 조심하세요."
"네, 고맙습니다."
할머니가 나가고 나서, 은서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엄마도... 엄마도 저렇게 힘들었겠구나...'
여섯 번째 달, 은서는 결심했습니다.
엄마에게 가서 제대로 사과하기로요.
은서는 두 아이를 데리고 엄마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엄마..."
엄마는 은서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은서야..."
"엄마... 들어가도 돼?"
"응... 들어와."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엄마의 집은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여행 책자와 수영복이 놓여 있었습니다.
"엄마, 여행 가려고?"
"응... 다음 주에 친구들이랑 제주도 가기로 했어."
은서의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엄마도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엄마..."
"왜 그래, 은서야?"
은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엄마 앞에 무릎을 꿇고 울었습니다.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은서야..."
"엄마, 나... 정말 반성 많이했어... 엄마한테 너무 심했어...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야 알겠어..."
은서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나... 혼자 해보니까 알겠어... 애 둘 키우면서 집안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나이도 있는 엄마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젊은데도 이렇게 힘든데..."
"은서야..."
은서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습니다.
정희 씨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엄마, 나 정말 이기적이었어... 엄마도 사람인데... 엄마도 아프고 힘든데... 나는 당연하게 생각했어... 미안해, 엄마... 정말 미안해..."
정희 씨는 딸을 안아 주었습니다.
"은서야... 괜찮아... 이제 알았으면 된 거야..."
모녀는 한참을 안고 울었습니다.
울음이 그치고 나서, 은서는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진짜 힘들었어."
"응..."
"애 둘 키우면서 일하는 게... 정말 전쟁 같았어. 매일매일이 힘들었어."
"그랬구나..."
"그런데 엄마는... 엄마는 이걸 혼자 했잖아.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 나 키우면서 일하고... 그것도 40년을 했잖아..."
은서는 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엄마, 나 이제야 알겠어...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나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걸 희생했는지..."
"은서야..."
"그런데 나는... 나는 그 사랑을 당연하게 받기만 했어...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리고 엄마가 도와주러 왔을 때도... 엄마를 가정부처럼 대했어..."
은서는 엄마의 손을 잡았습니다.
"엄마, 이제야 깨달았어. 엄마가 나한테 해준 모든 게 당연한 게 아니었어. 엄마의 희생이었어."
정희 씨는 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은서야, 엄마는 네가 힘들까 봐 도와주고 싶었어. 그런데 엄마가 너무 많이 도와준 게 잘못이었나 봐. 네가 혼자 설 기회를 빼앗은 거야."
"아니야, 엄마. 엄마 잘못이 아니야. 내가 잘못한 거야. 나는 계속 받기만 했어. 감사할 줄 몰랐어."
모녀는 다시 한번 안았습니다.
여러분, 정희 씨는 지금 딸의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딸의 집에 놀러 갑니다. 손주들도 보고, 딸도 만나죠. 하지만 이제는 '도와주러' 가는 게 아니라 '놀러' 갑니다.
집안일은 딸과 사위가 분담해서 하고, 아이들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딸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삶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정희 씨는 요즘 친구들과 독서 모임을 하고, 수영도 배우고, 미뤄뒀던 유럽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은서야, 엄마는 이제 엄마 인생을 살 거야. 너도 네 인생을 살아. 우리 서로 의지하되 기대지는 말자."
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응, 엄마. 그리고 엄마... 진짜 고마워. 사랑해."
"나도 사랑한다, 은서야."
여러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부모라고 해서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식이라고 해서 부모의 도움을 당연하게 받을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존중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요?
박정희 씨의 이야기는 많은 분들에게 울림을 주었습니다.
66세에 딸에게서 독립한 엄마. 35세에 엄마로부터 독립한 딸.
두 사람 모두 이제야 진정한 독립을 이룬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신가요? 혹시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오늘 이 이야기가 여러분께 작은 울림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