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오디오북 풀버전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AUYajqoDHmA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제가 직접 겪은 일입니다. 67살의 나이에 며느리한테 제대로 당하고, 또 제대로 복수한 이야기예요. 지금 이 순간에도 저는 태평양 한가운데를 떠다니는 크루즈 선상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믿기시나요? 제 인생에서 이런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어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작은 관심이 저 같은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된답니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요?
2024년 3월 15일, 그날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토요일 오후였는데, 저는 거실에서 남편이랑 같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어요. 남편 박철수 씨는 올해 예순아홉인데, 퇴직하고 나서는 매일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평생 살림만 하다가 나이 들어서 할 게 별로 없더라고요.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아들 민준이와 며느리 유진이가 왔더라고요. 주말마다 가끔씩 저희 집에 들르긴 했지만, 그날따라 며느리 유진이의 표정이 밝아 보였어요. 보통은 의무감에 마지못해 오는 얼굴이었는데 말이죠.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세요!"
유진이가 평소보다 목소리도 크고 밝게 인사했어요. 저는 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며느리가 이렇게 기분 좋게 인사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거든요.
"응, 왔어? 밥은 먹었니?"
제가 물으니까 아들 민준이가 대답했어요.
"네, 어머니. 저희 먹고 왔어요. 근데 오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일부러 왔어요."
드릴 말씀이라니요? 저는 남편 얼굴을 봤어요. 남편도 저를 보며 눈빛을 교환했죠. 혹시 또 돈 달라는 얘기인가 싶었거든요. 아들이 사업을 한다고 지난 5년간 저희한테 빌려간 돈만 해도 3천만 원이 넘었어요. 한 푼도 갚은 적 없으면서 말이죠.
"뭔데? 말해봐."
남편이 텔레비전을 끄고 아들을 봤어요. 아들은 며느리 눈치를 보더니 며느리가 나서서 말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사실은요. 제가 그동안 생각을 많이 했어요."
유진이가 소파에 앉으면서 말을 이었어요.
"결혼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잖아요. 그동안 어머님 아버님께서 저희 많이 도와주셨는데, 저는 뭐 하나 제대로 해드린 게 없는 것 같아서요. 정말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저는 귀를 의심했어요. 며느리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평소에는 저희가 뭘 해줘도 당연하다는 듯이 받기만 했는데 말이죠. 제가 손주들 봐주는 것도, 반찬 해다 주는 것도, 명절 때 용돈 주는 것도 전부 당연하게 생각하던 며느리였어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남편이 되물었어요. 저도 궁금했죠.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며느리가 이런 말을 하는지 말이에요.
"아버님, 사실은요. 제가 올해 회사에서 성과급을 받았어요. 생각보다 많이 받아서요. 그래서 민준이랑 의논했어요. 이번 기회에 어머님 아버님께 효도 좀 하자고요."
효도요? 저는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며느리 입에서 효도라는 단어가 나올 줄이야. 평소에는 저희 집에 와서도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밥상도 안 차리고, 설거지도 안 하는 며느리였거든요. 명절 때는 아예 친정에만 가고 시댁은 안 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며느리였어요.
"무슨 효도?"
제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해외여행이요! 베트남 5박 6일 패키지 여행이요. 어머님 아버님, 해외여행 가보신 적 있으세요?"
없죠. 당연히 없어요. 저희 부부는 평생 한국 땅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어요. 젊었을 때는 돈이 없어서 못 갔고, 나이 들어서는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비행기 타는 것도 무섭고, 외국어도 한마디 못 하는데 어떻게 해외를 가겠어요.
"어머, 우리가 무슨 해외여행을?"
제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어요.
"왜요! 어머님 아버님도 가실 수 있어요. 요즘 70대 80대 분들도 다 여행 다니세요. 베트남은 가깝고, 날씨도 좋고, 음식도 맛있어요. 제가 직접 알아봤는데 정말 괜찮은 상품이에요. 5박 6일에 1인당 60만 원이면 되거든요."
60만 원이요? 그럼 두 사람이면 120만 원이네요. 저는 솔직히 그게 비싼 건지 싼 건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유진아, 그게 비싼 거 아니니?"
남편이 물었어요.
"아니에요, 아버님. 요즘 베트남 여행이 제일 저렴해요. 다른 나라는 200만 원, 300만 원씩 하는데 베트남은 정말 가성비가 좋아요. 게다가 이번에 제가 받은 성과급으로 충분히 보내드릴 수 있어요. 제가 전부 다 결제할게요!"
전부 다 결제한다고요? 저는 정말 꿈을 꾸는 건가 싶었어요. 결혼 10년 차 며느리가 저희한테 120만 원짜리 여행을 보내주겠다고 하다니요. 뭔가 이상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감동도 밀려왔어요.
"어머, 유진아. 그런데 우리가 무슨 해외여행까지 가겠니? 너희들이나 가렴."
제가 사양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며느리가 진심으로 해주는 건지 아니면 그냥 말만 하는 건지 확신이 안 섰거든요.
"어머님! 진짜 가셔야 해요. 제가 이번에 정말 마음먹고 준비한 거예요. 사실 제가 그동안 어머님 아버님께 제대로 해드린 것도 없잖아요. 이번 기회에 제대로 효도 한번 해드리고 싶어요. 제발 받아주세요."
며느리가 제 손을 잡았어요. 따뜻한 손이었어요. 눈빛도 진지해 보였죠. 제 옆에서 남편이 말했어요.
"여보, 며느리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우리가 마다할 이유는 없잖아. 그동안 해외여행 가보고 싶었잖아."
남편 말이 맞았어요. 저도 사실은 가고 싶었어요. 텔레비전에서 여행 프로그램 나올 때마다 부러웠거든요. 한 번쯤은 비행기 타보고, 외국 음식도 먹어보고, 외국 땅도 밟아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돈도 아까웠고, 무엇보다 혼자서는 갈 엄두가 안 났던 거죠.
"정말 괜찮겠니? 돈이 많이 들 텐데."
제가 다시 한번 확인했어요.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다 준비할게요. 어머님 아버님은 그냥 편하게 짐만 싸시면 돼요. 여권도 제가 신청해드릴게요. 다음 달 4월 20일 출발로 예약했어요. 딱 한 달 남았으니까 준비하시기에도 충분하죠?"
벌써 예약까지 했다고요? 저는 감격했어요. 정말로 며느리가 진심이었구나 싶었죠. 아들 민준이도 옆에서 거들었어요.
"어머니, 아버지, 진짜 가셔야 해요. 유진이가 이번에 정말 마음먹고 준비한 거예요. 저도 어머니 아버지 해외여행 한 번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유진이가 먼저 제안해서 정말 고맙더라고요."
그 순간 제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며느리가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다니요. 그동안 제가 며느리를 오해했던 건 아닐까 싶었어요. 남편도 감동한 표정이었어요.
"고맙구나, 유진아. 정말 고맙다. 우리가 며느리 복이 있네."
남편이 며느리 손을 꼭 잡았어요.
"아니에요, 아버님. 제가 해드려야죠. 그동안 저희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그날 저녁 아들 부부가 돌아가고 나서 저와 남편은 거실에 앉아서 한참을 이야기했어요.
"여보, 며느리가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제가 남편에게 물었어요.
"그러게. 10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한테 뭘 해준다고 하네. 감동이야."
"나도 그래. 사실 그동안 며느리한테 섭섭한 게 많았는데, 이번에 정말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아."
저희 부부는 그날 밤 설레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어요. 한 달 후면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는 생각에 잠이 안 올 정도였어요.
다음날부터 저는 여행 준비에 바빴어요. 며느리가 여권 신청 서류를 가지고 와서 저희 부부 사진을 찍어갔죠. 그리고 일주일 후에 여권이 나왔다며 가지고 왔어요. 처음 보는 여권이었는데, 신기하더라고요. 제 사진이 박힌 여권을 보니까 정말 해외여행을 가는구나 실감이 났어요.
"어머님, 이거 여행 가이드북이에요. 베트남 여행 정보가 다 들어 있어요. 미리 읽어보세요."
며느리가 책까지 사다 줬어요. 저는 매일 그 책을 읽으며 베트남에 대해 공부했어요. 하롱베이, 다낭, 호이안, 이런 곳들이 유명하다더라고요. 사진으로 보니까 정말 아름다웠어요. 특히 하롱베이의 석회암 섬들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이 환상적이었어요.
남편도 신이 났어요. 평소에는 집에서 뒹굴뒹굴하기만 하던 남편이 베트남 날씨를 검색하고, 환율을 알아보고, 준비물 목록을 만들더라고요. 저희 부부는 마치 신혼여행을 앞둔 것처럼 들떠 있었어요.
"여보, 우리 옷 새로 사야 하는 거 아니야? 베트남이 더운 나라라면서?"
제가 남편에게 물었어요.
"그래, 반팔 옷이랑 모자도 사야겠어. 선크림도 필요하고."
저희는 동네 시장에 가서 여행용 옷을 샀어요. 화려한 무늬의 반팔 셔츠, 면바지, 선글라스, 모자까지요. 돈이 좀 들었지만 기분이 좋았어요. 평생 이런 설렘을 느껴본 적이 없었거든요.
며느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저희 집에 들러서 여행 준비 상황을 체크했어요.
"어머님, 비행기 타실 때 귀 아플 수 있으니까 껌 챙기세요. 그리고 베트남 돈도 제가 미리 환전해서 드릴게요. 한 사람당 100달러씩이면 충분할 거예요."
"어머, 고맙구나. 유진아, 정말 네가 다 챙겨주니까 편하다."
"당연하죠, 어머님.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어머님은 그냥 편하게 가시기만 하세요."
며느리가 웃으며 말했어요. 저는 정말 며느리가 대견했어요. 이렇게 꼼꼼하게 챙겨주는 며느리가 고마웠죠.
동네 사람들에게도 자랑했어요.
"우리 며느리가 저희 부부 해외여행 보내준대요. 베트남 5박 6일이요!"
"어머, 정말? 며느리 복 있으시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처음엔 믿기지 않았어요."
동네 아주머니들이 부러워했어요. 다들 저희 며느리 칭찬을 했죠. 저는 우쭐한 마음에 더 자랑하고 다녔어요.
출발 일주일 전, 며느리가 여행 일정표를 가지고 왔어요.
"어머님, 이게 저희 여행 일정이에요. 첫째 날은 하노이 시내 관광, 둘째 날은 하롱베이 크루즈, 셋째 날은 다낭 이동해서 바나나 힐, 넷째 날은 호이안 고대 도시, 다섯째 날은 자유 시간, 여섯째 날은 귀국이에요."
"와, 정말 알차게 짜여 있구나. 유진아, 고생 많았어."
"아니에요, 어머님. 여행사에서 다 짜준 거예요. 저는 그냥 예약만 했어요."
출발 전날 밤, 저는 남편이랑 같이 짐을 쌌어요. 옷가지, 세면도구, 약, 여권, 여행자 보험증까지요. 며느리가 여행자 보험까지 들어줬더라고요. 정말 완벽하게 준비해 준 거예요.
"여보, 내일이면 우리 평생 처음으로 비행기 타는 거야."
제가 설레는 마음으로 말했어요.
"그러게. 67년 인생에 처음이야. 나 좀 떨리는데?"
남편도 긴장한 표정이었어요. 하지만 그 눈빛에는 기대감이 가득했죠.
"괜찮을 거야. 며느리가 다 알아서 해줬잖아."
그날 밤 저는 설레는 마음에 잠을 설쳤어요. 꿈속에서도 베트남을 여행하는 꿈을 꿨어요. 파란 바다, 하얀 모래사장, 맛있는 음식들. 내일이면 정말 그곳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2024년 4월 20일 토요일 아침 7시, 드디어 출발하는 날이 왔어요. 며느리가 새벽 6시에 저희 집으로 와서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어요.
"어머님, 아버님, 준비 다 되셨어요? 짐 확인 다 하셨죠?"
며느리가 차에서 내리며 물었어요.
"응, 다 챙겼어. 여권도 가방에 넣었고."
저희 부부는 며느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어요. 차 안에서 며느리가 말했어요.
"어머님, 가이드 분이 공항에서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프라임 투어'라는 팻말을 들고 있을 거예요. 거기로 가시면 돼요."
"단체 관광이니까 가이드 분이 다 알아서 해주실 거예요."
공항에 도착했어요. 저는 평생 처음 와보는 인천공항이 엄청나게 크고 화려해서 입이 딱 벌어졌어요. 사람들도 엄청 많고, 외국인들도 많이 보이더라고요.
"어머님, 저기 '프라임 투어' 깃발 보이시죠? 저기로 가세요."
며느리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까 3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팻말을 들고 있었어요.
"어머님 아버님, 조심히 다녀오세요. 연락 자주 주시고요!"
며느리가 저희를 안아주고는 차를 타고 떠났어요. 저희 부부는 가이드에게 다가갔어요.
"저, 프라임 투어 맞죠? 저희 박철수, 김영숙인데요."
"아, 네! 어르신들 오셨네요. 명단에 계시네요. 이쪽으로 오세요."
가이드가 저희를 단체 모임 장소로 안내했어요. 거기에는 벌써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어요. 대부분 60대 70대 어르신들이었고, 몇몇은 저희처럼 부부끼리 온 분들도 있었어요.
"자, 여러분 모두 모이셨죠? 저는 이번 베트남 여행을 담당할 가이드 김태현입니다. 앞으로 5박 6일 동안 제가 여러분을 안내할 거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가이드가 인사를 하고 체크인 수속을 도와줬어요. 짐을 부치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출국 심사를 받았어요. 처음 겪는 일들이라 긴장됐지만 가이드가 친절하게 알려줘서 큰 문제는 없었어요.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어요. 제 인생 첫 비행기였어요. 좌석에 앉으니까 떨리더라고요. 남편도 긴장한 표정으로 제 손을 꼭 잡았어요.
"여보, 우리 진짜 베트남 가는 거야."
"그러게. 꿈만 같아."
비행기가 이륙했어요. 배가 둥실 뜨는 느낌이 나더니 창밖으로 서울이 점점 작아지는 게 보였어요. 신기했어요. 저는 평생 이런 경험을 해볼 줄 몰랐거든요.
4시간 정도 비행하니까 베트남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어요. 공항 밖으로 나가니까 후끈한 열기가 확 밀려왔어요. 덥더라고요. 한국보다 훨씬 더웠어요.
"자, 여러분 버스 타시죠. 호텔로 이동할 거예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버스에 탔어요. 에어컨이 나오긴 했는데 시원하지는 않았어요. 창밖으로 하노이 거리가 보였어요. 오토바이가 정말 많더라고요. 사람들도 북적북적하고요.
30분쯤 달렸을까요? 버스가 한 건물 앞에 멈췄어요.
"자, 도착했습니다. 여기가 우리가 묵을 호텔이에요. '선샤인 호텔'입니다."
저는 버스에서 내려서 호텔을 봤어요. 생각보다 작은 건물이었어요. 3성급이라고 했는데, 겉모습은 좀 낡아 보였어요. 하지만 뭐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국이니까 한국이랑 다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방문을 여는 순간, 저는 얼굴이 굳어버렸어요. 방이 너무 좁았어요. 침대 두 개가 딱 들어가면 끝이었고, 화장실도 엄청 좁았어요. 그런데 제일 문제는 냄새였어요. 퀴퀴한 냄새가 났거든요.
"여보, 이 냄새 뭐야?"
남편이 코를 찌푸리며 말했어요.
"나도 모르겠어. 좀 이상한데?"
저는 창문을 열려고 했는데 창문이 잘 안 열렸어요. 억지로 열었더니 밖에서 매연 냄새가 들어왔어요. 다시 닫았죠.
"에어컨 틀어볼까?"
남편이 에어컨을 켰어요. 그런데 에어컨에서 곰팡이 냄새가 났어요.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 아니라 미지근한 바람이 나오더라고요.
"이거 고장 난 거 아니야?"
"글쎄. 좀 이상한데."
그때 화장실에서 남편이 소리쳤어요.
"참나 이거뭐야!"
저는 화장실로 달려갔어요. 남편이 변기 옆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거기에는 커디란 바퀴벌레 한 마리가 기어 다니고 있었어요.
"으악!"
저는 비명을 질렀어요. 바퀴벌레가 엄청 컸어요. 제 엄지손가락만 했어요.
"이게 무슨 호텔이야?"
남편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어요. 저도 당황스러웠어요. 3성급 호텔이라고 했는데 이런 데라니요?
저는 프론트에 전화를 걸었어요.
"저기요, 방에 바퀴벌레가 있는데요. 다른 방으로 바꿔주실 수 있나요?"
"Sorry, all rooms full. No change."
영어로 대답하는데 알아듣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대충 방이 다 찼다는 뜻인 것 같았어요.
"여보, 어떡해? 방을 못 바꾼대."
"에휴, 하루만 참자. 내일부터는 다른 호텔에 묵을 거 아니야."
남편 말이 맞았어요. 일정표를 보니까 하노이는 하루만 묵고 다음날 하롱베이로 이동한다고 되어 있었어요. 저희는 그냥 참기로 했어요.
저녁 6시, 로비에서 단체 식사를 한다고 해서 내려갔어요. 버스를 타고 근처 식당으로 갔는데, 거기는 관광객들로 가득 찬 큰 식당이었어요.
"자, 여러분 앉으세요. 베트남 전통 음식 쌀국수 나옵니다."
가이드가 안내했어요. 저는 기대했어요. 베트남 쌀국수가 맛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나온 음식을 보고 실망했어요. 국물이 맹물처럼 묽었고, 면도 퍼져 있었어요. 고기는 몇 조각 없었고, 고수풀을 넣은건지 역겨운 냄새가 나더라구요.
"이게 쌀국수야?"
옆에 앉은 할머니가 투덜거렸어요.
"맛이 별로네요. 국물도 싱겁고."
저도 한입 먹어봤는데 정말 맛이 없었어요. 집에서 끓인 라면이 훨씬 나았어요.
"여보, 이거 먹을 수 있겠어?"
남편이 저에게 물었어요.
"그냥 배 채우자. 여행 와서 배고프면 안 되잖아."
저희는 억지로 쌀국수를 먹었어요. 하지만 맛이 없어서 반 정도 남겼어요. 다른 사람들도 비슷했어요. 대부분 음식을 많이 남기더라고요.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어요. 저녁 9시쯤 됐는데 저는 피곤해서 씻고 자려고 했어요. 그런데 샤워를 하는데 온수가 안 나왔어요.
"여보! 온수가 안 나와!"
"진짜? 이거 완전 엉망이네."
남편도 황당해했어요. 결국 저희는 찬물로 간단히 씻고 침대에 누웠어요. 침대는 딱딱했고, 이불은 습기가 있었어요. 베개는 너무 낮았고요.
"여보, 이거 진짜 3성급 호텔 맞아?"
제가 남편에게 물었어요.
"모르겠어. 근데 좀 이상하긴 해. 며느리가 알아보고 예약했다는데."
저는 핸드폰을 꺼내서 며느리한테 문자를 보내려다가 그만뒀어요. 괜히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내일부터는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건 제 착각이었어요. 다음날부터 더 큰 악몽이 시작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났어요. 모닝콜이 울렸거든요. 저는 잠을 설쳤어요. 밤새 바퀴벌레가 또 나올까 봐 무서워서 제대로 못 잤죠. 남편도 마찬가지였어요.
"여보, 어젯밤 잠 잤어?"
"한숨도 못 잤어. 피곤해 죽겠네."
저희는 간단히 씻고 짐을 챙겨서 로비로 내려갔어요. 아침 식사는 호텔에서 제공한다고 했거든요.
식당에 가니까 뷔페식으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종류가 별로 없었어요. 빵 몇 개, 계란 후라이, 소시지, 과일 몇 조각. 그게 전부였어요. 빵은 딱딱했고, 계란은 차갑게 식어 있었어요.
"이게 호텔 조식이야?"
다른 할머니가 불평했어요.
"집에서 먹는 게 훨씬 낫겠네."
저도 동감이었어요. 하지만 뭐라도 먹어야 했으니까 빵 한 조각이랑 계란을 먹었어요.
아침 8시, 버스를 타고 하롱베이로 출발했어요.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어요. 버스 안은 덥고 답답했어요. 에어컨이 약하게 나왔거든요.
11시쯤 하롱베이에 도착했어요. 거기서 배를 타고 크루즈 관광을 한다고 했어요. 저는 기대했어요. 가이드북에서 본 하롱베이는 정말 아름다웠거든요.
하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실망스러웠어요. 배는 낡고 작았어요. 페인트도 벗겨져 있었고, 난간도 녹슬어 있었어요.
"자, 여러분 배에 타세요. 2시간 정도 유람할 거예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배에 탔어요. 배 안에는 의자가 몇 개 있었는데 더러워서손수건으로 닦고 앉았어요.
배가 출발했어요. 하롱베이의 석회암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분명 경치는 아름다웠어요. 사진으로 봤던 그 모습이 맞았죠. 하지만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배가 너무 흔들렸거든요.
"으, 나 어지러워."
남편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어요.
"나도 속이 안 좋아."
저도 멀미가 나기 시작했어요. 배 안에서 다른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게 보였어요. 몇몇은 배 난간에 기대서 토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2시간을 버텼어요. 배에서 내렸을 때 저는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어요. 남편도 창백한 얼굴로 저를 부축했어요.
"점심 시간입니다. 근처 식당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가이드가 말했어요. 저는 속이 안 좋아서 먹고 싶지 않았지만 배가 고팠어요. 아침을 제대로 못 먹었거든요.
식당에 도착했어요. 또 단체 관광객용 식당이었어요. 나온 음식은 볶음밥이랑 닭고기 튀김이었는데, 기름이 너무 많았어요. 밥은 눌어 있었고, 닭고기는 질겼어요.
"이거 먹을 수 있는 음식이야?"
한 할아버지가 투덜거렸어요.
"돈 내고 이런 거 먹으러 왔나 싶네."
저도 한두 숟가락 먹다가 포기했어요.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요. 남편도 마찬가지였어요.
"여보,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아? 며느리가 이런 여행 상품을 선택했을 리가 없는데."
남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나도 그 생각했어. 60만 원이면 꽤 비싼 건데 왜 이렇게 엉망이지?"
저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분명 며느리가 1인당 60만 원짜리 여행 상품이라고 했거든요. 그럼 두 사람이면 120만 원인데, 이 정도 돈이면 훨씬 좋은 호텔과 음식이 제공되어야 정상 아닌가요?
"점심 먹고 다음 일정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가이드가 말했어요.
"저기요, 가이드님. 다음에는 어디로 가나요?"
제가 물었어요.
"쇼핑센터 들렀다가 호텔로 가실 거예요."
쇼핑센터요? 일정표에는 없던 건데요. 저는 가방에서 일정표를 꺼내 확인했어요. 분명 오늘은 하롱베이 크루즈하고 하노이로 돌아가는 것으로만 되어 있었거든요.
"저기요, 일정표에는 쇼핑센터가 없는데요?"
제가 다시 물었어요.
"아, 그건 추가 일정이에요. 베트남 특산품 구경하실 수 있어요. 좋은 기회예요."
가이드가 웃으며 말했어요. 뭔가 찝찝했지만 별수 없었어요.
버스를 타고 30분쯤 가니까 큰 건물 앞에 멈췄어요.
"자, 여러분 내리세요. 여기서 1시간 자유 시간 드릴게요."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까 각종 기념품과 특산품이 진열되어 있었어요. 가격표를 보니까 엄청 비쌌어요. 작은 열쇠고리가 2만 원, 커피 한 봉지가 5만 원.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비쌌어요.
"어머님들, 이거 베트남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별한 제품이에요. 이번 기회에 사가세요."
직원들이 계속 따라다니며 물건을 사라고 권유했어요. 저는 부담스러워서 그냥 구경만 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뭔가를 사더라고요.
1시간 후 버스로 돌아왔어요. 저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어요. 남편도 마찬가지였죠.
"다음은 또 다른 쇼핑센터 들를 거예요."
가이드가 말했어요.
"네? 또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네, 베트남 전통 의상 가게예요. 구경하시면 좋을 거예요."
또 30분을 달려서 옷 가게에 도착했어요. 거기서도 1시간 동안 쇼핑 시간이 주어졌어요. 저는 이제 짜증이 나기 시작했어요.
"여보, 우리 여행 온 거야, 쇼핑 온 거야?"
제가 남편에게 투덜거렸어요.
"나도 모르겠어. 이상해. 관광은 안 하고 쇼핑만 하네."
그렇게 오후 내내 쇼핑센터만 세 곳을 돌았어요. 저는 지쳐서 죽을 것 같았어요.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팠어요. 67살 노인이 하루 종일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힘들었거든요.
저녁 7시쯤 호텔에 도착했어요. 오늘 묵을 호텔은 다낭에 있는 호텔이었어요.
"자, 여러분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일 아침 6시 기상이니까 푹 쉬세요."
방에 들어가니까 어제 호텔보다는 조금 나았어요. 하지만 여전히 좁고 낡았어요.
"여보, 나 너무 피곤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제가 침대에 누우며 말했어요.
"나도 그래.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남편도 지친 표정이었어요.
저는 핸드폰을 꺼내서 며느리한테 문자를 보내려다가 고민했어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여행이 엉망이라고 말하면 며느리가 실망할 것 같았고, 그렇다고 좋다고 거짓말하기도 싫었어요.
결국 간단하게만 보냈어요.
"유진아, 잘 도착했어. 경치는 좋은데 좀 피곤하네. 잘 자."
며느리한테서 답장이 왔어요.
"어머님, 고생하셨어요. 푹 쉬세요. 내일은 더 재밌을 거예요!"
더 재밌다고요? 저는 한숨을 쉬었어요. 내일도 오늘 같으면 어쩌지?
셋째 날 아침, 저는 온몸이 쑤셔서 일어났어요. 어제 하루 종일 돌아다닌 탓에 몸이 망가진 것 같았어요. 남편도 얼굴이 부어 있었고, 다리를 절뚝거렸어요.
"여보, 괜찮아?"
제가 걱정스럽게 물었어요.
"다리가 너무 아파. 어제 너무 많이 걸었나 봐."
남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어요. 69살의 나이에 이런 고생을 할 줄 몰랐어요.
아침 식사를 하고 버스에 올랐어요. 오늘은 바나나 힐에 간다고 했어요. 가이드북에서 본 바나나 힐은 케이블카를 타고 산 위로 올라가서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었어요.
1시간 정도 달려서 바나나 힐에 도착했어요. 케이블카 타는 곳은 사람들로 가득했어요. 줄을 서서 30분을 기다렸어요. 저는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어요.
"여보, 나 좀 앉고 싶어."
제가 남편에게 말했어요.
"조금만 참아. 곧 차례야."
드디어 케이블카에 탔어요. 케이블카는 8명이 타는데, 저희 일행이 가득 찼어요. 케이블카가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높이가 무섭더라고요. 저는 고소공포증이 있거든요.
"으, 무서워."
제가 눈을 감았어요.
"괜찮아. 금방 도착해."
남편이 제 손을 잡아줬어요.
20분쯤 지나서 산 위에 도착했어요. 경치는 정말 좋았어요. 구름 위에 온 것 같았죠. 하지만 제대로 구경할 시간이 없었어요.
"자, 여러분 30분 자유 시간 드릴게요. 사진 찍고 10시 30분까지 여기로 모이세요."
30분이요? 케이블카 타는 데만 1시간 걸렸는데 구경은 30분밖에 못 한다고요? 저는 황당했어요.
급하게 사진 몇 장 찍고 주변을 둘러봤어요. 하지만 제대로 구경도 못 하고 모이라는 시간이 됐어요.
"다들 모이셨죠? 이제 내려갈 거예요."
"저기요, 너무 짧지 않나요? 조금 더 있다 가면 안 될까요?"
한 할아버지가 물었어요.
"죄송하지만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서둘러야 해요."
다음 일정이라니요? 설마 또 쇼핑센터는 아니겠죠?
제 예상은 정확했어요. 버스는 곧장 쇼핑센터로 향했어요.
"자, 여러분 여기는 베트남 특산 약초를 파는 곳이에요. 건강에 좋은 제품들이 많으니까 꼭 구경하세요."
또 쇼핑이었어요. 저는 이제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가이드님, 우리 관광 왔는데 왜 쇼핑만 하나요?"
제가 목소리를 높였어요.
"어머님, 이것도 관광의 일부예요. 베트남 문화를 체험하는 거죠."
"문화 체험이 쇼핑인가요? 저희는 경치를 보러 온 거예요!"
다른 사람들도 제 편을 들어줬어요.
"맞아요! 우리 쇼핑 하러 온 거 아니에요!"
"돈만 쓰라고 하네. 이게 무슨 여행이에요?"
가이드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어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게 일정이라서요. 회사에서 정한 거예요."
회사에서 정했다고요? 그럼 프라임 투어라는 회사가 이렇게 쓰레기 같은 일정을 만든 건가요?
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참았어요.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쇼핑센터에서 1시간을 보내고 다시 버스를 탔어요. 점심 시간이었는데 또 단체 식당으로 갔어요.
나온 음식은 쌀국수와 춘권이었는데, 어제보다 더 맛없었어요. 쌀국수 국물은 김치찌개 국물 같았고, 춘권은 기름에 절어 있었어요.
"이거 진짜 못 먹겠어."
저는 숟가락을 내려놓았어요.
"나도. 배고픈데 못 먹겠네."
남편도 포기했어요.
오후에는 호이안 고대 도시를 간다고 했어요. 저는 기대했어요. 호이안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고 들었거든요.
버스를 타고 2시간을 달려서 호이안에 도착했어요. 고대 도시는 정말 예뻤어요. 노란색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강가에는 등불이 달려 있었어요.
"자, 여러분 1시간 자유 시간 드릴게요. 구경하시고 5시까지 여기로 모이세요."
1시간이요? 호이안을 1시간 만에 구경하라고요? 저는 어이가 없었어요.
"가이드님, 1시간으로 어떻게 다 보나요?"
"어머님, 주요 명소만 빠르게 보시면 돼요. 사진 찍으시고요."
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어요.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남편이랑 같이 천천히 걸으며 구경했어요. 하지만 허리가 너무 아파서 중간에 쉬어야 했어요.
"여보, 나 좀 앉아야겠어."
제가 근처 벤치에 앉았어요.
"여보, 괜찮아?"
"응. 그냥 좀 피곤해서."
남편이 걱정스럽게 저를 봤어요.
"우리 그냥 여기 앉아 있을까? 굳이 돌아다니지 말고."
"그래. 그러자."
저희는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어요. 다른 관광객들이 즐겁게 구경하는 모습을 보니까 부러웠어요. 저희는 왜 이렇게 피곤하고 힘든 여행을 하고 있는 걸까요?
5시가 되어 버스로 돌아갔어요. 오늘 밤은 다낭 호텔에서 묵는다고 했어요.
호텔에 도착해서 방으로 들어갔어요.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온몸이 쑤셨어요. 허리, 다리, 어깨. 안 아픈 데가 없었어요.
"여보, 나 진짜 힘들어. 이거 여행이 아니라 고문이야."
제가 울먹이며 말했어요.
"나도 그래. 며느리한테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남편이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그런데 뭐라고 말해? 네가 보내준 여행이 쓰레기야? 그럴 순 없잖아."
"하지만 우리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저는 핸드폰을 꺼내서 며느리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한참 신호가 가다가 며느리가 받았어요.
"어머님, 무슨 일이세요?"
"유진아, 지금 통화할 수 있어?"
"네, 괜찮아요. 여행은 어때요? 재밌으세요?"
재밌냐고요? 저는 할 말이 없었어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음, 그게 유진아. 좀 힘들긴 해. 호텔도 별로고, 음식도 맛없고, 쇼핑만 계속하고."
"어머, 어머님. 베트남 여행이 원래 그래요. 한국이랑 다르잖아요. 조금 불편해도 참으셔야죠. 제가 돈 들여서 보내드렸는데 그렇게 불평하시면 저 서운해요."
며느리의 목소리가 차가워졌어요.
"아니, 내가 불평하는 게 아니라 정말 너무 힘들어서."
"어머님만 힘드신 건 아닐 거예요.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해외여행 가신 거 자체가 감사한 거잖아요."
감사하라고요? 저는 말문이 막혔어요.
"알았어. 미안해."
"네, 어머님. 남은 여행도 잘 다녀오세요. 저 회사 들어가야 해서 이만 끊을게요."
전화가 끊어졌어요. 저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어요.
"뭐래?"
남편이 물었어요.
"원래 그렇대. 참으래."
"뭐가 원래 그래? 이게 정상인 줄 아나?"
남편도 화가 난 목소리였어요.
그날 밤 저는 잠을 설쳤어요. 머릿속이 복잡했어요. 며느리가 정말 저희를 위해서 이 여행을 준비한 걸까요?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요?
넷째 날과 다섯째 날도 비슷했어요. 쇼핑, 또 쇼핑, 그리고 쇼핑. 관광은커녕 제대로 쉴 시간도 없었어요. 저는 이제 몸이 완전히 망가진 것 같았어요. 허리는 계속 아팠고, 다리는 붓고, 소화도 안 됐어요.
남편은 더 심각했어요. 다섯째 날 아침에는 일어나질 못했어요.
"여보, 나 못 일어나겠어. 온몸이 다 아파."
남편이 침대에 누운 채 신음했어요.
"어떡해?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제가 걱정스럽게 물었어요.
"괜찮아. 그냥 쉬면 나을 거야. 오늘 일정은 나 빼고 너 혼자 다녀와."
"내가 어떻게 혼자 가? 나도 안 가. 여기서 쉬자."
저는 가이드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저희 오늘 일정 참가 못 할 것 같아요. 남편이 아파서요."
"어머님, 그러시면 안 돼요. 단체 일정인데 빠지시면 곤란해요."
"그래도 남편이 아픈데 어떻게 가요?"
"그럼 오후 일정만이라도 참가해 주세요."
결국 저희는 오전에는 호텔에서 쉬고 오후에만 나갔어요. 하지만 오후 일정도 쇼핑센터였어요. 저는 이제 정말 지쳤어요.
그리고 드디어 여섯째 날, 귀국하는 날이 왔어요. 저는 기뻤어요. 이 악몽 같은 여행이 끝나는 거니까요.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저는 며느리한테 문자를 보냈어요.
"유진아, 곧 한국 도착해. 공항에 마중 안 나와도 돼. 우리 택시 타고 갈게."
며느리한테서 답장이 왔어요.
"네, 어머님. 잘 오세요. 여행 어떠셨어요? 재밌으셨죠?"
재밌었냐고요? 저는 허탈하게 웃었어요.
"응. 좋았어. 고마워."
거짓말이었어요. 하지만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었어요.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요. 드디어 집에 간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우리 집이 천국처럼 느껴졌어요. 낡은 소파도, 오래된 텔레비전도 모든 게 좋아 보였어요.
"여보, 우리 집이 최고야."
제가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했어요.
"그러게. 다시는 여행 안 가."
남편도 지친 표정으로 말했어요.
저희는 짐을 풀고 씻고 편하게 쉬었어요. 5박 6일 동안의 고생이 한꺼번에 밀려오더라고요.
다음날, 며느리가 전화를 걸어왔어요.
"어머님, 잘 쉬셨어요? 오늘 저녁에 저희가 집에 갈게요. 여행 이야기도 듣고 싶고 사진도 보고 싶어요."
"그래, 와라."
저녁 6시쯤 아들 부부가 왔어요. 며느리는 밝은 얼굴로 들어왔어요.
"어머님, 아버님! 여행 어떠셨어요? 정말 재밌으셨죠?"
며느리가 신이 나서 물었어요.
"음, 그게."
제가 말을 하려는데 며느리가 먼저 말했어요.
"저 친구들한테 자랑했어요! 우리 시부모님 베트남 여행 보내드렸다고요. 다들 부러워하더라고요. 요즘 시대에 며느리가 시부모 해외여행 보내주는 집이 어디 있냐고요!"
며느리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어요. 저는 입이 떡 벌어졌어요. 자랑이요?
"유진아,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여행이 좀."
제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어요.
"좀 뭐요, 어머님?"
"호텔도 별로였고, 음식도 맛없었고, 쇼핑만 계속 다녔어. 관광은 제대로 못 했고."
며느리의 표정이 변했어요.
"어머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1인당 60만 원씩이나 들여서 보내드렸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정말 서운해요."
60만 원이요? 저는 순간 의문이 들었어요.
"유진아, 그 60만 원이 정말 맞아? 우리가 묵은 호텔이랑 먹은 음식이 60만 원어치가 되는 것 같지 않은데?"
"어머님, 지금 제가 거짓말한다는 거예요?"
며느리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어머님, 저 정말 실망이에요. 제가 효도한다고 마음먹고 준비한 건데 이렇게 불평만 하시면 제가 얼마나 서운한지 아세요?"
며느리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했어요. 저는 당황했어요.
"유진아, 미안해. 내가 말을 잘못했어."
"아니에요. 어머님 마음은 알겠어요. 제가 생각한 것만큼 만족스럽지 않으셨나 봐요. 알겠어요. 다시는 이런 거 안 할게요."
며느리가 가방을 들고 일어섰어요.
"유진아, 기다려."
아들 민준이도 따라 일어섰어요.
"어머니, 아버지, 유진이 기분 상한 것 같으니까 저희 오늘은 먼저 갈게요."
아들 부부가 나가버렸어요. 저와 남편은 어안이 벙벙했어요.
"여보, 우리가 잘못한 거야?"
제가 남편에게 물었어요.
"모르겠어. 근데 뭔가 이상해. 며느리 반응이 너무 과한 것 같아."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며느리가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정말 1인당 60만 원짜리 여행이 맞을까?
저는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을 검색했어요.
'베트남 저가 여행'이라고 검색했어요. 그러자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어요.
'쇼핑 투어 땡처리 베트남 5박 6일 1인 29만 원!'
29만 원이요? 저는 눈을 의심했어요. 자세히 읽어보니까 저희가 간 여행이랑 똑같았어요. 3성급 호텔, 단체 식사, 쇼핑센터 방문 포함.
그 순간 모든 게 이해됐어요. 며느리가 1인당 60만 원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29만 원짜리 최저가 상품이었던 거예요. 두 사람이면 58만 원. 며느리는 120만 원을 썼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절반 정도만 쓴 거죠.
"여보, 이거 봐."
제가 남편한테 화면을 보여줬어요.
"뭐야? 29만 원?"
남편도 놀란 표정이었어요.
"며느리가 우리한테 거짓말한 거야. 60만 원짜리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29만 원짜리 쓰레기 여행이었어."
저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요. 며느리가 저희를 속인 거예요.
"당장 전화해서 따지자."
남편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어요.
"안 돼."
제가 남편의 손을 잡았어요.
"왜? 이런 걸 그냥 넘어가?"
"따져봤자 소용없어. 며느리가 인정할 것 같아? 오히려 우리가 의심했다고 더 난리칠 거야."
저는 컴퓨터 화면을 끄며 한숨을 쉬었어요.
"그럼 어떡하자는 거야?"
"그냥 마음에 묻어두자. 일단은."
남편은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어요.
"알았어. 근데 정말 참기 힘들다."
"나도 그래. 근데 여보, 이제 우리가 며느리한테 기대하는 걸 그만두면 돼."
그날 밤 저는 잠을 설쳤어요. 분노와 배신감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죠.
그리고 다음날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질꺼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동네 마트에서 아는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그 아주머니가 제게 말했어요.
"김 여사님, 며느리분이 정말 효부시네요! 제가 며칠 전에 며느리분 만났는데 자랑하시더라고요. 시부모님 해외여행 보내드렸다고요!"
저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어요.
"아, 네. 다녀왔어요."
"요즘 그런 며느리가 어디 있어요? 부러워 죽겠어요."
아주머니가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말했어요. 저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죠.
일주일 후 교회에서도 들었어요.
"집사님, 며느님이 정말 효부시라면서요? 제가 며느님한테 직접 들었어요. 베트남 여행 보내드렸다고 자랑하시더라고요. 1인당 60만 원씩이나 썼다고요!"
60만 원이라고요? 며느리가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었던 거예요.
남편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여보, 며느리가 온 동네 다니면서 자랑하고 다니나 봐."
"참아야 해. 우리가 뭐라고 하면 며느리가 오히려 우리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 거야."
저희는 꾹 참았어요.
한 달이 지났어요. 며느리는 여전히 자랑질을 하고 다녔어요. SNS에도 올렸더라고요.
"#효부 #시부모님여행선물 #베트남여행 #효도는기본 #최고의며느리"
댓글들을 보니 화가 더 났어요.
"와 대박! 요즘 이런 며느리 어디 있어요?"
"부러워요. 저도 이런 며느리 되고 싶어요."
저는 핸드폰을 꺼버렸어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로부터 2주 후, 토요일 오후였어요.
아들 부부가 저희 집에 왔어요. 며느리는 평소보다 더 밝은 표정이었어요.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세요!"
며느리가 들어오면서 환하게 웃었어요.
"응, 왔어?"
저는 시큰둥하게 대답했어요.
"어머님, 제가 오늘 좋은 얘기가 있어서 왔어요!"
며느리가 소파에 앉으며 신나게 말했어요.
"무슨 얘기?"
"제가 이번에는 제 자신한테 선물을 하고 싶어요. 유럽 여행이요!"
며느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어요.
저는 순간 귀를 의심했어요.
"유럽 여행?"
"네! 제가 평생 가보고 싶었던 곳이 유럽이거든요.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3주 일정으로요."
며느리가 흥분해서 말했어요.
"그래서 네가 가고 싶으면 가면 되지. 왜 우리한테 말하니?"
남편이 차갑게 물었어요.
"아, 그게요."
며느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어요.
"제가 알아봤는데 유럽 10일 항공권이랑 숙소 해서 500만원 정도 하더라구요. 근데 제가 지금 돈이 좀 부족해서요."
"그래서?"
"그래서요, 어머님 아버님이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300만원만요."
저는 며느리를 똑바로 봤어요.
"유진아,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어머님, 제가 어머님 아버님 베트남 여행 보내드렸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제 차례예요. 이정도는 해주실 수 있잖아요?"
며느리가 당당하게 말하자 저는 웃음이 나올 뻔했어요.
"네! 제가 효도했잖아요! 120만원이나 썼어요! 그러니까 제가 여행 가는 것도 어머님 아버님이 도와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남편이 끼어들었어요.
"유진아, 우리가 왜 네 여행비를 대줘야 하니?"
"아버님! 제가 효도했잖아요! 이제 제 차례라고요!"
며느리가 목소리를 높였어요.
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요.
"유진아, 나가줄래?"
"네?"
"지금 당장 나가. 네 얼굴 보기 싫어."
며느리는 당황한 표정이었어요.
"어머님, 왜 그러세요? 제가 뭘 잘못했어요?"
"나가라고!"
제가 소리쳤어요.
며느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일어섰어요.
"좋아요. 알겠어요. 어차피 기대 안 했어요. 오빠, 가요."
며느리가 문을 박차고 나갔어요. 아들 민준이는 난처한 표정으로 저희를 보다가 따라나갔어요.
문이 닫히고 저희 부부만 남았어요.
"여보."
제가 남편을 봤어요.
"응?"
"우리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아."
"무슨 결정?"
"아들 집 팔자."
남편은 깜짝 놀랐어요.
"뭐? 아들 집을 팔아?"
"응. 우리 명의로 되어 있잖아. 증여세 아끼려고 일부러 우리 이름으로 해놨는데."
"그런데 왜 팔아?"
"여보, 지금 팔지 않으면 며느리가 다 차지할 거야. 그럼 우리가 피땀흘려 장만한 아파트 며느리 손에 들어가는 거라고."
남편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어요.
"맞아. 며느리한테 줄 바에는..."
"그냥. 우리가 쓰자. 29만 원짜리 쓰레기 여행 보낸 며느리한테 15억을 줄 순 없어."
저희는 그날부터 비밀리에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어요.
다음날, 저는 부동산에 조용히 연락했어요.
"여보세요, 강남에 아파트 하나 팔려고 하는데요. 조용히 매물로 내놓을 수 있을까요?"
"네, 가능합니다. 주소가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아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주소를 알려줬어요.
"아, 거기 요즘 시세가 15억 정도 됩니다. 급매로 내놓으시면 14억 반 정도에도 가능하고요."
"좋아요. 매물로 내놔 주세요. 최대한 빨리 찾아주시면 중개료는 섭섭지 않게 처 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크루즈 여행을 알아봤어요.
"여보, 이거 봐. 6개월짜리 세계 일주 크루즈. 1인당 2천만 원."
"6개월? 우리가 그렇게 오래 집을 비워도 돼?"
"왜 안 돼? 이제 우리 인생이야."
남편은 망설이다가 웃으며 말했어요.
"그래. 하자. 베트남에서 당한 거 다 만회하자."
저희는 4천만 원짜리 크루즈를 예약했어요. 출발일은 3주 후로요.
모든 준비가 끝났어요.
일주일 후 토요일 오후, 아들 부부는 자기들 집 거실에서 편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어요.
초인종이 울렸어요.
"누구지?"
며느리가 일어나서 인터폰을 확인했어요.
"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부동산 중개인입니다. 집 보러 온 손님 분이랑 같이 왔는데요."
"네? 집을 보러요?"
며느리의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네, 이 집 매물로 나와 있어서요."
"잠깐만요!"
며느리가 황급히 문을 열었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이 집이 매물로 나왔다고요?"
"네, 맞습니다. 등기부등본 확인했는데 김영숙 씨 명의로 되어 있던데 본인 아니세요?"
"그건 제 시어머니예요!"
"아, 그러시군요. 그럼 시어머니께서 매물로 내놓으신 거예요. 저희가 오늘 3시에 집 보러 오기로 약속했거든요."
며느리는 얼굴이 하얗게 변했어요.
"잠깐만요. 이건 뭔가 잘못된 거예요. 저희 시어머니가 이 집을 팔 리가 없어요!"
"죄송하지만 저희는 의뢰받은 대로 일하는 거라서요. 일단 집 좀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아들 민준이가 나왔어요.
"무슨 일이에요?"
"오빠, 큰일 났어. 시어머니가 우리 집을 팔려고 하신대!"
"뭐라고요?"
아들도 충격받은 표정이었어요.
"저기, 그럼 집은 못 보는 건가요?"
매수인이 난처한 표정으로 물었어요.
"잠깐만요! 제가 시어머니한테 전화할게요!"
며느리가 급하게 전화를 걸었어요.
"여보세요, 어머님? 지금 무슨 일이에요? 부동산에서 우리 집 보러 왔다는데요?"
전화기 너머로 시어머니 목소리가 들렸어요.
"아, 그래? 그럼 보여줘."
"어머님! 왜 우리 집을 파세요?"
"니 집이 아니라 내집이야. 내명의로 되어 있잖아."
"어머님, 이 집은 저희 줄 거라고 하셨잖아요!"
"언제 그랬니? 증여한다는 서류 쓴 적 없는데?"
"어머님!"
"유진아, 손님 기다리신다. 집 보여줘."
전화가 끊어졌어요.
며느리는 멍하니 서 있었어요.
"저기, 그럼 집 좀 봐도 될까요?"
중개인이 다시 물었어요.
며느리는 얼빠진 표정으로 얼어붙어 있었지요.
중개인과 손님이 집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어요. 방마다 들어가 보고, 화장실도 확인하고, 베란다도 확인했어요.
며느리와 아들은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마음에 드는데요? 가격이 14억 오천이라고 하셨죠?"
손님이 중개인에게 물었어요.
"네, 맞습니다."
"좋습니다. 계약하죠."
"어머, 정말요? 그럼 지금 바로 계약금 준비해 오시면 돼요."
"저희 집이에요!"
며느리가 소리쳤어요.
"죄송한데요, 등기부등본상 김영숙 씨 명의예요. 본인이 파신다는데 뭐가 문제인가요?"
중개인이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어요.
"이 집은 나중에 저희한테 주기로 한 집이에요!"
"그건 개인적인 약속이고요, 법적으로는 김영숙 씨 집이잖아요. 저는 정당하게 중개하는 거예요."
"안 돼요! 이 집은 못 팔아요!"
며느리가 울부짖었어요.
"저기,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다른 집 알아볼게요."
손님이 불안해하며 나가려고 했어요.
"아니에요! 손님, 계약하세요! 문제 없어요!"
중개인이 급하게 손님을 붙잡았어요.
"정말 괜찮은 거예요?"
"네! 등기부등본상 아무 문제 없어요! 명의자께서 파신다고 하셨어요!"
"그럼 계약하죠."
결국 그 자리에서 계약금 1억 5천이 오갔어요.
"잔금은 2주 후에 치르시면 됩니다. 그때 집 비워주셔야 해요."
중개인이 며느리한테 말했어요.
"2주 후에 집을 비우라고요?"
며느리가 비명을 질렀어요.
"네, 계약서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손님과 중개인이 나가고, 아들 부부만 남았어요.
며느리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기 시작했어요.
"어떡해, 오빠. 우리 집이 팔렸어."
아들도 멍한 표정이었어요.
"어머니한테 다시 전화해봐."
며느리가 다시 전화를 걸었어요. 하지만 받지 않았어요.
"받지 않으셔!"
며느리가 울면서 말했어요.
"어머니 집으로 가자. 직접 가서 말씀드려야 해."
아들 부부는 급하게 옷을 입고 시부모님 집으로 향했어요.
30분 후, 아들 부부는 시부모님 집 앞에 도착했어요.
초인종을 누르자 시어머니가 문을 열었어요.
"왔니?"
"어머니!"
아들이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시어머니가 막아섰어요.
"복도에서 이야기하자."
"어머니, 왜 이러세요?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해요."
"여기서 하면 돼."
시어머니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어요.
며느리가 앞으로 나섰어요.
"어머님, 왜 우리 집을 파세요? 그 집은 저희 줄 거라고 하셨잖아요!"
"유진아, 나 그런 말 한 적 없어. 증여 서류 쓴 적도 없고."
"어머님! 분명 말씀하셨잖아요! 나중에 민준이한테 준다고요!"
"말로만 한 건 아무 효력이 없어."
"어머님!"
며느리가 울먹였어요.
아들이 무릎을 꿇었어요.
"어머니, 제발요. 집은 팔지 마세요. 저희가 잘못했어요. 유진이가 어머님한테 300만 원 달라고 한 거 잘못했어요. 사과할게요."
"민준아, 일어나."
"어머니, 제발요!"
"민준아, 이미 팔렸어. 계약금까지 받았어."
"계약 취소하면 되잖아요! 위약금 물어도 되니까요!"
"왜 위약금을 물어? 우리 집을 우리가 팔겠다는데."
시어머니는 단호했어요.
"어머니, 그럼 저희는 어떡해요? 2주 후에 집에서 나가라는데요!"
"너희가 알아서 집 구해. 5억은 줄 테니까."
"5억으로 강남에서 어떻게 살아요?"
며느리가 소리쳤어요.
"그럼 강남 말고 다른 데 가든지."
"안 돼요! 저는 강남에서 살 거예요!"
"그건 네 문제야."
시어머니가 문을 닫으려고 했어요.
"어머님! 제발요!"
며느리가 문을 붙잡았어요.
"유진아, 손 떼."
"싫어요! 어머님이 저희한테 이럴 수 없어요! 저 효도했잖아요! 베트남 여행 보내드렸잖아요!"
그때 시어머니가 씨익 웃었어요.
"효도? 29만 원짜리 그 땡처리 여행?"
며느리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어요.
"뭐, 뭐라고요?"
"우리 다 알아. 네가 1인당 60만 원이라고 거짓말했지만 실제로는 29만 원짜리였어. 쇼핑만 하고, 바퀴벌레 나오는 호텔에 묵고, 개밥보다 못한 음식 먹고."
며느리는 말문이 막혔어요.
"어머님, 그건."
"그리고 온 동네 다니면서 자랑하고 다니더라? 60만 원씩 썼다고? SNS에도 올리고?"
"어머님, 죄송해요."
"이제 와서 사과해? 넌 29만 원 쓰고 300만 원을 달라고 했어. 그래서 우리도 결정했어. 15억짜리 집을 너한테 줄 수 없다고."
"어머님!"
"민준아, 5억은 네 통장으로 보낼게. 그걸로 작은 집이라도 구해."
"어머니!"
"그리고 우리는 여행 간다. 크루즈 타고 6개월 동안."
"6개월이요?"
"응. 1인당 2천만 원짜리. 진짜 여행 말이야. 네가 보내준 29만 원짜리 쓰레기 여행 말고."
며느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어요.
"어머님, 제발요."
"유진아, 고마워. 네 덕분에 깨달았어. 우리도 우리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거."
시어머니가 문을 닫으려는데 며느리가 붙잡았어요.
"어머님! 다시 생각해 주세요!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늦었어."
쾅.
문이 닫혔어요.
며느리는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었어요.
그날 밤부터 아들한테서 계속 전화가 왔어요. 저희는 받지 않았죠.
며느리한테서도 문자가 수도 없이 왔어요.
"어머님, 제발 다시 생각해 주세요."
"어머님,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어머님, 오빠가 너무 힘들어해요."
다 무시했어요.
2주가 빠르게 지나갔어요.
잔금 치르는 날, 손님이 와서 13억을 저희 통장에 넣었어요.
"감사합니다. 오늘 안으로 집 비워주시면 됩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아들 부부는 급하게 이사를 했어요. 경기도 변두리의 작은 투룸 빌라로요.
그날 저녁, 저는 아들한테 마지막 문자를 보냈어요.
"민준아, 5억 네 통장에 넣어뒀어. 그리고 이거 선물이야."
그 밑에 링크를 하나 보냈어요.
아들이 링크를 클릭했을 거예요.
"베트남 5박 6일 29만 원 땡처리 특가! 쇼핑 투어 포함! 3성급 호텔! 베트남 특식 제공!"
정확히 저희가 갔던 그 상품이었어요.
그리고 한 줄 더 썼어요.
"이게 유진이가 우리 보내준 여행이야. 너희도 한번 가봐. 29만 원밖에 안 하니까 부담 없잖아. 엄마 아빠는 내일 크루즈 타러 간다. 6개월 후에 연락할게."
문자를 보내고 핸드폰을 껐어요.
다음날 아침, 저희는 부산행 KTX에 올랐어요.
"여보, 후회 안 해?"
남편이 물었어요.
"뭘?"
"집 판 거. 아들한테 5억만 준 거."
"전혀. 오히려 속이 시원해."
"나도 그래."
부산에 도착해서 크루즈 터미널로 갔어요.
거대한 크루즈선이 보였어요.
"와, 저게 우리가 6개월 동안 살 곳이야?"
"그러게. 진짜 크다."
탑승 수속을 하고 배에 올랐어요.
저희 스위트룸은 정말 넓고 화려했어요. 킹사이즈 침대, 거실, 발코니까지요.
"여보, 이거 봐. 발코니에서 바다가 보여!"
저는 발코니로 나가서 바다를 봤어요.
크루즈가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했어요.
부산항이 점점 멀어졌어요.
"여보, 우리 진짜 떠나는 거야."
"응. 새로운 인생으로."
"여보, 이제 시작이야."
"응. 우리의 진짜 여행."
크루즈는 푸른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갔어요.
저는 발코니 난간에 기대서 석양을 봤어요.
67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이었어요.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희 인생에는 새로운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