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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반전★내 김치를 고속도로 휴게소에 부어버린 며느리

by 아들딸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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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M6ly3RPgZc0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로 예순여섯 살이 된 시골 아줌마입니다. 평생을 농사지으며 살았고, 지금도 강원도 산골 마을에서 혼자 살고 있어요. 오늘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는 제 며느리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처음 듣시는 분들은 제가 너무 잔인한 시어머니가 아닌가 싶으실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들어보시면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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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 이야기부터 조금 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야 나중에 제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가 되실 테니까요.

저는 원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셨는데, 그것도 남의 땅을 빌려서 소작을 하는 처지였어요.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거들었고, 학교도 중학교까지만 겨우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는 집안 형편상 갈 수가 없었어요. 그때만 해도 여자아이는 공부를 많이 시키지 않던 시절이었거든요.

열여섯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남의 집 농사일도 도와주고, 시장에 나가서 채소 장사도 하고, 뭐든지 손에 잡히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악착같이 일을 해서 번 돈은 고스란히 집에 갖다 드렸어요. 부모님이 빚을 많이 지셨거든요.

그러다가 스물한 살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도 저랑 비슷한 처지였어요. 가난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평생을 밭에서 일만 하던 사람이었죠. 하지만 성실하고 착했어요.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그저 묵묵히 일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중매로 만나서 석 달 만에 결혼했어요. 그때는 연애 같은 거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냥 서로 일손이 필요했고, 가정을 꾸려야 했으니까요. 결혼식도 제대로 못 했어요. 동네 이장님 댁에서 간단하게 음식 좀 차려놓고, 친척 몇 분 모시고 절 올리는 게 전부였습니다.

신혼살림도 변변치 않았어요. 남편 부모님 집 안채 옆에 있던 헛간을 개조해서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작은 공간이었죠. 겨울엔 추워서 이불을 몇 겹씩 덮고 자야 했고, 여름엔 더워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냈어요.

그래도 남편이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새벽같이 일어나서 밭에 나가고, 해가 떨어질 때까지 일을 했습니다. 저도 남편을 도와서 함께 일했고요. 힘들었지만 그래도 행복했어요.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언젠가는 우리만의 땅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거든요.

결혼한 지 일 년 만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을 낳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진통이 시작됐는데 병원에 갈 형편이 안 됐어요. 그래서 동네 산파 할머니를 불러서 집에서 낳았습니다.

"어머님, 아들입니다. 건강한 사내아이예요."

산파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저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어요. 아들이라니. 시댁에서도 좋아하시겠다 싶었죠. 그때만 해도 아들을 낳아야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아들을 낳고 나서 제 삶은 더 바빠졌습니다. 아기를 돌보면서 농사일도 해야 했거든요.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밭에 나가고, 저녁 준비하고,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았어요. 남편은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들 분유값이라도 벌겠다고 날품팔이까지 나갔어요.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아들이 다섯 살 되던 해에 드디어 우리 땅을 샀습니다. 그것도 평수는 얼마 안 되는 작은 밭이었지만, 그래도 우리 땅이었어요. 남편이 땅 문서를 받아들고 울먹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여보, 우리 드디어 땅 주인이 됐소. 이제부터는 우리 땅에서 농사를 짓는 거요."

남편이 그렇게 말하면서 제 손을 꼭 잡았어요.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정말 오랜 시간 동안 고생했는데, 드디어 우리만의 땅을 갖게 된 거예요.

그 땅에서 우리는 배추도 심고, 무도 심고, 고추도 심었습니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번 돈으로 또 땅을 조금씩 늘려갔어요. 그렇게 십 년을 악착같이 일했더니 어느새 제법 괜찮은 규모의 밭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들도 무럭무럭 자랐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까지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저는 제가 제대로 공부를 못 해봤기 때문에 아들만큼은 꼭 대학에 보내고 싶었어요.

"엄마, 저 대학 가도 돼요?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 제가 농사일 도와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들이 고등학교 삼 학년 때 제게 그렇게 물었어요. 저는 아들의 어깨를 꼭 잡고 말했습니다.

"너는 공부를 해야 한다. 엄마 아빠처럼 평생 농사만 지으면서 살면 안 돼. 너는 대학 가서 공부하고, 좋은 직장 잡아서 엄마 아빠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등록금이..."

"등록금은 엄마 아빠가 마련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너는 공부만 열심히 해라."

저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등록금 마련할 방법이 막막했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만큼은 꼭 대학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거든요.

다행히 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지방에 있는 국립대학교에 합격했어요. 등록금도 사립대학보다 저렴했고요. 저희 부부는 아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농사일 외에도 남편은 겨울철에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나가고, 저는 마을 회관에서 급식 보조 일도 했어요.

그렇게 악착같이 일해서 아들을 대학에 보냈습니다. 아들은 저희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어요. 장학금도 받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스스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그런 아들이 참 기특하고 대견했어요.

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서울에 있는 중견기업에 취직했습니다. 연봉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들 말로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했어요. 저는 아들이 서울에서 직장을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 제가 이제 돈 벌어서 엄마 아빠 편하게 해드릴게요. 지금까지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

"그래, 고맙다. 우리 아들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줘서 엄마는 더 바랄 게 없다."

아들은 서울에서 회사 근처에 작은 원룸을 얻어서 혼자 살았어요.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시골집에 내려왔고요. 내려올 때마다 용돈도 드리고, 엄마 아빠 건강은 괜찮은지 물어보고, 참 효자였습니다.

그렇게 아들이 직장 생활을 한 지 삼 년쯤 됐을 때였어요. 아들이 어느 날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저 결혼하려고 해요."

"뭐? 결혼? 갑자기 무슨 소리야?"

"회사 선배가 소개해 준 여자가 있는데, 제가 마음에 들어서요. 이번 주말에 엄마 아빠한테 소개시켜 드리고 싶어요."

아들이 결혼을 하겠다니요. 저는 기쁘기도 하고 걱정도 됐습니다. 우리 아들이 벌써 결혼할 나이가 됐구나 싶기도 했고, 어떤 여자인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그래, 알았다. 이번 주말에 데리고 내려와라.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해놓을게."

"네, 엄마. 그런데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어요. 제 여자친구가 서울 토박이예요. 시골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대요. 그러니까 좀 낯설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더 잘해줘야겠네. 엄마가 최대한 편하게 해줄게."

저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조금 걱정이 됐어요. 서울 토박이라는 말이 왠지 불길하게 느껴졌거든요. 혹시 시골을 무시하는 건 아닐까, 우리 같은 농사꾼 집안을 싫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접어두고 일단 며느리 될 사람을 정성껏 맞이하기로 했어요. 장을 보러 나가서 좋은 고기도 사고, 과일도 사고, 이것저것 준비를 했습니다.

주말이 됐어요. 아들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시골집에 내려왔습니다. 차에서 내린 며느리를 처음 봤을 때 제 느낌은 이랬어요.

'와, 정말 도시 아가씨네.'

며느리는 키가 크고 날씬했어요. 화장도 곱게 하고, 옷도 깔끔하게 입고, 딱 봐도 서울에서 잘 자란 아가씨 같았습니다. 제 눈에는 너무 예뻐 보였어요.

"어머님, 안녕하세요. 저는 김민서라고 합니다."

며느리가 공손하게 인사를 했어요. 목소리도 또랑또랑하고 예의도 바른 것 같았습니다.

"어머, 그래. 어서 와라. 멀리서 오느라 힘들었지? 얼른 들어와서 쉬어라."

저는 며느리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며느리가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표정이 조금 굳어지는 게 보였어요. 아마도 시골집이 낯설고 불편했나 봅니다.

저희 집은 오래된 시골집이에요. 마당에는 장독대가 있고, 집 앞에는 텃밭이 있고, 전형적인 농가 주택이었죠. 며느리 눈에는 많이 낙후되고 불편해 보였을 거예요.

"민서야, 화장실은 저쪽이고, 방은 이쪽이야. 불편하겠지만 하룻밤만 참아라."

"아, 네. 괜찮아요, 어머님."

며느리는 그렇게 말했지만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어요. 저는 속으로 조금 서운했지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자란 아이가 시골집이 불편할 수도 있지,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하고 이해하려고 애썼어요.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제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들을 상에 차렸어요. 된장찌개, 제육볶음, 나물 반찬들, 그리고 제가 직접 담근 김치까지요.

"자, 많이 먹어라. 입에 맞을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정성껏 준비했다."

"와, 어머님. 정말 맛있어 보여요."

아들이 먼저 숟가락을 들었고, 며느리도 조심스럽게 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며느리가 김치를 먹더니 표정이 묘하게 변하는 게 보였습니다.

"이 김치 어때? 엄마가 직접 담근 건데."

제가 물어보자 며느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어요.

"아, 네. 맛있어요."

하지만 그 이후로 며느리는 김치를 거의 안 먹더라고요. 다른 반찬들도 몇 젓가락씩만 먹고 밥만 주로 먹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조금 서운했어요. 제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인데 별로 입에 안 맞나 보다 싶었거든요.

저녁을 먹고 나서 아들과 며느리는 마당에 나가서 산책을 했어요. 저는 설거지를 하면서 부엌 창문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습니다. 아들은 며느리에게 뭔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고, 며느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었어요.

그날 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여보, 우리 며느리 될 사람 어때요?"

"글쎄, 예쁘긴 한데 좀 차가워 보이지 않소?"

"나도 그렇게 느꼈어요. 뭔가 우리를 좀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요, 그렇게까지 생각할 것 없소. 아직 첫날이니까 서로 어색한 거겠지. 시간이 지나면 친해질 거요."

남편의 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날은 잠이 들었어요.

다음 날 아침, 며느리는 일찍 일어나서 화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침 준비를 하면서 며느리에게 말을 걸었어요.

"민서야, 잘 잤니? 불편하진 않았어?"

"아, 네. 괜찮았어요, 어머님."

"그래? 다행이다. 아침 곧 준비될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

아침은 간단하게 죽과 반찬 몇 가지로 차렸습니다. 며느리는 죽을 조금 먹더니 배가 부르다며 숟가락을 놓았어요.

"어머님, 잘 먹었습니다. 아, 저희 오늘 점심 전에 서울로 올라가야 해서요. 제가 약속이 있어서요."

"그래? 벌써 가려고? 점심은 먹고 가지."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희 차에서 뭐 먹으면서 갈게요."

며느리는 서둘러 짐을 챙기기 시작했어요. 저는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며느리가 약속이 있다는데 붙잡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아들과 며느리가 떠나기 전에 저는 김치를 한 통 꺼내서 비닐봉지에 담았습니다.

"얘, 이거 가져가라. 엄마가 담근 김치인데 서울 가서 먹어라."

"아, 엄마.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아들이 김치를 받아들었어요. 며느리는 옆에서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뭐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민서야, 다음에 또 놀러 와라. 그때는 더 맛있는 거 해줄게."

"네, 어머님. 감사합니다."

며느리가 인사를 하고 차에 탔어요. 저는 손을 흔들며 두 사람을 배웅했습니다. 차가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속으로 생각했어요.

'며느리가 좀 차갑긴 하지만, 우리 아들이 좋아하니까 뭐 어떻겠어. 시간이 지나면 정도 들고 가까워지겠지.'

그렇게 며느리의 첫 방문은 끝났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 후에 아들과 며느리가 결혼을 했어요. 결혼 준비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저는 좀 소외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며느리 집안에서는 서울에서 결혼식을 하자고 했어요. 하객도 많고, 식장도 좋은 곳으로 잡자고 했죠. 저희는 시골 사람들이라 서울까지 올라가기가 부담스러웠지만, 신부 집안 의견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사돈댁과 몇 번 만났어요. 사돈댁은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사돈어른께서는 중견기업 임원으로 일하셨고, 사돈댁 어머님은 전업주부셨어요.

사돈댁과 만날 때마다 저는 위축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옷차림부터 말투까지 우리하고는 너무 달랐거든요. 사돈댁 어머님은 명품 가방을 들고 오셨고, 저는 시장에서 산 평범한 가방을 들고 갔었죠.

"아이고, 사돈댁 어머님. 반갑습니다."

"어머, 네. 반갑습니다. 오시느라 먼 길 오셨죠?"

"네, 뭐. 버스 타고 왔어요."

"아이고, 힘드셨겠어요. 다음부터는 제가 차 보내드릴게요."

사돈댁 어머님은 친절하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저를 좀 무시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말투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고, 뭔가 '시골 사람이네' 하는 느낌을 주셨거든요.

저희는 아들과 상의해서 전세집을 얻어주기로 했어요. 평생 모아둔 돈과 땅 일부를 팔아서 전세금을 마련했습니다. 더 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아들은 그저 고맙다며 오히려 저를 안심시켜 주었지요.

결혼식장은 정말 화려했습니다. 하객도 엄청 많이 왔고, 꽃 장식도 호화로웠어요. 저희 시골 친척들은 그런 결혼식장을 처음 봐서 다들 입을 떡 벌리고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와, 여기가 서울 결혼식장이구만. 정말 대단하네."

"그러게 말이야. 우리 동네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지."

저는 아들이 신부와 함께 입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났어요. 우리 아들이 정말 장가를 가는구나. 이제 어엿한 남편이 되는구나 싶었거든요.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이 있었어요. 음식도 정말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대로 먹지 못했어요. 손님들 인사받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피로연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아들 부부를 배웅했습니다.

"엄마, 다녀올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라. 민서야, 우리 아들 잘 부탁한다."

"네, 어머님. 걱정 마세요."

며느리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차가워 보였어요. 저는 속으로 걱정이 됐지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일 년 동안은 그럭저럭 평범하게 지냈어요. 아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시골에 내려왔고, 명절 때는 며느리와 함께 왔습니다.

하지만 며느리는 시골집에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오더라도 하루 이틀 있다가 빨리 서울로 올라가자고 아들을 재촉했죠.

"여보, 우리 오늘 서울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나 월요일에 회사 가야 한다고."

"그래 그럼 오늘 올라가자. 엄마, 우리 오늘 올라갈게요."

"벌써? 하루만 더 있다 가지.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아니에요, 어머님. 저희 일이 있어서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며느리는 항상 이런 식이었어요. 시골집에 하루라도 더 있는 걸 싫어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며느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서울에서 자란 사람이 시골이 불편할 수 있지,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하고요.

제가 며느리에게 잘해주려고 특별히 신경 쓴 게 하나 있었어요. 바로 김치였습니다.

저는 김치를 정말 잘 담가요. 우리 동네에서 제 김치가 제일 맛있다고 소문이 났을 정도였거든요. 김장철이 되면 동네 아줌마들이 제게 와서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기도 했어요.

"아이고, 정숙이 댁, 김치가 왜 이렇게 맛있어? 비결이 뭐야?"

"별거 없어요. 그냥 정성껏 담그는 거지. 배추도 좋은 걸로 골라야 하고, 양념도 제대로 만들어야 하고."

"아이고, 그게 쉬운 줄 알아? 나도 몇십 년을 담갔는데 당신 김치만 못하다니까."

제 김치의 비결은 양념이었어요. 멸치액젓, 새우젓, 마늘, 생강, 고춧가루를 적절한 비율로 섞어서 만들었거든요. 거기에 배와 무도 곱게 채 썰어서 넣었고요. 그렇게 만든 양념으로 배추를 정성껏 버무리면 정말 맛있는 김치가 됐어요.

저는 김장을 할 때마다 며느리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며느리가 김치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정성껏 담가서 보내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김장철이 되면 배추를 백 포기 정도 담갔어요. 그 중에 이십 포기는 아들네 보내줄 거로 따로 담갔습니다. 며느리가 혹시 젓갈 냄새를 싫어할까 봐 젓갈을 조금 적게 넣고, 고춧가루도 너무 맵지 않게 조절했어요.

김치를 담그고 나서 일주일쯤 지나면 딱 먹기 좋게 익었어요. 그때 김치를 통에 담아서 택배로 보냈습니다.

"얘, 엄마가 김치 보냈다. 잘 받았니?"

"아, 네 엄마. 잘 받았어요. 고맙습니다."

"그래, 맛있게 먹어라. 민서한테도 맛있게 먹으라고 전해라."

"네, 알겠습니다."

저는 아들한테 김치를 보낼 때마다 뿌듯했어요. 내가 정성껏 담근 김치를 아들이 먹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거든요.

그런데 며느리는 제 김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저는 며느리가 김치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아니,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냥 먹을 거라고 생각했죠. 설마 버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명절이 다가왔어요. 이번에는 추석이었습니다. 아들한테 전화를 했어요.

"얘, 이번 추석에는 내려올 거지?"

"네, 엄마. 당연히 내려가야죠. 추석인데."

"그래, 그럼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준비해 놓을게. 민서한테도 좋아하는 음식 있으면 말해라. 엄마가 해줄게."

"아, 괜찮아요 엄마. 그냥 편하게 계세요. 괜히 무리하지 마시구요."

추석 전날, 저는 하루 종일 음식을 준비했어요. 전도 부치고, 갈비찜도 만들고, 나물도 무치고, 정말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며느리가 이번에는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더 신경을 썼어요.

추석 당일, 아들이 며느리와 함께 내려왔어요. 차에서 내린 며느리를 보니까 저번보다 더 날씬해진 것 같았어요.

"어머님, 안녕하세요."

"어, 민서야. 잘 왔다. 어서 들어와라."

며느리는 인사를 하고 집 안으로 들어왔어요. 그런데 표정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님,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 다녀와라."

며느리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아들한테 물어봤어요.

"얘, 민서가 좀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 있니?"

"아니에요, 엄마. 그냥 차 타고 오느라 좀 피곤한가 봐요."

"그래? 그럼 좀 쉬게 해줘야겠네."

하지만 제가 보기에 며느리는 단순히 피곤한 것 같지 않았어요. 뭔가 기분이 안 좋아 보였거든요.

저녁 시간이 됐어요. 상을 차려놓고 가족들이 둘러앉았습니다.

"자, 많이 먹어라. 엄마가 정성껏 준비했다."

"와, 엄마. 이렇게 많이 준비하셨어요? 수고하셨어요."

아들이 기뻐하면서 음식을 먹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며느리는 젓가락을 잘 들지 않았습니다.

"민서야, 왜 안 먹니? 입맛이 없니?"

"아, 아니에요 어머님. 제가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서요."

"다이어트? 넌 지금도 충분히 날씬한데 무슨 다이어트를 해?"

"아니에요, 제가 좀 더 빼야 해서요."

며느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밥을 조금만 먹고 숟가락을 놓았어요. 저는 서운했지만 억지로 먹으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아들과 며느리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었어요. 저는 또 김치를 준비했습니다. 이번에는 이십 포기나 되는 김치를 통에 담았어요.

"얘, 이거 가져가라. 엄마가 이번에 김장한 거야. 맛있게 잘 익었다."

"아, 엄마. 이렇게 많이요? 저희 둘이 먹기에 너무 많은데요."

"괜찮아. 냉장고에 넣어두면 오래 가니까. 천천히 먹으면 돼."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엄마."

아들이 김치통들을 차 트렁크에 실었어요. 며느리는 옆에서 별 말 없이 서 있었습니다.

"민서야, 김치 맛있게 먹어라. 엄마가 정성껏 담근 거니까."

"네, 어머님. 잘 먹겠습니다."

며느리가 그렇게 대답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았어요.

차가 출발했습니다. 저는 손을 흔들며 배웅했어요. 트렁크에 가득 실린 김치통들을 보면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엄마가 담근 김치 먹으면서 엄마 생각하겠지. 민서도 맛있게 먹으면 좋겠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하지만 제가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김치가 서울까지 무사히 도착하지 못했다는 것을요.

추석이 지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어요. 아들 회사 동료 부인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분은 저희 동네 출신이었거든요. 결혼해서 서울에 사는데, 가끔 명절 때 고향에 내려오곤 했어요.

"어머님, 저 영희 엄마예요. 기억하시죠?"

"아, 그럼. 영희 엄마. 무슨 일이야? 갑자기 전화를 하고."

"어머님, 제가 어머님께 꼭 말씀드려야 할 게 있어서요. 근데 이거 말씀드리기가 좀 그런데..."

영희 엄마가 말을 머뭇거렸어요. 저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슨 일인데? 우리 아들이 무슨 일 있니?"

"아니요, 성민이는 괜찮아요. 근데 며느님 말씀인데요..."

"민서가 왜? 무슨 일 있어?"

"어머님, 제가 지난주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었어요. 서울 올라가는 길에요. 그런데 거기서 며느님을 봤어요."

"민서를? 휴게소에서?"

"네. 근데 며느님이 차 트렁크를 열고 뭔가를 꺼내서 쓰레기통에 부어 버리는 거예요. 제가 처음엔 그냥 일반 쓰레기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김치더라고요."

"뭐? 김치?"

"네. 빨간 플라스틱 통이었어요. 여러 개를 계속 쓰레기통에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 저분 아는 분인데' 하고 가까이 가려고 했는데, 며느님이 욕하면서 중얼거리는게 들렸어요."

"뭐라고 했는데?"

영희 엄마가 잠시 말을 멈췄어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습니다.

"며느님이 '시골 냄새 나서 못 먹겠다. 이런 거 왜 자꾸 보내시는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김치를 쓰레기통에 다 부어버렸어요."

저는 전화기를 든 손이 떨렸습니다.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었어요.

"정말... 정말이야?"

"네, 어머님. 제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요. 저도 그 모습을 보고 너무 충격 받아서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이렇게 전화 드렸어요. 어머님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 고맙다, 영희 엄마. 알려줘서 고마워."

"어머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제가 함부로 말씀드려서 죄송해요."

전화를 끊고 나서 저는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믿을 수가 없었거든요.

제가 새벽같이 일어나서 배추를 절이고, 하루 종일 양념을 만들고, 정성껏 버무려서 담근 김치를... 휴게소 쓰레기통에 버렸다고요?

'시골 냄새가 난다'고요?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분하고, 서럽고, 억울했어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남편한테 이 이야기를 했어요.

"여보, 우리 며느리가 내가 보낸 김치를 쓰레기통에 버렸대요."

"뭐? 그게 무슨 소리요?"

남편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어요. 저는 영희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를 남편한테 전부 말해줬습니다.

"정말 화가 나는구만.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 당신이 얼마나 정성껏 담근 김치인데."

"나도 모르겠어요.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당신 잘못이 아니요. 며느리가 잘못한 거지. 당장 아들한테 전화해서 따져봐야겠소."

하지만 저는 남편을 말렸어요.

"아니요, 기다려 봐요. 내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요. 혹시 오해일 수도 있잖아요."

"오해는 무슨. 영희 엄마가 직접 봤다는데."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해 보고 싶어요."

저는 며칠 동안 고민했어요. 정말 며느리가 그랬을까? 혹시 영희 엄마가 잘못 본 건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영희 엄마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었어요. 그분은 착한 사람이었고, 저를 속일 이유가 전혀 없었거든요.

그렇다면 며느리가 정말로 제 김치를 버린 게 맞다는 얘기였습니다.

저는 점점 화가 났어요. 처음에는 그냥 서운하고 슬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내가 얼마나 정성껏 담갔는데. 새벽부터 일어나서 배추를 하나하나 다듬고, 양념을 만들고, 버무리고... 그걸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시골 냄새가 난다고? 그럼 너는 시골 사람 무시하는 거야? 우리가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다고 해서 함부로 대해도 되는 거야?'

저는 복수하고 싶었어요. 며느리한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장독대를 정리하다가 한 독을 발견했습니다.

그 독은 3년 전에 담근 된장이 들어 있었어요. 아주 귀한 된장이었는데, 여름에 제가 깜빡하고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았더니 파리가 들어간 거예요.

뚜껑을 열어보니까 표면에 구더기들이 우글우글하게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보통은 이런 된장은 바로 버려야 해요. 위생상 문제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순간 제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떠올랐습니다.

저는 독 뚜껑을 다시 닫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며느리가 제 김치를 싫어한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는 다른 걸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뭘 보낼까 고민하다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며느리가 제 된장은 좋아한다는 걸요.

사실 며느리는 제 된장을 정말 좋아했어요. 명절 때 집에 올 때마다 된장을 달라고 했거든요.

"어머님, 저번에 주신 된장 정말 맛있었어요. 더 주실 수 있으세요?"

"그래? 그럼 좀 더 담아줄게."

"감사해요, 어머님. 어머님 된장은 시중에 파는 된장하고는 비교가 안 돼요."

며느리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저는 기뻤어요. 내가 만든 된장을 며느리가 좋아해 준다는 게 고마웠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며느리가 제 김치를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 이상 며느리한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며느리가 저를 무시했으니, 저도 며느리한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장독대로 가서 그 구더기 든 된장독을 다시 열어봤습니다. 표면에는 하얀 구더기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었어요. 징그럽고 역겨웠지만, 저는 이걸 며느리한테 보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네가 내 김치를 쓰레기통에 버렸으니, 나는 너한테 진짜 쓰레기를 보내주마.'

저는 깨끗한 플라스틱 통을 준비했어요. 그리고 된장을 조심스럽게 떠서 담기 시작했습니다.

구더기는 주로 표면에만 있었어요. 그래서 표면 부분을 집중적으로 떠서 통 밑바닥에 깔았습니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구더기가 섞인 된장을 조금씩 담았어요.

그 위에는 멀쩡한 된장을 두껍게 덮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전혀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없게요. 표면만 보면 아주 정상적인 된장처럼 보였어요.

저는 통을 꽁꽁 밀봉했습니다. 그리고 택배 상자에 넣고 완충재도 충분히 넣었어요. 혹시 운송 중에 통이 깨지거나 새면 안 되니까요.

상자를 다 포장하고 나서 송장을 작성했습니다. 받는 사람은 며느리, 보내는 사람은 저. 주소는 아들네 서울 아파트.

택배를 보내기 전에 아들한테 전화를 했어요.

"얘, 엄마가 택배 보냈다."

"아, 뭐 보내셨어요, 엄마?"

"된장이야. 며느리가 된장 좋아한다고 했잖아. 이번에 아주 귀한 거 보냈다."

"와, 정말요? 고맙습니다, 엄마. 와이프가 엄마 된장 진짜 좋아해요."

"그래? 그럼 맛있게 먹어라. 이번 된장은 특별히 3년 묵은 거야. 아주 귀한 거니까 천천히 먹으라고 해라."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엄마."

저는 전화를 끊고 택배 상자를 들고 우체국으로 갔어요. 택배를 보내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제 곧 알게 될 거야. 네가 나한테 한 짓이 얼마나 나쁜 짓이었는지.‘

택배는 이틀 후에 아들네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날 며느리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대요.

오후 두 시쯤, 택배 기사가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택배 왔습니다!"

며느리가 현관문을 열었어요. 제법 큰 상자가 현관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송장을 확인했어요. 보내는 사람이 시어머니 이름이었지요

"아 드디어 도착했구나. 오늘저녁에 찌개끓여서 먹어야겠다"

며느리는 부푼 마음으로 상자를 들고 들어왔어요. 거실 바닥에 상자를 놓고 테이프를 뜯기 시작했습니다.

상자를 열어보니 완충재 사이에 플라스틱 통이 하나 들어 있었어요. 빨간 뚜껑이 달린 통이었습니다.

며느리는 통을 꺼냈어요. 무게가 제법 나가더군요.

'오, 된장이다! 어머님 된장이면 진짜 맛있는데!'

며느리는 기뻐했어요. 사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된장을 정말로 좋아했거든요. 김치는 냄새가 강해서 싫어했지만, 된장은 달랐습니다.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나는 그 된장은 정말 최고였어요.

회사 동료들한테도 자랑한 적이 있었죠.

"우리 시어머니 된장이 진짜 예술이야.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지 모르겠어. 시중에 파는 거랑은 차원이 달라."

"그래? 나도 한번 맛보고 싶은데?"

"다음에 받으면 조금 나눠줄게."

며느리는 통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돌려서 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님이 3년 묵은 거라고 하셨는데. 그럼 더 맛있겠다!'

뚜껑이 조금씩 풀렸어요. 된장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습니다.

"아, 이 냄새. 역시 어머님 된장이야."

며느리는 뚜껑을 완전히 열었어요. 그리고 통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표면에는 갈색 된장이 그대로 있었어요. 색깔만 봐도 진하고 깊은 맛이 날 것 같았습니다.

며느리는 부엌으로 가서 숟가락을 가져왔어요.

'바로 한 숟가락 먹어봐야지. 밥도 아직 안 먹었는데 잘됐다.'

며느리는 숟가락을 통 안에 넣었어요. 된장을 조금 떠서 들어올렸습니다.

된장이 숟가락에 올라왔어요. 색깔도 진하고, 농도도 완벽해 보였습니다.

며느리는 한 번 더 냄새를 맡아봤어요.

"음... 정말 3년 묵은 거 맞나 봐. 이 깊은 향..."

며느리는 아무 의심 없이 그 숟가락을 입에 넣었습니다.

혀에 된장이 닿았어요. 처음에는 익숙한 구수한 맛이 났습니다.

'와... 역시... 이 맛이야...'

며느리는 입안에서 된장을 천천히 굴렸어요. 깊은 감칠맛을 음미하면서요.

그런데 그때였어요.

입안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습니다.

'어? 이게 뭐지?'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어요. 된장 알갱이가 혀에 닿은 건가 싶었죠.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뭔가가 입안에서 분명히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것처럼요.

며느리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이게... 뭐야?'

며느리는 급하게 입을 벌렸어요. 그리고 손가락을 입안에 넣어서 그것을 꺼내려고 했습니다.

손가락 끝에 뭔가 말랑말랑하고 축축한 게 만져졌어요. 며느리는 그걸 집어서 입 밖으로 꺼냈습니다.

그리고... 그걸 봤습니다.

손가락 사이에 하얀 구더기가 꿈틀거리고 있었어요.

살아있는 구더기였습니다.

며느리가 방금 입안에서 씹고 있었던 건 바로 그 구더기였던 거예요.

"으아아아아악!"

며느리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마구 흔들었어요. 구더기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어요.

입안에 아직도 그 느낌이 남아 있었거든요. 구더기의 촉감이요. 꿈틀거리던 그 끔찍한 느낌이 혀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으으으윽... 으윽..."

며느리는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갔어요. 변기에 엎드려서 격렬하게 구역질을 했습니다.

"우웩! 우우웩! 우우우웩!"

위 속에 있던 모든 것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아침에 먹은 것까지 전부 다 토해냈습니다.

하지만 토해도 토해도 입안의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구더기가 입안에서 꿈틀거리던 그 끔찍한 촉감이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양치를 했어요.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미친 듯이 양치를 했습니다. 잇몸에서 피가 날 정도로 세게 닦았습니다.

"우웩... 으으윽..."

그래도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구더기가 혀 위에서 꿈틀거리던 그 감촉이 마치 각인이라도 된 것처럼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았어요. 온몸이 떨렸습니다.

'내가... 내가 구더기를... 입에 넣고... 씹었어...'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며느리는 또 변기에 엎드려서 구역질을 했습니다.

"으윽... 우웩..."

이미 위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계속 구역질이 나왔어요. 쓸개물까지 다 나올 정도로 토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며느리는 비틀거리며 거실로 나왔어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식탁 위에는 여전히 그 된장통이 놓여 있었어요.

며느리는 떨리는 손으로 통을 다시 봤습니다. 이번에는 자세히 봤어요.

표면의 된장은 별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싶어서 숟가락으로 표면을 조금 걷어냈어요.

그리고... 경악했습니다.

표면 밑에는 구더기가 가득했습니다.

수십 마리, 아니 수백 마리의 하얀 구더기들이 된장 사이에서 우글우글 꿈틀거리고 있었어요.

"아... 아..."

며느리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너무 충격을 받아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며느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어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며느리는 혼란스러웠어요. 시어머니가 그렇게 정성껏 담그시는 된장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요?

'아, 맞아... 어머님이 3년 묵은 거라고 하셨지... 혹시 오래 보관하시다가 실수로 뚜껑을 제대로 안 닫으신 건가...'

며느리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시어머니가 일부러 이런 걸 보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며느리는 손으로 입을 막고 또 울었어요.

'너무 징그러워... 너무 끔찍해... 내가 그걸 입에 넣고 씹었다니...'

며느리는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휴대폰을 꺼냈어요. 남편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 여보..."

목소리가 떨렸어요. 며느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응? 왜? 무슨 일이야? 목소리가 왜 그래?"

"여보... 나 지금... 집에 와줄래..."

"무슨 일인데? 무슨 일 있어?"

"어머님이... 보내신 된장... 구더기가..."

며느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어요. 너무 충격이 커서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뭐? 구더기? 진정해. 내가 지금 바로 갈게. 조금만 기다려."

남편은 회사에서 급하게 조퇴를 했어요. 그리고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까 며느리가 화장실 앞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서 계속 구토를 하고 있었어요.

"여보! 괜찮아? 왜 이래?"

남편이 며느리를 부축했어요. 며느리는 남편을 보자마자 와락 안기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나... 나..."

"진정해. 무슨 일인지 말해봐."

며느리는 떨리는 손으로 거실 식탁을 가리켰어요.

남편이 거실로 갔습니다. 식탁 위에 된장통이 놓여 있었어요.

남편이 된장통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그도 경악했어요.

"이게... 뭐야... 구더기가..."

된장 표면 밑에 구더기가 가득한 게 보였습니다.

남편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가 이런 된장을 보냈다니요.

"민서야, 너 이거... 먹은 거야?"

며느리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입에... 넣었어... 씹었어... 뭔가 움직이는 게 느껴져서... 손가락으로 꺼냈는데... 구더기였어..."

며느리는 말하면서 또 구역질을 했어요. 그 기억만으로도 토할 것 같았거든요.

남편은 충격을 받았어요. 아내가 구더기를 입에 넣고 씹었다니요.

"진정해. 일단 입 좀 헹궈. 내가 물 가져올게."

남편이 물을 가져왔어요. 며느리는 물로 입을 여러 번 헹궜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입안의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여보... 나 자꾸 그 느낌이 나... 구더기가 입안에서 꿈틀거리던 그 느낌이... 계속 느껴져..."

며느리는 또 울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며느리를 안아줬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말했어요.

"내가 엄마한테 전화할게. 엄마도 모르셨을 거야. 실수로 보내신 것 같아."

남편은 저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응, 왜? 무슨 일이냐?"

"엄마... 보내주신 된장 잘 받았어요."

"그래? 맛있니? 3년 묵은 거라 맛이 일품일 거다."

"엄마... 그게... 된장에서 구더기가 나왔어요."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어요.

저는 놀란 척 연기를 했습니다.

"뭐? 구더기? 정말?"

"네, 엄마... 그게... 우리 마누라가 그걸 입에 넣고 씹었어요. 지금 엄청 놀라서 계속 토하고 있어요."

"아니, 어떡해... 미안하다. 엄마가 실수한 것 같구나. 장독대에 된장독이 여러 개 있는데 혹시 잘못된 걸 보낸 모양이야."

저는 최대한 미안해하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괜찮아요, 엄마. 어머니 잘못이 아니에요. 그냥 실수신 거잖아요."

"정말 미안하다. 민서한테도 많이 미안하다고 전해라. 엄마가 조심했어야 하는데..."

"아니에요, 엄마. 괜찮아요. 근데 엄마, 혹시 다른 된장독도 확인해 보세요. 여름에 뚜껑을 제대로 안 닫으셨거나 하면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래, 알았다. 엄마가 당장 확인해 볼게. 정말 미안하구나."

전화를 끊고 나서 저는 혼자 씨익 웃었어요.

'쌤통이다.'

저는 속으로 통쾌했습니다. 며느리가 구더기를 입에 넣고 씹었다니요.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어요.

'평생 그 느낌 잊지 못할 거다. 내가 김치 버린 거 알았을 때 내가 느낀 기분을 이제 너도 알게 됐어.'

그날 이후로 며느리는 된장을 볼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마트에 가서 장 보다가 된장 코너를 지나갈 때도 눈을 감아야 했어요.

"여보, 된장 좀 사와."

"...내가 못 사. 당신이 사와. 나... 그거 보면 자꾸 그날 생각나..."

며느리는 된장을 보기만 해도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입안에서 구더기가 꿈틀거리던 그 끔찍한 느낌이요.

식당에 가서도 문제가 생겼어요.

"손님, 주문하시겠어요?"

"네, 저는 김치찌개 주세요."

며느리는 된장이 들어간 음식은 절대 먹을 수 없었어요.

회사 회식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민서씨, 왜 된장찌개 안 먹어요? 여기 된장찌개 맛있는데."

"아... 저 된장 못 먹어요."

"왜요? 알레르기 있어요?"

"아니... 그냥... 못 먹어요..."

며느리는 설명할 수가 없었어요. 된장을 먹다가 구더기를 씹었다고 어떻게 말해요?

밤에는 악몽을 꿨어요.

꿈속에서 구더기가 입안 가득 들어오는 꿈을요. 며느리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습니다.

"으아악!"

"왜 그래? 악몽 꿨어?"

"...응. 또 그 꿈..."

남편도 걱정이 됐어요. 며느리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았거든요.

추석이 다가왔어요.

며느리는 시골에 내려가는 게 두려웠습니다. 혹시 또 된장을 주시면 어떡하나 싶었거든요.

"여보, 이번 추석에 꼭 내려가야 해?"

"당연하지. 명절인데."

"근데... 어머님이 또 된장 주시면..."

"괜찮아. 내가 미리 말씀드릴게. 당신 지금 된장 못 먹는다고."

추석 당일, 며느리와 남편은 시골집으로 내려갔어요.

저는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어서 와라. 잘 왔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며느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했어요. 저를 보는 게 조금 불편했거든요. 물론 저는 일부러 보낸 거지만, 며느리는 그걸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민서야, 그때 일은 정말 미안했다. 엄마가 실수로 잘못된 된장을 보낸 것 같아."

"아니에요, 어머님. 괜찮아요."

며느리는 그렇게 말했지만 표정이 밝지 않았어요.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제가 차린 음식들을 상에 올렸어요.

"자, 많이 먹어라."

상에는 여러 가지 음식이 있었는데, 그 중에 된장찌개도 있었어요.

며느리는 된장찌개를 보자마자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민서야, 왜 안 먹니?"

"아... 저... 배가 안 고파서요..."

며느리는 된장찌개를 절대 먹을 수 없었어요. 보기만 해도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거든요.

저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며느리가 고생하는 모습이 통쾌했어요.

'제대로 혼났구나. 평생 된장 보기만 해도 그날 생각날 거야.'

명절이 끝나고 며느리와 아들이 서울로 돌아갈 때, 저는 일부러 물어봤어요.

"민서야, 김치 가져갈래? 엄마가 새로 담근 거."

며느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어요.

"아... 괜찮아요, 어머님. 저희 집에 아직 있어요."

거짓말이었죠.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저는 이미 복수에 성공했으니까요.

일 년이 지났어요.

며느리는 여전히 된장을 먹지 못했습니다.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도, 회사 회식 때도, 집에서 남편이 된장찌개를 끓여도 절대 먹지 않았어요.

"여보, 이제 좀 괜찮아진 거 아니야? 일 년이나 지났는데."

"안 돼... 나 정말 안 돼... 생각만 해도..."

며느리는 그날의 기억을 절대 잊을 수 없었어요.

된장뿐만 아니라 비슷한 색깔의 음식도 먹기 힘들어졌어요. 미소국, 카레, 짜장면... 갈색 음식들을 보면 자꾸 그날이 떠올랐거든요.

체중도 많이 빠졌어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제한됐으니까요.

"민서야, 너 요즘 너무 말랐다. 밥 좀 먹어."

"...먹으려고 해도 자꾸 그게 생각나서..."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어요.

저는 가끔 아들한테 전화를 받았어요.

"엄마, 우리 마누라가 아직도 된장을 못 먹어요."

"그래? 아직도?"

"네, 그날 일이 너무 충격이었나 봐요. 트라우마가 생겼대요."

"그랬구나. 엄마가 미안하다. 실수로 그런 걸 보내서..."

저는 미안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웃고 있었어요.

'쌤통이지. 네가 내 김치를 무시하고 버렸으니까. 이제 평생 된장을 못 먹는 거야.'

며느리는 끝까지 제가 일부러 그랬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저 시어머니의 실수라고만 생각했죠.

제 복수는 완벽했어요. 며느리는 평생 된장을 못 먹게 됐고, 저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실수한 시어머니'로 남았으니까요.

김치를 쓰레기통에 버린 대가는 이렇게 평생 갚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사연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오디오북으로 정성스레 만들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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