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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반전★35억 토지보상금으로 며느리에게 복수하기

by 아들딸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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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jeQrYn8hnXg


"어머님,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더럽게 왜 남의 물건을 함부로 손을 대세요?"

"미안하다. 그냥 너무 예뻐서 한번 발라보고 싶었어." 하지만 제손에서 립스틱을 낚아챈 며느리는 주저 없이 그 립스틱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어요.

"이거 이제 못 써요. 어머님, 앞으로는 제 물건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 저는 고개를 푹 숙였어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70평생 이렇게 수치스러운 적이 없었지요. 제가 겪은 치욕스러운 순간, 그리고 그 치욕을 배로 되돌려준 그 사건을 함께 들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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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로 일흔살이 된 박명순입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거실에 앉아 있지만 아무도 제 존재를 신경 쓰지 않았어요. 며느리 수진이는 명품 가방들을 소파에 늘어놓고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고, 아들 준혁이는 서재에서 회사 전화를 받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응, 이번에 샤넬에서 나온 신상 립스틱인데 진짜 예쁘지 않아? 30만 원 주고 샀어. 한정판이라서 구하기 힘들었다니까." 며느리의 목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어요. 저는 작게 몸을 움츠리며 소파 구석에 더 바짝 붙어 앉았습니다. 괜히 시선이라도 마주칠까 봐 조심스러웠거든요.

며느리는 반짝이는 금빛 케이스의 립스틱을 꺼내 입술에 발랐어요. 거울을 보며 이리저리 각도를 바꿔가며 확인하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 색깔 진짜 나한테 잘 어울리지? 강남 엄마들 모임에 이거 바르고 가면 다들 부러워할 거야."

그때 현관에서 초인종이 울렸어요. 택배 기사님이 큰 박스를 들고 와 계셨습니다. 며느리가 황급히 일어나며 말했어요. "아, 내가 주문한 프라다 구두 왔나 보다. 잠깐만!" 그렇게 며느리는 현관 쪽으로 뛰어갔고 저는 거실에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소파 위에 놓여진 명품 가방들 사이로 그 샤넬 립스틱이 보였어요. 금빛 케이스가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평생 농사만 지으며 살았던 저에게는 당치도 않은 꿈같은 물건이었어요. 구멍 난 양말을 꿰매 신고, 10년 넘은 옷을 입으며 살았던 제가 감히 만져볼 엄두도 못 낼 물건이었죠.

그런데 그 립스틱이 갑자기 소파에서 미끄러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저는 재빨리 허리를 숙여 주워 들었습니다. 손바닥 위에 놓인 립스틱은 생각보다 무게감이 있었고 차가웠어요. 케이스를 천천히 돌려 열어보니 선명한 붉은빛 립스틱이 나타났습니다.

현관에서는 여전히 며느리가 택배 기사님과 애기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작은 거울을 보며 그 립스틱을 입술에 조심스럽게 발랐습니다. 부드러운 질감이 입술을 타고 흘렀고 은은한 장미 향이 코끝을 스쳤어요. 70년 인생에서 이런 고급스러운 화장품을 써보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이 조금은 달라 보였어요. 주름진 얼굴이지만 붉은 입술이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평생 남의 논밭에서 품팔이하며 거칠어진 손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우아해 보이기까지 했어요.

"어머님!" 며느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립스틱을 떨어뜨릴 뻔했어요. 며느리가 현관에서 달려와 제 손에서 립스틱을 낚아챘습니다. "어머님, 그거 제 거예요! 더럽게 왜 남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세요?"

며느리의 얼굴이 일그러졌어요.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이었습니다. "이거 30만 원짜리 한정판인데 이제 어떡해요. 어머님이 쓰신 거 제가 어떻게 써요. 위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되잖아요."

"미안하다. 그냥 예뻐서 한번 발라보고 싶었어." 제가 조심스럽게 사과했지만 며느리는 휴지를 꺼내 립스틱을 닦기 시작했어요. 한참을 닦아내더니 결국 쓰레기통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주저 없이 그 립스틱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어요.

"이거 이제 못 써요. 30만 원이 그냥 날아갔어요. 어머님, 앞으로는 제 물건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 특히 화장품이나 이런 건 위생상 문제가 있잖아요." 며느리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습니다.

저는 고개를 푹 숙였어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70평생 이렇게 수치스러운 적이 없었어요. 거의 새것이나 마찬가지인 립스틱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걸 보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가 만졌다는 이유만으로 30만 원짜리 물건이 쓰레기가 되어버렸어요.

아들 준혁이가 서재에서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야?" 며느리가 재빨리 대답했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제 립스틱을 어머님이 써버리셔서 버린 거예요." 아들은 잠깐 저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었습니다.

"엄마, 며느리 입장도 좀 이해해 줘. 요즘 위생에 다들 민감한 시대잖아. 화장품은 개인용품이니까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거야." 아들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제 아들이 제 편이 아니라 며느리 편을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알겠다. 미안했다." 제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며느리는 다시 소파에 앉아 명품 가방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제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좁고 어두운 방이었지만 그래도 혼자만의 공간이 있다는 게 다행이었어요.

방문을 닫고 침대에 앉아 있는데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70년을 살면서 이렇게 무시당한 적이 없었거든요. 며느리에게는 저는 그저 더러운 존재였어요. 제가 만진 물건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만큼 불결한 거였습니다.

밤이 되어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을 때 며느리가 식탁을 차렸어요. 준혁이와 며느리 앞에는 스테이크와 샐러드, 와인이 놓였고 제 앞에는 김치와 멸치조림 밥 한 공기가 놓였습니다. "어머님은 한식이 입에 맞으시잖아요." 며느리가 웃으며 말했지만 그 미소는 차갑기만 했어요.

식사하는 동안에도 부부는 서로에게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회사 애기, 친구들 애기, 주말 계획 애기를 하면서 저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어요.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았습니다.

순간 깨달았어요. 저는 이 집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걸요. 아들이 잘 산다고 해서 따라온 서울 생활이었지만 이곳에서 저는 그저 방해가 되는 늙은 짐일 뿐이었습니다.

그날 밤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30년 전 남편 상철이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혼자서 아들을 키워냈던 그 힘든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힘들어도 희망이 있었어요. 아들이 잘 되기만 하면 된다는 희망 말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아들은 성공했지만 저는 더 외롭고 비참해졌습니다. 샤넬 립스틱 하나 발라보고 싶었던 제 작은 욕심이 이렇게 큰 수치심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어요. 그날 밤 저는 오랜만에 눈물을 흘리며 잠들었습니다.

아침 햇살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았어요. 며느리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화장실을 가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났습니다. 거실을 지나가는데 며느리가 소파에 앉아 또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어요.

"응, 시어머니? 말도 마. 진짜 스트레스야. 어제도 내 립스틱을 함부로 써버리시더라고. 30만 원짜리였는데 버릴 수밖에 없었어. 위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거 아냐?" 며느리의 목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습니다.

저는 발소리를 죽이며 화장실로 향했어요. 며느리는 제가 듣고 있는지도 모르고 계속 애기했습니다. "나도 효부 노릇 하려고 모셔왔는데 솔직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요양원에 보내는 게 서로한테 나을 것 같아. 어차피 나이도 많으시고 혼자 계시는 것보다 전문적으로 케어받는 게 낫잖아."

요양원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어요. 며느리가 저를 요양원에 보내려고 계획하고 있었던 거예요. 화장실 문 앞에 서서 더 이상 듣지 않으려고 했지만 며느리의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습니다.

"준혁이한테도 슬슬 애기해봐야겠어. 어머님 건강도 안 좋으시고 기억력도 떨어지시는 것 같더라고. 치매 검사도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 치매라는 말까지 나왔어요. 저는 전혀 치매가 아닌데 며느리는 그렇게 몰아가려는 거였습니다.

화장실에서 나와 제 방으로 돌아왔어요. 문을 닫고 침대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요양원에 보내려 한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제가 이 집에서 얼마나 불편한 존재였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서랍장을 열어 오래된 사진첩을 꺼냈어요. 30년 전 사진들이 가득했습니다. 남편 상철이와 어린 준혁이가 함께 찍은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때는 비록 가난했지만 행복했습니다.

남편 상철이는 경기도 양주에서 작은 농사를 지으며 살았어요. 논 몇 마지기와 밭이 전부였지만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준혁이가 다섯 살이었을 때 남편이 농기계 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여보, 오늘은 논에 비료 좀 뿌리고 올게. 저녁 전에 들어올 거야." 그게 남편이 제게 한 마지막 말이었어요. 점심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마을 이장님이 급하게 달려왔습니다.

"명순이 엄마, 큰일 났어! 상철이가 논에서 트랙터에 깔렸어!"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남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습니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저는 과부가 되었고 다섯 살 아들을 혼자 키워야 했어요.

장례를 치르는 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친척들은 다들 같은 말을 했어요. "명순아, 혼자서 어떻게 애를 키우니? 친정으로 돌아가서 재가하는 게 나을 거야." 하지만 저는 절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준혁이는 제 아들이었고 남편이 남긴 유일한 혈육이었거든요.

장례를 치르고 나니 빚만 남았어요. 병원비며 장례비며 합쳐서 500만 원이 넘는 돈이었습니다. 당시 제 형편으로는 엄청난 금액이었어요. 주변에서는 남편이 남긴 땅을 팔아야 한다는 압박이 심했습니다.

"명순이 엄마, 어차피 농사지을 능력도 없잖아. 땅 팔아서 빚 갚고 돈 좀 남겨서 애 키워." 친척들이 권유했지만 저는 고집을 부렸어요. 남편이 남긴 마지막 유산인 땅만큼은 절대 팔 수 없었습니다.

결국 친정에서 돈을 빌려 빚을 갚았고 저는 본격적으로 혼자 생활을 시작했어요. 논농사는 이웃 아저씨한테 맡기고 저는 다른 집 품팔이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준혁이 아침을 먹이고 유치원 버스에 태운 후 품팔이를 나갔어요.

하루 품삯이 2만 원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해서 받는 돈이었어요.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고 손에는 굳은살이 박혔습니다. 그래도 참았어요. 준혁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거든요.

준혁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학용품이며 책가방이며 사야 할 게 너무 많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새것을 사는데 준혁이는 동네 형들이 쓰던 헌 책가방을 물려받아야 했어요.

"엄마, 나도 새 책가방 갖고 싶어." 준혁이가 조르는 날이면 가슴이 아팠습니다. "준혁아, 미안하다. 조금만 참아라. 엄마가 나중에 꼭 사줄게." 그렇게 약속했지만 그 나중은 쉽게 오지 않았어요.

여름이면 다른 집 논에서 모내기를 했고 가을이면 추수를 도왔습니다. 겨울에는 비닐하우스에서 일했어요. 쉬는 날이 없었습니다.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도 일했어요. 그래야 돈을 더 벌 수 있었거든요.

준혁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아들을 서울로 유학 보내기로 한 거예요. 양주에는 좋은 학교가 없었고 준혁이가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에 사는 친척집에 준혁이를 맡기고 매달 생활비를 보냈어요. 50만 원씩이었는데 제 수입으로는 정말 큰돈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들이 잘 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동안 저는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손가락 관절이 휘어지고 허리가 굽어졌어요. 겨울에는 동상에 걸렸고 여름에는 땡볕에 그을렸습니다. 그래도 준혁이가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걸 보면서 뿌듯했어요.

제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성공하면 저도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아들은 성공했지만 저는 더 외로워졌고 준혁이가 수진이와 결혼한 후로는 완전히 투명인간이 되어버렸어요.

사진첩을 보며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어린 준혁이가 제 손을 꼭 잡고 웃고 있는 사진이 있었어요. "엄마, 나 커서 돈 많이 벌어서 엄마 편하게 해줄게." 그때 준혁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지금 준혁이는 어디 있나요? 며느리 편을 들고 저를 요양원에 보내려고 하는 게 지금 제 아들이었습니다. 40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키운 아들이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어요.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가을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쓸쓸하게 들렸어요. 저는 사진첩을 다시 서랍에 넣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어요. 저는 더 이상 이렇게 무시당하며 살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며칠이 지났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며느리의 태도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식사 자리에서 며느리가 말했어요. "어머님, 오늘부터 식사는 따로 하시는 게 어떨까요? 저희는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해서 바쁘거든요."

"그래? 그럼 내가 먼저 일어나서 밥 차려놓을게." 제가 대답하자 며느리가 손을 내저었습니다. "아니에요. 어머님이 차리신 음식은 저희 입맛에 안 맞아요. 저희는 샐러드나 요거트 같은 걸 먹거든요. 어머님은 한식 드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

결국 그날부터 저는 혼자 방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어요. 식탁에 함께 앉기라도 하면 등을 돌려버리니 불편해서 도저히 밥이 넘어가질 않았죠.

어느 날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며느리가 친구들을 집에 데려왔어요. 세 명의 여자들이 명품 가방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어머, 수진아 집 진짜 좋다. 역시 대치동은 다르네."

그러다 소파 구석에 앉아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어? 누구세요?" 한 친구가 물었고 며느리가 대답했어요. "아, 시어머니세요. 신경 쓰지 마세요."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 가슴에 박혔습니다. 저는 그저 신경 쓸 필요 없는 가구 같은 존재였던 거예요. 친구들은 제가 없는 것처럼 큰 소리로 애기했습니다. "요즘 시어머니 모시는 사람 거의 없잖아. 수진이 너 대단하다."

며느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어요. "대단하긴. 솔직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그래서 요양원 알아보는 중이야." 방안에 들어가 있는 제게 마치 들으라는 듯이 말하더군요

"그게 낫지. 요즘은 요양원도 좋던데. 전문적으로 케어도 받고 또래 친구들도 있으니까 어르신들한테도 좋다더라." 친구들이 맞장구를 쳤어요. 저는 이불을 덮고 누웠습니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어요. 눈물이 흘러내렸 베개를 적셨습니다. 며느리는 제 앞에서도 서슴없이 요양원 애기를 했어요. 제 감정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거죠.

다음 날 아들 준혁이가 퇴근 후 제 방으로 찾아왔어요. "엄마, 우리 애기 좀 할까요?" 진지한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무슨 애기를 할지 짐작이 갔어요.

"엄마,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기억력 같은 거 괜찮으세요?" 준혁이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나 멀쩡하다. 왜 그러니?" 제가 대답하자 준혁이가 한숨을 쉬었어요.

"엄마,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수진이가 엄마 모시는 게 많이 힘들대요. 엄마도 나이가 있으시니까 전문적인 케어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결국 요양원 애기였습니다.

"나는 안 간다. 왜 요양원을 가야 하는데?" 제가 단호하게 말하자 준혁이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어요. "엄마, 저희도 생활이 있잖아요. 수진이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있어요."

"그래. 네 마누라가 중요하지. 30년 동안 온갖 고생하며 너 키운 엄마는 이제 필요 없는 거지." 제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준혁이가 당황하며 말했어요. "엄마, 그게 아니라..."

"나도 알아. 내가 이 집에서 짐이라는 거. 네 마누라한테 불편한 존재라는 거 다 안다." 제가 소리를 높이자 준혁이가 입을 다물었어요. 한참 침묵이 흐른 후 준혁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좋은 요양원 알아볼게요. 시설도 좋고 음식도 맛있는 데로요. 일주일에 한 번은 찾아뵐게요." 준혁이가 나가고 저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제 아들이 저를 요양원에 보내려고 하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어요. 창밖을 보니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반짝이는 불빛들이 아름다웠지만 제 마음은 어두웠어요. 30년 동안 아들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결국 버림받는 신세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며칠 후 며느리가 요양원 팜플렛을 가져왔어요. "어머님, 여기 한번 보세요. 시설도 좋고 프로그램도 다양하대요. 같은 또래 분들이랑 친하게 지낼 수 있어요."

팜플렛을 보니 깔끔한 시설이었지만 제 눈에는 감옥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안 간다고 했잖아." 제가 팜플렛을 밀어내자 며느리의 얼굴이 굳어졌어요.

"어머님, 이러시면 저희도 힘들어요. 어머님 모시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요. 솔직히 어머님 때문에 제 생활이 너무 불편해요." 며느리가 본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래. 내가 불편한 존재인 거 안다. 하지만 나도 내 집이 있어. 거기 돌아가서 살게." 제가 말하자 며느리가 코웃음을 쳤어요. "어머님 집? 그 허름한 시골집 말씀이세요? 거기서 혼자 어떻게 사세요? 그러니까 요양원이 낫다는 거예요."

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을 닫고 침대에 앉아 한참을 울었어요. 며느리의 말이 맞았습니다. 양주에 있는 제 집은 30년 된 낡은 한옥이었고 혼자 살기에는 불편했어요.

하지만 며느리는 몰랐습니다. 그 집이 있는 땅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최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요. 서랍장을 열어 우편물 한 통을 꺼냈어요. 두 달 전에 받은 편지였습니다.

봉투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라고 적혀 있었어요. 편지를 펼쳐보니 토지수용보상금 통지서였습니다. 양주시 일대가 국가재개발 계획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제 땅이 수용 대상이 되었다는 내용이었어요.

보상금액을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35억 원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어요. 남편이 30년 전에 남긴 땅이 이제는 35억짜리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아들한테도, 며느리한테도요. 그냥 조용히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돈이 없을 때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리고 돈이 있다는 걸 알면 어떻게 변할지 보고 싶었거든요.

지금까지 본 결과는 명확했어요. 며느리는 저를 쓰레기 취급했고 아들은 요양원에 보내려고 했습니다. 제가 가난한 시골 노인이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곧 모든 게 바뀔 거였습니다.

저는 통지서를 다시 서랍에 넣고 조용히 웃었어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습니다.

일주일 후 며느리가 제 방문을 두드렸어요. "어머님, 내일 병원 가셔야 해요. 건강검진 받으실 시간이에요." 며느리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친절했지만 뭔가 수상했습니다.

"무슨 검진인데?" 제가 물었지만 며느리는 대충 둘러댔어요. "그냥 정기검진이에요. 나이 드시면 건강 체크 자주 하셔야죠." 다음 날 아침 준혁이가 직접 저를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차 안에서 준혁이는 말이 없었어요. 무거운 침묵만 흘렀습니다. 도착한 곳은 대형 종합병원이었고 신경과였어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이게 단순한 건강검진이 아니라는 걸요.

"어서 오세요. 박명순 환자분이시죠?" 의사 선생님이 웃으며 맞이했어요. "네, 오늘은 기억력 검사를 해보려고 합니다. 간단한 질문 몇 가지 드릴 테니 편하게 대답하시면 됩니다."

검사가 시작되었어요.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아세요?" "10월 23일입니다." "지금 계신 곳이 어디죠?" "서울 강남구 병원입니다." 저는 모든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했어요.

그림을 보여주며 기억하라고 하더니 나중에 다시 물어봤습니다. 저는 그것도 다 기억해서 대답했어요. 계산 문제도 풀었고 단어 나열하는 것도 해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음, 검사 결과는 정상이신데요.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의사가 말하자 준혁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집에서는 자꾸 물건을 잃어버리신다고 하던데요."

"어르신, 집에서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세요?" 의사가 저에게 물었고 저는 고개를 저었어요. "아니요. 전혀 그런 적 없습니다." 준혁이가 끼어들었습니다. "엄마, 지난주에도 안경 찾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네 마누라가 치워놔서 못 찾았던 거야." 제가 대답하자 준혁이는 입을 다물었어요. 의사가 준혁이를 보며 말했습니다. "보호자분, 환자분은 인지기능에 전혀 문제가 없으십니다. 정상이세요."

병원을 나오는 길에 준혁이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어요. 집에 도착하자 며느리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됐어요? 결과 나왔어요?" 며느리가 급하게 물었고 준혁이가 고개를 저었어요.

"정상이래. 아무 문제 없대." 며느리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다른 병원 가봐야겠어요. 요즘 어머님 행동이 이상하시다니까요."

저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어요. 며느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제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치매 진단을 받아서 정신없는 노인으로 만들어 요양원에 보내려는 계획이었던 겁니다.

며칠 후 며느리가 또 다른 병원 예약을 잡았어요. 이번에는 더 큰 대학병원이었습니다. 저는 순순히 따라갔어요. 어차피 제가 정상이라는 게 다시 증명될 테니까요.

두 번째 병원에서도 같은 검사를 받았습니다. 결과는 역시 정상이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느리에게 말했습니다. "보호자분, 어머님은 연세에 비해 인지기능이 아주 좋으십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며느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며느리가 중얼거렸습니다. "이상하네. 분명히 깜빡거리시는 것 같았는데."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날 밤 며느리와 준혁이가 거실에서 애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보, 치매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요. 어머님을 계속 모실 수는 없잖아요." 며느리의 목소리가 간절했어요.

"그래도 엄마가 정상인데 어떻게 요양원에 보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준혁이가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럼 어떡해요? 저는 정말 한계예요. 시어머니랑 같은 집에서 못 살겠어요."

며느리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어요. 저는 방문을 살짝 열고 그들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여보, 진짜 요양원밖에 방법이 없어요. 아니면 어머님 고향집으로 돌려보내든지요."

"고향집은 너무 낡아서 혼자 사시기 힘들어. 수리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준혁이가 한숨을 쉬었어요. "그럼 돈 들여서라도 수리하고 보내세요. 저는 정말 못 참겠어요."

며느리의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40년 동안 아들을 키우느라 모든 걸 희생했는데 이제 저는 버림받을 처지였어요. 하지만 동시에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다음 날 저는 결심했어요.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고요. 서랍에서 토지수용 통지서를 꺼내 다시 읽어봤습니다. 35억 원이라는 금액이 눈에 들어왔어요.

이 돈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며느리와 아들에게 알려줄까? 아니면 계속 숨기고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결론을 내렸어요. 일단은 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사람의 진심은 돈 앞에서 드러난다고 하잖아요. 제가 가난할 때 어떻게 대하는지 다 봤으니 이제 돈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 보고 싶었어요.

며칠 후 며느리가 집 계약서를 들고 제 방에 들어왔어요. "어머님, 여기 좀 서명해 주세요." "뭔데?" "어머님 고향집 수리하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은행에서 대출받으려고 하는데 집 소유자가 어머님이시니까 서명이 필요해요."

순간 깨달았습니다. 며느리가 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는 거였어요. 아마 그 돈으로 집을 수리한다고 하겠지만 실제로는 자기들이 쓸 생각이었을 겁니다.

"나 서명 안 해." 제가 단호하게 말하자 며느리의 얼굴이 굳어졌어요. "어머님, 이러시면 고향집 수리 못 하세요. 그럼 계속 여기 계셔야 하는데 그것도 불편하시잖아요."

"내 집에 내가 서명 안 한다는데 왜 자꾸 그래?" 저는 계약서를 밀어냈습니다. 며느리가 화가 난 표정으로 나갔어요. 곧 준혁이가 들어왔습니다.

"엄마, 왜 서명을 안 하세요? 엄마 집 수리하려는 건데." "너희가 내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서 뭐 하려고? 정말 수리할 거야? 아니면 너희가 쓸 거야?"

준혁이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어요. "엄마, 그게 아니라..." "됐어. 나한테 거짓말하지 마. 다 안다." 준혁이도 결국 나갔습니다.

그날 밤 저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어요. 이제 진짜로 제 인생을 제가 살아야 할 때가 왔다고요. 며느리와 아들한테 더 이상 휘둘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어요. 오랜만에 외출복을 꺼내 입고 머리도 단정하게 빗었습니다. 며느리가 부엌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저를 보더니 물었어요.

"어머님, 어디 가세요?" "은행 좀 다녀올게." 제가 대답하자 며느리가 눈썹을 치켜올렸습니다. "은행은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그냥 내 일 좀 보려고."

며느리는 더 이상 묻지 않았어요. 관심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집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양주로 향했어요. 오랜만에 가는 고향이었습니다.

양주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마을까지 갔어요. 30년을 살았던 집이 보였습니다. 낡은 한옥이었지만 정겨웠어요.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당에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 서랍장을 열었어요. 토지 문서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남편 상철이가 남긴 땅 문서였어요. 그걸 들고 마을 입구에 있는 부동산 중개소로 갔습니다.

"아이고, 명순씨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중개소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줬어요. "네, 잘 지냈어요. 아저씨, 제 땅이 재개발 지역에 포함됐다면서요?"

"그렇지. 몰랐어? 정부에서 양주 일대를 신도시로 개발한다고 발표했잖아. 명순이 엄마 땅이 딱 중심지에 있어서 보상금이 엄청날 거야." 중개소 아저씨가 설명해줬어요.

"명순이 엄마 이제 부자 됐네!" 아저씨가 축하한다며 웃었습니다.

저는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35억이라는 돈이 얼마나 큰 돈인지 가늠이 안 됐습니다. "아저씨, 그 돈은 언제 받아요?" "다음 달쯤 되면 받을 수 있을 거야. 서류 처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거든."

중개소를 나와 마을을 걸었어요. 30년 동안 품팔이 다니던 그 길이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하며 아들 뒷바라지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그때는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습니다.

마을 어귀에 있는 슈퍼에 들어갔어요. "어머, 명순이 엄마 오랜만이네!" 슈퍼 아줌마가 반갑게 맞아줬습니다. "네, 잠깐 일 보러 왔어요." "들었어? 우리 마을이 재개발된다면서? 명순네는 대박 났다며?"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어요. 제 땅이 얼마짜리인지 다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저도 얼떨떨해요." "아이고, 이제 고생 끝이네. 그동안 고생 많았잖아. 남편 일찍 여의고 혼자 아들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어."

슈퍼 아줌마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어요. 마을 사람들은 제 고생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40년 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며 아들을 키운 걸 다 지켜봤던 거예요.

"고마워요. 덕분에 아들이 잘 됐어요." 제가 말하자 아줌마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들이 대기업 다닌다며? 잘 됐네. 엄마 고생한 보람이 있네."

슈퍼를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왔어요. 마당에 앉아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파란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어요. 문득 남편 상철이가 생각났습니다.

"여보, 우리 땅 절대 팔지 말자. 준혁이한테 물려줄 거야." 남편이 살아 있을 때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주변 사람들은 다들 그 땅 팔아서 서울 가서 살라고 했지만 저는 남편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땅만큼은 절대 팔지 않았어요.

그 결과가 지금 35억이라는 보상금으로 돌아온 거였습니다. 남편이 옳았어요. 땅을 지킨 게 정말 잘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마당에 앉아 한참을 울었어요. 남편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서울로 돌아갔어요. 집에 도착하니 며느리가 거실에서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응, 시어머니? 아직도 집에 계셔. 진짜 답답해 죽겠어."

며느리는 곁눈질로 제가 들어온 것을 알면서도 애기를 계속했어요. "요양원 보내려고 하는데 자꾸 거부하셔. 치매 검사도 정상으로 나오고. 정말 골치 아파." 저는 조용히 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문을 닫고 침대에 앉았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봤습니다. 며느리한테 보상금 사실을 알려줄까? 아니면 계속 숨기고 있을까?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어요. 일단은 숨기기로 했습니다. 며느리와 아들이 돈을 알고 나서 어떻게 변할지 보고 싶었거든요. 지금까지는 제가 가난한 노인이라고 생각해서 함부로 대했지만 돈이 있다는 걸 알면 태도가 180도 바뀔 게 뻔했어요.

그 변화를 지켜본 후에 제 결정을 내리려고 했습니다. 며느리와 아들이 진짜로 저를 생각해서 대하는 건지, 아니면 돈 때문에 대하는 건지 확실히 알고 싶었어요.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에 며느리가 말했어요. "어머님, 다음 주에 요양원 둘러보기로 했어요. 시설도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입소 날짜 잡으려고요."

"나는 안 간다니까." 제가 단호하게 말하자 며느리가 짜증을 냈습니다. "어머님, 왜 자꾸 그러세요? 요양원이 얼마나 좋은데요. 전문 간호사들도 있고 프로그램도 다양하고요."

"좋으면 네가 가. 나는 안 가." 제 말에 며느리의 얼굴이 붉어졌어요. "어머님, 정말 이러시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저는 더 이상 못 모시겠어요."

준혁이가 끼어들었습니다. "엄마, 수진이 애기도 들어줘. 수진이도 많이 힘들어해." "네 마누라가 힘들면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

"엄마가 뭘 잘못한 게 아니라..." 준혁이가 말을 흐렸어요. "그냥 수진이가 시어머니랑 같이 사는 게 불편한 거야. 요즘 며느리들은 다 그래."

준혁이의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 아들이 며느리 편만 드는 거였어요. 저는 더 이상 애기하고 싶지 않아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밤 저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어요. 다음 달 보상금을 받으면 제 인생을 완전히 바꾸기로 했습니다. 며느리와 아들한테 더 이상 의지하지 않고 제가 원하는 대로 살기로요.

월요일 아침 저는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어요. 며느리가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어머님, 또 어디 가세요?" "일 보러 가." 저는 짧게 대답하고 집을 나섰어요.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찾은 법무법인으로 향했습니다. 강남역 근처에 있는 큰 로펌이었어요. 고층 빌딩 20층에 위치한 사무실은 깔끔하고 현대적이었습니다.

"박명순 고객님 맞으시죠? 안으로 들어오세요." 젊은 변호사님이 저를 안내했어요. "안녕하세요. 김정민 변호사입니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저는 가방에서 토지 문서와 보상금 통지서를 꺼냈습니다. 변호사님이 서류를 꼼꼼히 살펴봤어요. "아, 양주 재개발 지역이시군요. 보상금이 35억 원 정도 되시네요."

"네. 그런데 제가 상담받고 싶은 건 상속 문제예요." 제가 말하자 변호사님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말씀하세요."

"제 아들이 있는데요. 이 돈을 아들한테 상속하고 싶지 않아요. 방법이 있을까요?" 변호사님이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습니다. "유언장을 작성하시면 됩니다. 법적으로 유류분이라는 게 있어서 아들분이 일정 부분은 받을 권리가 있지만 대부분은 다른 곳에 기부하시거나 다른 용도로 쓰실 수 있어요."

"유류분이 뭔가요?" "법으로 정해진 최소 상속분이에요. 직계 자녀의 경우 남아있는 전체 재산의 2분의 1에 대한 권리가 있어요. 그래서 아들분께는 최소한 일정 금액은 가게 되실 겁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럼 나머지 돈은 제가 자유롭게 쓸 수 있나요?" "네, 물론입니다. 생전에 쓰시는 건 전혀 문제없으세요. 상속이 아니라 증여나 기부, 또는 본인이 쓰시는 건 누구도 간섭할 수 없어요." “그럼 제가 살아있을 때 최대한 많은 돈을 써야 유류분도 적어지겠네요.”“그렇죠.”

변호사님의 설명을 듣고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럼 유언장을 작성하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작성하시겠어요?"

저는 천천히 제 생각을 말했어요. "제 재산 중에서 유류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제가 생전에 다 쓰겠습니다. 그리고 아들한테는 유류분만 남기고요. 며느리한테는 한 푼도 안 갈 겁니다."

"며느리분께는 상속 권리가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혹시 다른 자녀분은 안 계세요?" "없어요. 아들 하나뿐이에요."

변호사님이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어요. "그럼 이렇게 작성하시겠습니다. '본인 박명순은 정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다음과 같이 유언한다. 본인 사후 남아있는 재산 중 법정 유류분만 아들 박준혁에게 상속한다.' 이렇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유언장을 작성하고 공증까지 받았습니다. 변호사님이 설명했어요. "이 유언장은 법적 효력이 있습니다. 혹시 나중에 아드님께서 이의를 제기하셔도 유류분 이상은 받으실 수 없어요."

"고맙습니다." 저는 유언장 사본을 가방에 넣었어요. 이제 법적으로 제 재산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펌을 나와 커피숍에 들어갔어요.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습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35억이라는 돈으로 제 인생을 어떻게 바꿀까?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어요.

일단 며느리와 아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아직은 보상금 사실을 알리지 않을 거예요. 조금 더 그들의 본성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며느리가 거실을 청소하고 있었어요. "어머님 오셨어요? 오늘 어디 다녀오셨어요?" 며느리가 물었지만 목소리에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냥 병원 다녀왔어." 저는 대충 둘러댔어요. "병원이요? 어디 아프세요?" "아니, 정기검진." 며느리는 더 이상 묻지 않았어요.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어요. 준혁이가 퇴근해서 들어왔고 세 사람이 식탁에 앉았습니다. 며느리가 스테이크를 준비했는데 제 앞에는 여전히 김치찌개와 밥만 놓였어요.

대충 먹고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습니다. 다음 달이면 보상금을 받을 거예요. 그 돈으로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꿀 수 있습니다. 며느리와 아들 눈치 보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40년 동안 온갖 고생하며 키운 아들이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거든요. 며느리 편만 들고 저를 요양원에 보내려고 하는 아들이 낯설었어요.

'돈이 있다는 걸 알면 달라질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태도가 완전히 바뀔 거예요. 극진하게 모시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그게 진심일까요? 돈 때문에 잘하는 거라면 그건 진짜 효도가 아니잖아요.

저는 결심했어요. 보상금을 받으면 잠깐 그들한테 알려줄 거예요. 그리고 반응을 본 후에 제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요. 만약 돈 때문에 태도가 바뀐다면 그때는 완전히 정리하고 떠날 겁니다.

창밖을 보니 달이 떠 있었어요. 밝은 달빛이 방 안을 비췄습니다. 남편 상철이가 생각났어요. '여보, 내가 잘하고 있는 거 맞죠? 우리 아들이 이렇게 변할 줄 몰랐어요.'

혼자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울기만 할 때가 아니에요. 제 인생을 제가 책임져야 할 때가 왔습니다. 70년을 남을 위해 살았으니 이제는 저를 위해 살 거예요.

한 달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보상금이 입금되는 날이었어요. 아침 일찍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창구 직원이 통장을 건네며 말했어요. "고객님, 입금 확인되셨습니다. 35억 2천만 원 정확히 들어왔습니다."

통장을 받아 드는 순간 손이 떨렸어요. 평생 이렇게 큰돈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숫자가 너무 많아서 세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고객님, 이렇게 큰돈은 자산 관리를 받으시는 게 좋습니다. 저희 은행에 프라이빗 뱅킹 서비스가 있는데..."

직원이 설명했지만 저는 고개를 저었어요.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통장을 가방에 넣고 은행을 나왔습니다. 길을 걸으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며느리한테 무시당하던 가난한 노인이었는데 오늘은 35억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통장만 있을 뿐 제 삶은 아직 변한 게 없었어요. 집으로 돌아가면 여전히 며느리의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 하고 아들의 무관심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집에 도착하니 며느리가 현관에서 쇼핑백을 들고 나가려는 참이었어요. "어머님 오셨어요? 저 친구 만나러 나갔다 올게요." 며느리는 인사만 하고 급히 나갔습니다.

저는 제 방으로 들어가 통장을 화장대위에 어설프게 올려두었어요. 아주 보란 듯이 말이에요

이틀 후 배가 아프다며 정로환을 달라고 제방에 들어온 며느리가 화장대 위의 통장을 힐끗 보았어요. 저는 드디어 걸려들었구나 생각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제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나간 사이에 며느리가 제 통장을 들춰본게 분명했어요. 통장 위치가 조금 달라져 있었거든요.

며느리의 얼굴이 창백하면서도 홍조가 띠어 있었고 눈빛이 이상하게 번뜩였습니다. 며느리가 통장을 봤구나. 35억이라는 숫자를 봤을 거예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부터 며느리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어요.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어요. 며느리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어머님, 오늘 뭐 드시고 싶으세요? 제가 특별히 맛있는 거 해드릴게요." 갑자기 친절해진 목소리였어요.

"아무거나 괜찮아." 제가 대답하자 며느리는 부엌으로 가서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제 앞에 김치찌개만 놓던 며느리가 오늘은 갈비찜을 만들고 있었어요.

준혁이가 퇴근해서 들어왔어요. 며느리가 준혁이를 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문이 닫혔지만 목소리가 새어 나왔어요. "여보, 큰일 났어. 어머님 통장 봤는데..."

준혁이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뭐? 35억?" "응, 통장에 35억 2천만 원이 찍혀 있었어. 예전에 양주 땅이 재개발이 되네마네 소문만 무성하더니 진짜로 토지수용이 된것 같아."

"진짜? 엄마가 그 돈을 받았어?" "그래. 나도 깜짝 놀랐어."

며느리의 목소리가 급해졌어요. "여보, 이제부터라도 어머님한테 잘해야 해. 요양원 애기는 절대 꺼내면 안 돼. 어머님 기분 상하시면 안 되잖아."

준혁이도 동의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 엄마한테 잘해야겠다. 35억이면 엄청난 돈인데."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못되게 굴었어. 이제부터 극진하게 모셔야 해."

저는 거실에 앉아 그 대화를 다 들었어요. 예상했던 대로였습니다. 돈이 있다는 걸 알고 나니 태도가 완전히 바뀐 거예요. 가슴이 아팠습니다.

40년 동안 아들을 키우며 바랐던 건 이런 게 아니었어요. 돈 때문에 잘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저를 사랑해서 잘해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어요.

방문이 열리고 준혁이가 나왔어요. "엄마, 오늘 저녁 맛있는 거 먹어요. 수진이가 엄마 좋아하시는 갈비찜 만들고 있어요." 준혁이의 목소리가 갑자기 다정해졌습니다.

"그래? 고맙네." 저는 담담하게 대답했어요. 며느리가 부엌에서 나와 식탁을 차렸습니다. 갈비찜, 잡채, 나물 반찬들이 푸짐하게 차려졌어요. 그리고 제 앞에도 이젠 같은 음식이 놓였습니다.

"어머님, 많이 드세요. 제가 정성껏 만들었어요." 며느리가 웃으며 말했어요. 샤넬 립스틱을 쓰레기통에 던지던 그 며느리가 갑자기 극진하게 대하니 속이 메스꺼웠습니다.

식사하는 동안 준혁이와 며느리는 제 눈치를 살폈어요. "엄마, 불편한 거 없으세요?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병원 가셔야 하면 제가 모시고 갈게요."

갑자기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웠어요. 저는 밥을 먹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며느리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어머님, 혹시 최근에 좋은 일 있으셨어요?"

"좋은 일?" "네, 그러니까... 뭐 특별한 일 같은 거요." 며느리가 빙빙 돌려 말했지만 저는 통장을 봤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별일 없어." 저는 짧게 대답했습니다. 며느리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어요. 식사를 마치고 며느리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님은 쉬세요. 제가 다 할게요." 평소 같으면 제가 설거지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오늘은 다르더라고요. 저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침대에 누워 생각했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며느리와 아들은 돈 때문에 태도를 바꿨습니다. 진심이 아니라 돈 때문에 잘하는 거예요. 이런 거짓된 관심을 받으며 사는 게 과연 행복할까요?

저는 결심했어요. 더 이상 이 집에 있을 수 없다고요. 며느리와 아들한테 진실을 말하고 제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35억이라는 돈으로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꿀 거예요.

다음 날 아침 저는 준혁이와 며느리를 거실로 불렀어요. "애기 좀 하자." 두 사람이 긴장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았습니다. 며느리는 여전히 꾸민 듯한 미소를 지고 있었어요.

"어머님, 무슨 애기예요?" 며느리가 공손하게 물었습니다. 저는 가방에서 통장을 꺼냈어요. "이거 봤지?" 통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며느리의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어머님, 그게..." "다 알아. 몰래 봤잖아. 35억이라는 숫자 보고 놀랐지?" 제 말에 며느리가 고개를 푹 숙였어요. 준혁이도 당황한 표정이었습니다.

"돈이 있다는 걸 알고 나니까 갑자기 내가 소중해졌니? 그게 진심이야?" 제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며느리가 변명하기 시작했어요. "어머님, 오해예요. 저는 진심으로..." "진심? 립스틱 쓰레기통에 던지면서 더럽다고 하던 게 진심이었어? 요양원 보내려고 하던 게 진심이었어?"

제 말에 며느리는 할 말을 잃었어요. 준혁이가 끼어들었습니다. "엄마, 우리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앞으로는 정말 잘할게요."

"너희가 잘못한 게 뭔지 알아?" 저는 아들을 똑바로 바라봤어요. "내가 가난한 시골 노인이라고 생각해서 함부로 대한 거. 돈이 없으니까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 거. 그게 잘못이야."

준혁이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엄마,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 다 알아. 너희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다 봤어. 투명인간 취급하고 요양원 보내려고 하고."

며느리가 울기 시작했어요. "어머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너무 못됐어요. 용서해 주세요." 하지만 저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용서? 진짜 반성해서 용서를 빌어? 아니면 내 돈 때문에 용서를 빌어?" 제 질문에 며느리는 대답하지 못했어요. 준혁이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정말 잘못했어요. 40년 동안 엄마가 나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알면서도 잊고 살았어요. 며느리 편만 들고 엄마를 무시했어요."

아들이 우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어요.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준혁아, 나는 결심했어. 이 집 나갈 거야."

"엄마!" 준혁이가 놀라며 소리쳤어요. "어디 가시려고요?" "내가 갈 곳은 내가 정해. 너희는 신경 쓰지 마." 며느리가 황급히 말했어요.

"어머님, 제발 그러지 마세요. 저희가 정말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진짜 잘할게요. 어머님 모시고 잘 살게요." 며느리의 말이 진심처럼 들렸지만 저는 알고 있었어요. 돈 때문이라는 걸요.

"너희가 나한테 진짜 잘하고 싶었으면 돈이 있든 없든 똑같이 대했어야지. 돈 있다는 거 알고 나서 태도 바꾸는 건 진심이 아니야." 제 말에 두 사람은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저는 일어섰습니다. "나는 이제 내 인생을 살 거야. 70년 동안 남 눈치 보며 살았어. 남편 죽고 나서는 아들 뒷바라지하느라 내 인생이 없었어. 이제는 나를 위해 살고 싶어."

"하지만 엄마, 저는 아들이잖아요."

"아들? 요양원 보내려던 아들이 이제 와서 아들이라고 말하니?" 제 말에 준혁이는 고개를 숙였어요. 며느리가 다시 애원했습니다.

"어머님, 제발 우리한테 기회를 주세요. 진짜 잘할게요. 앞으로는 어머님을 진짜 엄마처럼 모실게요." 며느리의 눈물이 진짜처럼 보였지만 저는 더 이상 속지 않았어요.

"기회는 이미 줬어. 지난 몇 달 동안 너희는 나를 어떻게 대했어? 샤넬 립스틱 쓰레기통에 버리고, 따로 식사하게 하고, 치매 검사 받게 하고. 그게 돌아온 전부였어."

제 말에 며느리는 울면서 고개를 숙였어요. 저는 방으로 돌아가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많지 않았어요. 옷 몇 벌과 사진첩, 그리고 통장 정도였습니다.

준혁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엄마, 진짜 가실 거예요?" "그래. 더 이상 여기 있을 수 없어." "그럼 어디 가시려고요?"

"일단 양주 집에 가서 정리하고 그다음은 생각해 볼게." "엄마, 양주 집은 너무 낡았잖아요." "그래도 내 집이야. 너희 집보다 편해."

준혁이가 한숨을 쉬었어요. "엄마, 그 돈으로 뭐 하실 거예요?" 역시 돈 애기였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쓸 거야. 변호사랑 상담도 다 했어. 유언장도 작성했고."

"유언장?" 준혁이의 얼굴이 굳어졌어요. "네 유류분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내가 쓸 거야. 며느리한테는 한 푼도 안 가." 제 말에 준혁이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엄마가 그렇게까지..." "그렇게까지 하는 게 아니야. 이게 정당한 거야. 내 돈을 내가 쓰는 게 뭐가 잘못이야?" 준혁이는 더 이상 말하지 못했어요.

짐을 다 싸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며느리가 소파에 앉아 울고 있었어요. "어머님, 정말 가시는 거예요?" "그래. 잘 있어."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준혁이가 뒤따라왔어요. "엄마, 연락은 하실 거죠?" "필요하면 할게." "엄마..." "너도 이제 네 인생 살아. 나도 내 인생 살 거야."

저는 집을 나왔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40년 동안 키운 아들과 이렇게 헤어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았어요. 이제는 제 인생을 살아야 할 때였으니까요. 아파트를 나와 택시를 탔습니다. "양주 어디로 가시나요?" 기사님이 물었어요.

"양주시 남면이요." 차가 출발했습니다. 창밖으로 서울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어요. 높은 빌딩들, 복잡한 거리들이 점점 멀어졌습니다.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어요.

양주에 도착했어요. 오래된 한옥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30년 동안 살았던 집이었어요.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당에 잡초가 무성했지만 정겨웠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 짐을 내려놓았어요.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청소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마당을 쓸기 시작했어요.

저녁이 되자 마을 이장님이 찾아왔습니다. "명순네, 돌아왔어?" "네, 이장님. 이제 여기서 살려고요." "아들네랑은 어떻게 된 거야?"

"그냥 따로 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저는 자세한 애기는 하지 않았어요. 이장님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젊은이들이랑 사는 게 쉽지 않지. 그래도 여기 집이 너무 낡았는데 괜찮겠어?"

"괜찮아요. 고쳐서 살게요." "보상금 받았다며? 그 돈으로 집 수리하면 되겠네." 마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어요. "네, 그럴 생각이에요."

다음 날부터 집 수리를 시작했어요. 건축 업체를 불러 상담했습니다. "이 집을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하고 싶어요. 하지만 한옥의 느낌은 살리면서요."

"알겠습니다. 내부는 전부 현대식으로 바꾸고 외관은 한옥 스타일을 유지하겠습니다." 견적을 받아보니 2억 원 정도 들 것 같았어요. 저는 흔쾌히 계약했습니다.

공사가 시작되었어요.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내고 새 기와를 올렸습니다. 벽은 단열재를 넣고 깔끔하게 마감했어요. 바닥 난방을 새로 설치하고 화장실도 현대식으로 바꿨습니다.

주방은 깨끗한 시스템 주방으로 교체했고 거실에는 큰 창을 내서 햇빛이 잘 들게 했어요. 제 방도 넓게 만들고 작은 서재도 하나 만들었습니다.

두 달 후 공사가 끝났어요. 집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밖에서 보면 고즈넉한 한옥이지만 안은 최신식 시설을 갖춘 편안한 공간이었어요.

새 가구도 샀습니다. 편한 소파, 큰 침대, 책장도 들여놓았어요. 평생 남의 집 가구나 헌 가구만 쓰다가 처음으로 제가 고른 새 가구였습니다.

마당도 정리했어요. 잡초를 뽑고 화단을 만들었습니다. 장미, 국화, 채송화 같은 꽃들을 심었어요. 작은 정원이 만들어졌습니다.

집이 완성되자 마을 사람들이 구경 왔어요. "와, 명순아 집 정말 좋네!" "이제 편하게 살 수 있겠다." 칭찬을 들으며 뿌듯했습니다.

어느 날 준혁이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엄마, 잘 지내세요?" "응, 잘 지내." "집 수리 다 됐어요?" "응, 깨끗하게 잘됐어."

"엄마, 한번 찾아뵈도 될까요?" 준혁이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왜?" "그냥 엄마 얼굴 보고 싶어서요. 며느리도 사과하고 싶대요."

"다음에 애기하자." 저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직 아들을 만날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거든요.

마을에서 조용히 지내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물을 주고 산책을 했어요. 마을 사람들과 애기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여행사에 들렀어요. "해외여행 상품 있나요?" "네,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따뜻한 곳이요. 휴양지 같은 데."

"발리는 어떠세요? 인도네시아에 있는 섬인데 날씨도 좋고 경치도 아름답습니다." 직원이 팜플렛을 보여줬어요. 사진 속 발리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여기로 갈게요." "얼마나 가실 건가요?" "한 달 정도요." "한 달이면 장기 체류네요. 좋은 리조트로 예약해 드릴게요."

여행 준비를 시작했어요. 여권도 만들고 짐도 쌌습니다. 평생 해외여행 한 번 못 가봤는데 이제 제 돈으로 가는 거였어요.

출발 전날 준혁이한테 문자를 보냈습니다. "나 내일 여행 가. 한 달 정도 갈 거야." 곧 준혁이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엄마, 여행? 어디 가세요?" "발리." "발리요? 혼자 가시는 거예요?" "응, 혼자 가는 게 편해."

"엄마, 저희랑 같이 가시면 안 돼요?" "너희는 너희끼리 살아. 나는 나대로 살 거야." 전화를 끊고 잠을 청했어요.

다음 날 아침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인천공항은 사람들로 붐볐어요. 저는 체크인을 하고 출국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비행기에 올랐어요. 일등석은 아니었지만 편한 좌석이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창밖으로 서울이 점점 작아졌어요. 70년을 살았던 땅이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이었어요.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거였습니다.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제 마음대로 살 수 있었어요.

발리에 도착했어요. 공항을 나서자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한국의 찬 가을 날씨와는 완전히 달랐어요. 리조트 직원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차를 타고 리조트로 향했습니다. 길가에는 야자수가 줄지어 서 있었고 바다가 보였어요.

리조트는 바닷가에 있었어요. 제 방은 오션뷰였습니다. 발코니에 나가니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어요. 파도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기가 천국인가?" 혼자 중얼거렸어요. 70년을 살면서 이런 곳에 와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일만 하며 살았는데 이제 이렇게 편하게 쉴 수 있다니 믿기지 않았어요.

첫날은 그냥 방에서 쉬었습니다. 발코니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어요. 따뜻한 햇살이 기분 좋았습니다.

다음 날부터는 리조트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어요. 현지 시장에 가서 과일도 사고 기념품도 구경했습니다. 사람들이 친절했어요.

한국인 관광객도 많았어요. 어느 날 식당에서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분을 만났습니다. "혼자 오셨어요?" 그분이 물었어요.

"네, 혼자 왔어요." "저도 혼자예요. 같이 식사할까요?" 그렇게 이정숙이라는 분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정숙 씨도 비슷한 사연이 있었어요.

"저도 자식들이랑 안 맞아서 혼자 나왔어요. 이제는 내 인생 살려고요." 정숙 씨의 말에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그래요."

우리는 함께 발리를 여행했어요. 사원도 구경하고 스파도 받았습니다. 요가도 배우고 현지 음식도 먹어봤어요. 매일이 즐거웠습니다.

어느 날 저녁 바닷가에 앉아 있는데 준혁이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엄마, 잘 지내세요?" "응, 잘 지내." "언제 돌아오세요?"

"아직 몰라. 여기가 좋아서 더 있을까 봐." "엄마, 저희 정말 반성하고 있어요. 돌아오시면 잘할게요." 준혁이의 목소리가 간절했어요.

하지만 저는 더 이상 그 말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준혁아, 너는 네 인생 살아. 며느리랑 행복하게 살아." "하지만 엄마..."

"나도 내 인생 살 거야. 70년 동안 남 위해 살았어.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어." 전화를 끊고 바다를 바라봤어요.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인생도 파도 같은 거구나. 밀려왔다 밀려가고, 올라갔다 내려가고. 하지만 결국 바다는 그대로 있는 것처럼 제 인생도 제 것이었어요.

한 달이 지났지만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리조트 계약을 연장했습니다. 정숙 씨는 먼저 돌아갔지만 우리는 연락을 주고받기로 했어요.

발리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어요. 현지 사람들도 친해졌고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과도 애기했습니다. 제 영어가 서툴러도 사람들은 웃으며 이해해 줬어요.

어느 날 바닷가를 걷다가 부동산 중개소를 발견했어요. 호기심에 들어가 봤습니다. "집 알아보세요?" 직원이 물었어요.

"그냥 구경이요. 여기 집값이 어떻게 돼요?" "발리는 지역마다 다른데 바닷가 근처는 좀 비싸요. 하지만 한국보다는 훨씬 저렴합니다."

직원이 여러 매물을 보여줬어요. 바다가 보이는 작은 빌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건 얼마예요?" "10억 정도 합니다."

한국 돈으로 10억이면 제가 가진 돈의 일부였어요. 충동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살면 어떨까?' 한국에 돌아가면 또 복잡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차라리 여기서 새로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집 볼 수 있어요?" "네, 지금 바로 가시겠어요?" 직원과 함께 그 빌라를 보러 갔습니다. 바다가 바로 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집이었어요.

넓은 거실, 편안한 침실, 그리고 수영장까지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야자수가 심어져 있었고 파도 소리가 들렸어요. "마음에 드시면 계약하실 수 있어요."

저는 고민했어요. 정말 여기서 살아야 할까? 한국을 완전히 떠나야 할까? 하지만 생각해 보니 한국에 남은 게 뭐가 있나 싶었습니다. 아들은 며느리만 챙기고 저는 필요 없는 존재였어요.

"계약할게요." 제가 말하자 직원이 기뻐했어요. "좋은 선택 하셨습니다!" 며칠 후 계약이 완료됐고 저는 그 빌라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집을 꾸미기 시작했어요. 가구도 사고 생활용품도 샀습니다. 발리 스타일의 인테리어로 꾸몄어요. 한 달 후 이사를 했습니다.

제 집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정말 평화로웠어요. 더 이상 누구 눈치 볼 필요 없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해변을 산책했어요.

요가도 계속했고 현지 요리도 배웠습니다.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준혁이한테 편지를 썼어요. 이메일이 아니라 손편지로 썼습니다.

"준혁아, 엄마야. 잘 지내니? 엄마는 지금 발리에서 잘 살고 있어.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매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단다.

너한테 화가 났던 건 아니야. 그냥 서운했어. 40년 동안 너 하나 키우느라 내 인생을 다 바쳤는데 나중에는 내가 짐이 된 것 같아서 속상했어.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 엄마도 내 인생을 살기로 했어. 70년을 살면서 한 번도 나를 위해 산 적이 없었거든. 남편 위해, 아들 위해 살았지. 이제는 나를 위해 살고 싶어.

돈은 걱정하지 마. 변호사랑 상담해서 네 유류분은 확보해 뒀어. 나중에 엄마가 죽으면 네가 받을 몫은 있어. 하지만 그 전까지는 엄마가 쓸 거야.

며느리한테 전해. 립스틱 쓰레기통에 버렸던 거 아직도 기억난다고. 그때 정말 마음 아팠어.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 여기서는 아무도 나를 무시하지 않거든.

준혁아, 너도 행복하게 살아. 며느리랑 사이좋게 지내고. 엄마는 여기서 잘 지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 가끔 연락할게.

사랑한다, 엄마가."

편지를 부치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어요. 이제 정말로 모든 게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이었어요.

바닷가에 앉아 석양을 바라봤습니다. 붉은 해가 바다로 지고 있었어요.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남편 상철이가 생각났어요.

"여보, 내가 잘하고 있는 거 맞죠? 우리 땅 덕분에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됐어요. 고마워요." 하늘을 향해 중얼거렸습니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갔어요. 제 인생도 이제 새로운 파도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70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진짜 제 인생을 사는 거였어요.

더 이상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고, 제가 원하는 대로 사는 삶. 그게 바로 지금 제 모습이었습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별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발리의 밤은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가 편안한 침대에 누웠어요.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펼쳐질까? 기대가 되었습니다. 70살에 시작하는 새로운 인생.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생각했어요.

샤넬 립스틱을 버린 며느리는 아마 후회하고 있겠죠. 35억을 가진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려고 했던 걸요. 하지만 이제 그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건 제가 행복하다는 거였습니다. 돈이 있어서 행복한 게 아니라 자유로워서 행복했어요. 제 인생을 제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습니다.

눈을 감으니 평화로웠어요. 파도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습니다. 저는 웃으며 잠들었어요.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 날도 행복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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