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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남편이 불륜아내에게 할수있는 최고의복수

by 아들딸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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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kVb14SYGk-4



"신기하지 않아? 너희 둘이동시에 같은 병에 걸리다니."

"설마... 당신이 그런거야...?"

"매독균이 그렇게 끈질긴줄은 나도 몰랐어. 고마워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알았네"

"너... 너 미쳤어!“

주사기를 든 남편은 섬뜩한 눈빛으로 아내를 쳐다보았습니다. 도대체 두사람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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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이 변했다는 걸 언제 느끼시나요? 저는 향기로 알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미세한 변화로요.

저는 김준호라고 합니다. 올해 38살이고요, 대학병원 부설 연구소에서 세균배양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페트리 접시에 세균을 배양하는 것이 제 일이죠. 사람들은 제 직업을 듣고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세균이라니, 더럽지 않냐고요. 하지만 제게 세균은 가장 정직한 생명체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요. 주어진 환경에서 자라고, 죽고, 번식하고, 그게 전부입니다.

제 아내 서민지는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일합니다. 마케팅 팀장이에요. 똑똑하고 당차고 아름다운 여자죠. 우리는 7년 전에 결혼했습니다. 연애 2년, 결혼 5년째였어요. 아이는 아직 없었습니다. 민지가 커리어를 먼저 쌓고 싶다고 했거든요. 저도 괜찮았어요. 우리 둘만의 시간이 더 좋았으니까요.

그런데 6개월 전부터였을까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어요. 민지가 평소보다 30분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처음엔 회사 일이 바쁜가 보다 했죠. 실제로 민지의 회사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연구원의 눈은 디테일을 놓치지 않습니다. 저는 매일 미세한 변화를 관찰하는 사람이거든요.

민지의 향수가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은은한 플로럴 계열을 썼는데, 어느 날부터 조금 더 강렬하고 달콤한 향을 뿌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기분 전환인가 싶었죠. 여자들은 가끔 그러잖아요. 새로운 향수를 사는 것으로 기분을 바꾸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민지가 웃는 횟수가 늘었어요. 특히 휴대폰을 볼 때요. 거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면서 피식피식 웃는 모습이 전보다 잦아졌습니다. 제가 물어보면 "회사 동료가 재밌는 사진 보냈어"라고 했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의심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어느 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저는 연구실에서 조금 일찍 퇴근했어요. 민지에게 깜짝 저녁을 해주려고요.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왔을 때 민지는 아직 퇴근 전이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이기 시작했어요. 멸치육수를 우리고, 애호박을 썰고, 두부를 깍둑썰기했죠.

그때였습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빠른 시간이었죠. 저는 부엌에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어? 일찍 왔네?"

민지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어요. 뭔가 당황한 것 같았습니다.

"응, 오늘 미팅이 취소돼서. 당신은 왜 벌써 집에 있어?"

"나도 일찍 끝나서 저녁 해주려고."

민지는 급히 가방을 소파에 던지고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찌개를 저으면서 슬쩍 거실의 그녀 가방을 바라봤습니다. 검은색 가죽 토트백이었어요. 입구가 벌어져 있었고, 안에 파일 몇 개와 화장품 파우치가 보였습니다.

제 발이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과학자의 호기심이었을까요, 아니면 남편의 불안이었을까요. 저는 국자를 내려놓고 거실로 걸어갔어요. 화장실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민지의 가방을 들여다봤습니다.

아무것도 이상한 건 없었어요. 업무 파일, 수첩, 립스틱, 손거울. 그런데 가방 안쪽에 지퍼로 된 작은 주머니가 있었습니다. 평소엔 별로 신경 쓰지 않던 곳이었어요. 제 손이 그 지퍼를 열었습니다.

그 안에 작은 사탕 봉지 같은 것이 있었어요. 처음엔 정말 사탕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손에 쥐는 순간 알 수 있었죠. 이건 사탕이 아니었습니다. 콘돔이었어요. 그것도 한 갑이 아니라 낱개로 3개나 들어 있었습니다.

제 손이 얼어붙었습니다. 심장 소리가 귓가를 때렸어요. 민지와 저는 결혼한 지 5년이 넘었습니다. 우리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어요. 민지가 피임약을 먹고 있었거든요. 그럼 이건 뭐죠? 왜 민지의 가방에 콘돔이 있는 거죠?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재빨리 콘돔을 원래 자리에 넣고 지퍼를 닫았어요. 가방을 제자리에 놓고 부엌으로 돌아갔죠. 손이 떨렸습니다. 국자를 잡은 제 손가락이 하얗게 힘이 들어가 있었어요.

"뭐 해?"

민지가 부엌 입구에 서서 물었습니다. 머리를 다시 묶은 그녀는 평소처럼 편안해 보였어요.

"아, 찌개 거의 다 됐어. 밥 먹을래?"

"응, 배고파."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았습니다. 민지는 맛있게 먹었어요. 저는 숟가락을 입에 가져가는 것조차 힘들었죠. 목구멍으로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태연한 척했어요. 웃으면서 반찬을 더 집어주고, 민지의 이야기를 들어줬습니다.

"요즘 프로젝트 어때?"

"아, 미칠 것 같아. 부장님이 너무 까다로우셔서."

부장님. 민지의 직속 상사는 최태준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40대 초반의 남자였고, 민지보다 회사에 2년 먼저 들어온 사람이었죠. 저는 한 번 회식 자리에서 그를 본 적이 있었어요. 키가 크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민지는 그를 존경한다고 했었죠.

"최 부장님 말이야?"

"응. 완벽주의자라서 자료를 몇 번씩 고치게 하거든."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민지의 얼굴을 관찰했습니다. 그녀는 자연스러웠어요. 거짓말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죠. 하지만 제 머릿속에선 계속 그 콘돔이 떠올랐습니다. 투명한 봉지 안에 들어 있던 작은 정사각형 포장지들이요.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민지는 소파에 앉아 TV를 봤어요. 저는 부엌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습니다. 7년 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스물여덟이었어요. 명랑하고 솔직한 사람이었죠. 제 농담에 크게 웃어주고, 제가 힘들 때 따뜻하게 안아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걸까요? 제가 연구실에서 세균을 배양하는 동안, 민지는 누군가와 침대에 누워 있었던 걸까요?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직 확신할 수 없었어요. 콘돔 하나로 모든 걸 판단할 순 없었죠. 친구가 장난으로 넣어준 건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제 안에서 작은 의심이 싹텄습니다. 그 의심은 페트리 접시 위의 세균처럼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자라기 시작했어요.

그날 밤 저는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옆에서 편안하게 자는 민지의 숨소리를 들으며 천장을 바라봤어요. 달빛이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왔고, 그 빛 속에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확인해야겠다고요. 과학자답게, 정확하게, 냉정하게요. 만약 제 의심이 사실이라면 그때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관찰과 기록이 먼저였어요.

저는 옆을를 바라봤습니다. 민지의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어요. 하지만 그 평화로운 얼굴 뒤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지, 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저의 관찰이 시작되었습니다.

관찰이라는 것은 감정을 배제해야 합니다. 연구실에서 저는 항상 그렇게 배웠어요. 주관을 버리고 객관적인 데이터만 수집해야 한다고요. 그래서 저는 노트를 하나 준비했습니다. 연구 일지처럼요.

월요일 아침, 민지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났습니다. 화장하는 시간이 평소보다 길었어요. 립스틱을 두 번이나 지우고 다시 바르더군요. 옷도 세 번 갈아입었습니다. 검은색 원피스를 입었다가 벗고, 베이지색 블라우스를 입었다가 또 벗고, 결국 밝은 핑크색 셔츠에 회색 슬랙스를 선택했어요.

"오늘 중요한 미팅 있어?"

제가 물었을 때 민지는 잠깐 머뭇거렸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는 놓치지 않았어요.

"응, 본사에서 임원이 와. 프레젠테이션 해야 해서."

"그래? 잘하고 와."

민지는 웃으며 현관문을 나갔습니다. 저는 창문으로 그녀가 차에 타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민지는 차 안에서 백미러를 보며 한 번 더 머리를 쓸어 넘겼습니다. 그리고 무언가 메시지를 보내더니 차를 출발시켰죠.

저도 출근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집중이 되지 않았어요. 연구실에 도착해서도 현미경을 들여다보는데 민지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 핑크색 셔츠, 평소보다 진하게 바른 립스틱, 그리고 아침부터 뿌린 향수 냄새가요.

"준호씨, 괜찮아요?"

옆 책상의 박수진 선배가 물었습니다. 수진 선배는 저보다 5년 선배인 연구원이에요. 40대 초반의 차분한 분이죠. 이혼한 지 3년 됐다고 들었습니다.

"네, 괜찮아요. 그냥 좀 피곤해서요."

"요즘 안색이 안 좋던데. 집에 무슨 일 있어요?"

저는 잠깐 말을 멈췄습니다. 수진 선배는 날카로운 사람이었어요. 눈치도 빠르고요. 하지만 아직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에요. 그냥 연구 데이터가 생각대로 안 나와서요."

수진 선배는 잠깐 저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어요. 더 이상 묻지 않았죠. 그 배려가 고마웠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휴대폰을 꺼내 민지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미팅 잘 끝났어? 점심 먹었어?"

30분이 지나도 답장이 없었습니다. 평소 민지는 바빠도 10분 안에는 답장을 보내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조금 불안해졌지만 참았습니다. 정말 중요한 미팅이라면 휴대폰을 볼 시간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1시간 후, 민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 미안해. 미팅이 길어져서 이제야 봤어."

"괜찮아. 잘 끝났어?"

"응, 다행히 잘됐어. 근데 오늘 야근해야 할 것 같아. 저녁은 알아서 먹어."

"알았어. 힘내."

전화를 끊고 저는 휴대폰을 내려다봤습니다. 민지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어요. 피곤하지만 밝은 톤이었죠. 하지만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예민한 걸까요?

그날 저녁, 저는 일찍 퇴근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혼자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TV를 켰어요. 뉴스가 나오고 있었지만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시계를 계속 쳐다봤어요.

8시, 9시, 10시. 민지에게서 연락이 없었습니다. 저는 참다못해 전화를 걸었어요.

"어, 왜?"

민지의 목소리가 약간 놀란 것 같았습니다.

"아니, 언제쯤 들어올 것 같아서."

"아, 글쎄. 좀 더 걸릴 것 같아. 자료 정리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려."

"그래. 조심해서 와."

"응."

전화를 끊는 순간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민지씨, 이거..." 라는 말이 끊겼어요. 저는 다시 전화를 걸까 하다가 참았습니다. 회사에 남자 동료가 있을 수도 있죠. 함께 야근하는 거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제 안의 의심은 점점 커졌습니다.

민지는 밤 11시 30분에 들어왔습니다. 피곤한 얼굴이었어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구두를 벗어 던지고 소파에 쓰러졌죠.

"힘들었어?"

"응, 죽는 줄 알았어."

저는 부엌에 가서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왔습니다. 민지는 물을 받아 마시더니 고맙다고 했어요. 저는 그녀의 옷을 슬쩍 살폈습니다. 아침에 입고 나간 핑크색 셔츠가 조금 구겨져 있었어요. 목 부분의 단추가 하나 풀려 있었고요.

"샤워할래?"

"응, 해야지. 온몸이 찝찝해."

민지는 욕실로 들어갔고 곧 물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그녀가 벗어 놓은 가방을 바라봤어요. 소파 위에 던져진 검은색 토트백이요. 제 발이 다시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가방을 열었습니다. 이번엔 주저하지 않았어요. 안쪽 지퍼 주머니를 열었죠. 콘돔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3개 중에 2개만 남아 있었어요.

제 손이 떨렸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분명 3개였습니다. 오늘은 2개예요. 하나가 사라졌다는 뜻이죠.

저는 천천히 가방을 닫았습니다. 손을 씻으러 부엌에 갔어요. 찬물을 틀고 손을 한참 씻었습니다. 비누 거품이 하얗게 일었지만 제 안의 더러운 느낌은 씻기지 않았어요.

욕실 문이 열렸습니다. 민지가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나왔어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얼굴이었죠.

"기분 좀 나아?"

"응, 훨씬."

민지는 침실로 들어가 잠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리고 침대에 누우며 한숨을 쉬었어요.

"오늘 정말 힘들었어. 부장님이 계속 수정하라고 해서."

"최 부장님?"

"응."

저는 침대 옆에 앉아 물었습니다.

"같이 야근한 거야?"

민지가 잠깐 멈칫했어요.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는 느꼈습니다.

"응, 부장님이랑 김 대리랑 셋이서."

김 대리. 민지의 팀에 있는 여자 동료였습니다. 저는 안도해야 할까요, 아니면 더 의심해야 할까요?

"그래. 수고했어. 이제 자."

저는 불을 껐습니다. 어둠 속에서 민지의 숨소리가 점점 고르게 들렸어요. 곧 잠이 든 것 같았죠. 하지만 저는 잠들 수 없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저는 그동안 관찰한 데이터를 분석했어요. 패턴이 보였습니다. 민지의 귀가 시간이 불규칙했고, 평소보다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으며, 휴대폰을 볼 때 제 시선을 의식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금요일 밤, 가방을 확인했을 때 콘돔이 1개만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확신했습니다. 민지는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었어요. 그것도 최근 2주 동안 최소 2번 이상이요.

그날 밤 저는 연구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모두 퇴근한 텅 빈 연구실이었어요. 형광등 불빛 아래서 저는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제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했습니다.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그냥 차가운 무언가였어요.

저는 옆 냉장고를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수백 개의 페트리 접시가 보관되어 있었어요. 각각의 접시에는 다양한 세균이 배양되고 있었죠.

제 손이 하나의 접시를 집었습니다. 라벨을 읽었어요.

"매독균."

저는 그 접시를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투명한 젤리 같은 배지 위에서 자라는 미생물들이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 수억 마리의 세균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조용히 미소 지었습니다.

복수는 뜨거운 분노가 아니라 차가운 계획에서 나온다는 걸,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 연구실에서 새벽 2시까지 앉아 있었습니다. 노트에 계획을 적기 시작했어요.

계획의 핵심은 간단했습니다. 민지와 그 남자가 사용하는 콘돔에 세균을 주입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아무 세균이나 될 수는 없었죠. 치명적이어서도 안 되고, 너무 약해서도 안 됐습니다. 저는 딱 맞는 것을 선택했어요.

임질균이었습니다. 성병을 일으키는 세균 중 하나죠. 치료는 가능하지만 방치하면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킵니다. 여성의 경우 골반염, 불임까지 갈 수 있고요. 남성은 요도염과 부고환염이 생기죠. 무엇보다 초기 증상이 고통스럽습니다.

저는 이 세균을 잘 알고 있었어요. 작년에 항생제 내성 연구를 할 때 몇 달 동안 배양했었거든요. 지금도 연구실 냉장고에 보관 중인 샘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어요. 어떻게 콘돔 안에 세균을 넣을 것인가? 콘돔 포장을 뜯으면 들킬 것이고, 너무 많은 양을 넣으면 육안으로 보일 수도 있었죠.

저는 며칠 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답을 찾았어요. 주사기였습니다. 아주 가느다란 인슐린 주사기로 콘돔 포장지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 안에 세균 배양액을 소량 주입하는 거였죠. 구멍은 너무 작아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을 것이고, 액체도 몇 방울에 불과하니 눈치채기 어려울 것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세균은 살아 있어야 했어요. 죽은 세균으로는 감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특별한 배양액을 준비했죠. 세균이 최소 72시간은 생존할 수 있는 농도로요.

모든 계획이 머릿속에서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기 전에 저는 한 가지를 더 확인해야 했어요. 정말 민지가 외도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상대가 누구인지를요.

토요일 아침이었습니다. 민지는 "친구들 만나러 간다"고 했어요.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난다고 했죠. 점심 먹고 쇼핑하고 올 거라고 했습니다.

"몇 시쯤 들어올 것 같아?"

"글쎄, 저녁 먹고 올 수도 있어. 애들이 오래만이라 할 얘기가 많대."

"그래, 재밌게 놀다 와."

민지는 가벼운 원피스를 입고 나갔어요. 평소보다 화장을 진하게 했습니다. 향수도 뿌렸고요.

저는 창문으로 그녀가 차를 타고 나가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10분 후, 저도 차에 올랐어요.

미행이라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민지는 제가 따라온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죠. 저는 두세 대 뒤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갔어요.

민지의 차는 강남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친구들을 만난다면 홍대나 신촌 쪽으로 갈 텐데, 이상했죠. 30분쯤 달리자 민지의 차가 한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갔습니다. 5성급 호텔이었어요.

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습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어요. 손에 땀이 났죠. 하지만 저는 차에서 내려 호텔 로비로 걸어갔습니다.

민지는 로비 소파에 앉아 있었어요. 휴대폰을 보고 있었죠. 저는 로비 구석의 커피숍으로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민지가 잘 보이는 위치였어요.

10분쯤 지났을까요. 한 남자가 로비로 들어왔습니다. 정장 차림의 남자였어요. 키가 크고 잘생긴 편이었죠. 민지가 그를 보고 일어났습니다. 웃으며 손을 흔들었어요.

제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그 남자는 최태준이었어요. 민지의 상사였죠.

둘은 가볍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악수를 했고요. 그리고 함께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어요. 너무 자연스러웠습니다. 마치 수십 번 해본 것처럼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습니다. 저는 커피잔을 든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어요. 커피가 흔들려 조금 쏟아졌죠.

이제 확실해졌습니다. 민지는 최태준과 불륜 관계였어요. 그것도 호텔까지 와가면서요.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호텔을 나왔습니다. 차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어요.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차가워졌습니다. 감정이 얼어붙는 느낌이었어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오후 1시였어요. 저는 그 자리에서 기다렸습니다. 얼마나 있을지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3시간이 지났습니다. 오후 4시, 민지와 최태준이 호텔에서 나왔어요. 둘 다 환하게 웃고 있었죠. 최태준이 민지의 어깨에 손을 얹었고, 민지는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주차장에서 둘은 잠깐 껴안았어요. 키스는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친밀한 모습이었죠. 그리고 각자의 차를 타고 떠났습니다.

저는 핸들을 꽉 쥐었어요.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죠. 하지만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울지도 않았어요. 그냥 조용히 시동을 걸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저는 샤워를 했어요. 뜨거운 물을 한참 쐬었습니다. 온몸이 빨갛게 익을 때까지요. 하지만 속은 여전히 차가웠어요.

저녁 7시쯤 민지가 들어왔습니다.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더니 밝게 웃었어요.

"나 왔어! 오늘 너무 재밌었어. 애들 얼굴 보니까 좋더라."

"그래? 뭐 샀어?"

"응, 옷 좀 샀어. 세일하길래."

민지는 쇼핑백에서 블라우스 하나를 꺼내 보여줬어요. 하얀색 블라우스였죠. 제가 본 것 중에 가장 완벽한 거짓말이었습니다.

"예쁘네. 잘 어울리겠다."

"그치? 나도 그래서 샀어."

민지는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저는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켰어요. 뉴스가 나오고 있었지만 내용은 하나도 안 들렸습니다.

그날 밤, 민지가 샤워하는 동안 저는 그녀의 가방을 확인했습니다. 콘돔은 여전히 1개 남아 있었어요. 그럼 호텔에서는 다른 콘돔을 썼다는 뜻이겠죠. 아마 최태준이 준비했을 것입니다.

저는 가방을 닫고 조용히 미소 지었어요. 이제 행동에 옮길 때가 됐습니다.

다음날 일요일, 저는 연구실에 나갔습니다. 휴일이라 아무도 없었어요. 민지에게는 "데이터 정리해야 한다"고 했죠.

연구실에서 저는 냉장고를 열고 임질균 배양액을 꺼냈습니다. 신선한 샘플이었어요. 3일 전에 계대배양한 것이었죠. 농도도 완벽했습니다.

인슐린 주사기를 준비했어요. 가장 가느다란 31게이지였습니다. 배양액을 0.1ml만 뽑았죠. 이 정도면 충분했어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민지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어요. 저는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침실로 들어갔습니다.

민지의 가방은 침대 옆에 놓여 있었어요. 저는 문을 살짝 닫고 가방을 열었습니다.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손은 떨리지 않았어요. 과학자의 손은 정확해야 하니까요.

안쪽 지퍼 주머니를 열었습니다. 콘돔 1개가 그대로 있었어요. 저는 그것을 꺼내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관찰했습니다. 은박지 재질이었죠.

주사기를 꺼냈습니다. 바늘 끝을 포장지의 가장자리, 접착 부분 근처에 댔어요.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찔렀습니다. 미세한 저항이 느껴지다가 스르륵 들어갔죠.

0.1ml를 천천히 주입했습니다. 액체가 콘돔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다 넣고 바늘을 뺐습니다. 구멍은 정말 작았어요. 확대경 없이는 절대 보이지 않을 크기였죠.

저는 콘돔을 원래 자리에 넣었습니다. 지퍼를 닫고 가방을 제자리에 놓았어요. 그리고 주사기는 가운 주머니에 넣고 화장실로 갔습니다.

거울을 보니 제 얼굴이 창백했어요. 하지만 눈은 이상하게 반짝이고 있었죠.

저는 방금 무슨 짓을 한 걸까요? 범죄일까요? 아니면 정당한 응징일까요?

저는 손을 씻었습니다. 비누칠을 하고 뜨거운 물로 한참 씻었어요. 하지만 제 안의 죄책감은 씻기지 않았습니다.

아니, 죄책감이 아니었어요. 이상하게도 저는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종의 만족감 같은 게 느껴졌죠.

거실로 나오니 민지가 웃으며 말했어요.

"배고프지 않아? 저녁 뭐 먹을까?"

"응, 뭐든 좋아."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치킨을 시켜서 맥주와 함께요. 민지는 행복해 보였어요. 저도 웃으며 그녀와 이야기를 나눴죠.

하지만 제 머릿속에서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72시간 안에 그 콘돔이 사용될 것이고, 사용된 지 3일에서 7일 후 증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모든 게 드러날 거예요.

저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했습니다.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요. 세균도 마찬가지죠. 그들은 정직하게 자신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됐습니다.

여러분, 기다림이라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운 줄 몰랐어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하고, 동시에 두려웠습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이 지나갔어요. 민지는 평소와 같았습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가끔 늦게 들어오기도 했죠. 저는 관찰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가방을 확인했을 때 콘돔은 사라져 있었어요. 제가 세균을 주입한 그것이 사용됐다는 뜻이었죠.

목요일 저녁이었습니다. 민지가 평소보다 일찍 들어왔어요. 얼굴이 조금 붉어 보였습니다.

"괜찮아? 얼굴이 빨갛네."

"응? 아, 회사에서 에어컨이 고장 나서 더웠어."

하지만 그날 밤 민지는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렸어요. 저는 TV를 보는 척하면서 그녀를 관찰했습니다. 뭔가 불편한 것 같았죠.

금요일 아침, 민지는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습니다. 얼굴이 좋지 않아 보였어요.

"어디 아파?"

"아니, 그냥 좀 피곤한가 봐."

"오늘 회사 쉬는 게 어때?"

"아니, 괜찮아. 중요한 미팅 있어서."

민지는 억지로 일어나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움직임이 평소보다 느렸어요. 뭔가를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죠.

저는 출근 준비를 하면서 슬쩍 물었습니다.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아? 얼굴이 안 좋아 보여."

"응... 프로젝트가 막바지라서. 괜찮아, 다음 주면 끝나."

민지는 그렇게 말하고 집을 나갔어요. 하지만 걸음걸이가 평소와 달랐습니다. 조금 불편한 듯 조심스럽게 걷더군요.

저는 연구실에 도착해서도 일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자꾸 민지 생각이 났어요. 증상이 시작된 걸까요? 임질의 초기 증상은 배뇨통, 분비물, 가려움증 등이었습니다. 여성의 경우 증상이 약하거나 무증상인 경우도 있지만, 제가 주입한 균주는 독성이 강한 편이었어요.

점심시간, 민지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오늘 저녁 좀 늦을 것 같아. 병원 좀 들렀다가 갈게."

병원? 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 있어? 어디 아파?"

"아니, 그냥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서. 약 좀 받으려고."

감기. 민지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어요. 산부인과에 가는 거겠죠.

저는 대답을 보냈습니다.

"알았어. 조심해서 와."

그날 저녁 민지는 밤 9시에 들어왔습니다.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였어요. 창백하고 지쳐 보였죠.

"병원 다녀왔어?"

"응..."

"의사가 뭐래?"

민지는 잠깐 망설이더니 대답했습니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래. 약 처방받았어."

하지만 민지가 놓은 약 봉지를 보니 항생제였어요. 감기약이 아니었죠. 제가 아는 약이었습니다. 임질 치료에 쓰이는 1차 항생제였어요.

"항생제네? 많이 아팠어?"

"응, 좀... 염증이 있대."

민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침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어요. 저는 거실에 남아 그 약 봉지를 바라봤습니다.

시작됐구나. 제 계획이 작동하기 시작했어요.

그날 밤 민지는 잠을 설쳤습니다. 계속 뒤척이고 한숨을 쉬었어요. 저는 잠든 척하면서 그녀를 느꼈습니다. 민지는 여러 번 화장실에 갔다 왔죠.

다음날 토요일, 민지는 거의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어요. 식사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많이 아파?"

"응... 좀."

"병원 다시 가볼까?"

"아니, 약 먹으면 나아질 거야."

하지만 일요일이 되어도 민지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안 좋아 보였어요. 얼굴은 더 창백해졌고, 걸을 때마다 인상을 찌푸렸죠.

"민지야, 진짜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 내일 다시 가볼게."

민지는 그렇게 말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어요. 고통스러워하는 게 눈에 보였죠.

저는 이상하게도 죄책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종의 만족감 같은 게 느껴졌어요. 이게 정의인가 싶었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했습니다. 최태준은 어떨까요? 그도 같은 증상을 겪고 있을까요?

월요일 아침, 민지는 회사에 연차를 냈습니다.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어요. 저는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민지가 거절했습니다.

"괜찮아, 혼자 갈 수 있어. 당신도 일 있잖아."

"그래도..."

"괜찮다니까. 걱정하지 마."

민지는 억지로 웃으며 집을 나갔습니다. 저도 연구실로 갔어요. 하지만 일에 집중할 수 없었죠.

그날 저녁 민지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의 얼굴은 더 안 좋아져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뭐래?"

"정밀검사 받아야 한대..."

민지의 목소리가 떨렸어요. 눈가가 붉었죠. 운 것 같았습니다.

"무슨 검사?"

"그냥... 염증이 심해서. 정확한 원인을 찾아야 한대."

민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침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어요. 그날 밤 민지가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작게,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요.

저는 거실 소파에 앉아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가슴 한편이 아팠어요. 여전히 민지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차갑게 식어가는 제 마음도 느꼈습니다.

배신당한 사람의 마음은 이런 건가요? 사랑과 증오가 함께 존재하는 이상한 상태요.

최태준은 어떨까요? 그도 병원에 갔을까요? 민지에게 연락했을까요?

저는 곧 알게 될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이 생기면 그들은 서로 연락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때가 제가 진실을 드러낼 타이밍이 될 것입니다.

저는 창밖을 바라봤어요. 밤하늘에 별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차갑고 아름답게요.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민지의 상태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았어요. 항생제가 효과를 본 거겠죠.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습니다.

목요일 저녁, 민지는 늦게 귀가했어요. 얼굴이 창백했고 눈이 부어 있었죠. 또 운 것 같았습니다.

"무슨 일 있어?"

민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가방을 던지고 소파에 주저앉았어요.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민지는 한참을 입술을 깨물다가 말했어요.

"나 요즘 너무 힘들어. 회사 일도 힘들고, 몸도 안 좋고... 모든 게 다 꼬이는 것 같아."

저는 그녀 옆에 앉았습니다. 어깨에 손을 올렸죠.

"많이 힘들었구나. 내가 몰라줘서 미안해."

민지가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댔어요. 그 순간 저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여전히 이 사람이 제 아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어요. 배신한 사람인데도 이렇게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게 이상했죠.

"준호야, 나...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고백하려는 걸까요?

"뭔데?"

하지만 민지는 고개를 저었어요.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고맙다는 말 하고 싶었어. 네가 옆에 있어줘서."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녀를 안고 있었어요. 민지의 어깨가 작게 떨렸습니다.

그날 밤 민지는 제 품에서 잠들었어요. 오랜만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는 침대에서도 거리를 두고 잤었거든요. 하지만 그날은 민지가 제 품에 안겨 잠들었죠.

저는 잠들지 못했습니다. 민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생각했어요. 이 사람을 정말 사랑했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요?

민지의 휴대폰이 진동했습니다. 화면이 켜지면서 메시지 알림이 떴어요. 발신자 이름이 보였습니다. "태준 부장님"이었어요.

저는 조심스럽게 민지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습니다. 민지는 깊이 잠들어 있었죠. 화면을 열었어요. 비밀번호는 저희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아직 바꾸지 않았더군요.

메시지를 열었습니다.

"민지씨, 나도 병원 갔어요. 같은 증상이에요. 이거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우리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아래 메시지들을 쭉 읽어 내려갔습니다.

"의사가 성병이라고 했어요.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저는 민지의 답장들도 읽었습니다.

"나도 몰라요. 당신 말고는 없었어요."

"이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무서워요."

두 사람 모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어요. 서로를 의심하고 있었죠. 저는 조용히 웃었습니다. 계획대로였어요.

휴대폰을 원래 자리에 놓고 저는 민지를 내려다봤습니다. 평화롭게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달빛에 비쳤어요.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배신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죠.

다음날 금요일, 민지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 화장을 하지 않았어요. 머리도 대충 묶었죠.

"오늘 회사 가는 거야?"

"응... 가야지. 프로젝트 마무리해야 해."

"몸은 괜찮아?"

"응, 약 먹으니까 좀 나아진 것 같아."

하지만 민지의 눈빛은 불안해 보였습니다. 무언가를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날 저녁, 저는 일부러 일찍 퇴근했습니다. 민지보다 먼저 집에 도착했죠. 그리고 기다렸어요.

밤 8시쯤 민지가 들어왔습니다. 얼굴이 굳어 있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 봤습니다.

"어서 와. 저녁 준비했어."

"응..."

민지는 식탁에 앉았지만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어요. 포크로 샐러드를 이리저리 옮기기만 했죠.

그날 밤 민지는 또 휴대폰을 계속 확인했습니다. 메시지가 오는 것 같았어요. 아마 최태준이겠죠.

저는 잠든 척하면서 민지를 관찰했습니다. 그녀는 한참을 휴대폰을 보다가 조용히 울기 시작했어요. 소리 없이, 어깨만 떨리면서요.

그 모습을 보는 제 마음도 아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이게 바로 내가 느낀 배신감이야.'

주말이 됐습니다. 토요일 아침, 민지가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준호야, 나 오늘 병원 다시 가봐야 해. 재검사 받으래."

"그래? 같이 갈까?"

"아니, 괜찮아. 혼자 갈 수 있어."

"정말 괜찮아?"

민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눈빛은 불안해 보였어요.

오후에 민지가 돌아왔습니다. 얼굴이 더 창백해 보였어요.

"병원에서 뭐래?"

"계속 약 먹으래... 좀 오래 걸릴 것 같대."

민지는 침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그날 저녁 내내 민지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저는 거실에 앉아 생각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속 이대로 가야 할까요, 아니면 진실을 밝혀야 할까요?

그때 민지의 휴대폰에서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화면을 보니 "엄마"라고 떠 있었어요. 장모님이셨죠.

저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곧 제 휴대폰이 울렸어요. 장모님의 전화였습니다.

"네, 어머님."

"준호야, 민지 요즘 어때? 전화해도 안 받고 문자도 답이 없네."

"아, 요즘 회사 일이 바빠서 그런가 봐요. 제가 전해드릴게요."

"그래. 네가 잘 챙겨줘. 민지가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야."

"네, 걱정 마세요."

전화를 끊고 저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장모님은 아무것도 모르시겠죠. 딸이 지금 무슨 상황인지요.

그날 밤 저는 결심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단계로 가야 한다고요.

진실을 드러낼 시간이 온 것 같았습니다.

거짓말로 시작된 관계는 의심으로 끝난다고 하잖아요. 제가 주입한 그 작은 세균 하나가 그들의 관계를 완전히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월요일 밤, 민지는 또 늦게 들어왔어요. 얼굴이 험악했습니다. 뭔가 크게 싸운 것 같았어요.

"어디 갔다 와?"

"회사에서 야근했어."

하지만 민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습니다. 화가 나 있었어요. 짜증이 섞여 있었죠.

"힘들었겠다. 씻고 와서 저녁 먹어."

"응..."

민지는 대답은 했지만 표정이 어두웠어요. 뭔가 큰 일이 있었나 봤습니다.

그날 밤 민지가 샤워하는 동안 저는 그녀의 휴대폰을 확인했어요. 최태준과 주고받은 메시지들이 있었는데, 내용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잖아요!"

"무슨 소리예요? 제가 언제요?"

"당신 말고 누가 있어요? 나는 당신밖에 없었는데!"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왜 저한테만 따지는 거예요?"

메시지는 계속 이어졌어요.

"의사가 그래요. 동시에 감염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요. 둘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게 저라는 거예요?"

"아니면 누구요? 저는 정말 당신밖에 없었어요!"

"나도 그래요! 믿기 싫으면 말고요!"

읽으면서 저는 웃음이 나왔어요. 완벽한 시나리오였습니다.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게 제 계획이었거든요.

"민지씨, 솔직히 말해요. 다른 남자 있죠?"

"미쳤어요? 당신이 나한테 옮긴 거잖아요!"

"제가 어디서 옮아왔겠어요? 집사람하고는 몇 달째 안 했다고 했잖아요!"

"그럼 바람피운 거네요? 당신이!"

"말도 안 돼요. 당신이야말로 남편 말고 다른 사람하고..."

"그만해요! 정말 그만하라고요!"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에서 최태준이 결정타를 날렸어요.

"민지씨, 우리 이제 그만 만나요. 이 상황 너무 복잡해요. 서로 의심하면서 무슨 관계를 유지해요?"

민지의 답장이었습니다.

"그래요. 좋아요. 어차피 당신도 날 의심하는데 뭐하러 만나겠어요. 하지만 기억해요. 이 병은 당신이 나한테 옮긴 거예요!"

수요일 아침, 민지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어요. 커피를 마시면서도 계속 휴대폰만 쳐다봤죠.

"무슨 일 있어? 며칠째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민지가 고개를 들었어요. 눈가가 부어 있었습니다.

"아니야. 그냥 회사 일이 좀 복잡해서."

"프로젝트가 잘 안 돼?"

"응... 뭔가 다 꼬이는 것 같아."

저는 속으로 웃었어요. 정말 다 꼬이고 있었죠. 제가 의도한 대로요.

그날 저녁, 민지는 평소보다 일찍 들어왔어요. 얼굴이 무너져 보였습니다.

"어서 와. 저녁 준비해놨어."

"고마워..."

식사하는 동안 민지는 거의 말이 없었어요. 밥도 몇 숟가락 안 먹었죠.

"민지야, 정말 무슨 일 있는 거야? 말해봐."

민지가 젓가락을 내려놓았어요. 그리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준호야, 나... 요즘 많이 힘들어."

"뭐가?"

"회사에서... 좀 복잡한 일이 있어서."

민지는 더 자세히 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죠. 최태준과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요.

목요일, 민지는 하루 종일 집에 있었어요. 회사에 아프다고 연락했대요.

"많이 아파?"

"아니, 그냥 좀 쉬고 싶어서."

민지는 거실 소파에 누워서 TV를 봤어요. 하지만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휴대폰을 확인했죠.

저는 일부러 일찍 퇴근했습니다. 민지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나 왔어."

"응..."

민지는 소파에서 일어나지도 않았어요.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습니다.

"저녁 뭐 먹을까?"

"난 괜찮아. 넌 알아서 먹어."

저는 부엌에 가서 간단히 볶음밥을 만들었어요. 민지 몫도 함께요.

"같이 먹자."

"안 먹는다고 했잖아."

"그래도 조금은 먹어야지."

민지는 마지못해 식탁에 앉았어요. 몇 숟가락 먹더니 또 숟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입맛이 없어."

"약 때문인가? 언제까지 먹어야 해?"

"한 일주일 더..."

그날 밤, 민지는 제 품에 안겼어요. 오랜만이었습니다.

"준호야."

"응?"

"고마워. 네가 옆에 있어줘서."

제 가슴이 복잡해졌어요. 이 사람이 저를 배신했지만, 여전히 제 아내였거든요.

"당연하지. 우리 부부잖아."

민지가 더 깊이 안겼습니다.

"나 요즘 이상한 꿈 많이 꿔. 누군가 나를 쫓아오는 꿈이야. 무서워서 계속 도망치는데, 결국엔 잡히고 말아."

"스트레스 때문이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

"응...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 순간 저는 묘한 감정을 느꼈어요. 죄책감 같은 거였죠. 하지만 곧 마음을 굳혔습니다. 민지가 먼저 배신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됐어요.

금요일 아침, 민지는 다시 회사에 갔어요. 얼굴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조금 나아 보였습니다.

"오늘 야근 안 하지?"

"응, 일찍 들어올게."

"그래, 기다릴게."

민지가 나간 후, 저는 그녀의 노트북을 켰어요.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최태준과의 연락이 완전히 끊어져 있었습니다. 업무 관련 메일만 몇 개 있었고, 그것도 매우 공식적인 톤이었어요.

저녁에 민지가 약속대로 일찍 들어왔어요. 조금 밝아진 표정이었습니다.

"오늘 기분이 좀 나아 보이네."

"응, 좀 정리된 것 같아."

"뭐가?"

"회사 일이. 복잡했던 게 해결됐어."

민지는 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죠. 최태준과의 관계가 완전히 정리됐다는 뜻이었어요.

그날 저녁 민지는 오랜만에 웃었어요. 저와 함께 TV를 보면서 가끔씩 농담도 했죠.

"준호야, 내가 좀 이상했지? 요즘."

"응, 많이 힘들어 보였어."

"미안해. 이제 괜찮을 거야."

민지가 제 손을 잡았어요. 따뜻한 손이었습니다.

"나 앞으로 너한테 더 잘할게. 그동안 소홀했던 것 같아."

제 가슴이 아팠어요. 민지는 이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죠. 최태준과 헤어졌으니 다시 저와 잘 지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민지는 몰랐죠. 저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복수를 시작했다는 것을요.

주말이 됐습니다. 토요일 아침, 민지는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했어요. 오랜만이었습니다.

"와, 이게 몇 달만이야?"

"미안해. 그동안 바빠서."

민지가 만든 된장찌개와 계란말이, 그리고 김치볶음. 예전에 우리가 신혼일 때 자주 먹던 메뉴였어요.

"맛있다."

"정말? 오랜만에 해봐서 걱정했는데."

민지가 환하게 웃었어요. 마치 예전의 그 사람 같았습니다. 저를 배신하기 전의 그 사람처럼요.

"준호야, 오늘 어디 나가자. 오랜만에 데이트할까?"

"데이트?"

"응. 영화도 보고 맛있는 거도 먹고."

저는 잠깐 고민했어요. 거절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마지막 추억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좋아. 어디 가고 싶어?"

"강남 쪽으로 가자. 새로 생긴 영화관 있더라."

우리는 오랜만에 함께 외출했어요. 민지는 정말 즐거워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쇼핑도 했죠.

"오늘 정말 재밌었어. 고마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민지가 말했어요.

"나도 즐거웠어."

"우리 앞으로 이런 시간 자주 만들자. 그동안 너무 일에만 매여 살았나 봐."

민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이제 정말 새로 시작하려는 것 같았죠.

하지만 저는 다른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날 밤, 민지가 샤워하는 동안 저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휴대폰을 확인했어요. 최태준과의 연락은 정말 완전히 끊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찍은 우리 사진들이 저장되어 있었죠.

민지는 진짜로 모든 걸 정리하고 저와 새로 시작하려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저는 결심했어요. 이제 마지막 단계로 가야 한다고요.

민지에게 모든 진실을 말할 시간이 온 것 같았습니다.

일요일 아침, 민지는 기분이 좋아 보였어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브런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준호야, 팬케이크 만들어줄까?"

"응, 좋아."

민지는 정말 열심히 요리했어요. 팬케이크에 딸기와 생크림을 올리고, 메이플시럽까지 뿌렸죠. 마치 호텔 브런치 같았습니다.

"우와, 정성 많이 들였네."

"당연하지. 내 남편인데."

민지가 환하게 웃었어요. 그 웃음을 보는 제 마음은 복잡했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순진한 건지, 아니면 얼마나 뻔뻔한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준호야, 나 결심했어."

"뭘?"

"앞으로 정말 너한테 잘할 거야. 그동안 내가 너무 일에만 매몰돼서 우리 관계를 소홀히 했던 것 같아."

민지가 제 손을 잡았어요.

"사실 요즘 많이 반성했어. 결혼했으면 남편을 우선순위로 둬야 하는데, 나는 회사 일만 생각했잖아."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을 했어?"

"모르겠어. 그냥 문득 깨달았어. 내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사람이 누군지."

민지의 말을 들으면서 저는 씁쓸했어요. 만약 몇 달 전에 이런 말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습니다.

"준호야, 우리 아이 가져볼까?"

갑자기 나온 말에 저는 팬케이크를 먹다가 멈췄어요.

"아이?"

"응. 우리 결혼한 지 벌써 5년이잖아. 이제 아이 가져도 될 것 같은데."

민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죠.

"좀 갑작스럽긴 하네."

"갑작스럽긴 하지만, 나이도 있고 해서. 그리고 아이가 있으면 우리 관계도 더 단단해질 것 같아."

저는 대답할 수 없었어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생각해봐. 안 좋으면 말고."

"아니야, 생각해볼게."

그날 오후, 민지는 장을 보러 나갔어요. 저녁에 제가 좋아하는 갈비찜을 해주겠다고 했죠.

"재료 사러 갔다 올게. 2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

민지가 나간 후, 저는 혼자 집에 앉아 있었어요. 창밖을 바라보면서 지난 몇 달을 돌이켜봤습니다.

저는 고개를 저었어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민지가 돌아왔을 때는 오후 5시였어요. 큰 봉지를 여러 개 들고 왔더라고요.

"이게 다 뭐야?"

"갈비찜 재료, 그리고 반찬 재료들."

그날 저녁, 민지는 정말 정성스럽게 갈비찜을 만들었어요. 양념도 하루 전부터 재워뒀다고 했죠.

"맛있다. 정말 오랜만에 이런 정성스러운 요리 먹어보네."

"앞으로 자주 해줄게. 나도 요리하는 거 좋아하는데 그동안 너무 바빴던 것 같아."

민지는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마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 같았습니다.

식사 후에 우리는 소파에 앉아 TV를 봤어요. 민지는 제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었죠.

"준호야, 정말 고마워."

"뭐가?"

"그냥. 내가 힘들 때 옆에 있어줘서. 다른 남자들은 아내가 힘들어하면 짜증내거나 피하는데, 너는 그냥 묵묵히 지켜봐 줬잖아."

민지의 말에 제 가슴이 아팠어요. 민지는 제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거든요.

"당연한 거야. 남편이니까."

"나도 이제 진짜 좋은 아내가 될게. 약속해."

그날 밤 민지는 제 품에서 잠들었어요. 오랜만에 편안해 보였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했어요.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날 것이라고요.

"오늘도 일찍 들어올게. 저녁 뭐 먹고 싶어?"

"글쎄, 아무거나."

"그럼 내가 알아서 맛있는 거 준비할게."

민지는 뽀뽀를 하고 집을 나갔어요. 정말 오랜만에 받는 뽀뽀였습니다.

저도 연구실로 갔어요. 하지만 일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계속 민지 생각이 났거든요.

오늘 저녁에 모든 걸 말해야 했어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습니다.

오후에 민지에게서 문자가 왔어요.

"오늘 저녁 특별한 거 준비하고 있어~ 기대해도 돼!"

저는 답장을 보냈습니다.

"응, 기대할게."

퇴근 시간이 되었어요. 저는 평소보다 30분 늦게 나왔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서요.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창문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어요. 촛불 같았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말 촛불이 켜져 있었어요. 테이블 위에는 고급 와인과 스테이크가 준비되어 있었죠.

"어서 와!"

민지가 앞치마를 두른 채 환하게 웃으며 맞아줬어요.

"이게 뭐야?"

"우리 새로운 시작 기념으로 준비했어. 어때?"

민지는 정말 정성스럽게 준비한 것 같았어요. 와인잔도 반짝반짝 닦여 있었고, 꽃까지 꽂아놓았죠.

"앉아봐. 내가 서빙해줄게."

민지가 스테이크를 썰어서 제 접시에 놓아줬어요. 와인도 따라줬고요.

"맛봐봐. 유튜브 보면서 배운 거야."

정말 맛있었어요. 민지가 이렇게 요리를 잘했나 싶을 정도로요.

"맛있다. 정말 잘했네."

"다행이다. 사실 좀 떨렸어. 망치면 어쩌나 해서."

우리는 촛불 아래서 저녁을 먹었어요. 민지는 계속 웃고 있었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죠.

"우리 다음 달에 여행 갈까? 제주도나 부산?"

"여행?"

"응. 신혼여행 다시 가는 기분으로. 그때 우리 부산 갔었잖아."

민지의 눈이 반짝였어요. 정말 설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집도 좀 바꿔볼까? 새로 페인트칠하고, 가구도 좀 바꾸고."

"갑자기 왜 이렇게 많은 걸 바꾸려고 해?"

민지가 잠깐 멈췄어요.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사실은... 나 요즘 너무 반성했어.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던 것 같아. 일만 생각하고, 너는 뒷전으로 미뤄두고."

"민지야..."

"아니야, 들어봐. 나 진짜 바뀔 거야. 더 이상 너를 외롭게 만들지 않을게."

민지가 제 손을 꼭 잡았어요.

"우리 진짜 새로 시작하자.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서로만 바라보고 살자."

그 순간 저는 결심했어요. 이제 말해야 한다고요.

"민지야, 나도 할 말이 있어."

"할 말이 있다고?"

민지가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물었어요. 촛불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는데, 그 빛 속에서 민지는 정말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응. 중요한 얘기야."

저는 심호흡을 했어요. 드디어 말할 때가 온 것 같았습니다.

"먼저 물어볼게. 너 정말 나만 사랑해?"

민지가 놀란 표정을 지었어요.

"무슨 소리야? 당연하지. 나한테 너밖에 없어."

"정말?"

"정말이야. 왜 갑자기 이런 걸 물어?"

저는 잠깐 민지를 바라봤어요.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정말로 이제는 저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민지야, 나는 알고 있어."

"뭘?"

"너랑 최태준 부장 일."

민지의 얼굴에서 모든 혈색이 빠졌어요. 와인잔을 든 손이 떨리기 시작했죠.

"뭐... 뭘 안다는 거야?"

"다 안다고. 언제부터 만났는지, 어디서 만났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민지가 와인잔을 떨어뜨렸어요. 와인이 하얀 식탁보에 빨갛게 번졌습니다.

"준호야... 그게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희가 주고받은 문자도 다 봤어."

민지가 일어나려다 다시 주저앉았어요. 다리에 힘이 빠진 것 같았습니다.

"언제부터... 알았어?"

"6주 전부터. 네 가방에서 콘돔 찾은 그날부터."

"6주... 그럼 그동안 너는..."

"관찰하고 기록했지. 그리고 계획했어."

저는 차분하게 말했어요.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미 마음의 정리가 끝났거든요.

"계획했다는 게... 무슨..."

"너희 둘이 임질에 걸린 거 신기하지 않아? 동시에 같은 병에 걸리다니."

민지의 눈이 커졌어요.

"설마... 네가...?"

"응. 내가 했어."

저는 주머니에서 작은 주사기를 꺼냈어요.

"이걸로 네 가방에 있던 콘돔에 임질균을 주입했어. 아주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민지가 손으로 입을 막았어요. 이제 모든 걸 이해한 것 같았습니다.

"너... 너 미쳤어? 이건 범죄야!"

"범죄? 배신이 먼저야? 아니면 범죄가 먼저야?"

민지가 울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조용히 흐느끼더니 점점 소리를 내며 울었죠.

"준호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도 모르게..."

"모르게? 호텔을 모르게 가고, 옷을 모르게 벗고, 침대에 모르게 누워?"

민지가 더 크게 울었어요. 테이블에 엎드려서 온몸으로 흐느꼈습니다.

"그만 울어.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어."

"준호야...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줘..."

"용서?"

저는 웃었어요. 차가운 웃음이었죠.

"민지야, 너 지금까지 몇 번이나 거짓말했는지 세어봤어? 매일 밤 늦게 들어오면서 회사 야근이라고 했지. 주말에 나가면서 친구 만난다고 했지. 병원 갔다 와서는 감기라고 했지."

민지가 고개를 들었어요. 눈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나... 나는 진짜 끝냈어... 태준씨랑... 완전히 끝냈다고..."

"그래, 끝났지. 너희가 서로 의심하면서 싸우다가 끝났잖아. 누가 먼저 병을 옮겼는지 따지면서."

민지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어요.

"준호야... 제발... 나 죽을 것 같아... 너만 있으면 돼...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이제 와서?"

저는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그리고 침실로 가서 가방을 하나 들고 나왔습니다.

"뭐 하는 거야?"

"짐 쌌어. 나 나갈 거야."

"안 돼! 가지 마!"

민지가 제 다리를 붙잡았어요.

"내가 잘못했어! 다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가지 마!"

저는 민지의 손을 뿌리쳤어요. 민지가 바닥에 넘어졌죠.

"민지야, 우리 끝이야."

"끝이라니... 무슨 소리야... 아니야! 그건 실수였어! 나는 정말 너만 사랑해!"

민지가 울부짖었어요

"실수? 몇 달 동안 계속한 게 실수야?"

저는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어요.

"준호야! 제발! 나 혼자 두고 가지 마!"

저는 신발을 신었어요. 민지가 제 바지를 붙잡았죠.

"준호야... 나 어떻게 살아... 너 없으면 나는..."

"살아야지 뭐. 어떻게든."

저는 문을 열었어요. 밖은 추웠습니다.

"준호야! 준호야!"

민지의 목소리가 계단까지 들렸어요. 하지만 저는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차를 출발시켰어요. 백미러로 집이 점점 멀어지는 걸 봤습니다.

모텔에 도착해서 방을 잡았어요. 침대에 누우니 이상하게 홀가분했습니다. 동시에 허전하기도 했고요.

휴대폰을 켰더니 민지에게서 문자가 계속 와 있었어요.

"준호야 제발 돌아와"

"나 혼자 무서워"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한 번만 기회 줘"

"나 없으면 못 살아"

읽지 않고 지웠어요. 그리고 민지 번호를 차단했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11월의 차가운 비였습니다.

저는 그날 밤 처음으로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어요. 6주 만에 제대로 잔 잠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휴대폰에 수진 선배 전화가 와 있었어요.

"준호씨, 부인이 연구소로 전화했어요. 당신이 안 받는다고... 무슨 일 있는 거예요?"

"저희 이혼 진행 중이에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준호씨... 정말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오히려 홀가분해요."

전화를 끊고 저는 샤워를 했어요. 그리고 새 옷을 입었습니다.

거울을 보니 지난 몇 주 동안 말라 있던 제 얼굴이 조금 나아 보였어요.

이제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민지 없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죠.

저는 이혼 전문 변호사를 찾아갔어요. 민지의 불륜에 대한 증거들을 모두 제출했죠. 호텔 주차장 사진, 둘이 함께 있는 사진들, 그리고 휴대폰에서 캡처한 문자 내용들까지요.

"증거가 확실하네요. 이 정도면 유책 배우자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 위자료도 청구 가능하고요."

"위자료는 많이 받고 싶지 않아요. 그냥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어요."

"재산 분할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반반으로 하죠. 저도 그 집에서 함께 살았으니까요."

변호사는 서류를 정리해서 민지에게 보냈어요. 협의이혼 신청서와 재산 분할 합의서였죠.

2주 후, 변호사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부인 측에서 연락 왔어요.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고 하는데요."

"안 만날 거라고 전해주세요."

"그런데 부인이 많이 힘들어하신다고... 변호사가 걱정될 정도로요."

저는 잠깐 망설였어요. 하지만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래도 안 만나겠어요. 서류로만 진행해주세요."

어느 날 저녁, 원룸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어요. 모니터를 보니 민지였습니다.

많이 변해 있었어요. 살이 빠져서 얼굴이 작아 보였고, 머리도 푸석푸석해 보였죠.

저는 문을 열지 않았어요. 그냥 인터폰으로 말했습니다.

"뭐 하러 왔어?"

"준호야... 제발 문 좀 열어줘... 할 말이 있어..."

"할 말 없어. 돌아가."

"제발... 5분만... 5분만 시간 줘..."

민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어요. 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싫어. 변호사 통해서 연락해."

"준호야... 나... 나 죽을 것 같아... 너 없으면 정말 못 살겠어..."

저는 인터폰을 껐어요. 하지만 민지는 한 시간 넘게 밖에 서 있었습니다. 가끔씩 초인종을 누르고, 제 이름을 불렀죠.

결국 관리사무소에서 올라와서 민지를 내보냈어요. 저는 그 모든 걸 모니터로 지켜봤습니다.

민지가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제 마음도 아팠어요.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한 번 깨진 신뢰는 돌이킬 수 없었거든요.

두 달이 지나자 이혼이 확정됐어요. 법원에서 이혼 판결문이 나왔죠.

"축하드려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셨네요."

변호사가 웃으며 말했지만 저는 기쁘지 않았어요. 그냥 허전했습니다.

재산 분할로 받은 돈으로 조금 더 넓은 투룸을 구했어요. 새 침대도 사고, 새 가구들도 장만했죠. 모든 걸 새로 시작하고 싶었어요.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준호 오빠!"

돌아보니 민지의 대학 동기인 수현이었어요.

"안녕하세요, 수현씨."

"오빠, 민지 언니는 어디 있어요? 요새 연락이 잘 안 돼서..."

저는 잠깐 망설였어요.

"우리 이혼했어요."

수현이 깜짝 놀랐어요.

"네? 이혼요? 언제요?"

"두 달 전에요."

"그럼 언니는 지금 어디..."

"잘 모르겠어요. 연락 안 하거든요."

수현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어요.

"오빠, 언니가 요즘 많이 이상해요. 친구들도 다 걱정하고 있어요."

"어떻게요?"

"집에만 있고, 아무하고도 안 만나고... 전화해도 안 받고... 가끔 만나면 완전 다른 사람 같아요."

저는 가슴이 무거워졌어요.

"그리고 일주일 전에는 병원에 입원했대요. 영양실조로."

"뭐라고요?"

"친구가 쓰러진 것 같다고 119 불렀어요. 혼자 집에 있다가 쓰러진 거래요."

저는 할 말을 잃었어요.

"지금은 퇴원했는데, 혼자서 제대로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오빠가 좀..."

"저는 이미 끝난 사이예요. 도와줄 수 없어요."

수현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어요.

"그래도 한때는 부부였잖아요..."

"죄송해요. 정말 도와드릴 수 없어요."

저는 그렇게 말하고 마트를 나왔어요.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수현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민지가 영양실조로 쓰러졌다고요? 그렇게까지 된 건가요?

그날 밤 저는 잠을 이룰 수 없었어요. 계속 민지 생각이 났거든요. 혼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지내는 모습이 상상됐어요.

하지만 저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민지가 먼저 배신했던 것이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거라고요.

저는 더 이상 민지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연구에만 집중했죠.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계속 신경이 쓰였어요. 민지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정말 괜찮을지.

그런데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니,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 복수는 성공했습니다. 민지와 최태준의 관계를 파괴했고, 민지는 결국 혼자가 됐죠.

하지만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할까요? 복수에 성공했는데 왜 기쁘지 않을까요?

저는 그 답을 찾을 수 없었어요.

6개월이 지났습니다. 저는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고 있었어요. 혼자 사는 게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제는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었죠.

출근하고, 연구하고, 퇴근해서 혼자 저녁 먹고, TV 보다가 잠드는 규칙적인 생활이었어요. 평화로웠습니다.

어느 금요일 저녁, 연구소 동료들과 회식이 있었어요. 오랜만에 참석했죠.

"준호씨, 요즘 많이 밝아 보이네요."

"그래요?"

"네, 이혼하고 나서 오히려 더 건강해 보여요."

동료들은 제가 이혼한 이유를 자세히 알지 못했어요. 그냥 성격 차이라고만 했거든요.

"혼자 사는 게 어때요?"

"생각보다 괜찮아요. 자유롭고."

"새로 만나는 사람은 없어요?"

저는 고개를 저었어요. 아직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회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어요. 맥주 한 캔을 사려고요.

계산할 때 앞에 서 있던 여자가 돌아봤어요. 민지였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민지의 모습이 많이 변해 있었어요.

살이 더 빠져서 거의 남의 사람 같았고, 머리도 짧게 잘라서 인상이 달라 보였죠. 얼굴도 화장기 없이 푸석해 보였어요.

"준호야..."

민지가 조심스럽게 불렀어요.

"응."

저는 대답만 했어요.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떻게 지내?"

"잘 지내고 있어. 넌?"

"나도... 괜찮아..."

하지만 민지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어요. 눈가에 다크써클이 깊게 져 있었고, 목소리도 힘이 없었죠.

편의점을 나와서 둘 다 같은 방향으로 걸었어요. 어색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준호야, 커피 한 잔 할까?"

민지가 조심스럽게 제안했어요.

저는 잠깐 고민했어요. 하지만 거절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 10분만."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마주 앉았어요. 민지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저는 라떼를 시켰죠.

"요즘 뭐 해?"

"그냥... 집에 있어. 새 일자리 찾고 있고."

"회사는 그만뒀다며?"

"응... 더 이상 거기 있을 수 없었어."

민지의 목소리가 작아졌어요. 최태준 때문이겠죠.

"새 직장은 구했어?"

"아직... 좀 더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사실 민지가 새 직장을 구하기 어려울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갑자기 사표를 내고 나왔으니까요.

"준호야."

민지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었어요.

"응?"

"나... 그때 일 정말 후회하고 있어. 매일 후회하고 있어."

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만약에... 만약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절대 그런 짓 안 했을 거야. 정말로."

"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잖아."

"그래... 그렇지..."

민지가 고개를 숙였어요. 어깨가 작게 떨렸습니다.

"준호야, 너 없으니까 정말 힘들어. 뭘 해도 재미없고, 하루하루가 너무 길어."

"민지야, 우리 이미 끝났어. 다시 시작할 생각 하지 마."

"나도 알아. 근데 너무 힘들어서..."

저는 단호하게 말했어요.

"나는 이미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어. 너도 그렇게 해야 해."

민지가 울기 시작했어요. 조용히, 하지만 눈물이 계속 흘렀죠.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모든 걸 망쳤어..."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어요. 측은함도 있었고, 동시에 아직도 화가 나는 마음도 있었죠.

"민지야, 그만 울어. 사람들이 쳐다봐."

"응... 미안해..."

민지가 눈물을 닦았어요.

"준호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볼게."

"뭐?"

"너 나를 용서할 수는 없어? 언젠가는?"

저는 한참을 생각했어요. 용서라는 게 가능할까요?

"모르겠어. 지금은 아니야."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민지가 가방을 들었어요.

"나 갈게. 오랜만에 봐서 좋았어."

"민지야."

민지가 돌아봤어요.

"잘 살아. 정말로."

민지가 작게 웃었어요. 슬픈 웃음이었죠.

"너도. 행복하게 살아."

민지가 카페를 나갔어요. 저는 창밖으로 그녀가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어깨가 축 처져 있었고, 걸음걸이도 느렸어요.

한때는 제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남남이 됐네요.

집에 돌아와서 저는 맥주를 마시며 생각했어요. 오늘 민지를 보니 제 복수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알 수 있었거든요.

민지는 정말 모든 걸 잃었어요. 남편도, 연인도, 직장도, 건강도. 제가 의도했던 대로요.

하지만 왜 기분이 이렇게 씁쓸할까요? 승리했는데 왜 만족감이 없을까요?

아마 복수라는 게 원래 그런 건가 봅니다. 해봤자 허무할 뿐이죠.

민지를 완전히 무너뜨렸지만, 저도 예전의 저로 돌아갈 수는 없었거든요.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아요. 만약 다시 그 상황이 온다면, 아마 똑같이 했을 것 같거든요.

배신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법이니까요.

이제 저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어요. 이번에는 정말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민지도 새로운 시작을 한 것 같더라고요. 다행이에요.

우리는 이제 정말 각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길을요.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사연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오디오북으로 정성스레 만들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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